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Life, The Greatest Star In The Universe RAW novel - Chapter (1390)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390화(1390/1405)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390화
다들 리무진에서 내리려고 준비를 할 때.
지호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형이 저한테 해 준 말 기억해요?”
“어떤 말?”
“예술에는 승리와 패배라는 게 없다고요. 경쟁 작품이랑 붙어서 꼭 이겨야 하는 건 아니다.”
“…….”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요.”
내가 훈훈하게 웃으며 지호에게 말했다.
“그래서 지호는 형한테 져도 상관없니?”
“아녀. 이겨야 되는데요.”
“그래. 형도 그런 마음이란다.”
막내와 내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서로를 찌릿- 째려보았다.
그동안 레드카펫의 흥분한 팬들을 통제하던 경호원들이 리무진의 차량 문을 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시크릿 에이전트 3>의 시사회 때와 마찬가지로 할리우드 대로에서 열리는 시사회.
붉은 카펫 양옆으로 흥분한 팬들이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써니!!!」
「사랑해요, 써니!」
「팽! 팽! 팽!」
내가 나온 개인 포스터를 흔드는 팬들에게 다가가 마커펜으로 사인을 해 주고, 같이 셀카도 찍고.
한 팬이 내게 외쳤다.
「당신을 보기 위해서 어제 새벽부터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정말요?」
「네, 수플레들과 자리를 두고 경쟁하느라 애 좀 먹었죠. 하하하!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네요.」
「기다려 줘서 고마워요. 이름이?」
「켄, 켄이에요.」
포스터를 내미는 인물에게 사인을 해 주며 웃었다.
수플레들 못지않게 이쪽 팬들도 굉장히 열정적이었다. 그리고 나를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같았다.
조금의 차이점이라면….
「Oppa, 어제 잠은 잘 잤어요?」
「네.」
「음? 잠 못 잤을 텐데? 걱정돼서.」
「……귀신같이 잘 알고 계시네요.」
「밥 잘 먹고, 잘 자야 해요. Oppa의 건강은 그대만의 것이 아닌 졸개들과 우리의 것.」
걱정해 주는 수플레에게 고맙다고 말하곤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그런데 제가 Oppa가 맞나요?」
「So noonchi-less….」
떼잉- 하는 팬의 말에 나도 모르게 큰 웃음이 터졌다.
그래도 수플레들이 레드카펫에서 이런저런 응원의 말을 해 준 덕분에 살짝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물론 코믹스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도 좋긴 했다.
하지만 이건 스포츠 선수가 받는 환호성과 비슷한 느낌이라서.
-우리 구단에 슈퍼스타가 입단했습니다! 작년 리그에서 MVP를 차지한 희대의 유망주!
-와아아아아! 우리 팀의 구세주다!
-구세주시여, 저희를 구원해 주소서.
하지만 그 선수가 다음 시즌에서 매우 하락한 폼을 보여 준다면?
-우리 팀에서 나가라, 쓰레기야!
-저걸 지금 1억 달러나 주고 데려온 거냐?!
-방출해! 방출해!
아마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겠는가.
아무래도 수플레들과는 조금 관계가 다르다.
우리 다음 앨범 곡이 별로라고 해서 수플레들이 ‘이딴 성적일 거면 해체해!’ 하진 않을 테니까.
“All hail the King!!”
“All hail the King!”
국왕 만세- 같은 말을 찬트처럼 외치며 양손을 번쩍 드는 팬들에게 나도 손을 들고 화답했다.
레드카펫을 지나치며 행사장 무대로 걸어가는 동안 리혁이가 말했다.
“고대 사회에서 왕은 흔히 하늘의 대행자로 여겨졌죠. 하늘에서 비가 안 내리면 왕의 덕이 부족하다고 책임을 묻곤 했어요.”
“……정말 따스한 위로가 되는구나. 리혁아.”
“하지만 역사책에서 정말 왕이 교체되었다는 걸 기록을 본 적 있어요?”
“음….”
“실제 사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정말 그런 일로 왕이 교체되는 일이 빈번하진 않았어요. 왜일까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잠시 고민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모르겠는데.”
“그야 왕들이 책임을 돌리면 되거든요. 나는 잘못한 거 없는데, 지금 신하 중에 하나가 잘못을 해서 그렇다- 이런 식으로라든가.”
“호오….”
내가 흐뭇하게 웃으며 책사를 칭찬했다.
“역시 남 탓으로 돌리라는 거로구나.”
“…그런 쪽으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에요.”
리혁이가 환호하는 실버 코믹스의 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설령 영화가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들이 형을 탓할 일은 없을 거예요.”
“왜?”
“사람들의 표정을 봐요.”
뺨에 팽의 페이스 프린팅을 하고 열광하는 팬.
포스터를 흔들며 내 이름을 외치는 팬.
“이 사람들도 형이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토록 열광을 하는 거죠. 설마 단순히 잘생기고 유명한 배우가 코믹스에 왔다고 해서 환호하는 거겠어요? 이 영화를 띄우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고 노력했는지 아니까 사ㄹ… 좋아하는 거죠.”
“음…….”
“그러니 영화가 생각만큼 잘 뽑히지 않았다고 해도 형을 탓할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다른 걸 탓하겠지.”
논리적인 말로 나를 보듬어 주는 메인보컬의 말에 내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리혁아.”
“뭘요.”
“그나저나 오늘 너한테서 형 소리 제일 많이 들어 본 거 같… 어디 가?”
종종걸음으로 멀리 사라지는 메인보컬을 바라보며 키득거렸다.
벌건 귀가 멀리서도 보인다.
다른 멤버들도 내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럼 이따 봐요, 형!”
“응.”
나는 이제 무대 인사를 하러 갈 시간이었다.
레드카펫 행사장 앞에 설치된 무대.
「다 같이 사진 찍겠습니다!」
화려한 드레스와 턱시도를 걸친 배우들이 내게 손짓했다.
「써니, 이리 와!」
「써니!」
나와 감독님을 가운데에 세워 둔 주연 배우들이 저마다 포즈를 취하며 활짝 웃었다.
그렇게 몇 장을 찍고 나서 이제 팬들에게 인사하는 시간.
비명과 함성을 지르는 실버 코믹스의 팬들에게 존 에드워즈 감독님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실버 코믹스의 팬 여러분, 정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은 바로 <가디언즈 2>가 첫 공개를 앞둔 날입니다! 다들 떨리시나요?」
「네에에-!」
「준비됐나요?!」
「네에에에에에!!」
그 누구보다 확신이 가득한 얼굴로 팬들에게 환호를 유도하는 감독님의 모습에 모두 미소를 지었다.
영화가 배라면 감독은 선장과 같은 존재니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가디언즈 2>의 최종본까지 시사를 마친 사람이 자신 있게 외치고 있었다.
「오늘은 실버 코믹스의 역사가 새로 쓰여지는 날이 될 겁니다!!」
「와아아!」
「다들 준비하십시오. 옵니다! 무엇이?」
「실버 코믹스의 시대-!!!」
「다 같이!」
주먹을 쥐고 연호하는 감독님의 말에 팬들이 합창했다.
「실버 코믹스의 시대가 온다!!」
「와아아아아아!!!」
정말 역사의 한 순간에 선 것처럼 오열하거나, 혹은 감격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정말이지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르는 분위기 속에서 인사를 마친 우리가 무대를 내려갔다.
「정말 멋진 스피치였어요, 존.」
내가 감독님에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존 에드워즈 감독은 후후후 웃으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후후후, 저질러 버렸군….」
「네?」
「후후후후. 나도 이젠 모른다구…….」
「…….」
아.
그냥 내려놓으신 거였군….
* * *
실버 코믹스의 열혈팬인 브래드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 오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숨이 가쁘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걱정된 얼굴로 물어볼 정도.
“요, 브로. 괜찮아요?”
“네, 괜찮아. 그냥 떨려서 그래요. 오, 맙소사.”
의자 팔걸이를 붙잡고 심호흡을 하는 그의 모습에 옆자리의 관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분 너무나 이해되네요. 나도 지금 그렇거든요.”
“그렇죠?”
“처음 <저거너트>를 보러 극장에 왔을 때 그랬죠.”
첫 실버 코믹스의 솔로 영화를 보러 왔을 때와 같은 기분이라는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주변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다.
“<저거너트> 때만 해도 다들 희망에 가득 차 있었죠.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이제 더 쩌는 영화들이 나올 거라고요.”
“그랬죠.”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을 줄은…….”
옆동네에서 팀업 무비로 쏠쏠하게 돈을 버는 게 부러웠던 걸까.
실버 스크린의 수뇌부가 마음이 급해지면서 이후 나온 영화들의 퀄리티는 모두 애매했다.
-일단 팀업 무비를 만들면 대박이 나지 않을까?
-일정이 너무 촉박한데요?? 지금 캐릭터들 빌드업도 안 되어 있고.
-모르는 소리! 히어로들 모아 놓으면 코믹스 팬들이 환장해서 좋아할 거라구!
아니었다.
-어라? 아니네? 그러면 인기 많은 캐릭터로 대충 영화 한 편 만들면 회복되겠지? 이걸 빌드업으로 삼자.
-저… 빌드업 내용이 너무 많아서 주인공의 존재감이 약한데요?
-인기 캐릭터 아닌가? 팬들이 좋아하겠지.
아니었다.
그 결과, 옆동네가 역대급 잭팟을 터뜨리고 있는 동안 [정상 영업 중]을 띄워두며 파리가 흩날리는 실버 코믹스.
“그래도 이번에는 다를 거예요.”
“맞아요.”
“실버 임원들이 손을 뗐다고 듣기도 했고, 무엇보다 존 에드워즈 감독이잖아요.”
아카데미 수상작 <노스탤지어>를 비롯해 영화 잘 만들기로 소문난 감독.
게다가 가디언즈의 열혈팬이기도 했다.
“존 에드워즈라면 이 코믹스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을 거예요.”
그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영화의 무게감이었다.
실버 코믹스의 장점 중 하나는 원더 코믹스보다 다소 현실적이라는 점이었다.
개연성 같은 건 대충 재미를 위해서 넘기는 게 원더의 기조라면 실버 코믹스는 ‘아 히어로들이 실존한다면 이런 일이 정말 있을 법하겠다’ 같은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중 사회 이슈를 다룬 몇몇 작품들은 명작으로 꼽힐 정도.
하지만….
‘수뇌부 놈들은 그걸 모른다니까.’
무조건 유쾌하게 가볍게 만들면 관객들이 좋아할 거라고 여기는 듯했다.
물론 실버 코믹스에도 그런 시리즈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소 진중해야 할 영화에도 무작정 유치한 유머 코드를 넣다 보니 늘 부작용을 낳곤 했다.
‘이번엔 부디… 부디… 잘 만든 영화였으면.’
몇몇 팬들은 아예 두 손을 모으고 기대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타앗-
상영관의 조명이 암전되면서 팬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으으…….’
은빛으로 빛나는 실버 코믹스의 로고가 나오는 순간,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듯한 기분.
평소 그토록 자주 보았던 로고인데 왜 이렇게 떨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팔걸이에 올린 손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꿀꺽-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가 상영관을 울릴 만큼 고요해졌을 때.
어두워졌던 화면이 환히 밝아 올랐다.
‘지구?’
어두운 밤하늘 위에 지구가 둥둥 떠 있다.
장면이 전환되면서….
‘으으, 눈부셔.’
새하얀 빛이 화면을 가득 메우면서 몇몇이 눈을 깜빡였다.
[휘이이이잉-]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는 설원.
그곳에 사슴이 한 마리 있었다.
[휘잉- 탁!]화살이 날아오면서 사슴이 쓰러지고, 모피 옷을 걸친 사냥꾼이 사슴을 둘러메고 걸어간다.
‘복장이 원시인 복장인데…….’
‘빙하기인가?’
사슴을 둘러멘 채 비틀대며 움막을 향해 걸어가는 사냥꾼.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이 일어나 반긴다.
그리고 사냥꾼이 모피 모자를 벗었을 때.
“와아아아아아아-!”
모두가 환호했다.
바로 써니였기 때문이었다.
[휴우.]그가 가져온 사슴 고기를 뜯어먹는 아이들.
그걸 바라보던 주인공이 휴우- 하고 숨을 내쉬며 털썩 앉았다.
그의 곁에 다가온 부인이 그를 쓰다듬는다.
[우우- 우-]원시 시대라 그런지 음성언어 없이 몸짓과 눈빛으로 소통하는 이들.
‘……이게 무슨 장면이지?’
영화의 오프닝으로 전혀 상상하지 못한 장면이라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는 동안 원시인 가족의 일상이 아주 짧게 이어진다.
때로는 사냥에 실패하기도 하고, 곰에게 쫓기며 도망가기도 하고, 눈보라를 헤치면서 힘겹게 생존하지만. 그럼에도 서로에게 사랑을 잃지는 않는.
하지만 어느 날….
[콰아아아앙!]어딘가에서 빔 무기가 날아오면서 움막이 폭발했다.
놀란 주인공이 움막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곳에서 이미 그의 가족들은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피융!]어디선가 날아온 빔 무기에 주인공 역시 몸통이 꿰뚫렸다.
비틀거리면서도 부인과 아이들을 향해 다가갔지만 결국 풀썩 쓰러지며 절명하는 주인공.
그리고….
[퍽!]쓰러진 그를 누군가 걷어찼다.
‘음?’
‘외계인인가? 어느 코믹스에 나온 놈들이지?’
독특한 슈트를 입고 있는 외계인들이었다.
인간을 재미삼아 사냥했는지 낄낄거리면서 주인공 가족들의 시체를 발로 걷어차거나 요리조리 살펴보는 외계인들.
꾸우우욱-
관객들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살의가 치미는 기분.
점차 주인공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지는 동안….
[…….]카메라의 포커스가 다시금 쓰러져 있는 주인공에게로 돌아왔다.
사라진 초점.
텅 빈 동공으로 클로즈업되었던 카메라가 멀어지면서….
“아…….”
“아아….”
방금까지 인간이었던 있었던 자리에 늑대 한 마리가 있었다.
새끼들과 배우자가 쓰러져 있는 곳 바로 옆에서 피를 흘린 채 죽어 있는 늑대.
‘은유였구나!’
은유적인 장면이었다.
‘동물:인간’의 관계를 ‘인간과 압도적인 과학력을 지니고 있는 외계인’으로 대입한 장면.
방금 전까지 분노를 느끼던 관객들이 멍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헤이, 조니.] [어?]총을 가지고 있던 밀렵꾼이 동료에게 말했다.
[왠지 모르게 꺼림칙하지 않아? 이 눈?] [글쎄. 그냥 죽은 눈인걸.] [그런가?] [그나저나 이놈은 가죽이 상해서 못 써먹겠는걸. 버리고 가자고.]그런 말을 하면서 밀렵꾼들이 늑대들의 시체를 가지고 움직인다.
그 장면을 보며 관객들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뭐지…?’
‘이건…….’
만약에 그냥 늑대 한 마리가 사냥당하는 장면이었더라면 이런 기분은 아니었을 터였다.
측은한 마음이 드는 식으로 자신과 분리를 해서 보았을 텐데.
방금의 인간으로 비유한 장면 때문인지 더 심각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인간은 동물을 동일선상에 놓기에는 어렵다-는 말을 하기에는….
‘과연 다른가?’
판단이 애매했다.
그러면서 홀로 남겨져 있는 늑대의 시체를 뒤로 밀렵꾼들이 멀어질 때였다.
[쿠구구구궁-]마치 대자연이 분노하듯이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젠장! 뭐지?] [화산이라도 폭발한 거 아니야?! 도망쳐!]두 밀렵꾼이 시체를 두고 부리나케 도망친다.
그러면서 전환되는 장면.
한 연구소에서 지진계가 무언가를 기록하면서 과학자들이 외친다.
[화산 활동입니다! 지금 옐로스톤에서 미약한 화산 활동이 관측되고 있어요-!]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화산 중 하나인 옐로스톤.
그곳에서 우연히 화산 활동이 벌어지면서, 땅이 갈라지고 용암이 새어 나온다.
하지만….
그곳에서 새어 나온 용암은 무언가와 달랐다.
초록색으로 빛나는 액체.
[스으으윽-]그 속에서 죽어 있던 늑대의 몸에 초록색 액체가 깃들기 시작했다.
코믹스의 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코어로군.’
실버 코믹스의 <가디언즈> 시리즈에 나오는 대자연의 정수였다.
설정상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팽이 사용하는 힘의 근원이었다.
어쨌든.
액체가 스며든 늑대가 변이하기 시작하면서….
“워어어어어!”
“와우!”
인간으로 변한 팽(Fang)이 비틀비틀 일어났다.
“헉!”
매끈한 상반신이 나오는 줄 알고 수플레들이 식겁했던 것도 잠시.
추위에 떨던 팽이 밀렵꾼들이 도망가면서 벗어두고 간 외투를 걸쳤다.
[…….]자연의 힘이 깃들어서 그런 것일까.
그가 발걸음을 뗄 때마다 발자국에서 푸르른 새싹들이 자라난다.
[…….]허망하게 쓰러져 있는 부인과 자식들을 보며 오열하는 늑대의 모습에 관객들은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인류… 멸망해야지. 뭐 어떡하겠어.’
‘미안하다. 그쪽의 인류….’
그렇게 팽이 포효할 때.
그의 몸 안에 담겨 있던 녹색빛이 환히 빛나면서 공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지구상의 모든 동물과 교감하는 팽.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동안 관객들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
“…….”
아까 늑대를 인간으로 대입해서 본 장면 때문인지, 평소 보던 것과 다르게 보이는 장면들이었다.
그렇게 포효하던 팽이 고개를 돌린다.
‘와…….’
위엄 넘치는 눈으로 관객들을 선명히 응시하는 눈동자.
[The Guardians II]영화의 메인 타이틀이 나오면서 관객들이 흥분해서 환호성을 질렀다.
진중하고 무거운 오프닝.
5분 동안 빌런의 목적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관객들에게 납득을 시킨 오프닝 시퀀스였다.
지금까지의 악당들은 어땠는가?
-크큭! 나는 지구 정복이 목표다! 왜냐고는 묻지 마라! 나도 모르니깐!
-이런이런, 과학실험이 실패해서 그만 타.락.해 버렸다구?
-스승님은 매번 그 녀석만 총애했지요! 나는! 수제자인데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구!
이를 보고 한국의 한 실버 코믹스 팬이 이런 말을 남겼다.
[차라리 층간소음 때문에 빌런이 된 걸로 해라 이 ㅅㄲ들아..]그게 더 설득력 있다
그 말이 북미 온라인에도 번역되어 밈으로 돌았을 정도.
동시에 처음부터 구도가 깔끔하게 나오면서 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게 실버지.’
히어로들끼리 대립을 한다거나 할 때, 관객 입장에서 어느 쪽의 편을 들 수도 없게 만드는 것처럼.
이 영화의 구도에서 관객들은 쉽사리 한쪽 편을 들기 어려웠다.
-자연 상태에선 연약한 육체 때문에 생존하기 어려운 인류. 그래서 문명을 만들고 동물이라는 위협 요소를 통제하는 인류.
-인류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동물들.
당연히 인간 입장이긴 하지만, 지금 동물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무작정 당연하다고 하기에는 힘들었다.
게다가 이건 타협이 가능한 문제가 아니었다.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문제.
‘이걸 어떤 식으로 풀어 나가려는 거지?’
‘뒷내용이 짐작이 가면서도 안 가는군.’
물론 몇 가지 시나리오가 떠오르긴 한다.
결말 즈음에 복수를 결심하던 팽이 동생을 감싸는 인간 소녀를 보는 것이다.
-쳇. 인간들도 선량한 맘씨가 있군. 우선 너희들이 하는 걸 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오겠다…!
-대단하군. 수많은 히어로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어린 소녀가 해냈어!
-와아아! 물리쳤다! 웅성웅성!
…같은 시나리오.
하지만 그런 김빠지는 식의 전개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랬기에 팬들이 진지한 얼굴로 몰입했다.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
‘궁금해.’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마자 무섭도록 집중하는 팬들.
그리고.
스윽-
그 속에서 관객들을 지켜보던 뉴블랙의 리더와 존 에드워즈 감독이 서로 주먹을 맞부딪혔다.
‘성공이군.’
‘성공이네요.’
두 남자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