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Life, The Greatest Star In The Universe RAW novel - Chapter (1237)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237화
석지훈.
TNT에서 귀염둥이 막내 포지션을 맡고 있는 멤버다.
우리 지호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해야 하나.
누나들 사이에서 자라 애교가 많고, 활달한 성격으로 콘서트나 자체 컨텐츠에서도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멤버다.
그리고….
“지훈아.”
“엉?”
“형 내려다보는 거 아니다.”
“…음? 뭐라고? 낮아서 잘 안 들리네. 까치발 좀 하고 말해 볼… 으헥!”
내가 옆구리를 쿡 찌르자, 길쭉한 키의 TNT 멤버가 옆구리를 붙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지훈이는 중현이와 키가 비슷하다.
그래 봐야 나와 3cm 정도로 미미한 차이긴 하지만.
“그거 큰 차이지.”
“맞아요. 큰 차이예요.”
중현이도 슬쩍 합세했다.
두 멤버가 일부러 내 어깨를 팔걸이처럼 이용하는 모습에 내가 헛웃음을 지었다.
“3cm면 미미한 차이야.”
“형이랑 리혁 씨도 그 정도 차이 아니야? 내가 보기엔 완전 미미한데~”
리혁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미미한 차이죠.”
“…….”
어떤 답변을 해도 불리한 상황이라 먼 산을 바라보았다.
“아, 이 형 불리하면 이상한 데 본다니까. 요즘도 자기가 안 듣고 싶은 얘기면 못 들은 척하고 그러죠?”
“네.”
“하여튼 똑같아~”
조잘조잘 떠들며 웃는 지훈이 뒤편으로 나무들이 선선한 바람에 이파리를 흔든다.
아직 겨울의 기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서서히 봄이 다가오는 게 느껴지는 날씨였다.
조연출을 따라 실내 세트장으로 향하는 동안, 내가 지훈이에게 물었다.
“촬영 끝나고 나온 거야?”
“엉, 보시다시피.”
지훈이가 손짓으로 자기를 위아래로 쭉 훑어 내렸다.
후드티에 청바지 차림.
위에는 도수가 없는 안경까지 쓰고 있어서 왠지 모르게 지적인 대학생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의상에 여기저기 얼룩이 묻은 걸 보니, 아마 뛰어다니고 싸우고 하는 그런 씬에 나오는 복장 같다.
머리도 일부러 떡진 것처럼 헝클어져 있고.
“외계인들이랑 치고받고 싸우는 씬 찍고 왔지. 스턴트 쌤들이랑 뒹굴고, 구르고 난리도 아니었어.”
“네가 지호 형 역할이었나?”
“응, 5남매 중에서 셋째. 지호가 넷째인 박지훈이고.”
그래서 지호의 배역을 부를 때마다 느낌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지훈이의 말에 내가 눈을 깜빡였다.
“5남매? 4남매였잖아.”
“지호 들어오고 투자금이 몇 배로 뛰었거든. 연기력이 검증된 스타가 들어온다니까 투자사들 눈빛이 달라진 거지. 특히 형네 그룹은 업계에서 그런 소문도 있고.”
“소문?”
“뜰 만한 걸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고.”
뭔지 알 거 같다.
미튜브에서 가끔 알고리즘으로 ‘선우주 사주’ 같은 게 뜨는데, 조회수가 엄청 높고 그랬다.
“투자금이 커지니 여유가 생기고 감독님이 5남매로 바꿨어. 원안이 5남매였는데 배우들 출연료 때문에 4남매로 바꾼 거였다더라고.”
“아하~”
“그래서 강진이 형이 첫째로 들어오셨지.”
“이강진 선배님?”
“예압, 든든하지. 충무로 경험도 많으시고. …아마 감독님보다 큰 영화 더 많이 하셨을걸? 마지막 말은 우리끼리만 하는 이야기지만.”
이강진이라면 나도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훈훈한 외모의 스타 배우.
[슬립>에서 주인공 형사 역할을 맡았고, 그보다 앞서 과거 [주세한> 농촌 특집 때도 만났다.“이강진 선배님이라면 든든하네.”
“그치?”
친근한 연기부터 악당 연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가 가능해서 드라마판은 물론이고 영화판에서도 흥행 보증수표로 꼽히는 배우였다.
“근데 왜…….”
“왜 그런 분이 이 영화에 나왔냐는 거지?”
말은 삼켰지만 내 의도는 충분히 전달된 듯했다.
지훈이가 앞에서 걷는 조연출을 힐끔거리고는 속닥거렸다.
“나도 의문이야. 선배님은 어쩌다 나오셨나요 하니까 자기도 모르겠대. 그냥 뭐에 홀린 것처럼 나왔다고.”
“너는?”
“나도. 그냥 대본 보고 있다가 어… 요거 나쁘지 않은데? 하고 있었는데 정신 차려 보니까 출연 계약서에 도장 찍고 있더라고.”
그러곤 내게 물었다.
“지호는?”
“지호한테 얘기 못 들었어?”
“엉, 우리가 그 정도 친밀한 사이는 아니걸랑. 지호가 그렇게 대하기 쉬운 타입은 아니어서…….”
우리 애가 그런가?
“지호도 비슷하지. 그때 우리가 같이 대본을 골라 주고 있었는데…….”
“홀린 듯이?”
“어.”
“다들 얘기가 똑같네. 진짜 이 영화에 뭐가 있나.”
지훈이가 중얼거리고 있는 동안 나는 아까 들었던 내용 중에 의문이 들었던 걸 물었다.
“근데 지호가 대하기 어려운 타입은 아니지 않나?”
“음~ 아니던데.”
지훈이가 말했다.
“보기보다 성격도 있고 되게 야무져. 생글생글 웃고 있는데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사람들 알지?”
“응.”
“형네 막내 멤버가 딱 그래.”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과자를 우물우물하거나, 얼마 전에 프로듀싱팀 작곡가들의 놀림에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있는 막둥이였다.
“지호가 그래?”
“얼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면… 그, 조연으로 출연하는 배우 담당 실장이 찾아온 일이 있었는데. 지호가 조 실장이라고 부르던데.”
“조영훈 실장?”
“어? 형도 아는 이름이야?”
“알지.”
마음속 명단에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당시 서노을 선배의 담당 매니저로 15년도에 지호가 [슬립> 카메오로 주목을 받자, 뉴블랙을 관두고 배우로 이적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던 인물.
내가 지훈이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때…….”
* * *
얼마 전.
촬영장에 즐거운 웃음이 터졌다.
“흐하하학!”
“으하하하하!”
미튜브의 웃긴 동영상 모음을 보며 왕지호와 석지훈이 방정맞게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 진짜 넘 웃었다.”
“저두요.”
어찌나 웃었는지 눈물을 닦은 두 연기자가 제육볶음을 우물거리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지호가 눈을 감고 감탄했다.
“와, 진짜 형 팬분들 맛잘알이네요. 어케 이런 제육 맛집을 찾아서 푸드 트럭을 보내 주셨지?”
“팬들이 그러는데 이거 뉴불백이래.”
“아? 그러네?”
“야, 네가 모르면 어떡해??”
황당한 반응을 보이는 석지훈을 향해 지호가 빙구처럼 웃어 보였다.
입가에 제육 기름이 번들거리는 칠칠맞지 못한 모습에 석지훈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하여튼 칠칠치 못하다니깐.’
그 모습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부담스러운 동생이었으니까.
같은 아이돌 출신 연기자라는 점 때문에 친해지기도 했고, 처음 친해졌을 때만 해도 TNT의 위상이 뉴블랙보다 더 높았던 시기이기에 그가 부담스러울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짜잔 국민 아이돌!
전국민적인 인기를 끄는 보이그룹이 되더니.
-뉴블랙 그래미 등장!
그래미 시상식에 후보로 오르는 등 그야말로 미칠 듯한 업적을 세우고 있었다.
TNT로 데뷔하고 나서 매번 식사 자리에서 밥값을 내던 석지훈도, 왕지호와 식사할 때는 밥을 얻어먹곤 했다.
서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룰이었다.
게다가….
‘아까 박지훈이랑 얘가 동일 인물이라니….’
건들건들하고 불량함 가득한 치킨집 5남매의 넷째와 바보처럼 헤헤 웃고 있는 지호가 동일 인물이라는 게 안 믿길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지니고 있다.
[슬립>에서는 카메오 허 의경 역할로 바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작년 [신이>라는 작품은 넷플러스에서 글로벌 Top 10안에 들어가는 기염을 토하며 해외 호러 팬덤의 주목을 받았다.최근에는 원더 코믹스 히어로 영화 [시크릿 에이전트 3>의 섀도우 마스터 역할까지.
‘새삼 커리어 미쳤네.’
하지만 인정할 만했다.
촬영장에서도 지호가 연기를 할 때만 경험 많은 중견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쑥덕쑥덕했으니까.
-타고났네.
-발성이랑 발음도 너무 좋아. 노래하는 애라서 그런가? 매체 연기 말고 뮤지컬 쪽으로 와도 재미있을 거 같은데.
-저 나이에 저게 쉽지가 않아.
-아유, 나는 저 나이 때 대학에서 술만 마셨는데.
그 속에서 석지훈이 쏙 끼어들어서 ‘선배님~ 저는요~??’ 하면 귀여워하는 웃음들이 날아오곤 했다.
-우리 지훈이도 잘하지~
하지만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지호와 같은 칭찬을 받지는 않는다는 걸.
물론 그도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는 이 업계에서 ‘준수한 연기력을 보유한 인기 많은 아이돌’ 취급이었고, 지호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그냥 ‘배우’라고 인식을 하고 있는 차이 정도였다.
까마득한 선배 배우들이 지호를 기꺼워하면서 동종 업계 후배를 대하듯 꿀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볼 때면, 부러운 마음이 들곤 했다.
‘아이~ 참~ 나도 어디 가서 밀리는 사람이 아닌데.’
그의 입지가 안 좋은 게 아니라 눈앞에서 제육볶음을 우물우물하는 이가 너무나 대단하기에 생긴 일이었다.
잠시 새초롬하게 질투하던 석지훈이 평소의 낙천적인 마인드로 돌아왔다.
그의 입가에 쾌활한 미소가 피어났다.
‘뭐, 이런 애랑 친구하면 좋지.’
그가 휴지를 내밀었다.
“입 좀 닦아라. 칠칠맞긴.”
“오, 감사염.”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조연출이 다가왔다.
“저기 지호 씨.”
“네?”
“이거 어떡하죠.”
조연출이 난처한 표정으로 눈치를 슥 본다.
“지금 촬영 딜레이가 생겨서… 아마 강인 씨 부분 먼저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요~”
“아유, 죄송합니다.”
지호가 휴지로 입가를 닦으면서 활발하게 웃자, 상대가 고개를 꾸벅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조연출이 사라지자마자 석지훈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또 네 촬영 시간이 밀렸네?”
“넹? 네, 그죠.”
“어째 일정 조율해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자꾸 네 걸 미루려고 하는 거 같은 건 내 기분 탓인가?”
의문형으로 말하긴 했지만 뒤돌아 사라지는 조연출을 바라보는 석지훈의 눈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지호가 만만하다고 보는 것 같은데.’
그가 눈썹을 찌푸렸다.
처음에만 해도 이런 반응은 아니었던 것 같다.
-허억! 지호 씨~!!
국민 아이돌에 어마어마한 글로벌 스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매일같이 얼굴을 보고 있기도 하고, 막상 지호의 성격이 까탈스럽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체득한 것이다.
게다가 아직 20대 초반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
누구나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학창 시절에도 무서운 선생님인지 아닌지에 따라 학생들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던가.
촬영 현장에서 지호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이 은연중에 누군가 손해를 봐야 할 일이 생기는 거 같으면 그게 지호로 슬쩍 넘어가는 듯한 분위기였다.
성격 좋게 넘어가니까.
“매니저 통해서 뭐라도 말하라고 해. 이럴 때는 지랄을 해야 된다니까.”
“됐어요.”
“왜?”
“그냥, 딱히 뭐 그 정도 일은 아니잖아요? 오늘 스케줄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어차피 남는 시간이라 연습하면 되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본을 넘기는 지호의 모습에 오히려 석지훈이 답답함을 느꼈다.
“경험상 아무리 유명해도, 고등학생 느낌인 애가 현장에서 까탈스럽다는 말 돌기 시작하면 좋지 않더라구요. 뒤에서 싸가지 없다는 소리 나오고.”
“그건 그렇지만.”
“이제 영화판에 들어온 신인 배우인데 벌써부터 뒷말 나오고 싶지는 않아요.”
“끄응….”
무슨 말인지는 알 거 같다.
아무리 뉴블랙으로 성공한 스타라고 해도 지호는 영화판에서는 경력 없는 신인이었으니까.
이해는 갔다. 단지 그가 답답해서 그렇지.
바로 그때였다.
“안녕하십니까~! 하하.”
누군가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그들이 시선을 돌렸다.
코트를 차려입은 한 남자가 자신의 배우와 함께 촬영장에 들어오고 있었다.
실장급 매니저인지 다른 스탭들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면서 명함을 돌리고 있었다.
늘 있는 익숙한 일.
“오늘 첫 촬영 인사 왔나 보네. …음?”
그가 맞은편에서 눈을 가늘게 뜨는 지호를 보고 물었다.
“왜 그래?”
“아는 얼굴이어서요. 옛날에 저 보고 뉴블랙 관두고 배우 하라고 했던 분인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기억은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지호의 눈빛이 서늘했으니까.
그때, 여기저기 인사를 하며 명함을 돌리던 조 실장이 석지훈과 지호의 테이블에 성큼성큼 다가왔다.
‘음?’
석지훈이 의문을 표했다.
‘지호랑 사이가 안 좋은 거 아니었나?’
…라고 생각했던 석지훈이 이내 조 실장이라 불린 남자의 눈매를 보고 아~ 했다.
‘이 사람도 알고 있구나.’
하지만 모른 척하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모른 척하고 뻔뻔하게 나서야 한다는 전략이 보인다고 할까.
“어~ 지호도 오랜만이네~”
“회사를 옮기셨다고 들었는데. 잘 지내셨어요?”
“하하, 바쁘지. 잘 지냈니?”
“네, 잘 지냈죠.”
상대가 하하하~ 하면서 웃을 때.
지호가 웃으면서 물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우리가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 나눌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 순간 주변에 정적이 감돌았다.
다른 테이블은 모르고 있지만, 바로 옆 테이블에 있던 스탭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어…….”
조 실장이 당황한 얼굴로 횡설수설했다.
“나는… 아, 그. 반갑기도…….”
그제야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이 신인 시절의 뉴블랙이 아니라 지금의 뉴블랙 멤버 왕지호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그때 지호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어요.”
“기, 기억은 하는데…….”
“뉴블랙이란 그룹을 깨고 나와서 배우 하라고 하셨던 이야기를 저만 기억했나 해서.”
“아니, 그…….”
네가 나를 얼마나 만만하게 봤으면 그때 그 기억이 있는데도 말을 거냐- 같은 느낌이었다.
횡설수설하던 조 실장이 다급하게 도망을 쳤다.
다시금 평소대로 대본을 읽으며 제육을 우물거리는 지호의 모습에 석지훈이 눈을 깜빡였다.
‘내가 챙겨 줄 필요가 없었구나.’
촬영장에서 은연중에 만만하게 여기는 반응도 선을 안 넘어서 가만히 있을 뿐.
조용히 킬각(?)을 쟀던 방금 전 뉴블랙 막내의 모습에 석지훈이 침을 꿀꺽 삼켰다.
‘쉬운 애가 아니었구나.’
그리고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스탭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 * *
“그때부터 지호의 스케줄이 밀리는 일은 없었지.”
“그렇군.”
마음속 명단에서 조 실장이란 이름을 지웠다.
그 정도면 됐지.
“음~”
솔직히 지호의 방식이 세련된 편은 아니긴 했다.
나였으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처리를 했을 것 같은데, 그건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하지만 이 업계는 특성상 마냥 하하하~ 하고 있다고 해서 좋은 곳도 아니라서 지호의 처신이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훈이가 앞서 걷고 있는 조연출의 등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속삭였다.
“그때 그 조연출이 저 사람이었거든. 지호 일정 미루던 사람.”
“아.”
“근데 조 실장이란 사람이랑 지호 얘기가 소문이 쫙 퍼졌는지 다음 날부터 태도가 확 달라지더라고.”
어쩐지 우리가 차에서 내렸을 때도 ‘아이고!! 오셨습니까!’하면서 너무 저자세로 나와서 이상하다 했다.
내가 웃으면서 지훈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무튼 고맙다. 지호 챙겨 주려고 해서.”
“애초부터 내가 챙겨야 될 사람도 아니었더만.”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마침내 실내 촬영장에 도착했다.
널찍한 창고 같은 건물.
천장에 매달린 조명들.
철골 구조물.
블루 스크린 앞에서 철골 트러스가 마치 건설 현장의 뼈대 같은 느낌으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형, 저기 지호 있어요.”
비주의 속삭임에 고개를 돌리자, 라이더 자켓 차림으로 와이어에 매달린 지호가 촬영을 하고 있었다.
고층 빌딩을 청소하는 사람들이 착용할 때 쓰는 하네스를 착용하고 있다.
아마 외계인들의 본부에 잠입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오오.”
“오.”
카메라 뒤편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감독님 앞으로 모니터가 보인다.
화면에 담긴 지호의 얼굴은 마치 다른 사람 같다.
뺨에 살짝 나 있는 핏자국.
거친 야수 같은 눈빛.
평소에는 쾌활하게 웃으며 여기저기 동네북처럼 당하지만, 알고 보면 가슴 속에 뜨거운 분노와 열기를 지니고 있는 불량한 배역을 정말 잘 구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구현이 아니라 그냥 그 인물 같다.
휘이익-!
장갑을 낀 손으로 와이어를 움켜쥐는 치킨집 넷째.
팔뚝의 잔근육이 선명하게 도드라지는 씬에서 땀방울을 흘리던 지호가 매끄럽게 미끄러졌다.
그러곤 바닥에 착지해 가볍게 몸을 구르고는 일어난다.
마치 빌딩 안으로 들어온 듯한 모습.
툭- 툭-
목을 뚜둑 한 번 꺾은 지호가 재킷을 펄럭이며 매무새를 점검하고는 카메라를 향해 걸어왔다.
그 워킹 씬이 끝난 후.
“컷! 좋습니다!”
감독님의 호쾌한 외침과 함께 여기저기서 ‘수고하셨습니다!’하는 인사가 오갔다.
이윽고 뒤에 서 있던 우리를 발견한 사람들의 비명이 터져 나올 때.
“헉!”
“어?! 엇…!”
“어머, 뭐야! 언제 오셨지. 안녕하세요-!”
허둥지둥 인사를 하던 사람들 속에서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던 막내가 우리를 발견했다.
삽시간에 배역의 영혼이 빠져나가고, 우리 막내로 바뀌어 가는 모습.
“어어어어엉?! 형들!!!!”
행복한 얼굴로 웃던 지호가 우리에게 뛰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