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mpire Star RAW novel - Chapter (52)
# 52
뱀파이어 스타 052화
6장 위위구조(囲魏救趙)(12)
유우가 아무리 일찍 데뷔했다지만 어린 나이 때문에 제대로 된 사랑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좋아하는 마음을 노련하고 능숙하게 숨기기에는 너무 어렸던 것이다.
유우가 머뭇거리자 진영이 윙크를 하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유우가 당황하고 있을 때, 수가 말했다.
“날이 쌀쌀합니다. 안으로 가서 기다리지요.”
“네, 네? 아! 그, 그래요!”
수가 앞장서 걸어가자 유우가 다시 자기 일을 하는 진영을 돌아보았다. 일하던 진영이 유우를 보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얼굴이 붉게 물든 유우가 허리를 숙여 보인 후 수를 따라 뛰어들어 갔다. 주민센터로 들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진영이 혼자 씨익 웃었다.
신발장 앞에 수의 신발이 놓여 있는 것을 본 유우가 급히 운동화를 벗어 던지고 갈색 미닫이문을 열자, 아무도 없는 빈 공간에 TV와 큰 소파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수의 모습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중 기둥에 가려진 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수를 발견했다.
“오빠? 거기 뭐 있어요?”
수에게서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총총걸음으로 수에게로 다가간 유우의 눈에 기둥 뒤에 숨겨진 물건 하나가 보였다.
그것은 갈색 콘솔 피아노였다. 고급 피아노는 아닌지 조금 낡아 보이는 사각형의 작은 콘솔 피아노는 누군가 가끔 연주하는지 먼지가 앉아 있지는 않았다.
“피아노네요? 이런 곳에도 피아노 연주하는 사람이 있구나.”
유우는 본업이 가수였기에 악기에 익숙했다. 물론 자신의 전공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어쿠스틱 기타였지만 음악의 기본기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운 것이 피아노였기에 거리감이 없는 듯했다.
유우가 아무렇지 않게 건반 덮개를 들어 올리자 건반의 빨간색 보호 천이 보였다.
어릴 적 생각이 났는지 배시시 웃은 유우가 빨간 천을 들어 목에 감으며 웃었다.
“어릴 때요. 아빠가 이게 목도리라고 하는 바람에 추우면 항상 이걸 목도리 삼아 밖에 나갔었어요. 엄청 따뜻했는데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해서 울고불고 한 적도 있어요, 우후훗.”
유우가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작은 발을 서스테인(Sustain)에 올리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는 유우의 손에서 서정적이고 느린 곡이 연주되었다.
여덟 마디가량의 연주를 마칠 무렵, 유우의 입술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그 네 살 무렵이었나 봐.
노래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한없이 더운 여름의 햇살 속에서인지.
엄마와 물놀이를 했던 그 강에서인지…….
어떻게 인지 또 언제 왔는지도 모르겠어.
아니야, 그건 음악 소리가 아니었어,
목소리도, 침묵도 아니었어.
눈부신 하늘의 별 나뭇가지에서.
생소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불쑥 얼굴 없는 노래가 그렇게.
나를 툭 건드리곤 그대로 사라져 버렸어.
유우의 목소리는 특색 있었다. 순수해 보이는 얼굴, 약간 허스키했지만 고운 목소리를 타고난 것 같았다. 물론 무던한 연습으로 인해 완성된 목소리였겠지만, 타고난 재능이 빛나는 듯했다.
또 그녀가 부른 노래는 데뷔 초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직접 작사, 작곡을 했기에 그 음악적인 재능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원래 노래 중 일 절만 불렀는지, 아주 짧은 노래를 마친 유우가 수를 돌아보았다.
기둥 옆에 서서 우두커니 피아노를 바라보고 있는 수가 보이자, 유우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수는 그저 아무 표정 없이 피아노를 보고 있었다.
유우가 슬쩍 일어나 수에게 말했다.
“피아노. 칠 줄 아세요?”
수가 유우를 돌아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연주해 보실래요?”
수가 다시 피아노로 고개를 돌렸다. 무엇 때문인지 잠시 머뭇거리는 것 같았던 수가 직사각형의 피아노 의자 위에 앉자, 유우가 피아노 상판에 팔을 기대며 말했다.
“외우고 있는 곡이 없으시면 악보 검색해 줄까요?”
유우가 알고 있는 수는 일반 학생이었다가 배우가 된 지 얼마 안 되는 이였다.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실력은 일천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도움을 주려 했다.
그런 유우를 힐끔 본 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우두커니 앉아 건반을 내려다보던 수가 하얀 건반 위에 긴 손가락을 올렸다.
곧 아주 작고 부드러운 연주가 시작되자, 유우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Moonlight Sonata)? 초보자가 아니었어? 저 곡 뒤로 가면 어려울 텐데…….’
보통 피아노 협주곡은 1악장이 빠르고 경쾌하며, 2악장이 느린 구조였지만 이 곡은 달랐다. 1악장이 느린 아다지오로 구성된 특이한 곡이었다.
의구심 가득한 얼굴로 수의 옆모습을 보던 유우가 어느 순간 눈을 감았다.
그의 연주에는 느리고, 유연하고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그 깊은 슬픔은 절규하고 고함치는 슬픔이 아니었다.
내면 깊숙이 흐르는 깊은 고통, 금방이라도 생을 포기하고 싶은 느낌이 선율을 타고 전해졌다.
유우는 마음으로 전해져 오는 깊은 슬픔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럴 수가!! 이 곡을 이런 느낌으로 연주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분명 수의 연주는 매우 느렸다. 피아노 중급자가 연주한다 해도 며칠의 연습 기간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연주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가 분출하고 있는 감정의 파도는 쉬이 따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유우의 피아노 선생도 이런 느낌으로 피아노를 연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1악장이 끝났다.
2악장은 다시 경쾌해지는 대목이었다. 미리 이 곡을 알고 있던 유우는 가슴에 손을 모으고 자신의 감정을 이토록 밑바닥까지 끌어내린 연주가 경쾌함을 알리며 상쾌하게 바뀌는 것을 기대했지만, 수는 건반에서 손을 내렸다.
연주가 끝났지만, 가만히 건반을 내려다보고 있는 수였다.
유우가 그런 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피아노를 꽤 오래 치셨나 봐요?”
수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저 피아노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유우가 적막감을 이기지 못해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갑자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와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
“멋지다!!!”
유우의 고개가 휙 돌려졌다. 주민센터 입구의 좁은 문에 수많은 스태프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맨 앞에, 낚시 가방을 메고 들어오다 수의 연주를 듣고 움직임을 멈추었던 자이언트 닷이 그제야 신발을 벗으며 웃었다.
“와아! 수 장난 아닌데?”
자이언트 닷의 소리가 들려오자 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형님.”
자이언트 닷이 낚시 가방을 내려놓으며 수의 어깨를 잡았다.
“넌 너무 예의가 발라.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 나한테는. 다른 형님들한테나 그렇게 하고.”
“예, 형님.”
“언제 왔어?”
“얼마 안 되었습니다.”
“그래? 유우 씨도 일찍 왔네요?”
“네, 오빠. 잘 지내셨어요?”
“덕분에요. 수랑 유우 씨가 나온 덕에 이 프로그램이 엄청 이슈가 되어서 그런지 출연 요청이 더 많아졌어요. 음악방송보다 예능이 더 많다는 건 좀 안습이지만. 후훗. 어딜 가나 연규 형님이 잡은 물고기 이야기 좀 해달라는 말만 나오기도 하고요.”
자이언트 닷이 수의 손을 잡고 소파로 이끌었다.
문 앞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 PD가 진영에게 물었다.
“진영아, 안에 거치 카메라 돌아가고 있었지?”
진영이 혀를 살짝 빼물고 웃었다.
“당연하죠. 오디오까지 확실히 잡혔어요.”
“크큭, 좋아! 이거 내보낸다. 편집 확실히 하자고!”
방송쟁이들에게 좋은 그림을 얻었다는 것보다 기쁜 것은 없었다.
본격적인 낚시 시작 전 오프닝에 내보낼 환상적인 그림을 따낸 스태프들이 웃으며 각자의 일을 하기 위해 흩어지자, 대화 장면을 촬영할 카메라 VJ 둘만이 방에 남았다.
리얼 예능이었기에 출연자들이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도 모두 촬영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자이언트 닷이 소파에 앉아서도 수의 어깨를 잡은 채 말했다.
“이번 촬영도 잘 부탁한다.”
“제가 부탁드려야죠, 형님.”
“하하, 그래. 나도 열심히 할게. 그런데 수야.”
“네, 형님.”
자이언트 닷이 수만 데려가고 자신은 데려가지 않자 자기 발로 소파로 온 유우가 수의 옆쪽에 앉는 순간, 자닷의 말이 들려왔다.
“너 무슨 운동했냐?”
지난번 촬영 때 한 손으로 자신을 멈춰 세워버린 수의 힘에 대해 나름 고민했던 자이언트 닷이었다. 그는 카메라가 도는 와중에 솔직한 말을 했다.
“지난번 촬영 때 너 힘 느끼고 나 진짜 놀랐어. 무슨 운동한 거야? 헬스? 나도 어릴 때부터 운동하고 자랐는데 말이야. 힘으로 날 누른 사람은 네가 처음인 것 같아.”
촬영을 하던 VJ들의 눈이 커지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자이언트 닷은 키가 작았지만 88㎏이 넘는 몸무게를 가진 근육 덩어리였다. 팔뚝이 너무 굵어 ‘나만 믿고 따라와’ 완장이 감기지 않아 특수 제작을 해야 할 만큼 대단한 몸을 가진 그가 수에게 힘으로 밀렸다는 말은 그들에게 무척 놀라운 것이었다.
VJ 중 조금 더 나이 많은 쪽 남자가 속삭였다.
“가서 장 PD님께 전해. 그리고 지난 회 촬영분 중에 그런 장면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네, 선배님.”
그들을 잡고 있던 카메라 한 대가 사라지고, 한 대만 남았다.
그때 놀란 유우가 물었다.
“힘으로 자닷 오빠가 밀렸다고요? 언제요, 그런 거 못 봤는데?”
자닷이 어색하게 웃었다. 당시 연규가 자신의 캐릭터를 위해 카메라를 막아서고 얼버무렸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슬쩍 수의 눈치를 본 자닷이 말했다.
“아니, 뭐 언제라고는 말 못 하겠고. 하여간 무슨 운동했어, 수야?”
수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중국에서 무예를 수련했었습니다.”
“헉? 중국에서?”
뉴질랜드 국적을 가진 자이언트 닷은 중국 무예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신비감을 가지고 있었다.
“우와! 중국 무예라니! 언제? 너 독일에서 살았던 것 아니야?”
“어릴 때는 중국에서 산 적도 있습니다.”
“오, 그래? 무슨 무술인데? 소림사? 대림사?”
“굳이 말하자면 형의권(形意拳)에 가깝지만, 사실 잡다한 무술이었습니다. 군인들이 익히는 것이었죠.”
“오오!! 군인이라니! 그 특공무술 같은 살인 기술 말이야?”
“비슷합니다.”
“멋지다! 나도 알려줘!”
“기회가 된다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크하하! 좋아! 아싸, 무술 배운다!”
운동광이었던 자이언트 닷은 수가 무술을 알려준다고 하자 크게 기뻐했지만, 그런 그와 달리 운동에는 관심이 없었던 유우의 관심사는 피아노에 있었다.
“저기 오빠. 좀 전에 연주하신 거요. 월광 소나타. 그거…… 그렇게 연주하는 사람 처음 봐서 그런데, 왜 그렇게 슬프게 연주하셨어요?”
자이언트 닷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맞장구를 쳤다.
“맞아, 밤에 들으면 아름다운 곡이라서 마음의 평정심이 필요할 때 나도 가끔 듣는데, 그렇게 슬프게 연주되는 건 처음 들어본 것 같다, 나도. 뭔가 달빛에 비친 수면이 아름답게 빛나는…… 뭐 그런 이미지였는데 말이야. 이름도 월광 소나타잖아. 문 라이트!”
두 사람이 동시에 설명을 요구하자 수가 고개를 저었다.
“월광(Moonlight)라는 것은 이 곡을 만든 베토벤이 직접 지은 곡명이 아닙니다. 비평가 루트비히 렐슈타프가 이 곡의 1악장을 듣고 ‘루체른 호반의 달빛 비치는 물결에 흔들거리는 조각배 같다’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던지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베토벤이 이 곡에 붙인 이름은 그저 ‘환상곡 풍의 소나타’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곡은 달빛에 비친 수면의 아름다움을 그린 곡이 아니라,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지극한 슬픔을 표현한 곡이기도 하고요.”
유우가 입을 떡 벌렸다. 마치 클래식 방송의 해설을 듣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지금 궁금한 것은 어떻게 수가 이러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던 월광 소나타와 수가 말한 월광 소나타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래요? 어떤 여자였는데요, 오빠?”
“‘줄리에타 귀차르디’라는 여성이었습니다. 베토벤의 제자였지요. 베토벤의 작품에서 여러 번 언급된 ‘영원한 여인’의 정체가 이 여성이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유우가 로멘틱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모았다.
“와아, 그래서요? 두 사람은 이루어졌어요?”
수가 말없이 주민센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을 보았다.
‘줄리에타는 일생을 바쳐 사랑할 만한 여자가 아니었지. 그렇지 않나 친구? 이제는 알게 되었겠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