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satile herald genius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승승장구 (2)
* * *
만화 대상 시상식에는 소년 점핑의 편집자들도 와 있었다.
내 담당 편집자인 우에스기가 와서 우리에게 인사했다.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도쿄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분들은…….”
“이쪽은 저희 어시스턴트 분들입니다. 이쪽은 아시겠지만 그림을 맡아 주신 강민학 작가님이시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렇게 직접 뵙는 것은 처음이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강민학 작가는 일본 생활을 몇 년 동안 한 적이 있었기에 일본어가 유창했다.
다른 멤버들은 내가 통역을 해 주어야 했지만.
시상식 시작이 다가와 가면서 점점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다.
그중에는 기자들도 많이 와 있었다. 물론 작가들을 인터뷰하기 위함이었다.
곧이어 사회자인 듯한 남성이 한 명 단상 위에 나왔고,
수상 작품이 하나하나씩 발표되기 시작했다.
“올해 3위는 월간 굿모닝에 연재 중인 옐로 피리어드입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미대에 가기로 결심하면서 노력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심도 있고 감동적으로 그려 낸 작품으로…….”
작품의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작가에게 상이 수여 되었다.
단상 앞으로 나온 작가가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수상 소감을 얘기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투피스나 귀살의 칼날 같은 모두가 알 만한 대작은 없었다.
시상 가능 기준이 되는 것은 단행본 발매 8권 이하라는 제약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많은 작품이 최근에 유명세를 타고 있는 쟁쟁한 작품들이었다.
곧이어 2위가 발표되었고 남은 것은 이제 1위뿐이었다.
히어로 학교의 순위도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
“민준아, 이거 이러다 우리 작품이 1등을 타는 건 아니냐?”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확신은 할 수 없었다.
대중성에 있어서는 오늘 후보로 거론된 모든 작품과 비교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만화 쪽 고인물들이 평가하는 것이니 만큼 작품성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그리고 대망의 대상 작품을 발표하고자 합니다. 작년 한 해에 있어 우리 일본 만화 대상 심사위원이 뽑은 작년 한 해 최고의 작품은 바로…… 히어로 학교입니다!”
곧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우리 팀 식구들은 물론 소년 점핑과 슌에이샤의 직원도 악수를 건네왔다.
잔뜩 와 있는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눈이 부실 만큼 터지고 있었다.
나는 박수 소리를 받으면서 강민학 작가와 함께 단상 위로 올라갔다.
마이크 앞에 서니 플래시가 또 한 번 터지고 있었다.
요미우미, 아사비 등 유력 매스컴에서 온 수많은 일본인 기자들, 개중에는 한국 매스컴에서 취재를 온 이들도 꽤나 있었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천천히 입을 뗐다.
혹시 대상을 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는데 막상 타게 되니 얼떨떨하다고 할까.
감격에 겨워 잠시 말을 잇지 못 했다. 이거 진짜 뭔 얘기를 해야 되지?
일단 3초 정도 잠시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제일 먼저 대상을 주신 데 감사 드립니다. 또한 저를 도와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세심하고 꼼꼼하게 히어로 학교의 세계를 완벽하게 표현해 주었던 배경 담당의 미나 누나. 소수 정예로 시작한 팀이라 할 일이 많았음에도 한결 같은 성실함으로 열일을 해주었던 상민 형. 그리고 이번 작품의 파트너로서 나 이상으로 열정적으로 임해 주었던 민학 형.
이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히어로 학교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수상 소감에 그들에 대한 감사를 담았다.
* * *
이어 강민학 작가의 수상 소감 발표까지 끝나고 우리는 단상에서 내려왔다.
다시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이윽고 수상 작가들과의 기념사진 촬영과 함께 시상식도 끝이 났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물론 기자들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김민준 씨, 잠깐 말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본 만화 대상을 수상한 첫 한국인으로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기자들의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개중에는 영어로 질문을 던져오는 기자도 있었다.
“미국 마벨 코믹스 최연소 연재에, 일본에서는 만화 대상을 수상하셨는데요. 당신에게 있어 다음 목표는 무엇입니까?”
한국어, 일본어, 영어까지 3개 국어로 질문이 날아오고 있었다.
벌써부터 정신이 없다.
“죄송한데 한 분씩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 한 마디도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한 번씩 말해야 했다.
“요미우미의 다나카라고 합니다. 매년 만화 대상 수상 작품은 실사 영화화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히어로 학교의 실사 영화화에 대해서 원작자로서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어……. 그것 말입니다만.”
일본 영화사에 실사 영화를 맡기기는 좀…….
이게 진심이었지만 일본까지 와서 괜히 자극할 필요는 없다.
“제 작품을 실사 영화화해 주신다면 물론 영광입니다만……. 괜찮은 기술력과 노하우가 있는 제작사라면 모두 환영입니다. 굳이 일본이 아니라 해외도 염두에 두고 있기는 합니다.”
“그렇다면…… 역시 할리우드인가요?”
“그거야 확실히는 말씀 드릴 수 없고, 그렇게 될 지도 모르죠.”
기자들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했다.
기레기 기레기 말이 많아도 뭐 먹고 살려고 하시는 분들이니.
인터뷰가 모두 끝났을 때는 거의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 * *
한미일 뿐만 아니라 영국 등 유럽 외신까지 내 만화 대상 수상에 대해 보도했다.
폐쇄적인 일본 출판 만화 업계에서 외국인이 대상을 수상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많은 매체에서 관심 있게 다루고 있었다.
[영화, 드라마, K-POP에 이어 만화 업계까지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한 한류]따지고 보면 일본 출판 만화 업계에서 초대박을 친 건 내 작품뿐이었지만, 저런 식으로나마 언급이 늘어나고 있는 건 확실히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인지도를 타면서 만화 단행본은 전 세계에서 미친 듯이 팔려 나가고 있었고, 할리우드 영화화에 관련한 컨택까지 왔다. 아직 영화화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해 결정은 보류하고 있었긴 하지만.
브리튼즈 갓 스타 관련한 일도 마무리 되니 학교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일과 학업 양쪽으로 열중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봄,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찾아왔다.
가연 예고를 졸업하는 날도 점점 가까워 오고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김준희나 박철환 같이 미래의 목표가 확고한 몇 명을 빼고는 모두 미대 입시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 반 담임인 김윤정 선생님도 학교에 남아 방과 후 수업을 지도하고는 했다.
“이 부분은 질감 표현이 아직 덜 됐네. 그 부분만 보강하면 괜찮을 거 같은데?”
1, 2학년 때만 해도 인정사정 없는 비평으로 유명했던 윤정 쌤.
미대 입시 시즌에 들어와서는 심하게 비평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끝이야. 다들 과제 열심히 해 오고……. 아. 맞다. 진로 설문 조사 안 낸 애들은 오늘 안에 제출하고.”
진로 설문 조사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 잊고 있었다.
나는 간단히 내용을 적은 후에 교무실에 가서 제출했다.
“윤정 쌤, 여기 진로 설문이요.”
“응. 땡큐. 어디 보자…… 민준이 딱 너 답네.”
내가 적은 것을 훑어보더니 씨익 미소 짓는 윤정 쌤.
설문지에는 1순위부터 3순위까지 동일한 내용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1순위: 세계적인 크리에이터
2순위: 세계적인 크리에이터
3순위: 세계적인 크리에이터
“다른 학생이었다면 몰라도 네가 쓴 거라서 뭔 소리를 못 하겠네. 민준이 너는 이미 훌륭한 크리에이터니까.”
나는 굳이 미대 같은 곳에 진학할 계획이 없었다.
고졸로도 충분히 능력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대학교 이름 같은 것을 적는 대신 늘 새로운 것, 감동적인 것을 창조하여 세상에 내놓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크리에이터라는 말을 적었다.
윤정 쌤은 책장에 꽂혀 있는 책 하나를 꺼내 들어 보여 주었다.
책 표지에는 히어로 학교라는 제목이 크게 쓰여 있었다.
“내가 만화책 같은 건 원래 안 읽거든? 하지만 제자가 쓴 거라고 하니까 사서 안 볼 수가 없더라.”
“어땠어요? 재미있던가요?”
“응. 이런 소년 만화는 읽은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말이지. 뭐. 그거야 아무튼 세월이 참 빠르네. 여름 방학도 지나고 이제 몇 달만 더 있으면 졸업 아닌가?”
“그렇네요.”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정신없이 달렸기 때문일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신 차려 보니 마치 화살이 날아가듯 시간이 흘러 있었다.
“누가 예상했겠어. 가연 예고 개교 이래 가장 성공한 사람이 바로 너일 줄이야.”
부정하지는 않았다. 졸업 후 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이가 여러 있기는 했지만, 나처럼 다방면에서 성공한 이는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교장 선생님이 졸업생 대표 연설을 너한테 부탁하고 싶다니 어쩌니 하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 물론 아직은 이른 얘기이기도 하지만.”
“졸업생 대표 연설이요?”
“네. 솔직히 너 말고 부탁할 만한 애가 없다고 생각해.”
가장 성공한, 그리고 앞으로 더 성공할 졸업생으로 여겨지는 건 사실이었다.
졸업생 대표 연설이라…… 나는 흔쾌히 그녀의 얘기에 승낙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교무실 밖을 나왔을 때였다.
나는 익숙한 얼굴의 여학생과 마주쳤다.
“김민준 너도 아직 진로 설문 제출 안 했었어?”
“응. 강예린, 그럼 혹시 너도?”
“응. 뭐. 그렇긴 한데. 나도 설문 내고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줄래?”
설문을 제출하고 나온 예린.
그녀와 오랜만에 카페에 앉아 얘기를 하게 되었다.
* * *
“김민준, 너 배짱이 장난 아니구나.”
나는 내가 진로 설문지에 적은 내용을 알려 주니,
예린은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렇게 적었는데 윤정 쌤이 아무 말도 안 했어?”
“응. 그냥 나 답다고 하고 아무 말 안 하더라고. 강예린, 너는 어떻게 적었는데?”
“나야 뭐…… 진짜 별거 없는데”“나만 알려 주는 건 좀 불공평하지 않나?”
“응. 알았어. 알려 주면 되잖아”
나는 회귀 전의 삶에서의 강예린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예린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미국 명문 대학의 경영학과를 졸업한다.
그리고 MBA 과정까지 밟고 나서 삼명 백화점에서 후계자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비 효과라는 것이 있을지 모르니 무언가 변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굳이 그녀에게 물어 본 것이다.
“미국 유학을 가기로 했어.”
“그렇구나. 어느 쪽으로 알아보고 있는데?”
“되도록이면 날씨 좋은 서부 쪽을 알아보고 있어. 캘리포니아 대학교(UCLA),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USC), 스탠포드 대학교 정도이려나…….”
그녀가 입시를 준비하는 대학교는 모두 이름난 명문대로,
미국 서부에서 모두 다섯 손가락 안에는 꼽히는 곳뿐이었다.
“전공은 경영학부 쪽으로 생각 중이야. 미술은 고등학생 때까지만 하기로 할아버지와 약속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가려는 대학교는 전공에 상관없이 미술이나 연극 등 자유롭게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은근 기대하고 있어.”
“아예 혼자 가는 거야?”
“뭐 그렇긴 하지. 숙모가 LA에서 사업을 하고 있기도 해서 같이 지내면서 일도 도와드리고 할 예정이야.”
“역시 너네 집안사람들 중엔 사업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뭐. 그렇기는 하지. 할 의지만 있으면 할아버지는 얼마든지 사업 자금 정도는 지원해 주시는 편이니까.”
역시 재벌집 클라쓰다.
가족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수억쯤이야 그냥 지원해 주는 건가.
“미국으로 가게 되면 좀 쓸쓸해지기는 하겠네. 준희나 철환이는 한국에 남을 테고 말이야.”
“준희는 당연히 웹툰 작가를 계속하겠지?”
“그렇지. 곧 완결이라 신작 준비하느라 바쁘다고 하더라고.”
아직도 금요 웹툰 중에서 내 작품과 함께 1, 2위를 다투고 있었다.
그 녀석도 따지고 보면 대단한 아이인 건 사실이다. 매일 머리를 쥐어짜면서 한 작품으로 3년 넘게 연재하고 있으니, 직접 웹툰 연재를 해 본 입장에서 이것도 보통 재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철환이는?”
“확실히는 얘기 안 했는데 조각에 관련된 쪽으로 간다고 하더라.”
조각이라고 확실히 얘기는 안 한 것을 봐서 피규어 쪽인 모양이다.
확실히 센스에다 열정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프로로 활동하기 시작한다면, 머지않아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제작자가 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 가능했다.
누군가 한 명 잊고 있던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엘레나는?”
“졸업하고 나면 1년 갭 이어를 두고 연극 쪽으로 더 공부해 보고 싶은 모양이야”
갭 이어(gap year)는 바로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1년 간 진로 탐색의 시간을 갖는 일종의 안식년을 말했다. 취업에 있어 나이 제한이 빡빡하지 않은 미국 같은 곳에서 이런 갭 이어를 갖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다 연극에 맞다 싶으면 계속하거나 아니면 진학을 하던 알아서 결정하겠지. 민준이 너는? 앞으로도 한국에 남아 있는 거지?”
“아니. 사실 나도 졸업하고 나면 미국 생활을 좀 해 볼 생각이라서.”
아이언맨의 차기작 작업에 히어로 학교의 실사화 작품을 계획하고 있었다.
할리우드라는 내로라하는 상업 예술인이 모이는 큰 무대에서 내 재능을 펼쳐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럼 민준이 너도 미국에서…….”
“같은 LA라고 하면 가까우니까 가끔 볼 수는 있겠네.”
“그렇구나……. 잘됐네!”
예린이 환한 미소를 짓는 것은 오랜만에 보았다.
우리는 한동안 미국에 가게 되면 할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디즈니랜드에서부터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방문 등등…
* * *
겨울이 지나고 2월에 있을 졸업식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윤정 쌤이 얘기했던 졸업생 대표 연설 날도 바로 다음 주로 다가왔다.
나는 슬슬 연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사회에 나갈 혹은 캠퍼스 생활을 시작할 학생들.
그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연설을 하고 싶었다.
여러 번 수정을 거친 후 연설문을 완성해 냈다.
졸업식 당일에 나는 강연할 내용을 준비해서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
교장 선생님의 길고 긴 연설이 끝나고,
사회자를 맡은 음악반의 윤종범 선생님이 굵직한 목소리로 나를 소개했다.
“졸업생 대표의 연설이 있겠습니다. 졸업생 여러분들은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준비한 연설문을 들고 단상에 올랐다.
수백 명의 학생, 교사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려 있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서 마이크를 천천히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