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Life, The Greatest Star In The Universe RAW novel - Chapter (1208)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208화
제61회 그래미 어워드는 성대하게 막을 내렸다.
나와 콜드가 올해의 레코드상을 수상한 후, 마지막으로 올해의 앨범상은 싱어송라이터 맨디 스파이스의 [42>에게 돌아갔다.
[감사합니다! 그래미!]최고의 영예로 불리는 앨범상을 수상한 가수가 드레스를 입은 채 환한 미소를 지었다.
환호성.
눈물.
박수.
앨범상을 마지막으로 어워드가 끝난 후에도 장내는 여전히 열기와 흥분으로 가득했다.
「이 자식! 내가 해낼 줄 알았다!」
‘My boy!’ 하며 나를 덥석 끌어안은 헤일리가 싱글벙글 웃었다.
「모두가 너의 진가를 모르고 있을 때 나만은 알고 있었지. 아무리 생각해도 개쩌는 나의 선구안이야.」
「고마워요. 헤일리.」
내가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잘 될 줄은 몰랐죠?」
「당연하지. 그래미 레코드 상이라니… 세상에, 2년 만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그때, 지호가 고개를 쏙 내밀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헤일리. 이제 우리 형이랑 이야기할 때 미리미리 줄 서요. 이 사람은 이제 그래미상 작곡가라구요!」
「풉.」
헤일리가 비웃음을 가득 머금으며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올해의 앨범상 수상 3회.」
「!」
「앨범상부터 타고 와라. 애송이들.」
입을 떡하니 벌리는 지호와 그걸 또 좋다고 짱구처럼 웃는 헤일리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아-!」
그때 머리에 핀을 예쁘게 꽂은 여자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헤일리에게 안겼다.
나와 멤버들이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써머, 안녕. 오랜만이야.」
「응!」
오랜만에 삼촌(?)들을 만난 써머가 수줍게 손을 흔들었다.
저번에 만났을 때는 우리에게 격의 없이 인사했던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지금은 조금 부끄러워한다.
딸을 안아 들고 등을 토닥토닥하던 헤일리가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가 겁나게 유명해진 뒤로 조금 어색하대.」
「그럴 필요 없는데.」
갑작스럽게 내외하는 써머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동안, 그녀의 남편 크리스 카일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이에요. 크리스.」
「잘 지냈어요?」
미남 배우와 우리가 악수를 했다.
특히 지호를 반가워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아마 [시크릿 에이전트 3> 때문인 것 같다.
주인공 ‘에드윈 나이트’ 역의 배우가 바로 이 사람이니까.
둘이 영화 촬영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헤일리가 우리에게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계획이 어떻게 돼? 항상 그러하듯 ‘우리는 애프터 파티 안 해요~’ 하는 계획?」
「아뇨.」
우리가 멀찍이 래퍼들 사이에 둘러싸여 헹가래를 당하고 있는 콜드 브라운을 가리켰다.
「콜드네 파티로 갈 거예요.」
「오.」
「저를 위해 논알콜 칵테일을 종류별로 다 준비해 놨다고 하더라고요. LA 최고의 바텐더가 온다고 하던데. 콜… 콜 어디였더라.」
「콜스?」
「아마 그런 이름으로 들은 것 같은데요.」
「LA 최고의 바 중 하나지. 거기 칵테일 맛있어.」
술 이야기하니 오랜만에 술이 당긴다며 입맛을 다시는 가수에게 비주가 물었다.
「헤일리는요?」
「가족끼리 식사 좀 하려고. 영화 촬영 때문에 크리스 얼굴 보기가 힘들기도 하고.」
의외였다.
항상 어워드가 끝나면 ‘술이다! 파티다!’ 하며 좋아하던 인물이었으니까.
헤일리가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내가 주인공이 아닌 파티라면 가지 않거든.」
「…….」
「굳이 나를 누르고 상을 탄 사람들한테 ‘축하해요~’ 하는 것도 성미에 더럽게 안 맞고. 이래저래 별로야.」
아무래도 올해 수상 결과가 그녀에게는 부족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베스트 팝 앨범상만 해도 정말 대단한 건데, 이 사람에게는 제너럴 필드 부문 정도는 되어야 성에 차는 듯했다.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래저래 뒷말이 많긴 해도 여기 심사하는 늙은이들 눈이 또 은근히 정확하거든. 이번 앨범이 잘 뽑혔긴 해도 올해의 앨범상을 탈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조금 더 분발해야지.」
딸에게 교훈을 이야기하듯 그런 이야기를 하던 헤일리가 딸의 시선이 다른 곳에 향하자 입모양으로 말했다.
‘개새끼들! 망해라!’
……정말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다음에 또 만나자며 헤일리와 인사를 하고는 우리도 식장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어차피 한 시간 뒤에 파티장에서 다 같이 만날 것이기도 하고, 지금은 콜드 쪽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와.”
중현이가 뒤를 돌아보며 혀를 내둘렀다.
“콜드 쪽은 다가가지도 못하겠네요. 저기는 못 뚫고 들어갈 것 같아요.”
“진짜 사람 많다….”
마침내 첫 그래미 수상.
지난 20년 가까이 북미 가요계에서 인맥을 다진 인물답게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축하해 주고 있었다.
리혁이가 말했다.
“그럴 만도 하죠. 슈퍼볼 하프 타임쇼까지 했던 가수인데 이번이 첫 그래미라니…….”
과연 그 기분이 어떨지 상상조차 안 된다.
비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마 우리가 데뷔하고 15년차쯤 돼서 어워드에서 첫 대상 타는 느낌이랑 비슷하지 않을까요?”
“15년차면….”
“2028년이요.”
“…….”
14년도에 데뷔한 우리가 2028년에 첫 대상을 타는 장면을 상상하자 눈앞이 아찔해졌다.
우리나라에 그래미 같은 시상식이 없어서 정확히 비교가 힘들지만 대충 이해가 된다고 할까.
지호가 물었다.
“그나저나 형은 어때요?”
“응?”
“그래미 대상 탄 거요! 지금 기분이 어때요? 인생 목표를 다 이룬 것 같고, 뭔가 나는 그래미 수상자다! 하는 의기양양함이라거나…….”
“어….”
내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기분이 엄청 좋긴 한데, 잘 모르겠네.”
처음 5분은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행복했는데, 그 5분이 지나고 나니 덤덤하게 기쁜 느낌이다.
옛날부터 느끼는 거지만 나는 행복이 오래가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우리가 다 같이 올라갔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맞아. 형 소감할 때 졸개들 라인에 나상윤 팀장님 서 있는 거 보고 진짜 부러웠거든요. 그 자리가 내 자리였어야 했는데!”
지호의 말에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미 수상을 해서 기쁘기는 한데, 아무래도 그룹으로 상을 탈 때만큼의 기쁨은 아닌 것 같다.
중현이가 물었다.
“우리도 잘하면 올라갈 수 있을까요?”
“음.”
솔직히 수상 소감을 말할 때는 기분에 취해서 ‘다음에는 뉴블랙의 이름으로 오겠다! 후후!’ 하고 지르긴 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막막하다.
이번에 [Answer>가 올해의 레코드상을 탄 것도 여러 상황 요소가 겹쳐서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재즈와 힙합이라는 두 장르 간의 예술적인 콜라보레이션!
-원곡인 [Answer>는 별세한 천재 재즈 뮤지션인 아버지의 [Question>에 대한 답가이자 올림픽 개막식 무대에도 나온 곡!
-작년 그래미의 인종 차별 이슈와 힙합 뮤지션들의 보이콧!
-영화 [사운드 오브 선>의 역대급 흥행과 지금까지 소외된 뮤지션들이 상을 받아야 한다는 여론!
도저히 상을 안 주려고 해도 안 줄 수 없는 상황이 되고서야 상을 받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과연 뉴블랙으로서 상을 받을 수 있을까?
대중들에게 메이저한 힙합의 왕에게도 상을 안 주려고 온갖 용트림을 했는데 우리는 오죽할까 싶다.
그래미에서 비주류로 꼽히는 힙합보다 더 마이너한 K팝 출신, 그것도 우리를 보이밴드라고 인식하고 있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쉽사리 답하기 힘든 의문이었다.
80년대에 세계를 열광시켰던 보이밴드조차 뮤직비디오로 단 한 번 노미네이트되었을 뿐인 게 이 시상식이다.
“해 봐야지.”
어찌 되었든 미래는 알 수 없는 법이다.
“1년 전만 해도 내가 그래미 탈 거라고 말했으면 누가 믿었겠어? 다들 미친 사람이라고 했겠지.”
“인정.”
“저도 그런 반응이었을 거 같아요. ‘아 아무리 우주 형이래도 그건 좀…’ 하고.”
그때 중현이가 말했다.
“그러면 우리 나중에 상 타게 되면 소감으로 그거 해요. 그거.”
“?”
“이게 되네요.”
중현이의 말에 우리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리혁이가 영어로 ‘이게 되네요’를 뭘로 표현해야 할지 열심히 고민하고 있는 동안 대기실에 들어섰다.
팡-!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축하한다! 얘들아!”
석환 형과 매니저들, 그리고 우리의 미국 에이전트가 축하 폭죽을 터뜨리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자기가 수상한 것처럼 방방 뛰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포옹을 하며 웃었다.
그때 졸개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트로피를 보고 들썩였다.
“트로피다!”
“방금 스탭이 와서 주고 갔어.”
“우와. 저 그래미 트로피는 처음 봐요!”
황금색 축음기 모양의 트로피를 바라보며 신기해하는 멤버들 속에서 석환 형이 나에게 말했다.
“진짜 축하한다. 우주야.”
“고마워, 형.”
“그리고 그래미 홈페이지에도 떴다.”
“?”
우리 TF팀장이 핸드폰을 보여 주었다.
그래미 홈페이지에서 가수들의 정보가 나와 있는 창이었는데,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 Artist 】 Woo-Joo
Wins : 1
Nominations : 2
수상을 의미하는 Wins에 1이 적혀 있는 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들자 석환 형도 나와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게 보였다.
나를 케어해 주는 회사 팀장으로서의 기쁨이 아니라 오랫동안 나를 지켜보아 온 절친한 형의 웃음이었다.
“기분이 어때?”
“최고야.”
그런 말을 하면서 내 핸드폰을 꺼내 검색창을 두드려 보았다.
나의 단독 사진 대신 그룹 전체의 사진이 나와 있는 정보창.
【 Artist 】 The New Black
Wins : 0
Nominations : 1
바로 앞에서 트로피를 든 채 꺄르르 웃고 있는 동생들을 바라보고는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석환 형에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지금보다 더 많이 바빠질 거야. 형.”
“…이것보다 더?”
“응. 왜냐하면 이제부터 가야 할 길이 좀 멀거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애프터 파티가 열리는 곳은 LA에 있는 콜드 브라운의 맨션이었다.
축구 운동장만큼 널찍한 잔디.
물이 나오는 분수대.
화려하게 꾸며진 2층 주택은 벌써부터 파티가 한창인지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
차량에서 내린 우리가 근사한 집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 동안 주변 동네를 훑어보던 말했다.
“엥? 여기 거기 아니에요? 리혁이 형네 어머님 집 근처?”
“맞을걸?”
“우와.”
리혁이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가 호텔 가지 말고 우리 엄마 집으로 가요. 새벽에 와도 괜찮으니까 온 김에 자고 가라고 하더라고요.”
“예인이도 있대?”
“학기 중이긴 한데 나 보러 왔다고 하더라고요.”
브라운 대학교라고 했던가.
위치가 동부 끝자락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오빠를 만나기 위해 서부 끝까지 찾아온 모양이었다.
어쨌든 이따가 늦은 시간에 리혁이네 가족을 찾아뵙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파티장의 정문이 가까워졌다.
“Hey-!!!”
무대 의상 그대로 파티를 만끽하고 있던 래퍼가 벌떡 일어났다.
「왔구나!」
「저희 왔어요.」
콜드 브라운이 환히 웃으며 다가왔다.
「콜드 하우스에 온 걸 환영해. 친구들! 음료와 음식은 마음껏 먹으면 되고, 우주 너를 위해서 아주 특별한 칵테일들을 준비해 놨어. 무알콜이니까 마음 놓고 편히 마셔.」
「고마워요.」
「너희가 온다고 해서 오늘은 좀 격식 있는 파티로 꾸며봤지.」
그 때문인지 우리가 생각한 애프터 파티와는 조금 달랐다.
다들 시상식 의상을 입은 채 우아하게 울려 퍼지는 재즈 음악 속에서 칵테일을 한 잔 하고 있다.
「사람이 진짜 많네요.」
그래미 첫 수상을 한 힙합 가수를 축하해 주기 위해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래미 어워드의 공식적인 애프터 파티 같은 분위기.
멀찍이서 앨범상을 수상한 맨디 스파이스가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고, 노래상을 수상한 레지나도 어느 잘생긴 배우와 몸을 기울이며 무언가를 속닥속닥거리거나 키득이는 모습이 보였다.
동생들이 음료를 챙기면서 사람들에게 섞여 드는 동안 콜드가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정말 고맙다. 친구야.」
나는 이렇게 누군가 행복하게 웃는 걸 처음 봤다.
「오늘은 정말 잊지 못할 하루가 될 거야. 내가 마침내 가수로서 모든 걸 달성한 날이거든.」
「정말 진심으로 축하해요. 콜드.」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래미도 탔겠다, 당분간은 계획이 어떻게 돼요?」
「쉬어야지. 푹 쉴 거야. 그리고 시간이 난다면…….」
새로운 앨범을 만들겠다는 이야기인가 싶을 때.
콜드 브라운이 눈을 빛냈다.
「정계 진출을 해야지.」
「?」
「이제 내게 남은 건 정계 진출밖에 없거든. 후후후, 캘리포니아의 첫 흑인 주지사가 되어 주지.」
「…그, 그렇군요.」
「물론 반쯤은 농담이야. 당분간은 나의 명성에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을 좀 더 해야겠지.」
명예욕으로 불타오르던 화신이 내게 말했다.
「아무튼 정말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 그래미는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어.」
그런 말을 하다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내게 말했다.
「참. 그러고 보니 부가티 얘기 기억하고 있어?」
「네.」
「그거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거든. 차고에서 한 대 가져갈래?」
「아, 그런데 제가 차를 받아도 쓸 일이 없어서….」
70억짜리 승용차를 선물로 주겠다는 그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콜드가 말했다.
「그럼 다른 걸로 줄까? 비슷한 거?」
「저야 정말 좋죠.」
「기다려 봐. 내가 적절한 선물을 한 번 떠올려 볼게.」
기대하겠다는 말을 하며 웃을 때, 어딘가에서 콜드를 불렀다.
조금 이따가 또 이야기를 하자는 말을 하고는 나도 사람들 틈바귀에 섞여 들었다.
앨범상을 수상한 맨디와 서로 수상 축하한다며 인사를 하고, 오늘 신인상을 탄 밴드와도 인사했다.
「레코드상 정말 축하해요!」
「써니, 잠깐 시간 있어요? 오늘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는데, 이 친구도 재능이…….」
「아까 아버님 상 탔을 때 눈물이 났지 뭐예요.」
확실히 그래미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이 붙어서 그런 걸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들 미묘하게 태도가 다르다.
심지어 오늘 레드카펫과 시상식장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레코드상 수상 이후로 조금 더 대접을 해 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내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묘하게 친절해진 느낌이다.
잘 실감하지 못했던 그래미의 위상을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시 한적한 곳으로 빠져나왔을 때였다.
“음?”
어디선가 미약한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쪽이었다.
“?”
구석을 돌아가자 계단에 쪼그려 앉아서 울적한 얼굴로 기타를 치고 있는 뮤지션과 얼굴을 마주했다.
「켈리?」
「안녕.」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켈리 넬슨이었다.
작년도 그래미에서 상을 쓸어 담은 신예 뮤지션이자 최근 영미권에서 밀어 주고 있는 아티스트였다.
내가 물었다.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작곡.」
「오.」
재미있겠다- 하면서 참여하려고 할 때였다.
「얼마 전에 남친이랑 헤어졌거든. 그 새끼가 바람 피워서.」
「아….」
「파티장에 오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싶었는데 하나도 안 나아지네. 저기 있다가는 내가 다른 사람들 기분까지 망칠 것 같아서 잠시 여기로 피신했어. 마침 기타도 있고.」
위로의 말을 몇 마디 전하자 상대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기타 코드를 잡고 전남친을 디스하는 가사를 흥얼흥얼한다.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영미권 싱어송라이터들 특징이 사랑을 하면 노래가 망하고, 이별을 하면 노래가 성공한다던데.
「어때? 곡이 잘 만들어져?」
「글쎄. 좀 막힌 것 같은데….」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그녀가 내게 말했다.
「혹시 친절을 베풀어 줄 생각이 있다면 그래미 레코드상 수상자의 조언을 듣고 싶은데.」
「음.」
조언해 줄 수야 있긴 하지만, 전남친을 디스하는 곡인데 둘 사이에 내가 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겠네.」
「아쉽네.」
그 말을 하며 한숨을 푹푹 쉬던 켈리 넬슨이 흑발을 쓸어 넘기며 내게 말했다.
「미안, 내가 너무 붙잡았네. 조금 이따 봐.」
「이따 만나.」
그런 말을 하며 몸을 돌렸다.
다시금 뒤에서 C 코드로 시작하는 선율이 들려오는 가운데 내가 눈매를 좁혔다.
근데 쟤 전 남친이 누구였….
-Bom Gam Za!
어디선가 감자가 뿅! 하고 떠올랐다.
* * *
켈리 넬슨이 울적한 얼굴로 기타를 연주했다.
‘개새끼. 소새끼. 말새끼 콜린 에반스….’
속으로 온갖 욕을 삼키며 바람이 난 전 남친을 노랫말로 디스하고 있던 그녀의 귓가에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총총총-
무언가 신이 난 걸음 소리.
고개를 들어 보니 우주가 다시 다가와 있었다.
“할 말 있어?”
“방금 부른 구절 말이야. Dm G Em Am으로 가지 말고, G F Am Am으로 가 보면 어때? 히트곡이 하나 뽑힐 거 같아.”
“……?”
“한 번 해 봐.”
고개를 갸웃하던 켈리 넬슨이 코드를 바꿔 연주했다.
그러곤 놀랐다.
“어?”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막혀 있던 부분이 너무나 손쉽게 뚫렸는데, 우주의 말마따나 히트곡 하나가 뽑힐 것 같았다.
“그리고 말이야. 아까 프리 코러스 파트에서….”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조언에 그녀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바로 마이너 중의 마이너 포지션으로 그래미 레코드상을 탄 사람의 재능일까.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바라보는 그녀에게 우주가 씩 웃어 보였다.
“그럼 화이팅.”
그 말을 남기며 쿨하게 사라지는 그래미 작곡가의 뒷모습에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올 때였다.
꺄륵-
우주가 사라진 구석 쪽에서 왠지 모르게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잘못 들은 거겠지?’
환청으로 치부한 켈리 넬슨이 한결 후련해진 얼굴로 기타를 쥐었다.
최고의 작곡가에게 받은 피드백을 기반으로 몇 가지를 수정하자 놀라울 만큼 곡이 술술 뽑혔다.
‘어쩌면…….’
내년에 그래미에 출품할 만한 곡이 뽑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슬며시 미소가 그려졌다.
여기다가 프로듀서나 작곡가에 뉴블랙 리더의 이름까지 포함시키면 어떨까?
곡이 성공해서 상이라도 타게 된다면 상대 입장에선 그야말로 열불이 터질 것이다.
그녀가 저도 모르게 웃었다.
“히히.”
광인처럼 신명나게 기타를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
내년도 그래미를 노려볼 만한 신곡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