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114)
팅거와 벨라를 따라 부지런히 달려서 도착한 곳엔 커다란 건물 몇 동이 있었다. 그중 제일 끝 건물에서 유독 짙은 마기가 느껴졌다.
“가 보자.”
마기가 새어 나오는 건물에선 신음과 겁에 질린 새된 비명,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
뭔가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까지.
나는 서둘러 건물로 뛰어갔지만, 내부를 볼 방법이 없었다.
2층 높이의 건물은 꼭대기 쪽에 아주 작은 구멍이 몇 군데 있을 뿐, 창문 하나 보이지 않았다.
“환기구인가?”
나는 플라잉 부츠의 힘을 받아 구멍이 뚫린 곳으로 날아올랐다.
다행히 짐작한 대로 환기구였고, 실내가 보였다.
“하…….”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장면을 맞닥뜨리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더니, 딱 지금이 그 상황이었다.
칸막이 없이 탁 트인 넓은 공간엔 플린트 공국의 투본산 등에서 봤던 철장이 듬성듬성 들어차 있었다. 철장 안에는 동물들이 갇혀 있었고.
소, 돼지, 말, 염소, 그리고 알타이칸.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쿵쿵 소리는 알타이칸이 내는 소리였다.
알타이칸 두 마리만 철창 안에 갇혀 있지 않았다. 목줄도 없었고. 그저 건물 내부를 같은 방향으로 뱅뱅 돌면서 몸을 벽에 쿵쿵 박아댔다.
스트레스성 정형 행동이었다.
“하나, 둘, 셋…… 알타이칸 두 마리까지 모두 합해 스무 마리군.”
철장 안에 갇힌 동물들은 하나같이 같은 자세, 고개를 위로 쳐들고 있었다.
움직이지 못하게 몸을 고정해 놓은 거다. 특히 상체 부분을. 거기에 입을 벌린 동물들 목엔 하나같이 호스가 꽂혀 있었다.
호스는 어떤 장치에 연결되어 있었고.
“뭐지? 피딩튜브일 리는 없고.”
피딩튜브는 식욕이 절폐되어 자발적 식이를 하지 못할 경우, 코나 입 등을 통해 유동식을 직접 주입하는데 사용하는 의료용 호스를 말한다.
동물들에게도 종종 사용되긴 하지만, 저런 식으로 식욕이 절폐된 동물들을 관리할 리는 없다.
그리고 애초에 이곳 세계에서 피딩튜브를 이용하는 건 본적이 없기도 했고.
도대체 왜 저런 기괴한 상황이 벌어진 거지? 여긴 도대체 무슨 연구를 하는 곳이지? 뭘 하는 곳이길래…….
갑자기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혹시 저 호스로 마기를 주입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저 장치와 튜브에서 마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데빌몬스터가 자연 발생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놈들은 몬스터뿐 아니라 일반 동물들에게도 실험하고 있었던 것.
당장이라도 여길 부수고 실험체가 된 동물들을 구해 주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채, 나는 다시 한번 내부를 살폈다. 그래야 계획을 세우지.
그렇게 내부를 샅샅이 둘러보다가 한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날 죽여다오. ……제발.]움직이지도 못한 채, 체념한 눈빛을 한 말 한 마리가 툭 내뱉었다.
영지에 있는 테리 녀석이 내게 한 말, ‘죽여다오.’ 그 말과 오버랩이 됐다.
“이 미친……!”
내 짐작이 맞다면, 놈들은 목장의 동물들을 데빌몬스터로 만들 생각인 거다.
여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데빌몬스터를 즉각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연구하는 곳이 분명하다.
-그런데 알타이칸, 너는 왜 여기 있냐?
[모른다.]사납게 대답하던 알타이칸이 벽에 몸을 부딪쳤다.
쿵!
그런데 대답은 의외로 말의 입에서 나왔다. 조금 전에 내게 죽여 달라고 했던 그 말.
[싸운다.]-싸운다니?
[내 친구, 알타이칸 죽는다.]혹시 괴력을 테스트하는 건가?
만약, 실험이 성공해서 소, 돼지, 말이 데빌몬스터가 된다면 알타이칸을 이길 거다. 위력을 보려는 건가?
진심으로 이따위 실험을 기획한 놈에게 살심이 생겼다.
그냥 달려가서 다 때려죽일까? 나 혼자면 조금 벅찰 수도 있겠지만, 카이와 함께 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제피크 마탑 정도는 날려버릴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당장 나를 의심하겠지?
그렇게 된다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곧 결론을 내렸다.
신수들을 구조할 때 기다려 달라고 한 건, 하루나 이틀 아니면 몇 시간을 기다려 달라는 거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내가 당장 내일 여길 파괴하고 저 동물들을 구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저 녀석들은 당장 목숨이 위태롭다는 거다.
“일단 구하자.”
저 녀석의 눈빛을 외면한다면, 두고 돌아간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다.
나는 두 주먹을 꾹 쥔 채, 녀석에게 말했다.
-죽긴, 오래 살아야지.
그리고 말을 덧붙였다.
-바로 구해 주마.
동물들이 동요하는 모습을 눈에 담은 후, 몸에 있는 마나를 끌어모은 후, 손을 뻗었다.
우우웅.
투두둑.
호스를 연결하는 부위가 끊어지면서 시커먼 연기가 뭉게뭉게 새어 나왔다.
-카이, 중화!
[어?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카이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알긴, 네 녀석이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걸 못 들을 만큼 내 귀가 어둡진 않거든.
카이는 조금 전부터 내 머리 위에서 씩씩거리고 있었다. 당연히 로이칸과 함께.
후우.
카이가 환풍구를 통해 입김을 불자, 자욱했던 마기가 조금이나마 옅어졌다. 마기를 제거해 버린 거다.
-로이칸, 벨라. 근처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 좀 해 줘.
감각을 높여 사람의 기척이 없다는 걸 확인했지만, 혹시 몰라 녀석들에게 부탁했다.
은신술 덕분인지 아직 감시망에 걸리진 않은 듯했다. 카이 덕분에 아직도 은신술이 유지되고 있었으니까.
나는 거리낌 없이 두꺼운 철문 앞에 섰다.
“자물쇠 두 개. 그리고 굵은 쇠사슬.”
마법 열쇠 같은 것도 아닌, 그냥 열쇠.
아마 강한 마기로 인해, 실험동물들이 맥을 못 추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니면 죽었거나. 그러니 이렇게 관리가 허술하지.
“속성변환!”
육중한 철문에 붙어 있는 열쇠가 툭툭 녹아서 흘러내렸다.
철컹.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동물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쉿, 조용.
안으로 들어간 나는 같은 방법으로 철장을 연 후, 동물들 식도에 꽂힌 호스를 빼주었다.
제일 먼저 내게 죽여 달라고 했던 말의 목에 꽂힌 호스를 빼주었다.
[커억, 컥컥.]-조금만 참아.
호스를 빼내는 것도 고통일 텐데, 다행히 말은 잘 따라 주었다.
-잘 참았다.
녀석은 아직도 실감이 안 나는지, 커다란 눈만 껌벅였다. 눈동자엔 아직도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젠 괜찮다. 너는 자유다.
나는 지금까지 잘 버텨 온 녀석이 기특해 등을 쓱쓱 쓰다듬어 줬다.
그랬더니 녀석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감격한 눈빛에 원망과 분노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저 원망과 분노는 차차 사라지겠지.
조금 더 녀석을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나는 옆에 철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내가 동물들의 호스를 제거해 주는 사이, 팅거가 속성변환을 시전해 나머지 철장을 열었다.
-다들 조용히 숲으로 도망가라. 특히, 너희 둘은 얘들을 잘 인도하고.
나는 알타이칸에게 특별히 지시를 내렸다. 알타이칸이 내게 복종을 선언한 이상, 이 녀석들도 내 지시를 잘 따를 거다.
[고맙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다들 내게 인사를 한 후, 동물들은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녀석들이 떠나가면서 황금색 글씨가 떠올랐지만, 나는 다음 일에 착수하느라, 미처 확인을 못 했다.
호스와 연결된 장치도 망가뜨렸고.
“저 장치, 고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거다.”
-벨라,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실드를 좀 쳐 줘.
[웅, 알았어.]철장이나 건물 벽 등을 몬스터가 부순 것처럼 보이도록 적당히 부수었다.
그런 후, 유유히 로이칸 등에 올라탔다.
* * *
마커스가 실험동을 망가뜨리고 있는 동안, 모헨 대공은 원로원의 한 명인 로이튼과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율리시즈 치료사를 첩자로 이용하자는 말씀입니까?”
“허허, 첩자라니요. 조력자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거죠.”
로이튼의 대답에 모헨 대공은 눈을 살짝 찌푸렸다.
‘내 생각을 읽은 건 아닐 거고, 무슨 생각인 거지?’
하나의 목표로 매진하던 원로원은 최근 실금이 가고 있었다. 한마디로 분열 중이라는 뜻.
원로원의 대표, 플린 의장의 욕심으로 빚어진 상황이었다.
원로가 종신제인 것처럼 의장 또한 종신제였다. 의장이 죽고 나면 원로들이 모여 차기 의장을 뽑게 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형식일 뿐, 원로원의 2인자가 맡게 된다.
그런데, 플린 의장은 딴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의장을 세습하고 싶은 거다.
바로 자기 아들에게 의장직을 물려줘서 자신의 가문이 대대로 군림하길 원했다.
플린 의장에겐 아들이 둘이 있다. 반스 플린과 크리스 플린.
이 중 월트셔, 린튼 백작이라고 알려진 인물이 바로 크리스 플린이다.
월트셔가 마커스의 부대에게 당해 부상 당한 후, 빨리 회복하게 된 것도 최고의 마법사, 힐러, 치료사가 들러붙어 치료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치료에 가장 큰 효과를 준 게 바로 마기, 응축된 중화마기였다.
플린 의장의 아들인 월트셔는 최고로 정제된 마기를 정기적으로 공급받고 있으며, 그 덕에 지금까지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마기의 힘을 빌려 보통 사람들보다 월등한 능력을 손쉽게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마커스가 월트셔를 만났다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커스가 아크리스 왕국에서 월트셔를 직접 대면했던 시절에는 신성력이 없었고, 마기를 감지할 능력이 없었다.
플린 의장이 자식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세습할 생각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원로들은 크게 분노했으나, 곧 두 파로 나뉘게 됐다.
자신의 이익에 앞서는 파로 줄을 선 것.
2인자인 로이튼은 당연히 반대파였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플린 의장의 힘을 누르고 싶었으며, 자신이 의장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다.
로이튼은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원로 중에서 플린 의장을 싫어하는 이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모헨 대공도 작업 대상이었다.
그래서 예의주시하던 차에 모헨 대공저로 엘라로투스 치료사들이 도착했음을 알게 되었다.
‘율리시즈 그자가 제 발로 찾아오다니.’
마커스와 월트셔의 악연을 알고 있던 로이튼은 바로 움직였다.
“율리시즈 그자와 린튼 백작과의 관계를 이용합시다.”
“예?”
모헨 대공의 눈이 휘둥그레 뜨며 자신을 바라보자, 로이튼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자, 동물을 굉장히 아낀다지요? 특히 신수 밀렵에 굉장히 날이 서 있다고 들었는데.”
“그 말씀은…….”
“린튼 백작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율리시즈 그자가 가만히 있진 않겠죠. 우린 그저 구경만 하면 될 겁니다.”
“그, 그렇겠죠.”
“대공은 그저 율리시즈 그자와 날 만나게 해 주면 됩니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로이튼의 말을 들으면서 모헨 대공은 마커스와 나눴던 대화를 복기했다.
‘원로원을 만나게 해 달라고 말했지.’
그렇게만 해 준다면, 모헨 대공의 가솔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겠다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마커스의 의도대로 일이 흘러갔다.
* * *
로이칸을 타고 날아온 내가 무빙워크를 구경하고 있자, 본관 문이 열리면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헨 대공과 마탑주였다.
“이거 아무리 봐도 굉장한 것 같습니다.”
“마음에 쏙 드셨나 봅니다.”
“예, 진짜 탐이 나는 물건입니다. 그리고 온실도 굉장히 잘 꾸며 놓으셨더군요.”
“하하하, 온실까지 가 봤습니까?”
마탑주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예.”
지나가면서 봤죠.
나는 마탑주가 눈치채지 않도록 여러 군데 들러본 것처럼 말했다. 내가 직접 본 것도 있고, 팅거, 벨라가 촬영한 영상으로 확인한 것도 있고.
“마탑주님, 기회가 되면 여기 마법사님을 초대해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 연구소 마법사님들과 교류를 하면 큰 발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 물론 비용은 전부 우리 쪽에서 지급할 생각입니다.”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하하하, 우리 마법사들이 아주 좋아하겠군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번 적극적으로 검토를 해 보지요.”
인사를 한 후, 마차에 올라타려는데, 로브를 입은 사람이 달려왔다.
“마탑주님.”
“아, 그래. 잠시만.”
마탑주는 우리에게 잘 가라고 인사를 한 후, 보고를 받았다. 내가 한 것들에 관한 보고였다.
마차 안에서 모헨 대공이 말했다.
“기회가 생겼습니다.”
“계획대로 하죠.”
제피크 마탑에서 돌아온 모헨 대공이 비서관으로부터 보고를 받더니 내게 말했다.
“원로원에서 방문한다는군요.”
“원로원이요?”
“딸이 아픈 걸 핑계로 올 모양인데, 아마 제 생각에는 율리시즈 대장을 만나러 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를요?”
“그들은 실력자를 놓치는 법이 없거든요. 아마 제안을 해 올 겁니다. 혹할 만한 그런 제안을요.”
모헨 대공의 말을 들은 나는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이거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생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