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Life, The Greatest Star In The Universe RAW novel - Chapter (1258)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258화
2019년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우리는 8관왕을 차지했다.
-뉴블랙, 빌보드 어워드 ‘8관왕’ 쾌거.. “새 역사 썼다”
당연하게도 올해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최다 수상 기록이었다.
그중 3개는 내가 개인 자격으로 얻은 트로피긴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어마어마한 대기록.
숙소에 돌아와 테이블에 트로피를 올려놓았을 때도 현실감이 없었다.
“솔직히….”
리혁이가 말했다.
“얼떨떨하네요. 항상 그런 것 같아요. 여기서 더 올라갈 일은 없겠다, 그런 마음으로 활동을 끝내면 더 올라와 있고.”
“그러게.”
“진짜 이게 사실상 끝까지 올라온 거라고 봐야겠죠?”
오버쿡과 핫소스의 전 세계적인 성공.
여기서 더 올라갈 일이 있겠냐고 묻는 리혁이에게 내가 대답했다.
“그룹으로 그래미 가야지.”
“그게…….”
그게 말이 되겠냐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지호가 리혁이의 옆구리를 툭 치며 키득거렸다.
“‘그게 말이 되냐’고 그러는 건 부정 타니까, 저기 가서 혼잣말로 해요. 리혁이 형.”
“나 말 안 했어, 아직.”
“그냥 우리는 브라더 우주만 믿고 가는 거예요. 이거 봐요.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는 귀여운 애들 데려다가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잖아요? 가만히 따라가면 어느 순간 그래미 트로피가 손에 들려 있는 거죠.”
비주와 중현이가 맞는 말이라며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맞아.”
“동의.”
그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든 민기 형이 우리에게 말했다.
“준비 다 됐는데 찍을까?”
“잠시만요.”
숙소 거실.
[수플레, 우리 상 탔다~!] 하는 스케치북을 들고, 앙증맞은 포즈를 취하며 인증샷을 찍었다.팬 커뮤니티인 에이드 어플을 켜서 소감을 작성하고, 사진을 업로드하고.
-얘들아 축하해ㅠㅠㅠㅠㅠㅠㅠㅠ
-장하다ㅠㅠ
-Congrats ♥♥♥
-지호는 왕자처럼 생겼다. 나는 왕자님을 위해 대머리에게 돈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
-얘들아 오늘 고생 많았어ㅠㅠㅠ 내가 다 자랑스럽다
양지 중의 양지에 해당하는 에이드에는 우리를 축하해 주는 전 세계의 수많은 메시지들이 물결을 치고 있었다.
우리가 고개를 돌려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홍서영 차장님에게 물었다.
“다른 곳들 반응은 어때요?”
“전체적으로 심심하네.”
“빌보드에서 8관왕이나 했는…데요?”
“그래미와 아카데미 시상식의 임팩트가 워낙 강했어야지. 그뿐만 아니라, 다들 어느 정도 예상한 분위기 같아.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너희가 세웠던 업적들이 있잖아.”
[Answer>라는 초대박 음원.슈퍼노바 닷지볼에서의 오버쿡 공연.
알래스카의 지진 봉사활동과 크리스마스 캐럴.
영화 [사운드 오브 선>까지.
“작년 빌보드 어워드의 집계 기간 이후로 일어난 일들이잖아. 그래서 이 정도로 탈 걸 예상한 것 같아.”
그래서 미디어에서 ‘신기록!’ 하며 대서특필해도 사람들이 그 정도까지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듯했다.
비주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뭔가 신기한 것 같아요. 작년에 이런 일이 있었으면 엄청 뒤집어졌을 것 같은데.”
우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이제는 대중들도 빌보드 수상 정도는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된 듯했다.
“그보다는 스칼렛 이야기가 더 많지. 이번에 또 다른 K팝 그룹으로 빌보드 어워드 무대에 선 거니까. 마침 이번에 무대를 잘하기도 했고, 저쪽 팀 남 과장이 제일 신났어.”
홍서영 차장님과 입사 동기이자 스칼렛 TF팀의 홍보를 맡고 있는 남 과장님이 엄청 들떴다는 모양이었다.
중현이가 말했다.
“현장 분위기가 엄청 좋아 보였어요.”
“그랬지.”
우리가 신인 시절에 망고 차트 어워드에서 [Masquerade>의 무대를 했던 때가 떠올랐다.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면서도 딱 느껴지는 감각.
-됐다.
현장에서 나오는 작은 리액션이나 호응을 느끼면서 ‘이건 된다’하는 확신이 들었던 때.
이번에 스칼렛의 무대를 보면서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독특한 것을 목격하고 낯설어하면서도, 스칼렛의 무대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던 많은 관객들의 표정.
당사자들도 그걸 느꼈는지, 어워드가 끝나고 사진을 찍기 위해 만난 스칼렛의 얼굴은 흥분과 설렘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비주가 그 분위기를 요약해서 말했다.
“스칼렛에겐 새로운… 시작이네요.”
“그렇지.”
“잘됐으면 좋겠다.”
“진짜.”
우리의 직속 선배들의 앞에 꽃길이 펼쳐지길 바라고 있을 때.
홍서영 차장님이 말을 이었다.
“뭐, 스칼렛은 스칼렛 팀이 알아서 잘할 거고, 우리에겐 우리의 일이 있지. 대중 반응 관련해서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들을 요약했는데… 일단 지금 한국에서 최고 이슈는 빌보드 수상이 아니야.”
“?”
“비주가 콜린 에반스 팬이 던진 깡통에 맞을 뻔한 거지.”
그것 때문에 사색이 된 얼굴로 담당자가 찾아와 사과를 몇 번이고 했다.
평소 사람 좋은 표정을 짓고 있던 우리의 에이전트, 디안젤로 코스타 씨가 거의 쌍욕을 퍼부을 기세로 화를 냈던 장면도 기억이 난다.
홍서영 차장님이 말했다.
“한국에서는 그 소식이 제일 난리야.”
노트북에 수많은 댓글들이 요동치고 있다.
지호가 최고 상단의 댓글 하나를 읽었다.
“야 이 개…… 엄마야.”
“오.”
“오오.”
“이건 틴스피릿도 읽다가 GG 칠 거 같은데여?”
십이간지의 동물들부터 시작해서 정말 기상천외한 욕들이 가득했다.
비주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
“저 심장이 벌렁거려요. 형.”
“그, 그만 보자.”
어찌 되었든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화가 났다는 것 아니겠는가.
현란한 욕설들에 처음에는 놀랐다가 이내 웃음이 나왔다.
-여러분! 저희 빌보드 8관왕 했어요.
-어어~ 그래, 잘했다.
트로피 8개를 들고 뿅! 할 때는 드러누워서 긁적긁적하던 사람들이.
-근데 저희 깡통에 머리 맞을 뻔했어요!
-대체 어떤 상놈의 자식이…!
벌떡 일어나 분노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뭔가 웃음이 나온다.
정겹고 좋다.
“현지에서는 반응이 어때요?”
“미디어에서 다루기는 했는데, 흔한 할리우드 가십 정도로 치부하는 것 같아. 아무래도 이쪽에는 문라이트 쪽 프로듀서인 테리 오스틴의 입김이 세니까.”
은발을 가지런히 정돈한 미남의 얼굴이 떠오른다.
-테리 오스틴.
수많은 레전드 가수들을 탄생시킨 프로듀서.
쉽게 말해서, 더 젊고 잘생긴 버전의 박태준 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이쪽에서 파워가 강한 음반 업계의 거물이 힘을 쓰면서 기사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모양이다.
-팬덤간 분쟁이 격화되다..! 수플레 VS 선샤인, 그 싸움의 끝은 어디로?
리혁이가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렇게 적으면 쌍방 과실인 것 같잖아요?”
“언론들 논조가 그래. 팬덤 간의 다툼이 격화되어서 이제는 물건까지 던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는 식으로.”
모두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현장에서 수플레들이 정말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두 팬덤이 싸운 것처럼 적혀 있었으니까.
특히 스칼렛에게 야유를 퍼부었던 부분은 아예 기사화조차 되지 않았다.
윤석환 팀장이 옆에서 부연 설명을 했다.
“너희도 알고 있잖아. 여기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걸.”
“…뭐, 알고는 있지.”
“올림픽이랑 똑같은 거야. IOC에서 입김이 센 나라 선수들은 편하게 막 행동해도 아무런 제지를 안 받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은 별것 아닌 일로도 불이익 주고 그러잖아.”
당연히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 때문에 우리도 수플레들에게 미안함을 느낄 때가 많았으니까.
문라이트의 팬덤인 선샤인과 달리 수플레들이 성숙하게 행동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거였다.
-우리는 조금만 삐끗해도 욕먹는다.
선샤인의 도발에 응수를 하면 ‘저런 극성맞은 팬덤을 보았나! 뉴블랙 팬들 봐라! 나쁜 애들이네…!’ 같은 기사들이 쏟아질 것이 뻔하기에 행동을 조심하는 수플레들이었다.
더군다나 이쪽 주류 미디어와 사이가 좋지 않기에, 우리가 최근에 활동들을 하면서 다양하게 어그로를 끈 것이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 때, 민기 형이 말했다.
“일단 식사하면서 마저 이야기할까? 고기로 배를 좀 채워 줘야지.”
“네.”
중현이가 고기를 굽기 위해 나가는 동안 나는 노트북을 챙겨 나오는 홍서영 차장님의 짐을 받아 들었다.
“어, 고마워. 우주야.”
시원한 LA의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내가 물었다.
“켈리랑 콜라보 관련해서도 반응 많았을 텐데, 그건 어떤가요?”
“이번 어워드에서 제일 뜨거웠던 이슈지. 콜린 에반스와 켈리 넬슨 관련 기사만… 농담이 아니라 아마 수천 개가 올라왔을 거야. 당연히 신곡에 대해 관심도가 높아.”
“음….”
“뭐 신경 쓰이는 점이라도 있어?”
밤하늘의 별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수많은 수플레들의 눈처럼.
“아무래도 작업하면서 켈리랑 붙어 다닐 일이 꽤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말이 나오거나 하진 않을까 해서요.”
평소라면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파파라치들을 비롯해 모두가 켈리 넬슨과 콜린 에반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고 있는 상황.
최대한 기삿거리가 될 상황을 피했으나, 그럼에도 신경이 쓰이긴 했다.
-콜린 에반스에 대한 신곡을 쓰는데 왜 써니가 피처링으로 나서지? 둘이 무슨 관계야??
곡을 들으면 미스터리가 해결이 되겠지만,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의문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콜린이 시상식장 복도에서 나를 따로 불러냈을 때, 열이 확 올랐던 거기도 하고.
자칫하면 ‘콜린 에반스와 선우주가 켈리 넬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언성을 높였다더라’하는 목격담 등이 퍼져 나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가수로서는 제일 좋은 상황 같아요.”
사방팔방에서 끌리는 어그로.
수많은 관심.
이런 상황에서 신곡을 발매하는 건 절호의 기회다.
“그렇지만 이제 팬들도 생각하고… 아, 모르겠네요. 저도 이런 상황은 진짜 처음이라. 콜라보 제안을 수락할 때만 해도 콜린이랑 켈리 이슈가 그렇게 뜨거운 소식이 아니었거든요.”
“그랬지.”
“상황이 어떤가요?”
“음~~”
홍서영 차장님이 바베큐 그릴 쪽으로 다가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쭉한 손가락이 내게 향했다.
“너의 고민을 알겠어. 그러니까 켈리 넬슨이랑 염문설 같은 게 퍼지거나 그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인 거지?”
“네.”
“으음…….”
상대의 얼굴 위로 상당히 난처한 기색이 떠올랐다.
이걸 어떻게 말해주지- 하는 표정.
내가 침을 삼키고 물었다.
“그… 그렇게 나쁜가요?”
“음~ 그건 아닌데~~ 아, 이걸 뭐라고 설명을 해야 잘 설명을 했다고 소문이 나려나….”
“네?”
“일단 좋은 소식을 말해 주자면, 현재 온라인에서 너와 켈리 넬슨에 대해 염문설은 1도 나고 있지 않아. 그럴 기미조차 안 보여.”
“진짜요?”
희소식이었다.
이윽고 내가 ‘좋은 소식’이란 키워드를 기억했다.
“그럼 나쁜 소식도 있나요?”
“아니, 나쁜 소식은 없는데… 좀 다른 표현을 쓰자면 좋은 소식인데 원인이 나쁘다…?”
“??”
“너랑 켈리 관련해서 로맨스 관련 이야기가 1도 안 나오는 이유가…… 그…….”
홍서영 차장님이 먼 산을 보며 말했다.
“아시아계 남자랑 백인 여자 조합이라…….”
“아.”
“그… 이게… 차별인데… 그……. 이 동네에서 별로 인기가 없는 조합이라고 해야 하나. 미디어에서 그런 쪽으로 잘 안 엮어 주려고 하는 게 있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내가 훈훈하게 웃으며 답했다.
“뭐, 그래도 좋은 게 좋은… 아니, 잠깐만.”
“…….”
“인종차별…이네요?”
“그치…?”
“어?”
그런 느낌이었다.
어떤 광인이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는 장소를 지나가는데 광인이 ‘나는 아시안에겐 돌을 던지지 않지, 후훗. 왜냐하면 돌이 아깝거든!’ 하면서 나에겐 안 던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 아…?”
“가서 고기나 먹어. 우주야.”
“아아?”
눈을 깜빡이는 내 등을 떠미는 홍서영 차장님.
뭐지.
분명 잘 풀렸는데 이 미묘한 기분은?
* * *
빌보드 어워드로부터 5일 후.
켈리 넬슨과의 [Error> 뮤직비디오 촬영을 비롯해 간단한 인터뷰 일정을 마친 우리는 몸풀기에 들어갔다.
-매년 5월 첫째 주 목요일 (The first Monday in May).
그날이 도래했기 때문이었다.
-멧 갈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는 패션계의 최대 행사.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그 해의 컨셉에 맞춰서 코스튬을 입고 등장하고, 안으로 들어가 파티를 하는 행사다.
올해의 컨셉은 ‘요리.’
“음.”
내가 거울을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작년과 달리 올해는 좀 평범한 게 아닐까요?」
「오, 써니. 걱정 말아요. 나의 뮤즈.」
지미 로빈스가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듯 나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아무도 그대를 보고 평범하다 하지 않을 거예요.」
「지미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남들에게 패션 테러리스트, 아니 패션 폭파범이란 말을 들었던 나의 패션 철학을 인정해 준 인물.
패션 브랜드 르블랑의 수석 디자이너, 지미 로빈스.
올해 멧 갈라의 코스튬 역시 그가 손수 디자인해 준 의상이었다.
「써니가 작년 알래스카에서 입었던 의상을 보고 영감을 얻었죠. 올해의 트렌드가 될 패션이라고 생각했죠.」
「아, 역시! 지미라면 알아볼 줄 알았어요.」
알래스카로 떠날 때 업무 분배를 했었는데, 패션 담당으로 내가 선정되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모두가 경악했지만 역시 지미라면 알아볼 줄 알았다.
나의 진가를!
「하하하하하하하!」
「와하하하하!!」
그러는 동안 뉴욕의 도로를 달리던 리무진이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대기, 대기, 또 대기.
우리 앞으로 수많은 셀러브리티들이 붉은 카펫이 깔린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으로 걸어가는 게 보였다.
번쩍- 번쩍-
먼저 도착해서 계단을 올라가는 이들이 보인다.
“오.”
아는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중화 요리사가 입을 법한 복장을 멋지게 패션으로 개량한 옷.
포마드로 검은 머리카락을 촥 넘긴 채, 검은 옷 위로 빨간 숄을 두르고 있는 미남이 보였다.
「평범하지만 깔끔한 룩이군요. 아는 얼굴입니까, 써니?」
「제 친구예요.」
한별이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TNT에서 태현이와 한별이는 유독 빨간색이 참 잘 받는 멤버였다.
태현이가 주로 빨간색으로 머리를 물들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어울린다면 한별이는 의상에 있어 빨간색이 잘 어울렸다.
지금도 검은 의상에 팔과 어깨 부근을 두르고 있는 빨간 숄을 보고 있으니 마치 기다란 용이 온몸을 휘감은 것 같다.
「음… 어디서 본 얼굴 같기도 하군요. 중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연예인 아닙니까? 르블랑에서 중화권 마케팅을 두고 했던 회의에서 얼굴을 봤던 것 같은데.」
「맞아요.」
「르루입니까?」
「르루였었죠.」
이번에 한별이는 다른 브랜드의 앰버서더로 참석했다.
원래 있던 브랜드에서 중화권의 논란을 의식해 한별이를 광속으로 앰버서더에서 빼 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 활동으로 다시금 부활했고, 한별이를 새롭게 앰버서더로 영입한 브랜드에서 아시아권 매출 대박을 터뜨렸다.
자신감 있는 얼굴로 인터뷰어와 뭐라고 대화하는 한별이를 보는 동안 우리의 차량도 이동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수플레들의 함성과 비명 소리.
작년도 최고의 패셔니스타로 선정된 것 때문인지 벌써부터 포토그래퍼들이 옥신각신하며 명당을 잡기 시작했다.
「내릴까요?」
「가죠.」
지미 로빈스와 내가 사이좋게 내렸다.
“와아아아아아-!”
가볍게 한 바퀴 빙글 돌며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았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나의 의상은 한식(韓食).
당연히 한국 요리할 때의 한식이다.
-써니, 원하는 의상이 있나요?
-요리를 의상으로 만들고 싶어요. 한정식 백반을… 의상으로 형상화하는 이런 느낌?
자료 사진으로 한정식 집에서 파는 정갈한 한상차림 사진을 보내 주었다.
그걸 본떠 만든 의상.
여기저기 달려 있는 보석이나 장신구들은 그릇에 담겨 있는 요리를 추상화한 컨셉이다.
하지만 액세서리가 과하지 않아 여백의 미를 추구하는 느낌까지.
머리 한편에 꽂은 꽃 장식을 살짝 조정하고는 여러 포즈를 취했다.
작년과 달리 조금 심심하지 않나 싶었는데.
“…….”
“…….”
멍하니 감탄했다는 얼굴로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표정에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후훗.”
그렇다.
이게 바로 전 세계가 인정한 패셔니스타의 삶인 것이다.
* * *
레드카펫 사진 촬영.
인터뷰.
또 인터뷰.
30분 정도 일정을 소화한 지미와 나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내부로 들어섰다.
「환영합니다.」
전원 모델로 구성된 아르바이트생들이 요리와 관련된 멋들어진 의상을 입고 방문객들을 반기는 입구.
그곳을 지나 내부에 마련된 다양한 의상들의 전시회를 감상했다.
「지미!」
곧장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를 발견한 이들이 그를 부르고, 나도 여기저기 불려 가면서 우리는 흩어졌다.
어차피 같은 테이블에서 또 만날 테니까.
그렇게 전시회 곳곳을 구경하고 있을 때, 한적한 곳에 전시된 절대 왕정 시기의 프랑스 왕조 의상을 감상하던 내게 누군가 다가왔다.
「이런 곳에서 만나는군.」
오늘의 드레스 코드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검은 턱시도.
머리를 멋들어지게 빗어 넘긴 은발의 중년인.
그가 악수를 청했다.
「테리 오스틴이네.」
「우주입니다.」
하지만 악수를 하려고 손을 딱 잡았을 때, 그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닥이듯 으르렁거렸다.
「건방진 애송이가 겁도 모르고 날뛰는 꼴을 보고 있자니 요새 내 심기가 좋지 않아.」
「!」
「왜? 놀라서 입이 안 떨어지나?」
나도 모르게 입가에 화사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곤 그의 귀에 화답했다.
* * *
멧 갈라 행사장 내부.
마치 거인의 주방 같은 풍경으로 꾸며진 파티장에 들어오던 콜린 에반스가 휘파람을 불었다.
‘파티, 파티로군.’
벌써부터 그를 향해 쏟아지는 호감 가득한 시선과 미소들.
흡족한 미소를 짓던 콜린 에반스는 근처에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테리?」
그를 키워 낸 프로듀서 테리 오스틴이었다.
무언가 고민이 있는 듯한 그의 표정에 콜린이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테리?」
「아, 콜린.」
「?」
「그… 혹시 외국어 욕설 중에 말이야.」
「네.」
「Bom Gam Za…? 같은 말이 들어가는 게 있나?」
콜린 에반스가 눈을 크게 떴다.
「테리? 당신도?」
「응…?」
「그, 그거 저도 들었던 말인데…….」
「???」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콜린 에반스.
이윽고 테리 오스틴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기까지는 채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두둥실-
때마침 행사장에서 두둥실 떠오르는 거대한 감자 모양의 풍선.
하지만….
아직 두 남자는 모르고 있었다.
앞으로 다가오고 있을 무시무시한 노래에 비하면 지금의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