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mpire Star RAW novel - Chapter (384)
# 384
뱀파이어 스타 384화
36장 암중모색(暗中摸索)(9)
샌프란시스코 돌로레스 성당 지하.
앉지도 못하고 그대로 선 채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질 드레는 마지막 곡이 자신과 관련 없음을 눈치채고는 그제야 비로소 라이네리오 수사가 마련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장시간 서 있어서 그런지 몸에서 뼈 맞추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무릎이야.”
이런 때보면 영락없이 힘 없는 노인네 같아 보이는 질 드레에게 감히 시선을 주지 못한 라이리오네가 고개를 숙였다.
주먹으로 무릎을 때리며 안마를 하는 질 드레가 TV를 고갯짓하며 말했다.
“저 녀석은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군.”
수사가 감히 질문하지 못하고 좀 더 고개를 숙이자 질 드레가 말했다.
“궁금해?”
“아닙니다.”
“궁금하잖아.”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럼 그냥 들어. 내가 말하고 싶어서.”
“……예.”
질 드레가 편안한 자세로 바꿔 앉으며 말했다.
“저 녀석이 돌아오라고 말하는 여인은 사실 인간이 아니야.”
수사 역시 현재는 인간이 아니다. 얼마 전이었다면 그저 농담으로 취급했겠지만, 세상의 이면에 숨은 또 다른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현재는 그의 말이 다르게 들려왔다.
“뱀파이어입니까?”
“아니, 돌고래야.”
“……돌…… 고래 말입니까?”
“그래, 바다에 사는 큰 물고기. 아, 포유류니까 물고기는 아닌가? 어쨌든 그녀는 강에 살았다고 했었지.”
“……그렇습니까?”
“듣기로는…… 1500만 년 전쯤이라고 하더군. 바다에 살던 회색빛의 평범한 돌고래들이 바다와 이어진 아마존 강을 넘나들며 살았다고 해. 그런데 갑자기 안데스 산맥이 솟아올라 바다가 강이 되어 버린 것이지. 현재의 아마존 강은 원래 바다로 이어져 있었는데 산맥에 가로막힌 그때부터 강이 된 것이야.”
수사가 가만히 질 드레의 말을 경청하자, 허리가 아픈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허리를 두들기는 질 드레가 말을 이었다.
“강에 살며 소금기가 빠진 물에서 생존을 해 그런 것인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돌고래들의 몸은 점점 분홍색이 되었다고 하더군. 원주민들은 그들을 신성한 존재로 생각해. 밤이 되면 인간 여성으로 변해 사랑을 찾는다고 하지.”
질 드레가 물 잔을 찾아 물을 부으며 말했다.
“몇 년 전이더라…… 기억이 잘 안 나는군. 어쨌든 수 저 녀석이 지 아비를 죽인 원수들을 처결한 후였어. 복수에 대해 환멸을 느낀 녀석이 아마존 밀림으로 가 숨어 살다가 그 돌고래와 사랑에 빠졌지. 7년가량을 함께 살았는데 돌고래 고기가 비싸게 팔리는 메기 낚시의 좋은 미끼라는 소문이 나는 바람에 영국 놈들이 돌고래를 죽여 메기 미끼로 쓴 거야. 그때 분노한 녀석이 영국인들을 싹 죽여 버렸어.”
수사가 말했다.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을 보았단 말입니까?”
“그런 셈이지. 사실 그게 아니지만.”
“예?”
질 드레가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야. 알 것 없네. 푸헐헐-”
고개를 갸웃하는 수사에게 더 알려줄 생각이 없다는 듯 손을 저어 대는 질 드레가 웃음기 있는 얼굴로 말했다.
“이건 최후의 순간에 내 구명줄이 되는 정보일지도 몰라서 말이야. 후후.”
* * *
이틀 후, 드림 워커 픽쳐스.
스필버그, 데이비드와 수가 마주 앉아 있었다. 데이비드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만족스럽게 말했다.
“이거야 원! 양파 같은 분이군요. 도무지 그 끝을 알 수 없어요. 생방송으로 연주를 보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예술 분야에 남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는 데이비드는 일반 시청자들과 다른 눈과 귀를 가지고 있었다.
수가 연주하는 피아노 연주가 단지 멋지고 능숙한 연주가 아니라, 작곡자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명연주임을 알아본 그는 침이 마르게 칭찬을 했다.
비서를 통해 뽑아 온 것인지 전문가들의 반응이 적힌 서류들을 뒤적인 데이비드가 격양된 어조로 말했다.
“한수, 그의 연주는 내 평생 지향하고자 했던 예술의 이상향이었다!! 줄리어드 음대의 교수가 공식 석상에서 한 말입니다. 평생 피아노를 곁에 두고 산 교수도 인정한 연주였다는 것이지요. 도대체 언제부터 피아노를 치신 겁니까? 서너 살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이 정도면 천재란 뜻인데. 왜 음대를 가지 않으시고 연기를 하시는지 의문까지 들더군요. 하하하.”
영화의 홍보 역시 폭발적이었다. 투박하고 직설적이기는 했지만 그래서 신선했다.
아직 크랭크인도 들어가지 않은 영화라 정보도 없지만, 실시간 검색어 1위는 이틀째 수의 신작 영화라는 단어였다.
크게 고무된 데이비드가 말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자 역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던 스필버그가 만류했다.
“하하, 기분 좋은 건 알겠지만 이제 그만 하지? 오늘 모인 이유는 그게 아니잖아. 수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온 것이네.”
데이비드가 손을 모으며 말했다.
“아아, 미안하네. 수 배우님. 미안합니다. 제가 너무 기쁘고 놀라워 그랬습니다. 자~ 배역 캐스팅 때문에 회의를 하는 것이었지요?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테이블 위에 서류 더미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영화에 대한 소문이 나며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는 서류가 산더미처럼 밀려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데이비드가 한 뭉치씩 나누어 수와 스필버그에게 건네주었다.
“나눠 검토해 보고 배역에 어울리는 역할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하죠. 일단 필수적인 역할인 잔 다르크부터 뽑겠습니다.”
스필버그는 서류를 볼 생각이 없는지, 혹은 이미 마음속에 둔 인물이 있는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수.”
서류를 읽으려던 수가 멈칫하며 스필버그를 보았다.
“예.”
“데보라 양은 요즘 뭘 합니까?”
“방학이라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니 아마 방학 때도 학교에 나올 겁니다. 연극영화과 학생들은 보통 브로드웨이의 연극 무대에서 작은 단역을 따내 공연을 하며 방학을 보내니 그녀도 아마 그럴 겁니다.”
“으음…….”
스필버그와 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데이비드가 물었다.
“데보라? 선택의 시간에서 제라드의 엄마 역할을 했던 그 여자 말이지?”
“음, 맞네.”
“연기 신선하더군. 처음 봤을 때는 예쁘장하기만 한 어린 배우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기본기도 좋고 연기도 괜찮았어. 그대로 잘만 크면 좋은 배우가 되겠더군. 자신감도 있고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 것 같고 말이야.”
데이비드 역시 호평을 하자, 스필버그가 수에게 물었다.
“지금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물끄러미 스필버그를 보던 수가 오랜만에 핸드폰을 꺼냈다.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한 수가 간단한 통화를 마치고 말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중 ‘몰몬의 책’이란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 확정되었답니다. 지금 연습을 하기 위해 극장에 있다고 합니다.”
스필버그가 벌떡 일어나 아우터를 챙겨 입으며 웃었다.
“자, 그럼 여배우 캐스팅하러 가봅시다.”
맨하탄 웨스트 44번가에 위치한 세인트 제임스 시어터(St James Theatre)
얼마 전 마법의 힘이라는 작품 공연을 마치고 휴식기에 접어든 극장이었지만 극장 안은 소란스러웠다.
바로 다음 상영될 작품의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대는 세트 공사 때문에 시끄러웠기에 연습실에서 대본을 보고 있던 데보라가 수의 전화를 받고 후다닥 로비로 나왔다.
인부들이 자재를 어깨에 짊어지고 이동을 하고 있는 터라 약간 시끄러운 로비에서 한 쪽 귀를 막은 데보라가 반갑게 외쳤다.
“이게 누구야!! 우리 스타님, 완전 유명해진 스타님 아니신가!!”
-어디지?
“응? 나 여기 세인트 제임스 시어터.”
-뭘 하고 있나?
“나 여기서 하는 몰몬의 책이라는 작품에 단역 지원했어. 커리어를 꾸준히 쌓아야지. 난 너처럼 유명하지 않잖아.”
-선택의 시간 정도면 커리어가 되었을 텐데?
“에이 그것만으로 부족하지. 조연이긴 해도 비중이 적었잖아.”
-알았다.
“잠깐!!! 끊으려고?”
-그래.
“그게 뭐야! 오랜만에 연락해 놓고 너무 한 거 아냐?”
뚝.
전화가 그냥 끊겨 버렸다. 서운한 표정이 얼굴 가득 떠오른 데보라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다시 전화해 볼까 생각했지만, 친구인 수는 무척 바쁘다는 것이 생각난 데보라는 애꿎은 바닥만 발로 찼다.
그때 데보라가 열고 나온 연습실 문이 열리며 인상을 쓴 여자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머리를 내밀었다.
“데보라. 연습 시간에 지금 뭐하는 짓이지?”
“아, 죄송합니다!”
“그깟 영화 하나에 운 좋게 출연했다고 네 인생이 꽃길이 될 것 같니? 차근차근 하나씩 밟고 올라가야지.”
“네, 맞는 말씀이세요.”
“쯧, 빨리 들어와.”
“네!!”
데보라는 언제나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고 또 밝고 아름다운 여성이었기에 누구에게나 인기가 있었다. 방금 쓴소리를 한 사람은 극단의 작가였다.
공연의 성공은 자신의 책임이었기에 데보라에게 쓴소리를 했지만, 그녀도 데보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어서 들어오라는 듯 문까지 열어 주었다.
자신 앞을 스쳐 가는 데보라의 등을 살짝 때린 그녀가 말했다.
“아직 학생이라도 이거 다 커리어에 남는 거야. 열심히 해.”
“헤헤, 네!! 제니퍼 작가님!”
데보라가 안으로 뛰어들어 가자 흐뭇한 얼굴로 그녀를 본 제니퍼가 문득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분명 별로 허기지지 않았는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허기가 몰려왔다.
“우움…… 햄버거라도 사 올까?”
잠시 고민했지만 혼자 먹긴 좀 그랬다. 연습실에서 땀 흘리며 연습하는 열다섯 명의 연기자 몫의 햄버거를 모두 살 돈이 없었던 그녀는 그냥 참기로 하고 연습실로 들어가 연기자들을 보았다.
대여섯 명은 서서 자신의 대사를 읊고 있었고, 벽에 기댄 몇 명은 대사를 외우고 있었다.
방금 들어간 데보라는 연습실을 오가며 자신의 동선을 파악해 보고 있었다.
대사가 몇 마디 없지만, 뮤지컬이란 한 명의 조연이 무대 전체를 망칠 수도 있기에 모두의 피와 땀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열심히 하는 데보라를 힐끔거리는 남자 배우들도 보였다. 아름다운 데다 요새 큰 화제가 되었던 선택의 시간에 출연했던 배우라 무척 관심이 가는 눈치였다.
그들을 보고 씩 웃은 제니퍼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자자, 잠깐 쉬었다 합시다! 모두 모이세요.”
마침 단장이 들려 간단한 간식거리를 주고 갔다. 배가 고픈 참에 잘 되었다고 생각한 제니퍼가 모두를 모아 빙 둘러 앉힌 후 간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작품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는 데보라가 만난 유명 감독과 연예인들 이야기로 흘러갔다.
남자 배우 하나가 물었다.
“저, 데보라 씨. 스필버그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요?”
데보라가 웃으며 겸양을 떨었다.
“전 단역이에요. 몇 신 안 나와서 감독님과 그리 오래 대화하지 못했어요.”
“무슨 말이에요? 마약에 중독된 신 말고도 다리가 잘려 휠체어 앉은 신도 있었잖아요. 그 외에도 회상 신에서 계속 나오던데요. 연기에 대해 조언을 해주셨을 텐데, 그런 명 감독이라면 어떤 조언을 했는지 궁금해서 그래요.”
“호호, 주로 수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와 논의 후 연기를 하면 대부분 감독님은 따로 조언하지 않으시고 오케이 사인을 주셨거든요.”
수의 이야기가 나오자 주위에서 오오 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수 배우랑 친해요?”
“네, 친하죠.”
“에이, 진짜요?”
“같은 학교에 다니는 걸요.”
“학교만 같다고 친한가요, 통화도 하고 그래요?”
“네, 방금 전에도 했어요.”
“오오!! 진짜요? 나중에 우리도 좀 소개해 줘요!”
“호호…… 근데 수가 너무 바빠서 그런 부탁을 하긴 좀…….”
배우들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또 누군가는 그리 친하지 않으면서 괜히 인맥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표정도 지었다.
하지만 데보라는 별다른 말 없이 웃으며 간식을 먹었다.
제니퍼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배우들을 째려보다가 연습실 문이 열리는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누구…… 헉!!”
간식을 먹던 배우들이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놓치며 난장판이 되었다.
“허억!!! 스, 스, 스필버그 감독이다!!!”
“수, 수, 수야!! 한수라고!!!”
“지, 진짜 친한 거였어??”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문을 보고 있던 데보라의 눈에 무표정한 수와 환하게 웃고 있는 스필버그가 들어왔다. 감히 말도 걸지 못하는 명 감독이 말했다.
“갑자기 찾아와 죄송합니다. 다음 영화의 여주인공을 만나러 왔습니다. 하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