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Life, The Greatest Star In The Universe RAW novel - Chapter (1192)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192화
“리혁아.”
“왜요.”
“이거… 비행기 안전한 거 맞겠지?”
“손 잡아 줄게요.”
“고마워.”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내 오른손 위로 리혁이의 자그마한 손이 얹어졌다.
왼손에도 지호의 손이 얹어지는 게 느껴졌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시동을 건 비행기에서 굉음이 들려오면서 심박수가 빨라지고, 아웃도어 안으로 식은땀이 성글성글 맺힌다.
일반 민항기와 다른 내부 때문에 더 그런 걸 수도 있고, 기류가 불안정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뒷좌석에 앉은 중현이가 자장가를 흥얼거려 주었다.
“자장 자장… 자장면.”
“야.”
그만 웃음이 터졌다.
뒤를 돌아보자 중현이가 씩 웃으며 엄지를 들었다.
“하지만 맥이 탁 풀렸죠?”
“그래.”
“장하죠? 후후.”
“그래.”
픽 웃으며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덕분에 바짝 날이 서 있던 신경이 가라앉은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다시 이륙을 준비하면서 눈을 질끈 감기는 했지만, 동생들의 케어 덕분에 무사히 남극행 비행기에서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후우….”
심호흡 하며 눈을 감고 있는 것도 잠시.
얼마쯤 지났을까.
“우와아아아아…….”
옆자리에 앉은 지호가 법석을 떨며 창문을 가리켰다.
“형. 남극이에요!”
“벌써?”
이윽고 내가 창문을 바라보고 놀랐다.
새하얀 구름 같은 땅이 펼쳐져 있….
아니.
“구름이잖아. 지호야.”
“아? 그러네?”
한국어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영어로 말했다면 지금 우리 근처에서 웃음을 참는 펭귄 박사님처럼 다들 키득거렸을 테니까.
하지만 얼마 안 가 정말로 남극 땅이 드러났을 때.
“우와아아아아아-.”
그때는 우리 모두 창문에 코를 박듯이 가까이 얼굴을 댔다.
6mm 카메라를 들고 촬영 중이던 감독님과 구재영 피디님도 넋을 놓고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게 남극….”
그야말로 새하얀 얼음의 땅이 발아래 펼쳐져 있었다.
칙칙한 잿빛 바다.
까맣게 드러난 일부 땅을 제외하면 모든 곳이 눈과 얼음으로 둘러싸인 대륙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저 조금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귓가에 비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래스카에서 빙하를 많이 보고 와서 감동을 못 받으면 어떡하지? 했는데 완전 기우였어요.”
“……확실히 다르네.”
알래스카에서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였다.
아주 오랜 시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미지의 땅이라는 것이 확 느껴진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왜 수많은 모험가들이 목숨을 걸고 이곳에 방문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진짜 미지의 대륙이네요.”
“눈과 얼음의 땅….”
우리가 짧은 어휘로나마 그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말했다.
“그리고 펭귄의 땅이기도 하죠. 후후후후!”
“…….”
“무려 2천만 펭귄들이 거주하는 펭귄 왕국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펭귄이 많이 서식하는 환상의 대륙, 남극입니다.”
팽귀인 박사님이 부리, 아니 입에서 침을 튀기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물었다.
“참, 다들 선글라스는 챙겨 오셨나요?”
“네.”
“남극은 특히 자외선이 강하거든요. 게다가 눈 때문에 햇빛이 엄청 반사되기도 하고요. 여러분처럼 처음 방문하는 분들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다니시는 게 좋을…….”
그 말을 하던 박사님의 시선이 내게 머물렀다.
“우주 씨?”
“네?”
“그거… 쓰시게요?”
“네.”
내가 선글라스를 착용하며 말했다.
“이상한가요?”
“…….”
박사님이 말을 멈추고 있는 동안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졸개들뿐만 아니라 주변 승객들도 날 보고 있다.
“??”
뭐가 문제지?
* * *
한국.
청담동의 사무실에서 행거에 가득 걸린 옷들을 정리하던 한 무리의 여성들이 한숨을 쉬었다.
“휴우.”
누군가 땀을 훔치며 말했다.
“와. 협찬이 많이 들어오는 것도 일이네요.”
“그니까, 안 들어와도 문제인데 너무 많이 들어와도 문제다. 문제야.”
그들은 바로 레몬 엔터에 고용된 뉴블랙의 스타일리스트들이었다.
지금 이 널찍한 사무실에 가득한 옷들이 바로 뉴블랙과 관련된 다양한 의상들이었다.
콘서트부터 캐주얼한 행사들까지.
“얼마 전에는 협찬 안 받는다고 했는데도 업체에서 대뜸 옷 두고 갔더라고요. 한 번 봐 보기라도 해 달라고.”
“그런 게 한둘이 아니야….”
The New Black이라는 그룹명에 담긴 뜻처럼 유행을 만드는 연예인의 선두에 서서 그런 걸까.
패션 관계자들은 어떻게든 뉴블랙과 연줄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의상팀은 여기저기서 시달리는 중이었다.
친구랑 술자리인 줄 알고 갔는데 청탁이 들어온다거나, 사무실에 찾아와서 농성을 벌인다거나.
“그나저나 애들은 남극 갔나?”
“지금쯤 도착했을걸요.”
“공항 난리도 아니었다더라. 사진 보는 게 내가 다 숨이 턱 막히더라니까. 사생은 또 얼마나 많고…….”
그때 누군가 물었다.
“남극 하니까 떠오른 건데 이번에 누구 따라가는 사람 없대요? 원석 오빠가 따라가나?”
“매니저들도 안 갔을걸. 남극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수도 제한이 있대.”
“하긴, 어차피 매니저 없어도 애들이 다 알아서 잘하니까.”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뉴블랙의 여행일기>에서도 알래스카에서 자기들끼리 마을을 세우던 가수들 아니던가.
어딜 던져 놔도 특별히 큰 걱정은 안 됐다.
특히나 우주가 있으니…….
“잠깐.”
스티일리스트 팀장이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뉴블랙의 리더가 졸개들에게 내민 서약서에 지장을 찍은 이후로 그들에게 주어진 또 다른 임무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우주 남극 사복 누가 관리했어. 지연이?”
“넵. 저요.”
“철저하게 관리했겠지?”
“네. 이상한 옷은 다 뺐어요. 어지간한 건 다 체크했고, 뭐 장신구나 액세서리 같은 거야…….”
말끝을 흐리는 모습에 팀장이 눈매를 지그시 좁혔다.
“왜?”
“아, 그 선글라스 같은 건 체크를 안 했는데, 설마 선글라스 정도야 괜찮…….”
“…….”
“안 괜찮겠죠?”
불안한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였다.
딩동-
수천만 팔로워를 거느린 @dnwn_sun 계정의 알림이 뜨면서 그들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남극에 도착한 선우주의 셀카.
곧장 비명과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고…….”
“하씨.”
“아니, 뭐 이런 이상한 빈티지 선글라스를….”
마치 빨갛고 파란 색의 셀로판지를 붙인 3D 종이 안경이 떠오르는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스타일리스트들을 진정으로 빡치게 만드는(?) 건 선우주의 얼굴 때문이었다.
‘왜 잘생겼냐고!!’
완전 이상해야 할 선글라스에 얼굴이 얹어지니 뭔가 그럴싸했다.
이상해서 쳐다보게 되기는 하는데 또 어울리는 느낌.
마치 10년 뒤에 다가올 패션을 미리 접한 것처럼 아방가르드한 느낌을 받게 되곤 했다.
“근데 그거 아세요? 우주가 입은 사복들 몇 년 지나면 유행하는 거.”
“그런 불길한 소리 하지 마라.”
“넵.”
“한국인들이 놀리는 거 안 보여?”
그 아래 한국인들의 댓글이 보였다.
-스타일리스트 팀분들ㅠㅠㅠ 동행하지 못하셨군요
-인간의 자유는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천부인권입니다. 하지만 이 아이에겐 조금 뺏어도 되지 않을까요?
-제발 몇년뒤에 유행 안 하게 해주세요
-뒤에서 멤버들 눈으로 욕하는거 봐ㅋㅋㅋㅋㅋㅋ
-어딜 내놔도 창피한 우리 형ㅠㅠㅠ
거기까지는 ‘그래. 맞아’ 하고 공감을 했지만 문제는 외국인들의 반응이었다.
-멋진 패션이야!
-그의 패션을 볼 때면 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잡지 화보 같다 (눈물) (눈물)
-나는 써니의 패션 세계가 참 마음에 들어. 그가 괜히 멧 갈라에서 최고의 패셔니스타가 된 게 아니라니까
스타일리스트들은 울화가 치밀었다.
‘그거 르블랑의 지미 로빈스가 만들어 준 거라고!!!!’
‘아 그거 아니라구!’
멧 갈라에서 화려하게 데뷔를 한 까닭일까.
선우주를 패셔니스타라고 칭송하는 외국 네티즌들의 반응에 그들은 환장하고 싶었다.
마치 그런 분위기 같았다.
-세계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인 지미 로빈스가 자신의 뮤즈로 삼았고, 세계 최고의 패션 에디터들이 입을 모아 시대를 앞서 가는 패셔니스타라고 칭송했어! 그럼 뭔가 있지 않을까?
이상해 보이긴 하지만 미디어에서 선우주를 패셔니스타라고 세뇌를 하니 내 눈이 잘못되었구나 하는 분위기.
“아니… 아…….”
“아…….”
“아, 반박하고 싶어 미치겠는데 영어를 못해…!”
스타일리스트들이 머리를 쥐어뜯자, 누군가 자신이 팔로우하고 있는 계정의 소식을 전했다.
“지미 로빈스 님 인스타 스토리 업데이트 됐어요.”
“우주 관련이지?”
“네.”
르블랑을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만든 천재 디자이너이자 패션 업계의 종사자들이 선망하는 희대의 천재.
‘…가 어쩌다 우리 애한테 코가 꿰여서…….’
‘어휴. 대단하신 분이 어쩌다가.’
다들 탄식하는 동안 인스타 스토리가 보였다.
우주의 선글라스 사진에 이모티콘을 붙이며 감탄하는 영상.
[최근에 본 가장 멋진 선글라스!]팀장이 뻐근한 눈두덩이를 문지르는 동안 스타일리스트 하나가 중얼거렸다.
“올해 S/S 패션 위크 르블랑 쇼에서 저거 나올 거 같은데요.”
“하지만 그때 나오는 선글라스는 엄청 멋지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바뀌어 있겠지. 우주가 쓴 것 같은 거 말고.”
“그리고 지미 로빈스 님은 인터뷰에서 뮤즈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칭찬을 하고, 패션 잡지들이 앞다투어 그걸 다룰 거고요.”
“그렇게 선우주가 패셔니스타라고 세뇌되는 세계의 사람들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말을 하면서 ‘으아아아!’ 하며 머리를 쥐어뜯는 스타일리스트들.
좋은 일이지만 왠지 열 받았다.
“근데 제 생각일 수도 있는데요.”
“응?”
“이쯤 되면 저희가 우주의 진가를 모르고 있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 근거를 제시했다.
“우주가 예전에 숏패딩 입었을 때 왜 다 그거 입냐고 했잖아요. 근데 요새 보면 다들 입고 다니고…….”
“하긴, 옛날 사진 보면 아무도 롤업 안 했을 때 혼자 바지 롤업하고 다녔더라.”
“…….”
“…….”
그들이 최근에 선우주가 입으려고 했던 사복 패션을 떠올렸다.
완전 오버핏으로 입고 다니려고 해서 다들 옷이 흘러내리겠다고 웃음을 터뜨렸던 이상한 패션.
색이 좀 이상했지, 패션적으로 보면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럼 14년도에 우주가 입었던 옷들이 현재 유행을 탔던 것처럼 지금 선우주가 입고 다니는 사복이 5년 뒤에 유행한다는 뜻인가?
“거기까지만 생각하자. 만약에 그게 진짜라면 나 자괴감 올 거 같아서 그래.”
“저두요.”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코난인가 김전일이 그랬잖아요. 진실은 미궁에 묻어 둬야 제맛이라고.”
고개를 저으며 외면하는 스타일리스트들.
어디선가 남쪽 방향으로부터 꺄르륵-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 * *
선글라스는 압수당했다.
“어째서…!”
“압수예요.”
항의하는 나의 두 팔을 붙잡는 중현이. 그리고 리혁이가 전자 문서를 꺼내 보여 주었다.
“뉴블랙의 이미지와 세계 패션 보호에 관한 조약 제17조 1항에 의거하여 폐기물을 수거하겠습니다.”
“크윽!”
“보이시죠? 여기 당신의 지장이 날인되어 있어요.”
“이 어리석은 사람들 같으니… 너희가 패션의 세계를 모르는 거라구!”
나의 특색 있는 선글라스는 압수당하고 결국 너무나 평범한 선글라스를 지급 받게 되었다.
그동안 주변에서 신기한 걸 관찰하듯이 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우리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우와아아아아-!」
각 기지에서 마중 나온 대원들이 환호성으로 답했다.
촬영 일정이 바쁜 관계로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신기해하는 눈빛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동안 빨간 패딩을 입은 한국인들이 다가왔다.
“아이고! 오셨네요! 하하!”
“안녕하세요!”
세종과학기지에서 마중 나온 분들이었다.
팽귀인 박사와 인사를 나누는 이들을 따라 우리와 제작진이 이동했다.
팽 박사님이 말했다.
“기지까지 가려면 배를 타고 가야 해요. 여기 고무보트를 타고 갈 거고요.”
“네.”
“구명 장비는 철저하게 착용 부탁드리겠습니다. 펭귄은 몰라도 인간은 남극의 바다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요. 하핫!”
곧이어 고무보트가 출발했다.
부아아아아앙-
“우어… 어어어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무보트의 손잡이를 꼭 잡은 리혁이의 손을 붙잡아 주며 이동했다.
보트 엔진 소리 속에서 대원 하나가 크게 외쳤다.
“저기 빙하 보이시죠?!”
“네?! 어어?! 네!! 보여요!!!”
바람에 얼굴이 따갑고, 연신 꿀렁이는 고무보트 위라 정신이 없지만 그럼에도 거대한 빙하가 눈에 들어온다.
알래스카에서 보았던 빙하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한 사이즈였다.
“우와아아아…….”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처럼 몇 번 정도 비슷한 광경이 반복되자 눈이 적응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도착한 세종과학기지.
까만 흙과 자갈로 가득한 해변 너머 주황색 컨테이너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모인 기지가 눈에 들어왔다.
“도착했습니다!”
여기가 남극의 세종 기지구나.
생각보다 큰 규모에 우리가 신기해하고 있을 때, 리혁이가 감격한 얼굴로 얼굴에 손을 올렸다.
“내가 여기에 오다니…….”
과학 연구가 이뤄지는 곳에 와서 감격한 모양이다.
대원들을 따라 우리가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세종회관이었다.
여기서 가장 큰 건물.
“들어오실 때 바닥이 미끄러우니까 조심하시고요.”
“네.”
방한용 신발에 묻은 흙과 눈을 털어 내고는 들어왔다.
“오.”
왠지 모르게 마을 회관이 떠오르는 분위기였다.
[지금 내 고향은>을 찍을 때 농촌 마을 회관 중에서 최신식 시설을 자랑하는 곳들이 있었는데, 지금 보는 남극의 세종기지의 실내가 딱 그런 인테리어였다.바닥 마루 때문에 그런지 친근하다.
팽 박사님이 손짓했다.
“출출하시죠? 먼저 식당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허기가 져 있던 우리가 반색한 얼굴로 회관에 들어갔을 때.
팡-!
생일 폭죽 소리와 함께 와아아아아- 하고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오-!”
우리도 활짝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사람들의 온기 속에서 한국어가 들려오는데… 정말 포근하고 안정적이었다.
최근 몇 시간 동안 계속해서 눈과 빙하를 마주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팽 박사님이 MC처럼 분위기를 이끌었다.
“자자, 하나씩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단장님을 비롯해 연구원들, 조리사를 비롯한 지원 인력 분들이 하나씩 자기소개를 하면서 우리가 이름을 기억했다.
팽 박사님이 말했다.
“일단 식사부터 하실까요?”
“네!”
“밥은 전기밥솥에서 푸시면 되고요. 반찬은 원하시는 대로 받아오시면 됩니다. 혹시 국이나 국물이 당기시는 분?”
“저요.”
중현이가 손을 들자 박사님이 선반을 가리켰다.
“여기 레토르트 제품들이 쌓여 있거든요. 자유롭게 드시면 됩니다.”
“오오.”
“다 무료입니다. 그래서 남극에서 있다가 가면 돈을 쓸 일이 없어서 저축이 가능하다니까요. 하하하!”
그런 설명을 들으며 밥솥에서 밥을 펐다.
계속 기내식과 외국 음식들만 먹어서 그런 걸까.
“마히허여.”
“아, 지짜 마히하.”
나와 동생들이 허겁지겁 한국의 맛을 즐기는 모습에 다들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맛있죠? 남극에서 처음 먹는 한국 밥은 특별하거든요.”
“진짜… 의미가 남다르네요.”
처음에만 해도 낯선 땅 같아 두려움이 좀 있었던 곳이 지금은 친근하게 느껴진다.
실내에서도 아웃도어를 입고 있을 만큼 추운 날씨만 아니었다면 어디 마을 회관이라도 온 줄 알았을 것 같다.
우리가 한창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와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외출자들이 돌아왔다.
추위에 뺨이 상기된 남자 분이 모자를 벗고 말했다.
“뉴블랙 분들이 오신다고 해서 아주 특별한 걸 가져왔습니다.”
“?”
얼음들이 수북이 담긴 그릇이었다.
“이전 대원 분 중에 한 분이 중장비로 가져온 거거든요. 이게 유빙입니다. 유빙.”
“유빙이요…?”
“만년설이요.”
“아….”
대원 분이 얼음을 가리키며 말했다.
“요게 정말 별미거든요. 빙수로 먹어도 좋고, 잘 안 녹아서 아메리카노에도 하나 딱 넣으면 캬…….”
“오오오오오오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와인 글래스에 얼음들을 가득 담고 음료를 제조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눈을 빛냈다.
얼음을 담는 데 정신이 없어 보이는 인물에게 내가 물었다.
“하나 마셔 봐도 되나요?”
“네. 그럼요.”
하지만 내가 한 모금을 마실 때.
세종기지의 대원들이 놀라서 손을 흔들고 뛰어왔다.
“어어어어어어!”
“우주 씨! 우주 씨, 그거.”
그러나 사람들이 말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인상을 찌푸렸다.
“어웁……!”
“그쪽에 있는 건 술이에요! 우주 씨!”
입에 흘려 넣던 그 순간 냄새로 알았다.
진한 알콜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감촉에 인상을 찌푸리는 동안 난리가 벌어졌다.
내가 술에 약한 걸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듯했다.
“뭐야. 우주 술 마셨어?”
“형 술 마셨어요?? 어어. 큰일인데…!”
당장이라도 쓰러질 사람을 바라보듯이 놀라는 구재영 피디님과 제작진, 그리고 동생들의 모습에 나도 침을 삼켰다.
하지만….
“?”
“??”
아무 일도 없었다.
조금 어질어질하고 알딸딸한 느낌이 들 뿐.
아주 살짝 마시긴 했지만 보통 이 정도만 들이켜도 잠이 엄청 쏟아지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뭐지?”
지호가 눈을 깜빡거리고는 내게 다가와 잔을 뺏어 갔다.
킁킁.
“술인데? 술 맞는데 우주 형 왜 기절 안 하지?”
“…….”
“형. 제가 누구예요?”
“왕지호.”
“그럼 여기 못되게 생긴 사람은요?”
“서리혁.”
“말짱한데…….”
비주가 내 이마에 손을 올리고, 중현이를 비롯해 모두가 의아해할 때였다.
“내가 술이 좀 세졌나?”
“술도 마셔야 세지는 거 아니에요?”
“아? 그러네?”
지난 몇 년 동안 알콜 내성이 좀 늘었다고 하기에는 술을 마신 일이 없…….
칙칙-
바로 그때였다.
칙칙-
우리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밥을 먹고 난 자리를 에탄올 스프레이를 가득 뿌려서 닦아 대고 있는 우리의 메인보컬.
그러고 나서도 모자란지 손에도 잔뜩 소독제를 뿌려서 청결을 관리하고 있다.
그동안 코끝에 감도는 알콜향.
“……?”
리혁이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