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satile herald genius RAW novel - Chapter 34
34화 재벌가의 영애 (1)
* * *
“꺄아아악!”
비명 소리가 가까워진다.
나는 놀이 공원에 따라 온 것을 후회했다.
내 눈 앞에 우뚝 서 있는 놀이 기구.
자이로스윙. 아틀란티스와 더불어 무섭기로 이름 난 놀이기구.
자이로드롭이 내 눈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와. 진짜 재밌겠다.”
나와는 반대로 완전히 신이 난 듯한 준희.
자이로드롭을 타자는 건 물론 준희의 제안이었다.
녀석은 스릴 있는 놀이 기구를 좋아했다.
이 녀석과는 여러모로 상극이라서 놀랍지도 않았다.
“김민준 너 얼굴이 완전 새파란대? 혹시······ 무서운 거 잘 못 타?”
히죽대면서 나를 놀리고 있는 녀석.
안 무서운 척 고개를 저었지만······.
사실 머릿속으로는 초등학생 때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 이곳에 가족과 온 적이 있었다.
누나 희연에 이끌려 자이로드롭을 억지로 타고 난 후,
울고 말았던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제일 꼭대기가 아파트 25층 높이라네. 거기서 시속 94킬로미터로 3초 만에 낙하한다는데?”
휴대폰을 뒤적거리면서 알고 싶지도 않은 정보를 줄줄 읊어 대는 준희.
아파트 25층에서 떨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건가.
그건 별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데.
가슴이 섬뜩 섬뜩했지만 굳게 참았다.
따지고 보면 얘들보다 10년은 더 살았는데,
고작 놀이기구 때문에 겁먹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는 않······.
“으아아아아!”
내 비명 소리가 석촌 호수 하늘에 울려 퍼진다.
* * *
준희는 자이로드롭에서 내리고서는 나를 놀려 댔다.
“너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더니 위에서는 엄청 비명 지르던데?”
“그랬나? 다들 비명 지르길래 따라 질렀을 뿐인데.”
“허세 부리긴. 너 무서워서 눈 질끈 감고 있는 거 다 봤어.”
젠장. 들켰나 보다.
‘그나저나······.’
조금 의외였던 점이 있었다.
바로 철환이 비명 한 번 안 지르고 잘 타던 점.
왠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론 이런 거 엄청 무서워할 거 같았는데······.
“이런 거 타는 데도 다 노하우가 있어.”
“노하우?”
“타면서 나 자신의 마음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거지. 내가 무서워하고 있구나라는 객관적 사실을, 제3자의 시선에서 지그시 바라보는 거야.”
박철환, 이 녀석.
뭔가 깨달음을 얻은 스님처럼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 친구 분 중에 스님이 계셨거든. 어릴 적부터 그분한테 명상을 배웠어. 잡념을 버리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말이야. 그분 가르침에 따라 아침마다 명상하니 어떤 일에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게 되더라. 공부할 때도 집중력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고······.”
생각해 보니 박철환의 전교 등수가 강예린 바로 다음이었지.
미술이나 조각도 잘하지만 학업 성적도 상당히 뛰어난 녀석이다.
윤정 쌤한테 혹사를 당해도 매번 평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것도 그 덕분인가.
명상······ 나중에 한번 알아봐야지.
“얘들아, 우리 다음엔 저거 타자.”
준희의 손가락 끝에는 자이로스윙이 있었다.
확실히 자이로드롭보다는 나아 보인다······.
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아니. 이건······ 대체 몇 번을 떨어지는 거야?
자이로드롭은 한 번만 견디면 되지만······.
이건 대여섯 번은 넘게 떨어지는 것 같다.
‘이럴 때는······!’
나는 철환이 알려 준 방법을 사용했다.
무서워하는 내 마음을 제3자의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으아아아!”
별로 효과는 없는 듯했다.
* * *
“다음에는 뭐 탈까?”
우리는 다른 놀이 기구를 찾아서 로테월드 실내로 이동했다.
실내 쪽에도 탈 만한 놀이기구는 꽤 많았다.
‘휴······.’
자연스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3대장(아틀란티스, 자이로드롭, 자이로스윙)에 비해서 훨씬 얌전해 보였기에.
아무리 나라도 바이킹이나 후룸라이드 정도라면 무난하게 탈 수 있다.
그런데 배가 고프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오후 7시다.
“배고픈데 우리 일단 저녁이나 먹을까?”
“그럴까? 근데 뭐 먹지?”
의견이 분분했다. 중식을 먹자는 애도 있고.
양식을 먹자는 애도 있고······.
“여기 뷔페 레스토랑 있는 거 같던데. 고르기 힘들면 거기로 갈까?”
예린의 제안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근처 뷔페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여기구만.”
“자리도 꽤 널찍하고 괜찮네!”
입구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살펴봤다.
평일 런치: 24,900
평일 디너: 29,900
주말, 공휴일: 34,900
평일 디너니까 3만 원인가······.
고등학생이 한 끼 해결하기에 싼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도 부담스러워 하는 애는 없다.
하긴 돈 많은 애들이니······ 그깟 3만 원이 대수랴.
“종류 꽤 많네. 뭐부터 담을까? 후훗.”
유명 뷔페 체인이라 그런지 음식 종류는 상당히 다양했다.
일식, 중식, 양식, 한식, 디저트까지 모두 충실하다.
우리는 각자 레스토랑 안을 돌면서 음식을 그릇에 담았다.
“잘 먹겠습니다.”
준희. 철환. 예린 세 명은 각기 좋아하는 음식도 다른 듯했다.
김준희는 고기면 뭐든 좋다! 는 느낌이라고 할까. 닭강정에 탕수육, 립스테이크 등이 수북이 올라온 그릇을 만족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면에 박철환의 경우 고기보다는 과일이나 샐러드를 많이 담아 왔다.
강예린의 경우는 피자와 파스타, 빵, 과일 등 서구식 스타일이었다.
뷔페가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네 싶을 정도로 취향이 제각각이었다.
“음······ 맛도 괜찮네.”
큼지막한 닭강정이 준희의 입 안에 하나씩 들어간다.
그리는 것도 빠른 앤데 먹는 것도 빠르다.
빨리빨리가 거의 생활화되어 있는 듯했다. 저러면 더 살찔 텐데.
“튀김에다 고기만 봐도 칼로리 장난 아닐 거 같은데. 살찌고 후회하는 거 아니냐?”
“아니. 난 살 안 찌는 체질이라서 괜찮아.”
그 말은 사실인 듯했다.
저렇게 먹고도 체형을 보면 좀 마른 편이니······.
그건 부럽네.
허기를 채우고 나서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뷔페라서 좀 무리했는지 움직이기가 너무 귀찮다.
소파에 몸을 눕히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준희와 예린이 수다를 떠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는 얘기가 일반 고등학생들이랑은 확실히 다르네.’
여느 여고생들처럼 BGS(방공소년단) 같은 아이돌 그룹이나 좋아하는 드라마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예린이 너 이번 연휴 때 어디 갔다 온다고 했었더라?”
“응. 파리 오르세 미술관. 이번에 피카소 특별전을 한다고 해서.”
파리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를 주말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괜히 재벌 가문의 영애가 아니다.
‘파리라······.’
언젠간 나도 갈 기회가 있을까.
파리엔 유명한 예술가가 많아 재능 흡수의 찬스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나저나 나만 파리에 가고 싶은 게 아닌 듯했다.
예린의 얘기에 준희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던 것이다.
“부럽다. 나도 프랑스 갔다 오고 싶어.”
“너도 갔다 오면 되잖아? 돈도 있으면서······.”
“웹툰 연재해야 되서 바빠. 지금 하는 것도 콘티 아이디어 안 떠올라 힘든데. 거기에 새 일감까지 맡게 됐거든.”
“새 일감? 신작이라도 쓰고 있어?”
“브랜드 웹툰 제의가 왔어.”
호오······ 브랜드 웹툰이라?
브랜드 웹툰이라면 기업 같은 곳에서 제품 홍보를 위해 의뢰하는 웹툰이다.
유명 작가쯤 되면 한 회당 거의 8백만 원 이상은 받는다고 들었다.
이야······ 부럽네. 회당 8백 만 원.
일반 고등학생이면 이런 얘기에 눈이 휘둥그레지겠지만.
박철환은 얘기를 들으면서 묵묵히 디저트를 먹고 있었다.
놀라워하지도, 별로 부러워하지도 않는 듯했다.
‘하긴 얘도 겁나 잘 살긴 하지······.’
청담동에 있는 고급 주택가에 산다고 얼핏 들었다.
게다가 세계적인 조각가의 아들이기도 하니 돈에 부족함은 없겠지.
작품 하나가 수억에 팔린다고 할 정도니까.
“김민준, 너는 요즘 뭐 해?”
응? 갑자기 화제가 나한테 돌아왔다.
나에게 질문을 던진 것은 강예린이었다.
“나?”
“그래. 너도 학교 공부만 하는 건 아닐 거 아냐.”
그렇긴 하지.
학교 공부를 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부업을 빡세게 뛰고 있다.
학교에서 아는 녀석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냥······ 집에서 일러스트 같은 거 그리고 있어.”
“그래? 역시 너도 집에서 연습은 하는구나. 실력이 괜히 금방 느는 게 아니었어.”
뭔가 납득이 간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예린.
도쿄에 걸린 내 일러스트를 보게 되면 무슨 얼굴을 할까.
뭐······ 아직 보름은 넘게 남았으니까.
이 녀석들이 놀라워하는 그 순간이 기대됐다.
* * *
예린과 준희의 수다는 그 후로도 30분이나 계속 됐다.
이번에는 강남의 브런치 카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나로서는 전혀 관심 없는 주제였다.
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간단히 일을 마치고 손을 씻고 있으려니 만감이 교차한다.
서로 말을 걸 일도 없었던 저 재능러 삼총사.
마냥 부러워하기만 했던 쟤네들이랑 같이 놀고 있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손을 씻고 화장실을 나오려 할 때였다.
머리를 손질하고 있는 키 큰 남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180이 넘는 큰 키에 새하얀 얼굴. 날선 콧날.
녀석은 다름 아닌 이주노였다.
“이주노. 너 여기서 뭐 하고 있냐?”
녀석이 서서히 돌아본다.
별로 놀라는 얼굴도 아니다. 설마 몰래 따라온 건 아닐 테고. 친구랑 같이 온 건가?
아니 이 녀석 친구가 있긴 한가? 보면 거의 혼자 다니던데······.
“너야말로 여기서 뭐 하고 있냐?”
“반 애들이랑 놀러 왔지. 너는?”
“나는 놀러왔다기보다는 일종의 창작 활동을 하러 왔다고 해야 되나······.”
“······창작 활동? 그건 뭔 신박한 헛소리냐.”
“신선한 자극을 통해 작곡을 위한 영감을 얻으러 온 거다.”
응? 이 자식. 작곡도 했었나?
“남의 곡을 그대로 연주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 감성이 담긴 아름다운 곡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 많은 음악 영재가 거쳐 가는 길이지.”
와······ 얘 자기를 스스로 음악 영재라고 불렀다.
천재라고 안 한 것만으로도 그나마 나은 건가?
“그래. 좋은 영감 얻고 가라. 그럼······ 난 이만.”
“잠깐······ 할 말 있는데.”
“뭔데?”
“너 왜 자꾸 내 연락 씹냐?”
아하. 그러고 보니 그동안 얘한테 왔던 전화를 몇 번 씹었었다.
한······ 6번 정도?
그야 이 중2병에 나르시시즘 심한 녀석이랑 별로 얽히고 싶지 않았으니까.
얘랑 비교하면 준희가 선녀로 보일 정도였다.
“미안하게 됐다.”
“알았으면 됐어. 용서해 줄 테니까 방과 후에 나랑 피아노나 한 판······.”
피아노 한 판이라니······.
무슨 PC방에서 스타나 한 판 하자는 말투로 얘기하네?
“서로 한 소절 씩 연주하면서 음색이 어떻게 다른지 서로 비교하면 재밌을 거 같은데.”
“재미있을 리가 있겠냐.”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치면서 왜 피아노 치는 건 안 좋아하는 거냐?”
피아노가 문제가 아닌데······.
“뭐 정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근데 너 종범 쌤이 전과 권유도 했다고 하던데.”
“맞아. 내년부터 음악과로 전과하면 어떻겠냐 하시더라.”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는데?”
“지금은 그럴 생각 없다고 말씀드렸지. 나는 미술 쪽이 더 좋으니까.“
주노는 무척 아쉬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긴 하지. 아무튼 연락은 씹지 마라.”
기승전 연락 씹지 마라인가.
어쨌든 자꾸 피아노 치자 조르지만 않으면 연락 정도야 괜찮긴 하겠지.
휴······ 한숨을 쉬고 나서 화장실을 나왔을 때였다.
“김민준. 너······.”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준희와 마주쳤다.
아무래도 나와 주노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디부터 듣고 있었지?
“너······ 주노랑 무슨 사이야?”
“무슨 사이냐니. 별 사이 아닌데?”
“그럼 주노가 왜 너한테 연락을 하는데?”
주노는 주변과는 거리를 두고 혼자 다니는 걸 좋아했다.
고독한 늑대 같은 녀석이다. 그래서 나랑 연락한다는 것이 놀랍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이상한 오해를 할 거 같아서 다 설명해 줬다.
“아. 그런 거였어? 난 또······.”
응? 왜 얼굴을 붉히는 건데······?
“근데 주노 연락처 받았다는 거 너무 부럽다······.”
“너도 달라고 그러지 왜.”
“그런 짓 했다간 어떻게 되는지 너도 알잖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예전에 학생 식당에서 주노한테 친한 척 들이댔다가 험한 꼴 당했던 여학생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연락처 좀 알려 주면 안 돼?”
“그건 왜? 뭐 하려고?”
“딱히 이상한 거 하려는 건 아니고.”
목소리가 심히 들떠 있는 걸 보면 알려 줬다가 큰일 날 거 같다.
아무리 주노 녀석이 싫다곤 하지만 나에게도 양심이라는 게 있긴 하다.
“연락처 좀 살짝만 알려 줘.”
“그냥 포기해라.”
“이상한 짓 안 한다니깐!”
어쭈? 준희 녀석이 내 팔을 붙잡았다.
내 손에서 핸드폰을 뺏어서 억지로라도 전화번호를 알아낼 속셈인 듯.
찰거머리처럼 자꾸 붙는 녀석을 겨우 떼어내고 있는데······.
“너희들 여기서 뭐 해?”
고개를 드니 강예린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