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Life, The Greatest Star In The Universe RAW novel - Chapter (1379)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379화(1379/1386)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379화
처음에 크로스오버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나는 의아했다.
-크로스오버?
-넴.
-그게 뭐야?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음…….
설명을 어려워하는 막둥이 대신에 우리 메인보컬이 설명해 주었다.
-서로 다른 두 세계관의 캐릭터들이 만나는 걸 말하는 거예요. 대표적으로 셜록 홈스 VS 아르센 뤼팽 같은 게 있겠네요. 뭐, 이 경우에는 헐록 숌즈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무단 도용한 거지만.
그런 식으로 정상적인 경우라면 만날 일이 없는 캐릭터들이 만나는 걸 부르는 용어라고 했다.
지호가 부연설명을 해 주었다.
-암튼 크로스오버하면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요?
-어떤 식으로?
-할로윈이 지나긴 했지만 코스튬을 입고 둘이 같이 셀카를 찍는다거나… 그러는 거예요.
-음.
지호의 아이디어를 잠시 검토한 내가 의견을 물었다.
-홍보 영상을 하나 찍어보는 건 어때?
-영상이요?
어떤 식으로 홍보를 해야 더 뜨겁게 불을 지필 수 있을지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이렇게….
“기획안도 잘 만들었고.”
내가 대본을 툭툭 치며 씩 웃었다.
“두 회사에 허락도 받았겠다. 이제 찍는 것만 남았네.”
“한 가지가 더 있긴 하죠.”
리혁이가 말했다.
“예산을 책정해야죠. 대략 어느 정도로 찍을지.”
“음, 잠시만.”
최근에 영화와 드라마 프로젝트에 제작자로 참여했다 보니 이제 예산을 짜는 노하우가 있었다.
카메라 비용을 비롯해서 인건비와 로케이션에 수반되는 비용을 짧게 계산하고는 견적을 냈다.
아니, 견적을 내려고 했다.
동생들이 참견하기 전까지.
“기왕이면 조금 더 좋은 카메라로 찍는 게 좋지 않을까요? 형의 미모가 좀 더 멋지게 담겨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는여?!!) 음~ 지호도 예쁘게 나오고~”
“동의하는 바예요. 아이맥스 급은 아니더라도 기왕 크로스오버를 찍을 거라면 제대로 된 영화처럼 보여야죠. 팬메이드지만 공식 영화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하면 더 효과적일 거예요.”
“로케이션을 좀 더 좋은 데서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제가 겨울에 산에 가 봐서 아는데…….”
“감독님도 섭외해야죠. 영상미 좋기로 유명한 뮤비 감독님을 섭외해서….”
동생들이 의견을 개진할 때마다 내가 숫자를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그리하여 완성된 예산.
“……어.”
내가 종이 위에 적힌 숫자를 보고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졸개들이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게 맞을까요, 형?”
“나는 그냥 너희가 이야기한 대로 예산을 짠 것뿐인걸. 지금이라도 몇 개를 포기하면 되긴 되는데….”
“형 생각은 어떤데요?”
“이대로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기왕 크게 하기로 했으니까, 최고의 퀄리티로 준비를 해야지.”
잠시 고민하던 동생들도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일단 대표님한테 먼저 여쭤볼게.”
* * *
서울의 유명 호텔 한식 레스토랑.
“저기 보여?”
“어디?”
“저기 앉아 있는 남자 있잖아. 저 사람. 대놓고 쳐다보지 말고 그냥 슥 봐.”
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인물이 멀찍이 누군가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깔끔한 정장 위로 머리가 반짝이는 중년 남성.
곁눈질로 그를 본 일행 중 하나가 말했다.
“누군데? TV에 나오는 유명한 스님이야?”
“뉴블랙네 대표야.”
“아, 저 사람이 박규호 대표야?”
독특한 신체적 특징과 더불어 ‘뉴블랙네 대표’로 일반인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은 박규호 대표.
워낙 뉴블랙이 글로벌한 인기를 얻다 보니 그도 덩달아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허허.”
박규호 대표가 따끈한 차를 들이켜며 주변의 시선들을 느꼈다.
“어찌나 시선들이 뜨거운지 머리가 따갑구만.”
“픕- 어우, 죄송합니다. 대표님. 기침이….”
머리가 따갑다는 말에 사레가 들린 본부장이 뜨거운 물을 벌컥 들이켰다.
“끼에엑!”
“저, 여기 찬물 부탁드립니다.”
차분한 인상의 미남, 조규환이 손을 들어 찬물을 요청했다.
그가 메뉴판을 보며 말했다.
“오늘 무궁화 코스로 먹어볼까요, 대표님?”
“그걸로 시켜 보자고.”
중요한 거래처와의 미팅을 마치고 나서 잠시 식사를 하러 나온 레몬 엔터의 경영자 3인방이었다.
좋은 거래를 성사시킨 만큼 축하하는 자리.
“허허허.”
“하하핫.”
그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성공했구나.’
과거에는 좋은 일이 생겨도 깐풍기나 깐쇼새우 정도를 추가하는 정도에 그쳤던 그들이 이제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자축할 수 있는 재력을 지니게 되었다.
‘슬펐던 옛날이여, 안녕.’
‘후후후후.’
그들이 주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들려고 할 때였다.
[에에에엥-!]박규호 대표의 핸드폰에 공습경보가 울리는 듯한 알림 소리가 울렸다.
사사사삭-
그 순간, 그 누구보다 핸드폰을 빠르게 쥐는 박규호 대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회사의 최고 권력자가 CEO에게 연락을 했기 때문이었다.
찬물을 들이켜던 본부장이 소곤거리며 물었다.
“뭔가요, 대표님?”
“우주한테 연락이 왔거든. 이번에 그 영상 관련해서 예산 말이야.”
“아, 예.”
“지금 요청 금액이 적혀 있는데…….”
그가 핸드폰을 테이블 위로 밀어서 두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두 남자가 고개를 내밀어 내려다보았다.
[예상금액 : $ 80~100만 달러]대략 한국 돈으로 환산하자면 10억 정도 되는 돈이었다.
조규환 이사가 상세 내역을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90만 선에서 마무리가 될 거 같긴 하네요. 정확하게 예산을 잘 짰는데요? 초과하지도 않고, 미달되지도 않고.”
“안 그래도 OK했어. 기왕 하는 거 이 정도 금액은 써야지.”
그리고 이건 공짜가 아니었다.
월드 아트 스튜디오와 실버 스크린이라는 두 회사 모두 알 것이다.
지금 뉴블랙이 베푸는 호의가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더 크게 갚아야 한다는 것을.
그러니 당연한 결정이었다.
예산을 지출할 수 있는 여력도 있고, 지출해야 하는 이유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받아낼 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돈을 벌어오는 이들이 누군가.
-관종 6년, 세인들이 레몬 엔터를 일컬어 관종대왕의 왕궁이라 하더라.
하지만….
“…….”
“…….”
묘하게 입맛이 사라져 버린 3인방이었다.
아무리 스케일이 커졌다고 해도 10억쯤 되는 돈이 스으윽 빠져나가니 몸이 반응한다고 할까.
“그…….”
조규환 이사가 메뉴판을 넘기며 말했다.
“단품이나 먹을까요?”
“그러자고….”
세 남자가 시무룩한 고양이 같은 얼굴로 메뉴판을 살피기 시작했다.
* * *
대표님께서 흔쾌히 승낙을 해주신 덕분에 우리는 크로스오버 영상을 빠르게 찍을 수 있었다.
특별하게 CG가 들어갈 만한 것도 없고, 또한 어려운 연기가 필요하거나 한 부분도 아니었기에 촬영은 하루 만에 끝낼 수 있었다.
“컷! 수고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12월의 추운 날씨에 야외 촬영이라 그런지 모두 얼굴이 벌겋다.
군밤 장수 모자를 쓴 카메라 감독님들이 코를 훌쩍이고, 나와 지호도 스탭들이 덮어주는 뜨끈한 담요를 두르고 코코아를 마셨다.
촬영본을 확인하던 정진석 감독님이 미소를 지었다.
“이거 좋은데요.”
“괜찮은가요?”
“네, 제법 재미있는 영상이 하나 나올 거 같아요.”
이번 크로스오버 영상의 연출을 맡은 인물은 바로 의 정진석 감독님이었다.
감독님의 얼굴이 싱글벙글했다.
“편집할 때 진짜 재미있을 거 같은데요? 지호가 연락할 때만 해도 이렇게 재미있는 프로젝트인 줄은 몰랐거든요.”
처음에만 해도 ‘일단 지호가 하자니 해야지~’ 하는 태도였던 감독님은 비밀 유지 서약이 끝나고 우리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입이 귀에 걸리셨다.
캬- 하며 촬영본을 다시 보던 감독님이 물었다.
“근데 영화사들이 이런 거 해도 된대요? 자기네들 IP 관련해서 엄청 예민하게 굴잖아요.”
“이번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긴 하거든요.”
“오호~”
그런 추임새를 넣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감독님에게 지호가 물었다.
“감독님, 저희 이거 편집은 언제 끝날까요?”
“일주일 정도면 될 거 같아. 언제 공개하고 싶다고 했지? 크리스마스 시즌 즈음해서였나?”
“네.”
“그때까지 공개하도록 만들어 볼게.”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아마 미국 전역이 명절 분위기로 젖어들어 있을 테니,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나서가 절호의 타이밍이 아닐까 싶었다.
명절이 끝나고 이제 다시 현실로 슬슬 돌아가려고 하는 타이밍에 공개하는 게 우리의 계획이었다.
“그럼 나는 얼른 가 볼게~ 우주 씨도 나중에 봐요~!”
“네, 감독님. 살펴 가세요.”
벌써부터 편집할 생각에 들뜨셨는지 감독님이 휘파람을 불면서 어깨를 씰룩씰룩 흔드는 게 보였다.
그렇게 분주하게 정리하는 스탭들 속에서 나와 지호가 코코아를 조용히 홀짝였다.
이번 크로스오버 영상에는 우리 둘만 등장할 예정이기에 다른 멤버들은 서울에서 콘서트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내가 이해를 잘 못 해서 그런데 지호야.”
“넹.”
“그러니까… 이 크로스오버라는 걸 하면 팬들이 엄청 좋아한다는 말이지?”
“당연하져. 근데 왜 물어봐요, 형?”
내가 코코아의 향을 음미하며 말했다.
“내가 아무래도 이런 쪽은 잘 모르다 보니까. 지금 계획을 추진하는 것도 네가 이걸 팬들이 좋아한다고 말해 줘서 하는 거거든.”
대체로 무언가를 크게 터뜨릴 계획은 잘 짜는 편이지만, 이렇게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경우에는 조금 불안감이 있는 편이었다.
왜냐하면 계획의 전제를 막내의 이야기에 의존하고 있으니까.
지호가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은 어렸을 때 그런 상상해 본 적 없어요? 막 서로 다른 만화 캐릭터들끼리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상상이요.”
“주인공들끼리 만나는 상상 같은 건 한 적 있지.”
“바로 그런 거예요.”
하지만 그건 어릴 적 이야기 아닌가 싶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런 걸로 설레어 본 적이 별로 없긴 해서.
다른 사람들이 ‘헉! 히어로들끼리 팀을 꾸린다고!’ 할 때도 나는 ‘오~ 재미있겠네~’ 정도였다.
“으으음… 음… 아! 그거! 그거! 그럼 모차르트랑 베토벤이 만난다고 생각해 봐여. 형. 시대가 다른 사람들이 만나는 거잖아요.”
“그 둘은 동시대 사람이야, 지호야.”
“누가 더 형이에요?”
“모차르트가 14살 형인가 그럴걸.”
“와, 거의 띠동갑이네요.”
엉뚱하게 튀는 막내의 사고 흐름에 그만 웃음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보는 지호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냥 불안해서 물어본 거야. 당연히 나는 네 말 믿지.”
“그래요?”
내가 구름이 낀 겨울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모르는 부분이 엄청 많은걸. 그때마다 내가 일일이 다 조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렇게 멤버들을 믿고 계획을 짜는 거지.”
“헐, 감동.”
“겸사겸사 책임 소재도 돌릴 수 있고.”
“감동 압수.”
줬던 감동을 압수한다며 손으로 슈웁 뺏는 시늉을 하는 막내에게 ‘아, 왜 가져가~’ 하며 내가 다시 뺏고 있을 때였다.
툭-
코끝에 무언가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실랑이를 하며 깔깔 웃고 있던 우리가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그마한 알갱이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다.
“눈.”
“눈이다….”
올해 우리가 한국에서 보는 첫눈이었다.
코코아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던 우리가 왠지 모르게 낭만에 젖어들어 있을 때였다.
“눈이다!!!”
철수를 준비하던 감독님과 스탭들이 미친 듯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눈이다! 눈!”
감독님이 우리에게 말했다.
“두 분 얼른 다시 준비해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죠?”
“잘 알죠.”
우리가 씩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대체로 촬영 중에 내리는 눈이나 비는 방해물이었지만, 항상 방해물의 역할을 하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어떤 CG보다 더 멋진 효과로 작용하곤 하니까.
사실 우리도 눈이 내리는 장면 등을 고려하긴 했지만, 인공적으로 눈을 만들기까지 하면 비용이 정말 감당이 안 되기에 포기했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내린다는 건….
“와. 하늘에서 계시를 주나 봐요.”
왜 틴스피릿이 겨울만 되면 부르는 ‘펄펄~ 선녀님이 존나게 눈을 뿌리십니다~’ 하는 동요가 떠오르는진 모르겠지만.
“느낌이 좋다.”
“저두요.”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 * *
매년 12월 연말.
이 시기의 미국과 캐나다를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인상이 있다.
-이 나라는 크리스마스에 미쳤어….
크리스마스 주간을 보내기 위해 두 달 전부터 캐럴을 들으며 파티를 준비할 정도.
2미터가 넘는 나무를 트럭에 실어서 집까지 가져와 트리를 만들기도 하고, 집안의 구석구석을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장식으로 꾸미고, 이날 먹을 특별할 음식들을 만들고.
올해 크리스마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희에게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하고,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는 미국인들.
TV 속에선 캐럴이 나오고 있었다.
“오, 이거 어디서 들어본 노래인데.”
“뉴블랙이 부른 노래일 걸요. 작년에 알래스카에서 부르면서 엄청 히트 쳤잖아요.”
“이게 그거였어? 요새 라디오에서 맨날 나오더라고.”
산타클로스 분장을 한 진행자 곁에서 초록색 요정 모자를 쓴 뉴블랙 멤버들이 캐럴을 부르고 있었다.
친척 어른 중 하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말 여기저기 나오는군. 어딜 틀어도 질릴 정도로 나오는 거 같아.”
“올해 가장 성공한 셀럽 중 하나잖아요. 삼촌도 <마법학교 아이들> 보셨다고 하지 않았어요?”
“봤지. 외국 드라마치곤 재미있더구나. 그래서 저 중에서 써니라는 애가 가운데 있는 애 맞지?”
어느 집에서 가족들이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며 수다를 떨고 있을 때,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던 남자가 잠시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뭐지?’
온라인 속 상황이 뭔가 시끌시끌했기 때문이었다.
원더 코믹스의 팬인 존은 자신의 덕후 친구들로부터 쏟아지는 연락을 받고 눈을 깜빡였다.
‘뉴블랙 TV에 뭐가 올라왔다고? 뭔 소리야?’
당장 뉴블랙 계정에 들어가, Dude! 하는 텍스트 메시지를 바라보던 존이 미튜브에 접속했다.
몇 개의 영상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올라온 뉴블랙의 축하 메시지가 있고, 그 위로는 검은색으로 칠한 썸네일의 영상이 하나 있었다.
[The Silver & Shadow]실버와 섀도우라는 말이 들어간 걸 보니 무슨 내용인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또 VS 떡밥인가.’
끝까지 어그로를 끄는 뉴블랙의 모습에 그가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지겹다. 지겨워. 알았다고, 실버 코믹스 영화도 보면 될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며 영상을 눌렀을 때였다.
“음?”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장면이 흘러나왔다.
마치 한 편의 영화 예고편처럼….
[둥- 탁!]한국인이라면 판소리가 시작할 때 들려오는 장구의 추임새라는 것을 알았을 소리.
국악풍으로 편곡된 히어로 영화의 BGM이 흘러나오는 동안.
화면 위로 하얀 한지가 떠올랐다.
[옛날옛적에 한 아이가 있었단다.]나이 든 노인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을 읊으면서 한지 위로 그림자 놀이가 펼쳐졌다.
왠지 모르게 빠져들어 가는 듯한 느낌에 존이 집중했다.
‘뭐지? 섀도우 마스터와 관련된 이야기인가?’
아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특별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공개된 바 없는 섀도우 마스터.
뭔가 새로운 떡밥 같았다.
[아이는 호랑이에게 가족을 잃었지.]호랑이 같은 짐승의 그림자가 가족을 덮치면서 한지가 촤악- 하고 찢기는 효과음이 났다.
발톱 자국 위로 핏자국이 번져나가면서 그림자 얼룩이 되기 시작했다.
그 얼룩이 소년 위로 덮이면서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한다.
무술 수련을 한 청년이 호랑이를 비롯해 짐승들을 사냥하는 장면이 나왔다.
[호랑이는 물론이고, 사람이 아닌 괴물들까지 잡으러 다니는 사냥꾼이었지.] [그리고 맹세했지.] [인간을 해하는 모든 괴물들을 잡아낼 때까지…. 자신의 책무를 다할 것이라고.]그러면서 세대가 이어지는 장면이 흘러나온다.
청년이 노인이 되어 새로운 제자를 받아들이고 그렇게 대를 이어서 ‘그림자’들의 역사가 이어진다.
존이 침을 꿀꺽 삼켰다.
‘오오오오.’
범상치 않은 영상의 연출과 퀄리티.
뉴블랙이 올린 것이라면 아마 공식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콰직-]화면 속의 한지가 찢겨지면서 장면이 전환된다.
산속의 어느 집.
창호지로 된 창문을 바라보는 한 청년이 있었다. 검은색 방풍복을 입은 채 허리춤에 환도를 찬 미남.
[…….]섀도우 마스터를 연기한 지호가 가옥을 살핀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집 전체를 후려친 것 같은 모습.
누가 본다면 폭탄에 직격당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반파된 상태였다.
[…….]그 속에서 섀도우 마스터가 면밀하게 살핀다.
[피.]독백이 울려 퍼진다.
[하지만 사람의 피가 아니다. 짐승의 피다.]그러면서 부서진 잔해 사이에서 사냥용 엽총을 비롯해 불법적인 증거물들을 발견한다.
[이 집의 주인은 밀렵꾼이군.]존이 눈을 깜빡였다.
‘밀렵꾼?’
생뚱맞은 밀렵꾼 소재가 나오는 것을 보며 뭐지, 하고 있을 때.
주변을 살피던 섀도우 마스터가 집 근처의 나무에 새겨져 있는 발톱 자국을 발견한다.
그리고….
“!”
화면 속 발톱 자국에 존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원더 코믹스의 팬이라고 해서 다른 코믹스에도 문외한인 건 아니었다.
저 특유의 발톱 자국은 경쟁 코믹스에서 한 빌런을 묘사할 때 자주 쓰는 장치 중 하나였다.
바로 그때.
[아아아아악!]누군가의 비명이 울려 퍼지면서 섀도우 마스터가 달려나간다.
그리고 그곳에선….
[뚝. 뚝.]손톱 끝에서 떨어지는 핏방울과 함께 쓰러져 있는 밀렵꾼이 흘러나왔다.
카메라가 비추는 것은 손톱뿐.
[…….]섀도우 마스터가 조용히 칼을 뽑아 들면서, 정체불명의 괴인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순간.
‘오, 하느님 맙소사….’
흥분과 설렘을 이기지 못한 코믹스 덕후가 소파에서 주르륵 미끄러져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