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satile herald genius RAW novel - Chapter 12
12화 현장 학습 (2)
답을 내기 위한 방법은 한 가지 뿐이었다.
이제까지 나온 대답 중에서 틀린 것을 모두 제외하고서 남은 숫자 안에서 생각해 보는 것.
이제까지 나오지 않은 숫자 중 한 가지를 선택한다.
그럼 남는 것은 1862년 아니면 1863년.
즉 반반의 확률이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정답입니다!”
“가연 예고 여러분. 오늘은 저희 미술관 인상주의 전시회에 방문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건 퀴즈를 맞춘 학생에게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가이드 누나로부터 키홀더 2개를 받았다.
거기에다 발표 가산점 6점을 벌었다.
“민준이 너 되게 열심히 하더라. 잘했어.”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씨익 웃는 윤정 쌤.
그녀가 나를 보는 시선은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전에는 그냥 그림도 못 그리면서 운 좋게 들어온 학생 정도로 취급했는데.
“저번 과제 점수도 그렇고 이번 학기는 확실히 성적 많이 오르겠는데?”
“당연히 그래야죠. 내년에는 장학금을 받고 싶거든요.”
가연 예고의 학비는 거의 대학교 학비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다만 삼명 드림 장학이란 전액 장학 제도가 있어서 성적이 우수하며, 가연 예고의 명성을 드높일 만한 실적을 거둔 학생에게 수여됐다. 1학년 중에서는 오직 3명밖에 받지 못 한 것이 전액 장학이었고 박철환도 그 한 명이었다.
“성적에는 영 관심 없는 줄 알았더니. 너 철 들었네. 부모님이 어지간히 좋아하시겠어. 이번 학기 이대로 쭉 잘해 봐.”
윤정 쌤한테 응원을 받게 되다니 감개무량한 기분이다.
예전에는 이런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뭐야······ 그건?”
키홀더를 들고 돌아온 나를 보고 묻는 준희.
녀석은 그림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동안 뭔 일이 있었는지도 전혀 몰랐던 듯했다.
“퀴즈 대회 경품으로 받았어.”
“응? 뭔 퀴즈 대회? 그건 그렇고 다음 주 콘티 다 짜 놓으니까 너무 기분 좋다!”
이 녀석은 웹툰 콘티 짜고 있었던 건가.
공부보다는 역시 웹툰이 우선인 듯 하다.
뭐 일러스트 일을 하고 있는 내가 뭐라고 할 말은 아니지만.
수업은 끝이 나고 학생들은 하나 둘 돌아가거나 박물관 안을 더 구경하고 있다.
출결 담당인 박철환은 학생들에게 다시 한 번 출석 체크를 받고 있었다.
좀 더 있을 사람은 남고······ 갈 사람은 출결 체크하고 가도 좋다는 것.
윤정 쌤은 이미 LTE급의 속도로 집으로 돌아가셨고.
그래서 철환이 혼자 출결 체크를 받으러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야말로 반장의 귀감이라고 할 만 했다.
* * *
출결 체크가 끝나고 철환이 돌아온 후 이것으로 우리 조 4명이 모두 모였다.
아직 시간은 12시도 되지 않아 여유가 있었다.
“애들 거진 다 간 거 같은데 우리 조는 어떻게 하지?”
의견은 둘로 갈렸다. 다른 전시회도 좀 보고 가자는 쪽과 그냥 집에 가자는 쪽으로.
전자는 모범생인 예린과 철환이었고 후자는 준희였다.
준희야 뭐 보고서 성적이야 어떻게 되도 상관이 없다는 주의였으니까. 애당초 얘는 실기 성적이 원체 좋아서 필기가 별로여도 반에서 중간은 간다.
나도 더 보고 가기를 원했다. 1학기 성적은 30명 중 24등 밖에 안 됐기에 이번 학기는 성적을 좀 올리고 싶다. 장학금이라는 것도 받아보고 싶고.
“인상주의 전시회만 보고 간 애들이 많으니까······. 다른 전시실도 보고 나서 보고서에 넣는 게 확실히 나을 거 같은데?”
“다른 전시실도? 쓸 데 없이 시간만 잡아먹는 거 아냐?”
“오늘 현장 학습 보고서는 딱히 인상주의 전시회에 대해서만 쓰라는 게 아니었으니까. 남들보다 플러스알파를 한다고 그게 득이 되면 됐지. 손해가 되진 않겠지.”
“하긴. 예린이 말이 맞네.”
예린의 말에 모두들 수긍하고 있었다. 솔직히 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예린이 말하면 뭔가 설득력이 있어 보이긴 했다.
“그렇게 정해졌으면 이제 어디로 갈까?”
현대 미술관에는 총 6개의 전시실이 있었다.
오늘 관람했던 ‘인상주의의 태동 ~ 마네부터 르누아르까지’외에도
전시 중인 작품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올해의 작가상 수상작 전시회’
‘해외 작가전: 빌리 헤링. 에로스에 관하여’
‘근대 미술의 재발견’
‘사진의 문법’
‘한국현대미술 작가전: 유다희 작가의 어둠과 영혼’
전부 다 보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둘로 나누어 돌아다니기로 했다.
예린과 준희 그리고 철환과 나 이렇게 두 팀으로.
우리는 각각 세 곳의 전시실을 돌면서 보고서를 다 채울 만큼의 충분한 자료를 모으고 나서야 다시 모였다.
예린은 수첩에 빼곡히 적혀 있는 메모를 넘겨보고 있었다. 남들보다 훨씬 많은 감상을 적어 놨다.
‘참 열심히 사네.’
내가 재벌가 3세라면 훨씬 여유롭게 살 것 같은데 말이다.
뭐 나랑은 완전히 다른 가정환경에서 살아왔을 거다. 삼명 가문의 일원으로서 항상 1등을 해야 한다는 식의 교육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조각계의 유망주라 불리는 박철환도 어디 기사에서 보니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버지한테 조각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 * *
미술관 안에서 볼 것은 다 봤다.
이제는 보고서 내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곳 현대 미술관 안에는 레스토랑 라운지가 있었다.
거기서 밥을 먹고 근처 카페에서 보고서를 정리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준희로부터 다른 제안이 나왔다.
“예린아, 너희 별장 가서 하는 건 어때?
“흠······ 그럴까?”
고개를 끄덕이는 예린.
별장? 아무래도 이 과천 근처에 삼명 가문의 별장이 있다는 듯 했다.
SAM MYEONG이라고 새겨져 있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기 시작하는 예린.
“저예요. 지금 그쪽으로 갈 건데 점심 준비 좀 해 주시겠어요? 네. 저 포함해서 4명이요. 20분 안에는 도착할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예린의 집에 가 볼 기회가 생길 줄은 전혀 생각지 못 하고 있었다.
본가가 아니라 별장이기는 하지만······.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건질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예린을 따라서 미술관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정장을 입은 훤칠한 남자가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저는 예린 아가씨의 수행 기사인 이정준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건 놀라웠다.
뭔 드라마도 아니고 아가씨라는 말을 쓰는 사람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그럼 저를 따라오시죠.”
예의 바르게 우리를 안내하는 정준.
체격도 그렇지만 기럭지가 상당하다.
184센티인 박철환보다도 키가 살짝 크지 않을까 싶을 정도. 내 키가 174센티라서 고1 평균은 충분히 넘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부럽다.
딸깍.
우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뒷 차석 문을 열어 주는 수행 기사 정준.
기분 탓일 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벤츠는 뭔가가 달랐다.
연식 10년 넘은 우리 집 구형 엘렌트라에서 나던 쾌쾌한 냄새와 다른 후레쉬한 향이 기분 좋게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승차감이 몹시 좋고 좌석 시트도 소파에라도 누운 마냥 푹신푹신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벤츠는 주차장을 매끄럽게 빠져나와 근처에 있을 예린네 별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별장이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 속에는 기대가 부풀기 시작했다.
저 별장에 재능 흡수 가능한 물건이 있을 지 어떨지는 확실히는 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왠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