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92
91화
강신은 김대리가 사진을 찍는 동안 모노리스를 자세히 살폈다.
매끈한 은색의 금속 기둥, 직접 만져보니 스테인리스같은 느낌이 드는 재질이었다.
강신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모노리스를 손으로 가볍게 두들겨봤다.
똑. 똑.
‘속이 비어있는 것 같진 않고….’
힘을 주고 살짝 밀어도 봤지만, 모노리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게 정말 뭐지…….”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워지자, 더 이상의 조사를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비켜줘야 했다.
강신 일행이 모노리스에서 비켜주자, 금세 다른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기념사진을 찍어댔다.
일행들은 모노리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모여 서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입을 연 건 스미스였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뭔가 아시겠습니까?”
“글쎄요.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네요.”
강신의 대답을 들은 스미스는 조금 실망한 눈치였다.
“그렇군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스미스의 이어지는 질문에 강신은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저걸 조금 더 지켜보고 싶군요.”
잠깐 본 것만으로 뭔가를 알아내기에는 어려웠고, 모두 강신의 의견에 동의했다.
강신은 멀리서 모노리스를 지켜봤다.
이미 위치가 알려져서인지, 시간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기념사진만 찍는 관광객들이 다수였지만, 그들 외에도 자칭 외계 물질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그들은 모노리스의 표면을 긁어 부스러기를 채취해가려고 했지만, 일반적인 도구로는 그 금속 기둥을 깎을 수 없었다.
관광객들은 그 모습을 보고 진짜 외계에서 온 물질이라고 소란을 떨었다.
이른 아침에 도착했던 강신은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모노리스를 확인했고, 슬슬 사막에는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달빛 한 점 없이 어두워지자, 이곳에 왔던 사람들이 썰물이 빠지듯이 빠져나갔다.
그때, 존이 다른 일행들과 강신에게 찾아왔다.
“해가 지니까, 사람들이 빠져나가는군요. 그렇다면 이 시간을 이용해서 저걸 회사로 가져가 분석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곳에서는 어떤 수상한 행동도 할 수 없었기에 존의 의견은 좋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나쁘지는 않은데, 몇 가지 걸리는 것이 있네요.”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모노리스가 갑자기 사라져서 사람들이 보일 반응과, 무엇보다 저걸 저희가 마음대로 뽑아가도 됩니까?”
저 물질은 엄연히 회사의 물건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지역은 유타주 정부가 관리하는 곳이었다.
존이 슬그머니 스미스의 눈치를 보자, 스미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제가 위쪽에 연락을 취해보겠습니다.”
스미스가 잠시 허락을 받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강신은 다용도 렌즈를 야간투시경 모드로 변경했다.
녹색의 세상에서 모노리스는 계속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통화를 끝낸 스미스가 돌아왔고, 강신은 시계를 조작해서 원래 시야로 조절하려고 했다.
그런데 순간, 모노리스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람과 비슷한 형체를 한 수상한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본 강신은 오만 생각이 들었다.
‘뭐지, 관광객인가? 아니면 다른 기업에서 보낸 사람? 그것도 아니면……. 모노리스를 설치한 사람인가?’
무엇이 정답이 되었든 강신이 다음으로 할 행동은 정해져있었다.
강신은 수상한 사람이 보인 곳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강선임?”
“강선임님?”
갑작스러운 강신의 행동을 본 척준신과 김대리가 다급히 강신을 불렀다.
“수상한 사람이 있습니다!”
허나 강신은 우선 저 수상한 사람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별다른 설명을 하지 못한 채 달려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었지만, 척준신은 예리한 감각으로 강신을 쫓아 뛰어갔다.
허나 야간 투시경 모드를 써서 시야가 훤히 보이는 강신을 따라잡을 순 없었다.
척준신도 강신을 뒤따라가자, 김대리와 존은 당황해하면서 황급히 손전등을 찾기 시작했다.
강신과 일행들이 분주해지자, 수상한 사람은 강신의 기색을 느낀 것인지, 황급히 그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강신은 혹시라도 그 사람을 놓칠까, 다용도 렌즈를 열화상으로 바꾸어 그 사람에게서 시선을 고정했다.
그 수상한 사람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협곡의 사각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강신은 열화상 렌즈로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고, 그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짧은 추격전은 도망치던 사람이 사방이 모두 벽으로 막힌 곳에 들어서고 끝이 났다.
강신은 막다른 곳에 몰린 사람을 잡기 위해서 초코를 불렀다.
“초코야, 제압만 해줘!”
-멍!
그림자에서 초코가 튀어나와 수상한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강신은 초코가 상대를 쉽게 제압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본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기 마련이다.
-깨갱!
어둠 속에서 튀어나오는 초코의 공격을 막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초코의 공격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반격까지 했다.
초코가 그림자로 숨자, 강신은 상대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바로 보호 장비의 의태 기능을 풀고,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어.’
시간을 끌면 유리한 건 자신이었다.
상대를 도망가지 못하게 잡고만 있으면 일행들이 따라올 것이다.
강신은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강신의 계획은 제대로 통했는지, 수상한 사람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척준신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고, 뒤쪽에서 손전등 불빛이 점점 다가왔다.
그때, 상대가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어쩔 수가 없군요.”
‘한국말?’
이국의 땅에서 한국말이라니, 예상하지 못했던 언어를 들은 강신은 살짝 당황했다.
그때, 수상한 사람이 당황한 강신에게 순식간에 접근해 강신의 옷깃을 잡아챘다.
옷깃을 잡히자 강신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건지, 그림자 속에서 초코가 튀어나와 상대의 손을 물려고 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당황하지 않고, 옷깃을 잡고 있는 반대 손으로 초코가 주둥이를 열지 못하도록 잡아버렸다.
“큭!”
강신이 그의 손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쳐봤지만, 수상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강신을 벽 쪽으로 잡아끌었다.
강신은 맥없이 수상한 사람의 손길에 이끌려서 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척준신과 김대리가 강신이 사라진 곳에 도착했지만,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 * *
한편, 벽 속으로 끌려들어 간 강신은 벽과 부딪힐 것을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아무런 충격이 느껴지지 않자, 슬그머니 눈을 떴다.
자신을 이곳으로 끌고 온 장본인은 잡고 있던 옷깃과 초코의 입을 놓아주며,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거칠게 대한 건 전적으로 사과하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공격을 한 것도 그쪽이었고 이쪽도 사정이 있었으니, 이해해주리라 믿겠습니다.”
강신의 목적은 제압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입장이었다.
상대방은 갑자기 공격을 해왔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강신은 상대방의 말에 틀린 것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열화상 렌즈로 바꾸었던 다용도 렌즈를 원래 시야로 돌렸다.
그러자, 빛을 내는 광석들이 박혀있는 작은 주거형태의 동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이 쫓아온 수상한 사람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자신을 끌고 왔던 존재는 160cm의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과 흡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척추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등이 굽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푸른색의 피부가 그가 인간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강신은 눈앞에 보이는 이 존재를 부르는 명칭을 알고 있었다.
“기둥을 짊어지는 자들….”
“오? 저희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푸른 피부의 존재는 놀란 표정으로 강신을 바라봤다.
기둥을 짊어지는 자들.
인간과 흡사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지만, 엄연히 U.M.A에 발을 걸치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이들은 인간들보다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구상에 남은 개체가 딱 넷뿐인 존재였다.
강신이 쓴 소설에서 이들은 각자가 소유한 기둥을 짊어지고, 온 세상을 떠도는 방랑자로만 묘사됐다.
그리고 그들이 짊어진 기둥의 재질이 항상 바꿨는데, 금속 기둥뿐만이 아니라 목재, 석재로 된 것들도 존재했다.
강신이 적었던 특이한 설정 중 하나가 있었는데, 재질이 무엇이 됐던 그들만이 기둥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저희는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어떻게 저희를 아시는 겁니까?”
“……그냥 제가 조금 특별하다고 말씀드리죠. 밖에 있는 금속 기둥은 당신의 기둥입니까?”
강신이 에둘러 말하고는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기소개를 안 했군요. 저는 #$@라고 합니다.”
“뭐라고요?”
강신은 자신이 잘못들었나 싶어 다시 한번 물어봤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 아, 인간의 청각과 성조로는 표현할 수 없는 단어였던가…. 편하게 그냥 이고르라고 불러주십시오.”
“이고르 씨?”
“씨는 필요 없습니다.”
“네, 이고르. 저는 강신이라고 합니다.”
“강신이라…. 좋은 이름이군요. 궁금한 것이 많아 보입니다. 반대로 저도 궁금한 게 많으니, 천천히 대화를 나눠보도록 하죠.”
“좋습니다.”
“그럼, 저기에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고르는 돌을 깎아만든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곳으로 강신을 안내했다.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온 그의 손에는 특이한 모양의 그릇이 들려 있었다.
손바닥 크기의 그릇 중앙에는 뾰족하고 붉은 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릇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겁고, 투명한 물이 들어있었다.
이고르가 그릇을 강신 앞에 놓아주자, 강신은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런 강신의 모습을 본 이고르가 피식 웃었다.
“인간들이 마시는 차 같은 겁니다. 물론 식물의 잎이 아니라 몸에 좋은 돌을 넣은 것이지만, 인간의 몸에도 좋으면 좋았지. 해롭지는 않을 겁니다.”
돌을 우렸다는 소리에 강신은 정말로 이것을 마셔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결국 차를 내온 이고르의 성의를 봐서라도 마시기로 결정했다.
강신은 천천히 찻물을 입안에 머금었다.
그런데 분명 김이 날 정도로 펄펄 끓어 뜨거워야 할 차가 신기하게도 박하사탕을 먹은 것처럼 청량하고 시원하게 느껴졌다.
정말로 신기한 맛이었고,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꿀꺽.
조심스럽게 목구멍으로 액체를 넘기자, 자기도 모르게 편한 한숨이 나왔다.
“하아…. 이거 굉장히 좋네요.”
“그럼요. 저희도 구하기 힘든 것이라 귀한 손님이 아니면 잘 내지 않는 차입니다.”
이고르는 대인배처럼 자신을 공격했던 강신을 귀한 손님으로 대접하고 있었다.
“괜히 민망해지네요. 감사합니다.”
“훗, 오랜만에 이야기할 수 있는 인간 분이 있으니, 기분이 좋군요. 본론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데 서로 궁금한 게 많을 테니, 서로 번갈아가면서 한 가지씩 질문하는 거 어떠십니까?”
“네, 그러시죠.”
“그럼 저부터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은 인간이 맞습니까?”
장난처럼 들리는 질문이었지만, 이고르의 진중한 표정은 그의 질문이 장난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째서 착각을 하는 것인지 몰랐지만, 강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에 대답했다.
“네, 인간 맞습니다.”
“인간이 맞다고요? 인간 주위에 이렇게 ‘희귀’ 동물과 곤충이 있는 것도 그렇고, 짙은 숲의 향기까지 나는데…….”
“다음은 제가 물어볼 차례네요. 이고르는 어떻게 한국말을 하고 있는 거죠?”
강신의 질문에 오히려 이고르가 머리를 갸우뚱대며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희 종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게 아니었습니까?”
“제가 아는 건 극히 단편적인 겁니다. 전부 알지는 못합니다.”
“그렇습니까…. 아까 강신 씨가 한국말로 검은 강아지에게 명령을 하는 걸 듣고, 한국말로 말한 겁니다. 참고로 저희는 한국말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인간의 언어를 알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언어를요…?”
강신이 작성했던 소설에는 나오지 않았던 정보였다.
자신이 몰랐던 내용이 나오자, 강신은 눈을 빛내며 흥미진진하게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저희가 아는 언어는 현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인간 사회에서 사라진 언어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미 유실된 언어까지 알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은 바닷속으로 사라졌지만 가장 복잡한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문명의 언어와 비교해보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언어들은 옹알이와 같은 수준입니다.”
강신은 크게 놀랐고, 이고르와 대화가 더 흥미로워졌다.
“자, 그럼 다시 제 차례군요. 이곳에는 어째서 오셨습니까? 강신 씨가 사용하는 언어를 쓰는 나라는 이곳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밖에 있는 금속 기둥 때문에 왔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물체니까요.”
“아, 그렇군요.”
“이고르, 이곳에서 뭘 하시는 겁니까?”
강신의 질문을 들은 이고르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강신 씨는 저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제가 아는 것이라곤 종족의 개체 수가 4명이라는 것과 각자 다른 지역을 돌아다니는 방랑자라는 정도입니다.”
“틀린 정보는 아닙니다. 하지만 모르시는 것이 있군요. 아무래도 저희 종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야겠습니다.”
“…….”
“저희는 당신의 말대로 기둥을 메고 돌아다니지만, 그것이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닙니다.”
“…목적이 있다고요?”
“물론입니다. 저희는 기둥으로 지구의 축을 맞추는 일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이고르의 입에서는 꽤나 충격적인 말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