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mpire Star RAW novel - Chapter (424)
# 424
뱀파이어 스타 424화
[외전] 처용지검(處容處劍)(2)얼빠진 얼굴을 한 바토리가 돌문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성당 완공 연도와 전설로 전해지는 연도 사이가 천 년 가량이나 차이가 나는데…… 이게 무슨……?”
블라드가 처용지검을 수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너희들도 알지? 고대의 성당이 지어진 터는 모두 의미가 있다는 것.”
수도 살짝 놀랐는지 돌문 사이를 보며 말했다.
“전쟁이 있어 수많은 이가 죽었던 곳이나, 저주를 받았다 소문이 난 곳, 혹은 성자가 마지막을 맞이한 곳들이다.”
“그래, 저주를 받았다고 소문난 곳. 그곳에 이 성당이 지어졌지. 완공은 1872년이었지만 작은 성당이 들어선 것은 몇백 년도 전이라는 소문이고.”
“이곳의 기운을 막기 위해 성당을 세웠다는 뜻인가?”
“그렇지. 신라에 나타났던 처용은 아마도 유럽인이었던 것 같아. 역신을 막아낸 것은 처용 본인이 아니라 그 처용지검일 것이고. 신비한 검에 서린 기운이 역신을 몰아냈다고 보면 되겠지.”
“왜 그리 집요하게 조사를 했지?”
“야 인마. 네 아버지가 누구냐? 무려 한명회다. 그런 분이 그 오랜 시간 동안 숨겨둔 검이 달랑 질 드레 하나 죽이라고 남겨놓았다고 생각하는 거냐?”
수가 일리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열쇠라 생각한 이유는?”
“아, 그건 잠깐만…….”
블라드가 바지춤을 뒤져 쪽지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프랑스 국회 도서관에 있던 자료야. 읽어 봐.”
수가 쪽지를 받아 들자 바토리가 뛰어와 함께 보며 읽었다.
루이 1세 집권 시기인 814년 여름.
프랑스 리옹의 민간전설에 악마를 봉인할 수 있는 석실의 존재가 알려졌다.
알 수 없는 기운으로 인해 그곳에 사는 이들이 죽어갔고.
일곱의 사제를 거느린 신부가 그 땅 위에 성당을 세웠다.
네 개의 열쇠를 만들어 나누어 가진 사제들은
석실을 봉인 후 프랑스를 떠나 동방으로 가는 배를 탔다.
열쇠를 빼앗긴다 하더라도 석실의 위치를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사제들은
동방 어딘가에서 암초에 걸려 난파를 당했고,
인근 마을 사람에게 구함을 받게 되었다. 그때 동양의 왕이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가
사제들을 보게 되었고, 신부는 사제 중 하나를 왕에게 보내 그를 돕고
복음을 전파하도록 명했다.
그들은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나라에 사는 중 열쇠 네 개 중 두 개를 분실하게 되었다.
열쇠는 나무 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기록되어 있지만
그 실체나 석실의 존재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수와 바토리가 글을 모두 읽고 나자 블라드가 돌문을 밀며 말했다.
“처용가에 나오는 다리 네 개. 두 개는 나의 것인데 두 개는 누구의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은 네 개의 열쇠 중 두 개를 잃어버렸다는 뜻이었어. 그리고 네 아버지가 가진 나무 검은 남은 열쇠 중 하나였던 것이지.”
바토리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말했다.
“그냥 나무 검 모양이란 기록만 보고 어떻게 알았어?”
“그냥 추측이지, 뭐. 원래 역사란 그런 거야. 추측과 가설을 통한 증명. 오늘 우리는 그 검이 열쇠란 것을 증명해낸 것이지. 자, 이제 외계인의 흔적을 보러 갈까?”
“야!! 안에 뭐가 있을 줄 알고!!”
“걱정 마, 조사 결과 최소 삼백 년은 열리지 않은 것 같으니까.”
“삼백 년? 천 년이 아니고?”
“어, 비밀리에 석실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제들이 저주받은 것으로 보이거나, 두려운 것들을 보관했을 것으로 추측되니까, 중간에 몇 번 열렸을 거라 생각해.”
“무, 무서운데…….”
“네가 제일 무섭거든? 내가 아는 존재 중에 맘 너보다 무서운 건 없으니 안심해.”
히죽거리는 블라드가 먼저 문을 밀고 들어가자, 머뭇거리던 바토리가 수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 소, 손 좀 잡아줘.”
무표정한 수가 물었다.
“너도 무서운 것이 있는가?”
“무섭지! 악마가 있으면 어떡해?”
“악마를 이까짓 돌문으로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아, 아닌가? 그, 그럼 뭘까?”
“미신이겠지. 저주받았다고 생각하는 물건 같은 것을 보관했을 가능성이 크다.”
“외계인은 아니겠지?”
수가 한숨을 쉬었다.
“너도 블라드를 닮아가는군.”
“지, 진짜 외계인이 있으면 어떡해?”
“하아…….”
수가 바토리의 팔짱을 끼고 돌문 안으로 들어가자 우두커니 서 있는 블라드의 우람한 상체가 보였다. 그의 등 뒤에 숨은 바토리가 고개를 살짝 내밀며 말했다.
“뭐, 뭐야? 뭐가 있는데?”
차마 앞을 보지 못하고 있는 바토리 대신 내부를 둘러본 수가 말했다.
“시신들이군.”
“시신?”
시체 정도로 바토리를 무섭게 할 수 없었다. 안심한 그녀가 고개를 내밀자 여러 구의 시신들이 보였고, 그들은 만지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이 바싹 말라 있었다.
시신들이 누워 있는 작은 구멍들 앞에 글자가 쓰여 있었다.
“마리…… 앙투아네트? 이 아줌마 왕비 아냐?”
“루이 16세의 왕비. 단두대에서 처형된 왕비이다.”
“그럼…… 이 아줌마가 되살아나 저주를 내릴까 두려워 시신을 여기 숨겨두었다는 뜻인가?”
“아마도.”
블라드는 시신밖에 없는 석실에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툭 떨군 블라드가 중얼거렸다.
“외계인이 아니었어…….”
실망한 블라드는 아랑곳하지 않은 바토리는 시신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본 역사 속 인물들이었다.
“샤를 앙리 상송(Charles-Henri Sanson)? 이건 누구야?”
넋을 잃고 있는 블라드 대신 수가 말했다.
“루이 16세 시절, 프랑스의 사형 집행 가문이었다. 상송은 소리가 없다는 뜻으로 죄인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뜻의 이름이지.”
“사형 집행인? 조선의 망나니 같은 거?”
“비슷하다.”
“그런데 이 사람 시신은 왜 여기 있지?”
“그는 혁명 후 만 칠 천명의 사형을 집행했다.”
바토리의 입이 떡 벌어졌다.
“만…… 칠 천명을 죽였다고?”
“음. 그렇게 많은 인간을 죽인 이이니, 죽어서 악마가 될 것을 두려워한 사제들이 시신을 거두었겠지.”
“뱀파이어들보다 더 많은 인간을 죽였네. 하여간 인간이 제일 무섭다니까.”
고개를 숙인 블라드를 제외하고 바토리와 수는 여기저기를 다니며 시신들을 보았다.
이름을 아는 이도 있었고 모르는 이도 있었던 바토리는 약 십 여분 만에 지겨워졌는지 툴툴거렸다.
“뭐야, 시체밖에 없는데 이따위 걸 보자고 프랑스까지 불러?”
고개 숙인 블라드가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모르긴 해도 지금쯤 수와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피식 웃은 바토리가 한쪽 구석에서 우두커니 서서 시신 한 구를 보고 있는 수를 보았다. 그의 앞에 불에 탄 시신 하나가 손을 뒤로 묶인 채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다른 시신들과는 달리 화형을 당해 죽은 것으로 보이는 시신 앞에 서 있는 수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수? 뭐해?”
바토리가 수의 곁으로 다가와 시신 옆에 쓰인 글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Jeanne d’Arc
바토리가 숨을 들이켜며 외쳤다.
“자, 잔 다르크!!!”
풀 죽어 있던 블라드도 놀라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득달같이 뛰어온 블라드가 시신 옆 이름을 확인하는 동안 잘게 떨리는 몸으로 멍하게 잔 다르크를 내려다보는 수가 조용히 말했다.
“질 드레…… 당신이 그토록 찾던 사람이…… 여기 있었구나.”
바토리와 블라드 역시 놀람을 멈추고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수를 통해 질 드레의 마지막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전투를 해 이긴 후 죽였다면 속이 시원했겠지만 생의 마지막에 자신을 잔에게 돌려보내 달라는 말과 함께 조용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두 사람은 더 이상 질 드레에게 변태 영감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조용히 묵념을 한 후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고요한 석실 속에 수의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시신을 옮긴다.”
어디로 옮긴다는 말도 하지 않았지만 블라드와 바토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며칠 후 데스 밸리.
태양이 떠오르는 새벽, 골짜기 사이에 외롭게 서 있는 비석 옆에 또 하나의 비석이 세워졌다.
혹시 누군가 파낼까 걱정한 수는 비석에 이름을 남기지 않고, 단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신의 딸’이라는 글만 새겨 넣었다.
새벽에 묘를 만들고 석양이 질 때까지 묘 앞에 서서 우두커니 무덤을 바라본 수는 묘에 다가가 질 드레의 비석을 툭툭 치며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찾았다.”
비석이 답을 할 리 없지만 수는 마치 대화하듯 말을 이어갔다.
“내게 보뚜를 돌려준 보답은 한 것 같군. 부디 그곳에서는 꼭 다시 만나라.”
천천히 일어난 수가 저물어 가는 태양을 보았다. 푸른 콧수염의 노인이 빙긋 웃고 있는 모습이 환영처럼 펼쳐졌다. 상념에 잠긴 수의 귀로 블라드의 고함이 들려왔다.
“질 드레!! 나한테도 외계인의 흔적 같은 걸 알려주고 죽었어야지! 몇백 년이나 널 쫓아다닌 건 난데, 왜 수한테만 좋은 정보를 알려주고 간 거야, 이 망할 영감탱이야!”
서서히 가라앉는 붉은 태양 속 질 드레의 얼굴이 블라드에게도 보이는 듯, 그는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처음부터 그런 이유라고 말했으면! 그렇게 미워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이 망할 영감!!”
수의 상념을 깨뜨리는 블라드의 고함에 입을 막으려 했던 바토리가 손을 멈췄다. 눈시울이 붉어진 블라드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그때는 꼭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평범한 여인을 만나 사랑하고, 그렇게 죽어! 그때 내가 널 알아보면…… 알아보면…….”
블라드의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슬쩍 손을 들어 고인 눈물을 닦아 낸 블라드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술…… 술 한잔하자…….”
블라드의 말을 들은 바토리가 붉은 태양을 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곳에 질 드레가 있을 거라 생각한 바토리가 나직하게 말했다.
“잘 가, 거기선 사랑에 아파하지 않길.”
오랜 시간 적으로 살아온 두 존재의 말을 들은 수가 품 안에서 울리는 진동을 느끼고 전화기를 들었다.
“그래, 장호야.”
-형, 데스 밸리에요?
“그래, 블라드와 바토리를 대동하고 왔다.”
-아마존에 가시기 전에 뉴욕에 좀 들려주세요.
“무슨 일 있느냐?”
-그게…… 이걸 뭐라고 해야 할는지…….
“무슨 일이지?”
-아, 그게…… 저희 쪽 복지 재단 아시죠? 천화 아동복지요.
“그래, 알고 있다.”
-거기서 연락이 왔는데 이번에 복지기금으로 기부된 금액 중에 거액이 들어왔다는 보고에요.
“그런데? 그건 좋은 일 아니더냐?”
-형님 무려 9억 달러에요. 한화로 1조가 넘는 거액이에요.
“1조? 누가 그런 돈을 기부한단 말이냐?”
-그게…… 지, 질 드레에요.
“……뭐?”
-아동 복지에 써 달라며 기부한 돈의 기부자 성명이 질 드레예요, 보낸 것은 3년 전 예약 이체로 걸어두었다고 하고요, 형님.
“…….”
-전부 달러로 들어와서 소희 지사장님이랑 할아버지까지 모두 달려오셨어요. 처리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알았다. 곧 가마.”
전화를 끊은 수가 한숨을 쉬며 땅에 반쯤 걸려 있는 태양을 보았다.
“속죄를 하는 것인가, 질 드레…….”
고개를 숙인 블라드와 바토리의 가운데 선 수가 묵직한 목소리로 태양을 향해 말했다.
狂奔疊石吼重巒
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人語難分咫尺間
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키 어려워라.
常恐是非聲到耳
늘 시비(是非)하는 소리 귀에 들릴세라,
故敎流水盡籠山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러버렸다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