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satile herald genius RAW novel - Chapter 54
54화 압도적 재능 (3)
* * *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에 앞서 먼저 아이디어 노트를 체크해 보았다.
노트에는 그동안 틈틈이 생각해 둔 등장인물 설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주인공: 김강준
나이: 28
직업: 취업 준비생
이력: 한국에서는 매번 공채에 떨어지는 3년차 백수였지만, 이세계에 와 자신의 마법 재능을 깨닫게 됨. 이세계인으로 천민 취급을 받다가 어느 대마법사의 눈에 들어 지도를 받으며 최강의 마법사로 성장해감.
여동생 김아리.
나이: 22
직업: 대학생(체대)
이력: 젊은 나이에 국가 대표 펜싱 선수로 발탁될 정도의 펜싱 유망주. 이세계에 떨어져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다가 탈출. 남장을 한 채 용병으로서 활약하게 됨. 검술에 두각을 드러내는 동시에 마법의 재능도 있어 마검사로서 대륙에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함.
아버지 김현수
나이: 56
직업: 서울대 기계공학과 교수
특징: 공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총과 전화기 등 현대 문물을 재현해 냄. 그를 통해 아르제스 공작에게 신임을 얻고 그의 도움으로 가족 탐색을 시작함.
어머니 김연자
나이: 52
직업: 현직 요리 연구가 겸 아파트 부녀 회장
특징: 뛰어난 요리 솜씨를 바탕으로 로만 왕국의 궁정 요리사로 발탁됨. 왕비의 도움을 얻어 가족을 되찾을 방법을 모색함.
4명의 가족이 저마다의 능력을 이용하여 여러 영지에서 성장해 가고 막바지에 가서는 가족들과 재회하고, 나중에는 4명의 활약으로 제국의 침략을 막아내고 대륙의 평화를 지켜내 이세계 유력 가문이 된다는 스토리였다.
재회까지가 1부, 평화를 위해 싸우는 부분이 2부. 이렇게 2부 구성으로 돼있었다. 생각보다 방대한 분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필요 없는 내용은 쳐 내고 나서 만화 시나리오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시나리오는 소설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소설보다는 내면 묘사가 적고 행동이나 대사 같은 외적인 묘사를 더 중요시한다는 것과, 좀 더 정형화된 형식이 있다는 점이 달랐다.
시나리오는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은 식으로 작성한다.
S x1 주인공 가족의 아파트(아침)
인서트 – 아파트의 외관
김강준의 방.
강준이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
시계는 이미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강준의 어머니 김연자가 들어온다.
강준의 등짝에 그녀의 스매쉬가 작렬한다.
김연자: 잠이 오냐? 아직도 잠이 와?
김강준: (인상을 찌푸리며) 뭐야. 엄마. 갑자기 왜 때려?
김연자: (벽시계를 가리키며) 시간 좀 봐라. 백수면 부지런하기라도 해야지. 얼른 일어나서 점심 먹어!
(후략)
그리고 이런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먼저 써 두어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트리트먼트를 쓰는 것.
트리트먼트는 시놉시스, 즉 전체적인 줄거리를 세부적으로 구체화한 것이었다. 우선 이것부터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트리트먼트의 최소 분량은 A4 기준 30쪽.
글자 수로 치면 6만 자나 되는 양.
예전 같으면 언제 다 써······ 하는 식으로 그저 막막했을 텐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국 만화 거장 이영산 옹의 발상력과, 문학의 귀재였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표현력. 이 두 분의 재능이 내 안에서 시너지를 내고 있는 것일까?
장면과 전개가 머릿속에서 계속 샘솟듯 뿜어져 나왔다.
나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구상이 모니터 안에서 문장으로 변모해 갔다.
한 치의 망설임도 끼어들지 않은 상태에서 초고를 계속 써 나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날은 밝아 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정확히 오후 10시부터였으니······
8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와······ 이걸 내가 다 쓴 거야?’
프로그램에 표시된 현재 페이지를 확인했다.
30쪽 중 절반인 15쪽이 완성돼 있었다.
글자 수로 치면 무려 3만 자 분량이었다.
* * *
나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마저 투자해서 30쪽 짜리 초고를 완성시켰다.
그리곤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았다.
‘흠······.’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내 머릿속에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기분이다.
여전히 부족한 점이 눈에 띄고 있는 것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퇴고를 거듭하여 작품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었다.
원고를 읽으면서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지를 전부 메모해 놓았다. 그다음 일주일 동안은 원고를 학교에 들고 다니면서 더 나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전부 메모해 놓았다.
최고의 전개와 연출을 위해서 여섯 번이 넘게 수정한 부분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트리트먼트를 완성시킨 후에 그것을 전부 40쪽 짜리 시나리오로 옮겨 적는 작업을 거쳤다.
2주에 가까운 시간을 들여 완성한 시나리오.
다시 읽어 보니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상당한 수준의 시나리오가 완성돼 있었다.
이제껏 이만한 수준의 중세 판타지 웹툰은 없었을 거라 자부할 정도로······.
만화/게임 시나리오 공모전에 제출할 서류를 다시 한 번 체크해 보았다.
작품 제목, 작품 소개, 시놉시스, 등장인물 소개, 트리트먼트, 본 시나리오 원고······.
‘준비는 다 됐네.’
나는 제출 서류를 전부 이메일에 첨부하여 송신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한 달 후에 발표될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 * *
금요일 1교시 수업 시작 전.
어제는 저녁 늦게 원고 마무리 작업을 하느라 피곤했기에 책상에 엎드려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뒤통수를 손가락으로 콕콕 누르고 있는 듯한 감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드니 준희의 얼굴이 보였다.
갈색 단발 앞머리를 정돈하면서 나에게 묻는다.
“요즘 너 밤에 뭐 하길래 그러냐. 혹시······ 일러스트 작업?”
준희는 요즘 자꾸 질문을 던져 온다.
남이 하는 일에는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은지.
“그리는 거 있으면 보여 줘. 심심하니까.”
“너는 콘티 안 그리냐?”
“다음 주 것까지 다 끝내 놨거든. 그래서 지금은 완전 자유지롱.”
얘기를 들으니 브랜드 웹툰도 절찬 연재 중이라는 듯했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녀석의 웹툰을 확인했다.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미려한 그림체로 유명한 녀석 답게 그림은 흠잡을 데가 없다. 가이아 전기의 캐릭터 한 명 한 명의 매력을 충실히 살렸다. 이 웹툰이 잘나가면 국내 매출도 한 번 더 상승하겠지.
가이아 전기가 잘나가면 나로서는 이득이다. 잘나갈수록 게임사에서는 예산을 더 투자할 거고 그에 따른 내 일감도 늘어나니까. 이미 원화 한 장에 2백만 원을 받고 그려 주고 있었지만 페이는 언제나 다다익선. 즉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일러스트 작업은 틈날 때마다 하긴 하는데, 요즘은 만화 시나리오 공모전 준비하고 있었어.”
“만화 시나리오 공모전?”
“네가 얘기했었잖아. 그 버스 기다리면서······.”
“아하······ 그랬었지.”
그제야 기억이 난 듯했다.
“스토리 짜는 연습 삼아 해 보라고 했던 건데. 도움은 되냐?”
확실히 도움이 많이 됐다. 대략적인 콘셉트 아이디어만 노트에 쌓아 두고 있었지.
구체적으로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을 짜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특히 스토리를 시각적으로 상상해 보는 연습이 많이 되었다.
“응. 도움이 많이 되긴 하더라.”
“그렇지? 나도 중학생 때 그 공모전에 제출해 보고 실력이 많이 늘었었거든. 물론 수상은 못 했지만······.”
“그래? 수상은 못 했구나.”
“수상하는 거 쉬운 게 아니거든? 나는 그때 중1 인가 그랬는데. 그 공모전은 신인만 내는 게 아니라 기성 작가나 만화가들도 내는 거야.”
“호오······ 그렇구만.”
그런 말을 들으니 더 기대가 된다.
기성 작가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다.
“그러니까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아. 특히 시나리오 처음 써 보는 거면······ 경험치 쌓은 걸로 일단 만족해야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고 하면 무슨 반응을 보이려나······.
“그런데 김민준 너······ 그거 들었냐? 오늘 전학생 온다고 하던데······.”
“전학생?”
“이름이 뭐였더라······ 무슨 외국인이라고 하던데.”
외국인 전학생이라?
그러고 보니 전에 강예린한테 들었었지.
엘론 더글라스의 딸이 우리 학교로 전학을 올 거라고.
분명 이름이······.
“예린아, 걔 이름 뭐라고 했었지? 엘······ 어쩌구.”
“엘레나.”
준희의 질문에 읽고 있던 불어 원서 소설을 덮고서 강예린이 말했다.
“아. 맞아. 그런 이름이었지. 미국에서 왔다면서?”
준희는 외국인 전학생이라는 것에 몹시 흥미가 동한 듯했다.
“왜 그렇게 전학생한테 관심이 많냐?”
“이 시기에 전학생이라는 것도 특이한데 외국인 전학생이잖아. 내 웹툰에 좋은 소재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구.”
얘는 어째 기승전 웹툰이라는 느낌이다.
웹툰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다 바칠 기세다.
준희는 예린에게 엘레나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걔는 완전히 외국인은 아니고······ 어머니가 한국인이셔.”
“아하~ 그럼 혼혈이구나. 뭔가 엄청 예쁘게 생겼을 거 같네? 그리고 미국에서 살다 왔다며? 미국애면 엄청 활발하고 파티 피플이고 그럴 거 같은데.”
“글쎄······ 걔는 수줍음이 많은 편이야. 혼자 노는 거 좋아하고···”
흥미롭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준희.
외국인 전학생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우리 미술 1반은 미국인 전학생에 대한 얘기로 떠들썩한 상황이었다.
“요환이랑 진호가 아침에 교무실 앞에서 봤다는데······ 전학생 여자애 겁나 예쁘다는데?”
“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응. 외모가 거의 강민영 급이라던데?”
강민영이라면 음악과 3반의 현역 걸그룹 아이돌이었다.
하지만 활동이 바쁜지 학교에 오는 일이 드물었다.
“와······ 궁금하네.”
“그러게 빨리 보고 싶다.”
“야. 오······ 온 거 같은데?”
술렁거리고 있는 교실 안.
출석부를 들고 교실 안으로 들어오는 윤정 쌤. 그녀의 뒤를 따라 갈색 머리에 피부가 눈처럼 흰 여학생이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응? 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분명 쟤는 그때 본 여자애가 맞았다.
삼명 아트리움에서 나한테 길을 물어봤던 그 외국인 소녀였다.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 보답으로 달리아 꽃이 그려진 카드를 선물해 줬던.
* * *
“안녕하세요. 난 엘레나라······ 해요.”
어머니가 한국인이라서인지 한국어를 할 줄은 아는 것 같은데 뭔가 어눌하다.
본인도 그것을 의식하는지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수줍은 얼굴로 학생들을 흘끔 흘끔 쳐다보는 그녀.
하지만 그러한 점이 남학생들한테는 더 취향 저격이었던 모양이다.
얘네들 눈빛이 이만큼 또렷한 적이 있었을까.
“엘레나는 어머니가 한국인이라서 한국어는 잘 알아 듣는다네? 그런데 아직 읽고 쓰는 건 좀 서툴다고 하니까 잘들 가르쳐 줘.”
“넵! 알겠습니다!”
“짜식들, 전학생이 예쁘다고 기합 들어간 거 봐. 얘들아. 꿈 깨. 미국 여자애들도 남자 외모 많이 봐. 그렇지? 엘레나?”
“······.”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마냥 윤정 쌤을 쳐다보고 있는 엘레나.
윤정 쌤은 씨익 미소 지었다.
“성격도 착하네. 애들한테 상처 줄까 봐 대답 못 하는 거 봐. 착한 애니까 친절하게 많이 가르쳐줘. 그럼······ 자리는 어디가 좋으려나?”
교실 안을 살펴보고 있던 윤정 쌤.
내 옆자리가 빈 것을 확인하고 그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엘레나. 저쪽 가서 앉으면 돼. 그리고 민준이 너 영어 쌤한테 듣기로는 영어 성적도 꽤 괜찮다던데······ 어려운 한국어 같은 거 있으면 영어로 설명도 해 주고. 서로 외국어 공부 되니까 서로 윈윈이지? 아무튼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잘해 줘.”
“이상한 짓은 무슨요. 남들 듣기 안 좋게.”
“쏘리. 말이 헛 나왔네. 아무튼 잘 부탁할게.”
내 옆 자리에 조심스레 앉는 엘레나.
그녀는 시선을 돌려 나를 슬쩍 쳐다봤다.
표정을 보면 아무래도 나를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잘 부탁한다.”
“응······.”
그 한 마디만 하고선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엘레나.
확실히 예린이 얘기했던 대로 수줍음이 많은 녀석인 것 같았다.
윤정 쌤은 뭔가를 떠올린 듯 한 마디 덧붙였다.
“아. 맞다. 시간 있을 때 교무실에서 교과서 받아가는 것도 도와줘. 학교 안내도 해주고. 얘는 아직 학교 시설 위치도 잘 모르니까.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바쁜 하루가 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