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mpire Star RAW novel - Chapter (396)
# 396
뱀파이어 스타 396화
37장 함분축원(含憤蓄怨)(8)
드르륵.
대형 트레일러의 문이 열리며 시원한 웃음을 머금은 장호의 얼굴이 불쑥 들어왔다.
“데보라! 준비됐어? 이제 나가야 되는데.”
트레일러 속, 다섯 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둘러싸인 데보라가 마무리 메이크업을 받으며 말했다.
“어, 이제 다 했어.”
장호가 트레일러 속으로 들어오며 물었다.
“오늘 좀 힘들 거야. 광고 세 개를 동시에 찍어야 하니까.”
데보라가 부담된다는 얼굴로 한쪽에 둔 얇은 서류를 눈짓했다.
“대사는 다 외웠는데…… 휴, 내가 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이야? 자신감 넘치는 열정적인 데보라가!”
장호의 응원에 눈웃음을 지은 데보라가 메이크업을 완료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뜩이나 아름다운 얼굴이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의 손을 거치자 더욱 빛났다.
“고마워, 장호야.”
장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감사는 수 형님께 해.”
“수도 왔어?”
“응, 밖에 계셔.”
“수는 촬영 안 하잖아.”
“그냥 구경 오셨겠지, 뭐. 아직 촬영 안 들어가서 시간이 남으시니까.”
“나 때문에 일부러 온 거구나. 고맙네, 정말.”
“후후, 고마우면 잘하라고.”
“천화 전자의 TV 광고가 먼저였지? 그다음이 브랜드 이미지 광고고, 마지막이 무선 청소기. 맞지?”
“어, 광고는 미국을 메인 타겟 국가로 제작될 거야. 물론 전 세계로 방영되겠지만.”
“휴, 부담되네.”
스필버그의 요청으로 인해 수는 데보라의 인지도 작업을 지시했고, 홍소희는 천화그룹 마케팅실로 요청된 세 건의 광고 모델을 모조리 데보라에게 몰아 주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유명 배우보다는 일반인이나 알려지지 않은 모델들이 광고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대신 데보라는 수를 이어 두 번째로 천화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한 배우가 되었다.
대가 없이, 아니 오히려 모델료까지 받은 데보라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천화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게 유도한 것이었다.
그것을 아는 데보라는 장호와 수에게 무척 고마워했다.
“촬영 전에 수를 보고 갈 수 있을까?”
“어, 밖에 계셔. 그런데 통화 중이시던데.”
“기다리지 뭐.”
“그래, 나가자.”
장호가 데보라의 손을 잡아주며 트레일러 밖으로 나오자, 거대한 스튜디오에 세 개의 세트가 나누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세 개의 광고를 하루에 촬영해야 했기에 제작된 특별 스튜디오로 보였다. 세 개의 광고인 만큼 스태프들의 수도 백 명이 넘었다.
자재들을 나르는 스태프들이 아름다운 데보라의 모습을 보고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무명 배우라고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자 부끄러운 듯 볼이 붉어진 데보라는 장호의 뒤로 살짝 숨었다.
“다…… 날 보네.”
“하하, 여배우인데 남의 시선을 즐겨야지. 이제 넌 이런 세상 속에 살게 될 테니 익숙해지라고.”
“……수는 어디 있어?”
“저기.”
스튜디오 한쪽 구석에 있는 트레일러 앞,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세계적인 스타가 머무는 곳인 만큼 스태프들도 수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트레일러 앞에 놓인 간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수가 무표정하게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모여 있는 사람들은 데보라의 손을 잡은 장호를 보고 얼른 길을 열어주었고, 한국어를 모르는 데보라는 알아들을 수 없는 수의 말이 장호의 귀로 들려졌다.
“질 드레가? 음…… 그럼 일단 네 존재를 눈치채게 하는 것은 미뤄라. 아직 CDC가 백신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백신을 가지고 있다면 감염된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 그대로 두고 멀리서 추적해. 혹시 허튼짓을 하면 그때 가서 막는 것이 좋겠다.”
수가 다가오는 장호와 데보라를 곁눈질로 본 후 말했다.
“지속적으로 연락하도록.”
수가 전화를 끊자 기쁜 얼굴의 데보라가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 감히 접근도 못 할 분위기의 수에게 달려가 팔짱을 끼는 모습을 본 스태프들이 우우 소리를 냈다.
“수!! 진짜 고마워.”
앉아 있던 수가 팔짱을 살짝 뿌리치며 말했다.
“영화의 성공을 위해서다.”
“날 위한 건 조금도 없어?”
“…….”
“있잖아, 그렇지? 친구니까.”
“그래서 기쁘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좋겠지.”
“호호, 부끄러워하긴. 진짜 고마워. 넌 내 진짜 친구야.”
“바쁘지 않나? 가 봐라.”
“알았어, 네 얼굴 한번 보고 가면 힘이 날 것 같아서. 나 다녀올게!”
데보라가 손을 흔들며 첫 번째 촬영장으로 뛰어가는 것을 본 수가 조용히 말했다.
“내 진짜 친구가 되려면 너도 영생을 살아야 한다, 데보라.”
수의 작은 목소리를 들은 장호의 눈빛이 살짝 흐려졌다.
* * *
데보라의 인지도 작업은 훌륭하게 진행되었다. 천화그룹은 세 개의 광고를 일제히 공개했고 기존 마케팅 비용을 확대하여 광고 방영 횟수를 늘렸다.
그러자 SNS에서 서서히 그녀가 누구냐는 질문이 고개를 들었고, 인터넷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면 천화 엔터테인먼트 소속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홍소희는 한술 더 떠 천화 엔터테인먼트의 메인 화면을 반으로 나누어, 왼쪽에는 수의 사진을, 오른 쪽에는 데보라의 사진이 나오도록 바꾸었다. 대중들은 수에 비견될 여배우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들떴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에 관한 커뮤니티가 가장 활발한 레딧 사이트에서도 데보라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었다.
하이바라아이 11:12:39
이거, 이거…… 데보라의 소모임을 따로 만들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요새 올라오는 글 중 50%는 데보라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이 배우가 선택의 시간에서 수의 어머니 역할을 했던 그 배우 맞죠? 그때와 너무 다르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인 줄 몰랐어요. 같은 여자가 봐도 진짜 예쁘네요.
롤린 11:12:41
진짜 예쁘다!! TV 광고에서 하얀색 하늘거리는 드레스 입고 화면 속에서 세상으로 나오는 장면, 진짜 아름다웠어요! 나도 저 TV 사면 영화 속에서 수나 데보라가 진짜 밖으로 나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요? 당장 할부로라도 사야겠어요!
검은진이 11:13:10
무슨 TV가 120인치나…… 그래도 저 화질이 나온다는 건 천화의 기술력이 대단하다는 뜻이겠죠? 엄청 비싸겠다…… 나도 갖고 싶네. 청소기 광고에서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하는 착한 딸 역할도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밝고 명랑한 예쁜 대학생 이미지랄까요?
최애는영원히이루키 11:13:22
솔직히 말해 수와 어울리지는 않아요. 뭔가 신비롭고 우리와 다른 세상에 살 것 같은 무표정한 수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밝은 이미지네요.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인정합니다.
깐깡 11:13:31
시험 보고 결과를 마냥 기다리는 동안 멍 때리느라 힘들었는데 데보라 언니가 나와줘서 행복해요! 수 오빠랑 좋은 짝이 되시면 좋겠지만, 수 오빠는 여자한테 도무지 관심이 없다고 들어서 안타깝네요. 데보라 파이팅!
김정우 11:13:39
집에 저 정도 예쁜 누나 정도는 누구나 있지 않나요? ㅎㅎ 전 그것보다는 돈보다 공생을 추구한다는 기업 이미지 광고에서의 데보라가 더 좋았어요. 특히 면접을 보러 가던 데보라가 길가에서 쓰레기를 줍고, 노인이 길을 건너는 것을 도와주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가 면접관으로 들어와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짓는 모습은 소름 끼쳤어요.
蒼天 11:14:01
이제 우리는 남자인 수를 여신으로 받들어 모시던 행위를 그만두고 진짜 여신을 모셔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깃발은 제가 들 테니 저의 수자기 아래에 모여 주시오, 제군들!!!
배병창(텐도) 11:14:15
호우, 호우!!!
연이어 터지는 광고 때문에 다른 기업 광고주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그녀가 천화그룹 소속이긴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계열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경쟁 기업의 광고주들도 부담 없이 그녀의 광고 계약에 대해 문의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직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의 다음 영화 여주인공이라는 것은 데보라라는 배우가 성공이 보장된 신선한 마스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기에 그러한 현상은 가속화되었다.
수의 매니지먼트를 우선하는 장호는 점점 바빠지는 데보라 덕에 엔터테인먼트 계열사에 매니저를 모집해 데보라에게 배치해 주었고, 그녀는 서서히 미국의 광고요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 사이, 수의 영화는 크랭크인에 들어갔다.
스필버그는 이례적으로 질 드레의 아역에 칸을 캐스팅했고, 칸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덕분에 블라드는 촬영이 있는 날에 칸을 경호하기 위해 촬영장으로 오게 되었다.
수많은 카메라가 자신들이 맡은 각도의 화면을 조정하고 있었고, 오디오, 조명, 크레인 등의 감독과 기사들 수십 명이 모여 있는 야트막한 산.
중세 프랑스 귀족 아이의 복장을 한 칸이 카메라 테스트를 받은 후 바닥에 쪼그려 앉아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물론 블라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칸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칸은 혼자였다.
무슨 그림일지, 문자일지 모를 것을 바닥에 휘갈기고 있는 칸의 옆에 비슷한 또래의 귀여운 여자아이 하나가 곱슬거리는 긴 금발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다가왔다.
“저기…… 네가 칸이지?”
“응.”
칸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답했다. 여자아이는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억지로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난 아이린 레이 뉴먼(Irene Ray Newman)이야. 잔 다르크의 역할인 데보라의 아역을 맡았어. 아이린이라고 불러.”
그제야 칸이 바닥에 그림을 그리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볼이 붉은 여자아이는 무척 귀엽고 예뻤지만, 칸은 아무 느낌이 없는지 슬쩍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칸, 지금 성은 아미타브지만 곧 바뀔 예정.”
칸이 말문을 열자 아이린이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응, 칸이라고 불러도 돼?”
“응.”
아이린이 칸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말했다.
“너희 아빠가 진짜 수야?”
“응.”
“와, 부럽다! 나도 수 진짜 좋아하는데! 그럼 같이 살아?”
“응.”
“하아, 나도 수 같은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칸이 아이린을 보았다.
“넌 아빠 없어?”
“있지.”
“그럼 됐잖아.”
“음…… 그런 뜻은 아니고, 그냥…… 수를 너무 좋아하거든.”
아이린은 어렸지만 조숙했다. 미리 자신의 부모님과 매니저를 통해 칸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고 있었기에 스스로의 말실수를 즉시 알아차리고 화제를 돌렸다.
“뭘 그리고 있어?”
“그냥 낙서.”
“음…… 이 글들은 뭐야? 영어가 아니네?”
“어, 아냐.”
“그럼?”
“그냥 낙서야. 아무 뜻 없는…… 꿈에서 누가 알려준 거야.”
“무슨 뜻인지도 몰라? 그리고 꿈이라니? 꿈에 누가 나왔는데?”
“무서운 사람.”
아이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직 아이라 그런지 꿈에서 보는 무서운 사람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모양이었다.
팔을 문지른 아이린이 칸의 팔을 잡고 일으켰다.
“이런 거 기억하지 마. 우리 할머니가 꿈에서 본 건 바로 잊어야 한다고 그랬어. 엄마가 너랑 같이 먹으라고 간식을 싸 주셨어. 저쪽 가서 같이 먹자.”
아이린이 칸을 끌고 사라지자 그 자리에 블라드가 나타났다.
앵글을 확인하던 카메라 감독이 갑자기 나타난 블라드를 보고 뭐라 말하려 했지만 멀리 떨어져 있던 장호가 달려와 그들을 만류했다.
“아아, 관계자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일들 하세요, 일.”
스태프들을 돌려세운 장호가 심각한 눈으로 바닥을 보고 있는 블라드의 곁으로 왔다.
자신도 꽤 많은 나라의 언어를 알고 있지만 생판 처음 보는 상형문자를 본 장호가 물었다.
“블라드 형. 혹시 이 문자 알고 계세요?”
“음, 고대 이집트어다.”
“예? 칸이 고대 이집트어를 어떻게 알아요?”
“엿듣고 있었는데…… 꿈에서 봤다더군.”
“꿈…… 혹시 수 형님이 조심하라던…….”
“그래, 그런 것 같다.”
“무슨 뜻인지 아세요?”
블라드는 묵묵부답 답이 없이 바닥에 그려진 상형문자만 노려보고 있었다.
멀리 아이린과 함께 앉아 간식을 먹고 있는 칸에게 시선을 준 블라드가 서서히 칸의 경호를 위해 사라졌고 이동하기 전 발로 비벼 바닥에 그려진 문자를 지웠다.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블라드의 나직한 목소리가 아무도 모르게 울렸다.
사후세계 두아트로 가기 위한 최후의 재판이 다가올 것이다.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에 올려 정의와 지혜의 여신 마트의 깃털로 무게를 잰다
마트의 깃털보다 무거운 심장은 괴물 암무트가 먹어 버리고,
심장을 잃은 영혼은 사후세계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돈다.
만약 깃털과 심장의 무게가 일치하면 영혼은 다시 육체에 남아 부활할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