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Life, The Greatest Star In The Universe RAW novel - Chapter (1155)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155화
중고등학교 시절.
썰렁개그를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꼭 한 번씩 날리는 개그가 하나 있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하는 것이여~ 핫핫핫핫!
그렇다.
무엇이든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닌 것이다.
“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네, 우주 씨.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 모습 정말 아름답습니다.”
아나운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3라운드 탈락입니다~!”
“안 돼…!”
결승전 진출자를 뽑는 라운드에서 나는 그만 탈락하고 말았다.
마구 웃음을 터뜨리는 방청객들.
전광판 위로 점수표가 보였다.
[순위]1. 김유인 : 335
2. 장한별 : 320
3. 우주 : 295
2등은 한별이, 1등은 국문과 학생.
둘을 따라잡기 위해 정말 악착같이 점수를 끌어모았지만 25점 차이로 떨어지고 말았다.
재트 밀러 씨가 말했다.
“제가 다 안타깝네요. 아까 30점 문제에서 중현 씨를 믿어 주시기만 했어도 결승전에 진출하셨을 텐데…….”
“그러니까요.”
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멤버를 믿었어야 했는데 믿지 않아서 이런 벌을 받는 것 같습니다. 다음부터는 오늘 일을 교훈 삼아 중현이를… 그….”
말을 머뭇거리는 내게 시선이 집중됐다.
“중현이를…… 네, 뭐 그러겠습니다.”
“절대 믿겠다고는 안 하네요.”
한별이의 말에 다들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내가 모른 척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까의 판단에 대한 피드백과는 별개로 아쉬움이 든다.
25점 차이라니.
딱 30점만 있어도 내가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었을 텐데.
“네. 그러면 잠시 쉬고 녹화 이어가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스탭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방청객들이 수다를 떨기 시작하는 동안 내게 폴짝폴짝 뛰어오는 이가 보인다.
“형~!”
한별이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다.
“나 결승 올라갔다~!”
“잘했어.”
행복해하는 상대의 표정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올라가지 못한 게 아쉽긴 했으나, 아마 내 점수가 높았다고 해도 올라갈 일은 없었을 것 같다.
만약에 내가 2등이고, 한별이가 3등이었다면 일부러 한두 문제 틀려서 한별이를 위로 올려 보낼 계획이었으니까.
오늘은 내가 주인공인 날이 아니었다.
옆에 따라붙은 한별이가 흥분한 병아리처럼 조잘거렸다.
“나 어땠어? 오랜만에 한국 TV 출연이라 좀 떨렸는데. 나 어디 실수한 거 없지? 헤어 그대로 괜찮지?? 혹시 흥분해서 나대다가 말실수 하거나 그런 건 없나? 사람들 반응 어때?”
“일단 숨 좀 돌리고 말해. 자, 심호흡하자. 후.”
“후우….”
가슴에 손을 올린 채,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한 한별이가 말했다.
“이제 진정됐어.”
“다행이네. 너 숨넘어가는 줄 알았어.”
“나 엄청 떨렸다? 나 혼자 이렇게 한국 TV에 나오는 건 거의 처음이란 말이야.”
“그런 것치곤 잘했어.”
애초에 걱정도 안 했다.
살짝 긴장해서 그렇지, 중국에서 춘절 특집 같은 거대한 프로그램도 무난히 소화하는 친구였으니까.
한별이를 진정시키며 잘했다고 치켜세워 주니 금세 또 어깨가 올라갔다.
본인이 느끼기에도 반응이 좋긴 좋았던 모양이었다.
“크으, 이제 이거 나도 별명 같은 거 생기는 건가? 나 그런 별명 진짜 가지고 싶었거든.”
“어떤 별명?”
“막 팬들이 외국인 멤버 있으면 김씨 붙여 주는 거 있잖아. 김패트릭, 김샤샤 이런 거.”
“넌 이미 한별이잖아.”
“그러네…. 김씨 붙여도 나는 김한별이네.”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시는 한별이.
그때 내가 멈칫하며 허공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어? 잠깐만. 근데 김한별을 한자로 하면…….”
“이승을 하직하고 싶지 않으면 거기서 멈춰.”
“네.”
바로 납득하고는 한별이를 격려해 주었다.
“아무튼 오늘 잘했어. 이제 결승전은 부담 없이 임하도록 해. 원하던 목표는 다 이뤘으니까.”
“응.”
“우승을 하면 좋고, 아니어도 괜찮고. 지금 1등하는 사람한테 져도 아무 문제없을 거야.”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김유인이라는 학생.
안경을 쓰고, 지적인 인상을 지닌 대학생은 [우리말 대격돌>의 애청자라고 밝힐 만큼 국어 실력이 대단했다.
솔직히 한별이가 잘하긴 해도 저 국문과 학생을 이길 것 같진 않았다.
“형.”
그때, 진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광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진지해 보이는 한별이의 뒷모습.
평생 곱게 살아온 도련님이 마침내 혁명에 몸담기로 한 듯한 자태였다.
“내가 오늘 우리말 대격돌에서 우승하면 준우승보다 화제성이 더 크겠지? 국문과 학생을 이긴 외국인 아이돌 가수 해서.”
“그렇지.”
“우승할게.”
“!”
한별이가 등을 돌리고 말했다.
“형이랑 회사 분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해 줬는지 알고 있어. 그러니까 오늘 최선을 다할게.”
“한별아….”
“나를 믿어 줘.”
종종걸음으로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가는 한별이.
내가 그 뒷모습을 향해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그럴 기운으로 무대를 해…. 너 국문학도가 아니고 가수라고…….”
“후후후후후!”
야심찬 웃음소리를 내며 멀어진 한별이를 향해 티벳 여우 같은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원래 저랬었는지 긴가민가하지만… 왜 우리 회사에는 정상적인 가수가 하나도 없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요. 형.
조용히 해라. 중현아.
형이 너 때문에 30점 날아간 거 모르니?
-그건 형이 제 말을….
어디선가 환청이 들려오는 듯했지만 무시하며 다시 녹화장으로 돌아갔다.
* *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축하드립니다! 오늘의 우승자는 장한별 씨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
한별이는 해냈다.
처음에는 국문과 학생에게 페이스가 밀렸지만 마지막 문제에서 시원하게 역전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감탄사 파트에서였다.
-재채기를 한 다음에 이 소리를 외치면 감기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4글자 감탄사 ‘이것’은 무엇일까요?
-한별! 개치네쒜!
-정답입니다!
화려한 금박이 떨어지는 곳에서 국문과 학생이 인정한다는 듯 손뼉을 치고 있고, 한별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형 덕분이야!’
‘알면 됐다.’
정말로 이 부분에서는 나의 공로가 있었다.
[우리말 대격돌> 촬영을 위해 방송국으로 오는 동안 차량에서 한별이에게 이것저것 알려 줬으니까.-개치네쒜~ 어뜨무러차~ 얄라차~
-그게 뭐야?
-한국어의 독특한 감탄사 모음.
이런 퀴즈쇼들은 특성상 후반부로 갈수록 고난도 문제를 내야 한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꽤 장수 프로그램이란 것이고, 작가들도 자료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되면 필시 ‘진짜 이건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거 없나요?’ 하며 뒤적거리게 되는데, 내가 말했던 저런 감탄사가 그런 생소한 문제들에 속했다.
-그런고로 알고 있으면 좋은 거지. 안 나오면 어쩔 수 없고, 혹시나 얻어 걸리면 완전 대박. 특히 요거 ‘개치네쒜’는 다른 국어 퀴즈쇼에도 나온 적 있거든.
-호오. 더 알려 줘.
-엿단쇠는 엿장수가 엿을 사라는 뜻의 소리고, 그리고….
혹시나 하고 준비한 것들인데 나름대로 보람이 있었다.
너무 오버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우승했다면서 활짝 웃고 있는 한별이를 보니 미소가 지어진다.
“곧 발매하는 저의 앨범! 많이 기대해 주세요!”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한별이에게 박수를 보내 주며 녹화를 마무리 지었다.
다른 출연자들과 함께 SNS에 올릴 인증샷도 찍고, 피디님과 스탭들에게 인사도 하고, 내가 왔다며 직접 발걸음을 해 주신 교양국장님과 만나 짧은 티타임도 가지며 알찬 시간을 보냈다.
이 정도면 한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다 해 준 셈이었다.
“남은 건 연습이야. 한별아.”
“진짜 열심히 할게. 형.”
지혁이나 다른 연습생이었다면 ‘그래’ 하면서도 계속해서 연습과정을 모니터링했을 텐데.
한별이의 경우에는 특별히 신경을 쓸 부분이 없었다.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 본 프로니까.
그렇게 곧 앨범 발매를 앞둔 한별이를 격려하고는 숙소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어우…….”
“괜찮으세요. 우주 씨?”
“뒷목이 땡기네요.”
뒷목을 주무르는 나에게 매니저 종완 씨가 근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병원이라도 들를까요?”
“아뇨. 좀 피곤해서 그래요.”
재미있긴 했지만 지금의 체력 상태로는 무리수였던 스케줄 같다.
온몸이 노곤노곤하다.
뻑뻑한 눈에 인공눈물을 넣으며 어깨를 주물렀다.
“슬슬 쉴 타이밍이 필요한 거 같긴 해요. 지금 너무 바쁘긴 하지만 그래도 연말 지나면 여유로우니까요.”
영화 시사회부터 지금까지 쭉 강행군이었다.
얼마 뒤면 어워드 무대들이 기다리고 있고.
하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들 덕분에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을 수 있었다.
-사운드 오브 선, 천만돌파 코앞.. ‘역대 최단 천만 영화 등극하나?’
부모님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사운드 오브 선, ‘역주행 돌풍’ 미국 박스 오피스 1위
미국에서 첫 주차에 반응이 저조했던 사운드 오브 선은 보란 듯이 화려한 날개를 펼쳐나가고 있다.
과거 아빠에게 차별적인 언행을 일삼았던 이들은 지금 실시간으로 사과를 하고 있거나 혹은 SNS 계정을 탈퇴하면서 도망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의 태양에게 상을.]영화를 본 이들이 아빠에게 상을 주라는 문구들을 SNS에 올리는 중이었다.
단순히 일반 관객들뿐만 아니라 원로 음악인들도 나서서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국 시사회에 참석했던 윈스턴 로스를 비롯해 아빠에게 마음의 빚이 있던 분들.
[이미 늦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너무 늦지는 않았습니다.]그날 시사회에서 ‘나는 자네들의 음악을 좋아하네’ 라고 했던 음악인이 눈시울을 붉히며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감히 제안하고자 합니다. 저는 재즈계를 위대하게 빛냈던 태양에게 지금이라도 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 모두 그의 공로를 기려야 합니다.]여기에 폴 로랑을 비롯해 선명주 키즈로 불리는, 현재 세계 클래식 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이들이 하나둘 말문을 열면서 분위기가 바뀌어 가고 있다.
[썬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빈민가의 가난한 아이로 계속 자라났겠지요. 그때 제가 음악적인 재능을 살리도록 도와주었던 것은 그 어떤 NGO도, 정부도, 자선단체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부부였죠.]처음에 영화가 흥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모른 척하고 있던 음악계도 서서히 압박감을 느끼는 중이고, 여기에 언론들도 ‘그동안 우리 너무 차별했구나!’ 하면서 반성하자는 칼럼을 기고 중이었다.
이게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간 아빠가 세웠던 공로에 걸맞은 것이 주어진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기사들을 보면서 차창을 바라보았다.
올림픽대로 위로 하늘에 달이 반짝인다.
달은 태양의 빛을 반사해서 빛난다고 했던가.
‘말했죠?’
작게 중얼거리며 차창을 톡톡 두드렸다.
‘모두가 알게 될 거라고.’
그렇게 만들 거라고 공언을 했고 이뤄 냈다.
일본은 이제 막 개봉을 앞두고 있어서 반응이 안 올라오고 있긴 했지만 이제 곧 올라올 것이고.
본업 소식도 다 좋은 소식들뿐이다.
-‘October Christmas’, 오버쿡 누르고 빌보드 1위 차지했다.. “11월의 기적”
이번에 발매한 캐럴은 오버쿡을 누르고 북미 차트에서 1위를 달성했다.
오버쿡이 고전했던 영국에서도 싱글 차트 1위를 달성했을 만큼 기세가 좋은 상황.
-[칼럼] 팬도 아닌 일반인들이 아이돌 리얼리티를 챙겨 본다고요? ‘뉴블랙의 여행일기 3’, 이유 있는 흥행 포인트 3가지
알래스카에 다녀온 여행일기도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흥행하고 있다.
뭐라고 할까.
방영 중인 다른 드라마들도 그렇고, NBS라는 신생 채널이 점점 자리를 잡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문라이트와 함께 찍었던 편이 곧 방영하면 여러 모로 반응이 꽤 크지 않을까 싶다.
“타- 타- 타타-.”
캐럴을 흥얼거리며 손가락으로 핸드폰 화면을 두드렸다.
분명 찬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인데, 왠지 모르게 들려오는 소식들은 전부 다 따스한 것들뿐이다.
아마 내 인생 통틀어서 가장 따뜻한 겨울이라고 할 수 있는 요즈음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우주 씨. 예정대로 새벽 3시에 픽업하러 오면 될까요?”
“네, 그때 봬요.”
매니저와 인사를 나누고는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숙소에 돌아왔다.
들어오자마자 거실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었던 중현이와 눈이 마주쳤다.
“형 왔어요?”
“왔다~”
물구나무를 마치고 폴짝 일어난 중현이가 물었다.
“그거 아까 틀렸죠?”
“어? 아, 그 평성, 거성?”
“네.”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거 이상하더라. 네가 찍어 준 거 반대로 했는데.”
“제가 아까 형한테 이야기하려다가 전화가 끊겼는데요.”
“응.”
“저 그거 고등학교 때 배웠어요.”
“…….”
나도 모르게 뒷목을 잡으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괜찮아요. 형?”
“괘… 괜찮아. 덕분에 분량 잘 뽑았으니까.”
사람들의 비웃음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느낌.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 * *
누군가 인생 최고로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을 때.
여름철 폭염에 시달렸던 일본 도쿄는 현재 찬바람이 잔뜩 불어오는 날씨를 기록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두툼한 옷을 여미며 몸을 움츠리는 등 어딜 가든 겨울이 완연한 날이었다.
하지만 특정 장소들만큼은 뜨겁게 붐비고 있었다.
‘헤에… 이게 미국에서도 어마어마하게 흥행을 했다는 그 영화구나.’
바로 극장가였다.
선명주가 격정적으로 피아노를 치고, 등장인물들이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객들.
올 겨울 극장가 최고의 화제작 [사운드 오브 선>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사운드 오브 선~! 11월 대개봉!]언론에서도 팍팍 홍보를 해 주면서 ‘아시아가 키워 낸 슈퍼스타 선명주!’ 하며 홍보하고 있고.
한국인들과 달리 일본인들에게는 ‘선명주’라는 인물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극장으로 들어가는 관객들의 얼굴에는 영화에 대한 설렘과 호기심이 가득했다.
모두가 들뜬 분위기.
이 속에서 유일하게 긴장한 분위기로 서 있는 것은 마스크를 쓰고 있는 한 중노년 나이대의 남성이었다.
“…….”
하시모토 겐지.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는 그가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관객들을 보며 기획사 관계자에게 말했다.
“고토 군.”
“예. 선생님.”
“이게… 다 사운드 오브 선을 보러 가는 관객들인가?”
“예. 역대… 11월 최고 예매율이라고 합니다.”
“…….”
하시모토 겐지가 침을 꿀꺽 삼켰다.
‘큰일이군.’
[사운드 오브 선>에 그렇게 적나라한 내용이 담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하시모토 겐지였다.‘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이 틀렸단 말인가? 분명 과거의 일을 다시 꺼낼 옹졸한 성미라고는 안 보였다만….’
처음에는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 몰랐던 하시모토 겐지는 금세 내용을 알게 됐다.
왜냐하면 그의 SNS에 영어로 악플이 달렸기 때문이었다.
여러 루트를 통해 알아보니 영화 속에서 과거 그와 그의 동료들이 했던 일이 아주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미칠 지경이었다.
잠이 안 오고, 입맛이 없고.
지금도 가만히 있으면 미칠 것 같아서 극장에서 몰래 분위기를 염탐하고 있는 중이었다.
‘안 돼!’
당장이라도 극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뒷덜미를 붙잡고 끌어내고 싶은 심정.
우르르 극장으로 사람들이 들어갈 때마다 하시모토 겐지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저… 저…….”
어찌나 심장이 벌렁거리는지 그의 머리가 자동으로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화르륵 타오르는 꽃밭 회로.
‘영화의 분량에서 내가 차지할 분량은 극히 일부일 것이다. 일본인들은 보통 같은 나라 사람의 치부를 들추지 않을 테니까… 어쩌면 그냥 아무 일 없이 조용히 넘어갈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사운드 오브 선의 오전 1회 차 관람을 마친 관람객들이 우르르 나오기 시작했다.
“……하시모토….”
“선명주 상이 떠났을 때, 그 하시모토? 그 사람…….”
중얼중얼하는 대화들 속에서 들려오는 선명한 단어들.
벽에 날파리처럼 착 달라붙어 숨은 하시모토 겐지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화르륵- 열기로 타오르고 있는 관객들.
“…….”
어디선가 불어오는 온풍기의 바람 때문일까.
하시모토 겐지에게도 아주 따뜻한 겨울이 찾아오고 있었다.
따뜻하다 못해… 아주 뜨겁도록 핫한 계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