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95
94화
강신은 자신도 모르게 한참을 이고르가 꺼낸 구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짝!
온통 구슬로 신경이 가있던 강신은 가벼운 손뼉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이게 뭔가요?”
“그건 저희가 만든 지식 전이제라고 부르는 물건입니다.”
“지식 전이제?”
이고르의 종족은 동족을 많이 잃고 나서야 지식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지식을 보존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기록으로 남기기에는 그들이 가진 지식은 너무나도 많았고, 그걸 익히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 뻔했다.
만약 그때가 그들의 문명이 번성하던 시기였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부분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미 세상은 종말을 향해달려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동족들이 빠르게 줄어가는 상황이니, 그들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고르의 아버지는 가공하는 것에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습득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지식 전이제라는 물건을 만들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인간이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현재 당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식을 넣어두었습니다. 사용 방법은 그냥 섭취하면 됩니다.”
정말 심플하고 간단한 사용법이었다.
강신이 구슬을 집어 이걸 먹어야 하나 고민하자, 이고르는 강신을 바라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건 오로지 당신을 위한 겁니다. 외부에 유출할 수 없는 물건이기에 제가 보는 앞에서 드시지 않는다면, 그 지식 전이제는 다시 수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권영식에게 이 물건을 전달해 연구하게 하고 싶었던 강신에게 이고르가 확실히 못을 박았다.
결국 강신은 권영식에게 전달하는 걸 포기했다.
구슬을 입에 넣기 전,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 안에 있는 지식은 어떤 겁니까?”
하지만, 그마저도 이고르는 확실히 대답해 주지 않았다.
“드셔보면 아실 겁니다.”
“후우….”
강신은 길게 한숨을 내뱉고는 이고르가 준 구슬을 입속에 넣었다.
구슬은 입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음…. 딱히 새로운 지식이라고 할만한 건 떠오르지 않는데요?”
구슬을 섭취했음에도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에 의문을 느꼈다.
강신이 이고르를 바라보자, 이고르는 슬그머니 어두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어마어마한 두통이 강신을 덮쳤다.
“으…. 으아악!”
두통의 강도는 마취를 하지 않고, 생으로 두개골을 열어 뇌를 수술하는 것만큼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강신의 상황을 예상한 걸까, 이고르가 고통을 호소하며 원망하듯 자신을 바라보는 강신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거짓말을 한 건 없습니다. 단지, 우리와 신체가 다른 인간이 지식 전이제를 섭취하면 끔찍한 두통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이죠.”
이런 끔찍한 부작용이라니.
이고르가 제대로 설명했다면, 구슬을 먹는 걸 거절했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결국 강신은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 * *
정신을 잃은 강신은 자기가 물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천천히 눈을 뜨자, 빛이 한 점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심해와 같은 곳에 자신이 있다는 걸 인지했다.
“자각몽…?”
누가 봐도 현실이 아니었다.
그때 갑자기 한 점의 빛이 들어와, 어려 보이는 이고르를 비추었다.
지쳐 죽어있던 그의 눈도 초롱초롱하게 빛이 났다.
아직 등이 굽지 않은 이고르는 생기가 넘쳐 보였다.
그런 그의 주변에 하나둘씩 서로 다르게 생긴 그의 동족들이 나타났다.
이고르는 동족들과 함께 뛰어놀기도 하고, 공부하기도 하며 여러 일들을 함께했다.
강신은 물속에서 이고르가 하는 행동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지만, 어린 이고르는 자신을 보지 못하는 듯했다.
이고르는 친구들과 함께 모험도 즐겼다.
그는 항상 가장 앞에서 친구들을 이끌었으며, 위기에 처한 동족을 그냥 보고 지나가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고르를 따랐다.
이고르를 비추는 빛은 점점 반경을 넓혀갔고, 그만큼 동족의 수는 늘어만 갔다.
그러다, 갑자기 돌연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이고르를 따랐던 이들이 하나둘 먼지가 되어서 홀연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고르는 그 먼지를 잡기 위해서 양손을 뻗었지만, 먼지는 이고르의 손을 유유히 빠져나갈 뿐이었다.
동족이 하나둘 사라질 때마다, 이고르는 슬퍼했으며 자책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곁에 있던 인원들이 줄고 줄어서 결국 혼자만 남자, 이고르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서 슬퍼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점점 등이 굽어갔으며, 눈동자는 지금과 같이 슬픔과 후회가 가득했다.
현재의 모습과 똑같아진 이고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강신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강신이 있음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와 비슷한 향기가 나는 인간, 부디 당신들은 우리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자기에게 말을 거는 이고르에게 강신이 되묻고 싶은 것이 많아, 말을 꺼냈지만….
“그게 무슨 의미…….”
강신의 질문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누군가가 물속에 있는 강신의 몸을 강제로 끌어올렸기 때문이었다.
강신은 자기도 모르게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허억, 허억…….”
강신의 몸은 식은땀으로 젖어있었으며, 숨은 가빴다.
그는 서둘러 자신이 있는 곳을 둘러봤다.
분명 이고르가 준 지식 전이제를 먹고 동굴에서 정신을 잃었다.
그런데 자신이 일어난 곳은 어째서인지, 병원의 병실로 보이는 공간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강신은 호흡을 고르며 누가 자신을 여기로 데리고 온 것인가, 고민해 봤지만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런 강신의 상황을 아는 것일까.
강신의 궁금증을 풀어줄 사람이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래서, 제가 그때 딱! 이렇게 말했죠. 어? 강선임님?! 척부장님! 강선임님이 깨어나셨어요!”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강신의 일행 중 단 한 명뿐이었다.
“김대리님. 제가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거죠?”
“한참을 기다려도 집합장소로 오시지 않아서 다시 돌아가 봤더니, 모노리스가 있던 곳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강선임님이 계셨습니다. 바로 이곳으로 옮겼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제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나요?”
“이곳으로 모시고 온 게 벌써 나흘 전입니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나흘 동안이나 이러고 있었다고요?”
김대리가 상황을 설명하는 사이, 의사를 부르기 위해 갔던 척준신이 하얀 가운을 걸친 의사와 존, 그리고 스미스를 데리고 병실로 들어왔다.
일행들은 강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아 보였지만, 함께 온 의사가 강신의 몸을 먼저 살필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의사는 이리저리 강신의 몸을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환자분, 혹시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습니까?”
강신은 그 말 듣고는 가볍게 어깨를 돌리고, 목을 돌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누워있어서 그런가, 조금 뻐근한 걸 빼면 당장은 어디가 아프거나 하진 않네요.”
“그렇습니까? 자세한 검사는 내일 오전 중에 하고, 아무런 이상이 없다면 바로 퇴원하셔도 될 것 같군요.”
의사는 자신이 들고 있는 차트에 현재 소견을 적어 넣고는 병실 밖으로 나갔다.
의사가 나가자, 바로 질문을 쏟아낼 것 같던 일행들은 모두 눈을 크게 뜨고 강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왜요?”
강신은 일행들이 어째서 그렇게 자신을 쳐다보는지 묻자, 일행들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몰라서 묻는 건 아니죠?”
“모르는 게 더 이상한데?”
김대리뿐 아니라 척준신까지 강신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
“강선임님 여기는 스페니시 밸리의 병원입니다. 그리고 방금 저분은 이곳의 의사죠.”
“그런데요?”
김대리의 대답을 들은 강신은 끝까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김대리는 길게 한숨을 쉬며 자세히 설명했다.
“후우…. 저 의사분은 외국인이시고, 한국말을 모르시죠. 강선임님은 그런 의사분과 엄청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를 하신 거고요.”
“음?”
강신의 영어 실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단지, 회화가 많이 약했고 현지인과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존과 스미스와 대화를 할 때도 김대리가 강신의 옆에서 통역을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며칠간 정신을 잃었던 사람이 일어나 본토 발음으로 외국인과 유창하게 대화를 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이쯤 되면 정말로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지는군요.”
스미스가 영어로 말했지만, 그의 말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말하고자 단어들을 생각하자, 자연스럽게 영어로 내뱉어졌다.
“궁금한 게 있으시면 지금 바로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강신은 유창한 영어로 이고르의 동굴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지식 전이제라…. 흥미로운 물건이군요. 효과는 이미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거짓은 아닌 것 같고 영어와 관련된 지식만 받으신 겁니까?”
존은 연구원답게 눈을 빛냈다.
이고르의 일보다 그가 건네주었던 지식 전이제에 대해서 관심을 보였다.
“글쎄요. 다른 지식들은 잘 모르겠네요.”
강신은 바로 확답하지는 못했지만, 이고르는 모든 언어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왠지 다른 나라의 언어들도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스미스가 강신의 이야기를 듣고는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강신이 이상한 눈으로 스미스를 바라보자, 그는 굳었던 표정을 풀며 능청스럽게 대화로 끼어들었다.
“오! 정말 놀라운 물건이군요.”
강신은 그의 능청을 자연스럽게 받아넘겼지만,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았다.
그 후, 깨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강신의 안정을 위해 일행들은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 * *
다음날, 강신은 가벼운 검사를 받고 그 병원에서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한 강신과 일행들은 바로 솔트레이크 시티로 돌아갔다.
유타주로 넘어올 때, 일이 언제 끝날지 예상할 수 없었기에 항공편을 왕복으로 끊지 않았고, 김대리가 바로 항공편을 알아봤다.
유타주에서 LA로, LA에서 인천공항까지 가는 항공편은 3일 뒤에나 있었다.
강신 일행은 남은 시간 동안 이곳에 있는 성신 그룹의 비밀 연구소를 견학했다.
이곳의 연구소는 지하 10층으로 수원 연구소에 비하면 적은 층수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설은 수원 연구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특히 가장 끝 층인 10층에는 수원 연구소와 마찬가지로 U.M.A를 관리하는 큐브들이 있었는데, 수원에서는 볼 수 없었던 U.M.A들도 있었다.
유타주 야생 보호국 소속의 스미스는 비밀 연구소 견학을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 외의 시간에서는 계속 강신과 함께했다.
그렇게 3일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일행들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존과 스미스도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서 함께 했다.
비행기 탑승 전, 그들은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강선임님, 저는 당신과 했던 시간을 잊지 않겠습니다.”
“존, 이제 안 볼 사이처럼 왜 그러세요. 회사 메일로 종종 연락드릴게요.”
“좋습니다! 저도 바로 답장해드리죠.”
존과는 훈훈하게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하자, 스미스도 다가와 강신에게 악수를 청했다.
“덕분에 새로운 것들을 보게 되어서 진심으로 즐거웠군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다시 봤으면 좋겠습니다.”
강신은 그런 스미스에게 그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요. 다음에 뵐 때는 유타주 소속이 아니시거나, 다른 분이 오시겠죠. 미스터 ‘스미스'”
강신의 말을 들은 스미스가 놀란 듯이 헛기침을 했다.
“크흠….”
강신이 스미스와 악수를 하면서 스미스라는 이름을 강조하자, 뭔가 찔린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는 사이, 강신은 일행들과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탑승구로 들어갔다.
탑승구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스미스를 본 존이 걱정했다.
“괜찮으십니까? 스미스?”
“물론입니다. 그보다 저 친구…. 아무래도 제가 누군지 짐작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어…. 저는 말 안 했습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제 돌아가야겠군요.”
“그……. 고생하셨습니다. 스미스.”
“고생 많았습니다, 존.”
그렇게 스미스는 존에게 인사를 하고, 강신의 다음 비행기를 타고 LA로 떠나버렸다.
한편, 스미스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이야기를 했음에도, 척준신이 그 내용을 들었는지 강신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강선임, 방금 스미스에게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알려줄 수 있겠나?”
“쉽게 말하면 스미스는 유타주 야생 보호국 소속은 아닙니다. 그보다 더 상위 소속이겠죠.”
“그게 무슨 말입니까?”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대리가 놀라서 강신을 바라보자, 강신이 천천히 설명했다.
“애초에 이곳으로 저희를 보낸 것부터가 조금 이상하죠.”
박상진 전무의 추천으로 이곳으로 오게 되었지만, 솔직히 모노리스때문이라면 굳이 강신을 이쪽으로 보낼 필요는 없었다.
그 생각이 확고해진 건 비행기를 기다리며, 이곳의 비밀 연구소를 견학하면서였다.
그들은 수원 연구소 못지않게 능력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있었으며, 설비 또한 수원 연구소 못지않았다.
그럼 어째서 박상진 전무는 강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일까.
처음 강신은 자신이 없는 동안 박상진 전무가 회사에서 무엇인가를 하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스미스를 보고 깨닫게 되었다.
스미스는 자신을 분명 유타주의 야생 보호국 소속이라고 소개했지만, 그는 고작 야생 보호국 소속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지나치게 유능했다.
한 주의 공무원인 사람이 가짜 기사를 미국 전역으로 뿌릴 수 있다는 것부터가 굉장히 수상했다.
그리고 종종, 존은 그런 스미스를 굉장히 어려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끔 스미스가 주도할 때, 존은 아무런 반대 의견을 내뱉지 않고 따랐다.
“솔직히 어디 소속인지는 모르겠지만, FBI나 펜타곤에서 나왔을 겁니다.”
“음….”
그런 기관에서 강신의 소문을 비밀리에 입수했다면 이번 모노리스 사태는 강신을 불러내기 좋은 구실이었을 것이다.
‘박상진 전무가 추천한 것도 미 정부의 압박이 있었다면, 설명이 가능하지.’
강신은 그 말을 끝으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의자에 몸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