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115)
다음 날 아침, 모헨 대공의 딸, 라일라스 방을 나서면서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슈미트 교수에게 말했다.
“교수님, 공녀님을 지금이라도 치료소로 모시고 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이대로라면 아무래도…….”
“그게 낫겠지요. 그런데 흠…….”
슈미트 교수 역시 심각한 듯 한숨을 내쉬며 대답을 아꼈다.
“제가 대공 전하께 말씀을 한번 드려볼까요?”
“아니, 내가 말을 해 보겠습니다.”
그때였다.
탁탁탁. 누군가 복도를 조용히 빠져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보통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을 소리가.
역시, 듣고 있었군.
그길로 모헨 대공의 집무실로 갔더니 모헨 대공이 우리를 과하게 반겼다.
“오오, 치료사님들 어서 오십시오.”
“안색이 좋아 보이시군요.”
그 말에 모헨 대공의 표정이 확 밝아지면서 말을 이었다.
“모처럼 푹 잤습니다. 이렇게 푹 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불면증으로 지끈거렸던 머리가 아주 개운해졌습니다.”
“그 기분 저도 압니다. 저도 피곤할 때면 율리시즈 치료사에게 부탁하곤 하죠.”
“하하핫, 그렇다면 딸아이도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겠군요. 그건 그렇고 조금 전에 마차가 검문소를 통과했답니다.”
플린 의장 쪽에서 사람이 온다는 뜻이다.
“아, 라일라스는 어떻습니까?”
“지금쯤 잠이 들었을 겁니다. 조금 있으면 열이 나기 시작할 거고요.”
“부인에게 말해 놨으니, 알아서 잘 처리할 겁니다.”
대공의 딸, 라일라스는 회복 마나 치료술을 받고 잠이 들었다.
자는 동안 열이 많이 난다. 땀도 나고.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필시 아픈 거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모르는 말이다.
자면서 기운을 회복하는 최고의 치료법 중 하나다.
지난밤 대공도 내게 그 치료술을 받은 거다.
그리고 수술한 그 날부터 공녀에게 회복치료술을 시전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공저의 사람들이 공녀가 아직 아프다고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 * *
“허어,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마커스솔루션이란 말입니까?”
플린 측 대표로 찾아온 딕슨 원로는 모헨 대공과 함께 수정구를 보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수정구에는 마커스와 슈미트 교수가 수술하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이 치료를 받지 않았다면 지금쯤 딸아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모헨 대공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보이는군. 대단합니다.”
“그걸 창안한 치료사가 직접 치료해 줬습니다. 그 치료사가 아니었다면 정말 위험했을 거라고 함께 온 치료사가 말하더군요.”
“호오, 그런 대단한 치료사가 여기 있다는 말입니까?”
딕슨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딕슨은 마커스 솔루션을 처음 본 건 아니었다. 얼마 전, 완즈 연구소에서 보내 준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자신들의 야심작, 마기 흡수기를 신수 배를 갈라 집어넣는 정면이 담긴 영상이었다.
‘그때, 그 치료사가 죽어 버려서 아쉬웠는데, 고안한 원조를 영입할 기회가 이렇게 빨리 왔다니.’
사람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는 상황. 율리시즈 치료사, 그자라면 우리의 계획이 훨씬 앞당겨질 수 있을 거다.
반드시 이자를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딕슨의 눈빛에 이채가 돌았다.
“공녀는 지금 어떻소?”
“그게…….”
모헨 대공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런 후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조금만 빨리 손을 썼다면 좋았을 거라고 하더군요.”
딕슨은 대공저에 들어오면서 전해 받은 종이를 떠올렸다. 대공저에 심어 둔 심복의 보고서였다.
보고서엔 대공저의 상황이 쓰여 있었는데, 공녀의 상태도 보고서 내용에 포함되어 있었다.
공녀가 열이 올라 거의 실신한 상태로 잠이 들었다.
“저런. 상심이 크겠군.”
모헨 대공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그 방면으로는 문외한이라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감염? 그런 것 때문에 딸아이가 위태롭다더군요.”
“흠. 그런 대단한 치료술을 했는데도 방법이 없다?”
“시기가 늦었답니다. 그래서 다른 치료법도 병행해야 한답니다.”
“다른 치료법?”
“예, 앨버부르크까지 가야 한답니다.”
“앨버부르크? 엘라로투스 제국에 있는 도시를 말하는 건가?”
“예, 앨버부르크 치료탑의 볼프 치료사가 고칠 수 있다더군요.”
볼프 탑주는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치료사로 추앙받고 있다.
“볼프 치료가 같은 인물이 이 먼 곳까지 올 리는 없으니까, 직접 가는 수밖에 없겠군.”
“예, 그러지 않아도 내일 아침 출발할 예정입니다.”
모헨 대공이 굳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 이유는 있다.
원로원은 자신들의 심복을 감시하고 있다. 모헨 대공도 감시 대상 중의 한 사람.
평소라면 얼마든지 딸과 부인을 다른 나라로 보낼 수 있다. 물론 감시자는 붙겠지만.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가족을 국경 너머 다른 지역으로 보낸다?
모헨 대공이 딴생각을 품었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압력을 가할 것이다.
압력을 가하는 방법은 바로 가족 몰살일 것이고.
“치료사들도 내일 함께 출발하겠지?”
“예.”
“그렇군. 그 치료사들 시간이 괜찮다면 한번 만나볼 수 있겠나? 인사라도 한번 해 두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나이가 들수록 실력 있는 치료사는 꼭 옆에 둬라. 그런 말 말이야. 하하하.”
딕슨의 말에 모헨 대공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 * *
“딕슨이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율리시즈입니다. 웬만하면 교수님과 함께 뵙고 싶었지만, 지금 교수님께서는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나는 계획대로 혼자서 원로원의 일원인 딕슨을 만났다.
“홀스탄 영지의 영주이십니다. 소금 광산이 유명한 곳이지요.”
모헨 대공이 딕슨을 소개했다.
“방금 모헨 대공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녀를 고쳐 줬다고요?”
“아, 예.”
“대단합니다. 대공에게 말을 듣다가 생각한 건데, 그런 증상을 보이다가 시름시름 앓고 죽어 가는 영지민이 상당히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편이죠.”
“율리시즈 상단의 자제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예.”
“공녀 병증을 마벨렌이라는 투시 마도구로 검사를 하셨다고요?”
“예.”
“그 마도구를 구입하고 싶습니다.”
“마벨렌을 사시겠다고요?”
“예, 사고 싶습니다. 율리시즈 치료사님 같은 분을 우리 영지로 초빙하고 싶습니다만, 그건 차차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고 당장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그게 마도구를 구입하는 것이고요?”
“예, 마도구만 익혀 진단만 내리면 나머지는 마커스 솔루션을 마스터한 치료사들에게 보내 치료를 받게 하면 되니까요.”
와, 이 사람 대단하네. 이렇게 간단하고도 효율적인 방법을 떠올리다니.
빈곤해서 치료를 못 받는 사람들은 어디든 똑같으니까 그들을 논외로 하면 딕슨의 말이 맞다.
“한번 우리 영지로 오셔서 진행을 한번 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바로 내가 바라던 말이 딕슨의 입에서 나왔다.
“좋습니다.”
“하하하, 화끈하군요. 그럼 바로 날짜를 잡을까요? 아, 내일 출발한다고 하는 것 같던데 괜찮겠습니까?”
모헨 대공이 공녀 일행이 내일 출발한다고 강조한 모양이다.
“아 저는 아닙니다.”
“오, 그렇습니까?”
딕슨의 표정을 보아하니, 지금 머리를 엄청 굴리는 게 보였다. 내가 누굴 만날지 궁금한 거지.
“율리시즈 치료사는 왕진이 몇 군데 잡혀 있습니다. 유명하신 분이라 여길 도착하자마자 바로 연락이 왔습니다.”
모헨 대공의 부연 설명에 딕슨의 입매가 굳어졌다.
지금 내가 왕진을 어디로 가는지, 그게 궁금할 테지.
“왕진을 다녀온 다음에 연락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그러시죠.”
그렇게 나는 딕슨과 나중을 기약했고, 딕슨은 대공저를 떠나는 순간까지 꼭 연락하라며 신신당부를 하고 떠났다.
분명 딕슨은 내 주변에 사람을 붙일 거다. 누가 감시자인지는 조만간 밝혀지겠군.
-팅거, 벨라. 마차를 따라가 봐.
[알았어.]-목걸이는 하고 있지?
[당연하지.]-로이칸은 나를 따라오고.
[크흠흠.]저 소린, 카이가 자기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서 토라졌다는 걸 표현하는 거다. 귀여운 녀식.
-카이 너도 나를 따라올 거지? 혹시 내가 위험에 빠지면 네가 구해 줘야지.
[뭐, 그러든지.]-팅거와 벨라는 다녀와서 여기서 기다려.
[흥, 날개 달린 내가 어딜 가든!] [헤헤헤, 팅거가 네가 걱정되나 봐. 저 마차 어디에 가는지 확인하고 나서 천천히 따라갈게.]-그래.
팅거와 벨라는 닥슨의 마차를 따라 날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슈미트 교수 일행이 떠나고 1시간쯤 지나자 나를 데리러 온 마차가 도착했다.
* * *
다각다각다각.
사륜마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지루함을 느꼈다.
로이칸을 타고 갔다면 벌써 도착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마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구경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주 조금씩이지만 바뀌기는 했다.
“조금 있으면 바인랜드 공국에 도착합니다.”
맞은편에 앉은 자가 말했다.
“아, 예.”
“바인랜드 공국은 처음이시죠?”
아니, 가 봤지.
그러나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예, 템파론이 굉장히 멋진 도시라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하하하, 대 제국분께 그런 소리를 들으니 어깨가 으쓱해지는군요. 조금 있으면 바인랜드의 자랑인 템파론을 지나갈 겁니다.”
이를 드러내며 웃는 이 자는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이다. 로솝 남작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저자는 나를 로이튼 원로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고 있다.
마차는 템파론에 들어섰다.
“여기가 템파론이군요. 대단합니다.”
“하하하, 템파론은 불이 꺼지지 않는 낮의 도시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밤에 오셨다면 훨씬 멋진 도시를 구경할 수 있으셨을 겁니다.”
“굉장히 아름다울 것 같군요.”
나는 템파론의 밤을 떠올리며 말을 받았다.
“언젠가 기회가 되신다면 꼭 야경을 즐겨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길 바랍니다.”
로솝은 굉장히 수다스러운 자였다. 대공저를 벗어나자마자 지금까지,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천성이거나 사람들에게 생각할 틈을 주고 싶지 않거나. 아니면 사람을 방심하게 만들어서 정보를 캐치하거나.
내 생각에는 세 번째 이유가 맞을 것 같다. 수다를 떠는 로솝의 눈빛이 날카로웠으니까.
템파론을 빠져나가기 전에 로솝이 말했다.
“율리시즈 치료사님 잠시 쉬었다 가시겠습니까? 너무 앉아만 있어서 힘드시죠?”
“괜찮습니다.”
“아, 이 근처에 템파론의 명물이 있는데, 꼭 드셔보는 걸 권합니다. 저도 올 때마다 먹는데, 가끔 생각이 난다니까요.”
잠시 후, 마차가 정차한 곳은 마을에 흔히 보이는 펍같은 선술집이었다.
“여기 맥주가 기가 막히게 맛있습니다만, 지금은 일하는 중이니.”
로솝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향했고, 과일 음료와 고기 파이를 직접 가지고 왔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직접 주문하고 음식을 가져다 먹는 시스템인 것 같았다.
고기파이는 썩 맛이 좋았다. 그리고 함께 마시는 음료 역시 달달하니, 팅거가 좋아할 맛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뭔가를 넣은 거 같은데?
달달한 향에 미약하지만, 악취가 살짝 느껴졌다.
음, 뭐지?
그때였다. 카이의 음성이 머리에서 울렸다.
[야! 설마 너 그거 먹을 건 아니지?]-뭐야? 네 것도 사 줄 테니. 너무 화내지 마라.
[뭐라는 거야? 그게 뭔지 알고 그러는 거야?]-알아. 마기를 집어넣었잖아.
[알긴 아네.]-문제는 이걸 어떻게 피해 가냐는 거다. 안 마시면 나를 의심할 거고, 마시자니 기분이 나쁘고.
[나 같으면 안 마신다.]-나도 그러고 싶다.
어차피 단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굳이 내가 이걸 마실 이유는 없다. 달지, 악취 나지.
어떡하면 음료를 마시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고기파이만 뜯어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코를 자극하던 악취가 사라지고 달콤한 향만 감돌았다.
이런 능력이 있는 자는 카이 밖에 없다.
-카이, 고맙다. 날 위해 애를 쓰는구나.
[흥, 뭐래. 널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다. 네가 오래 살아야 내가 맛있는 걸 많이 먹지.]아니, 얘들은 날이 가면 갈수록 똑같아지는 거야? 나는 팅거 말투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팅거와 벨라는 지금쯤 돌아왔으려나?
선술집에서 나와 마차에 올라타니, 로솝이 말했다.
“치료사님 졸리시면 주무셔도 됩니다. 아직 3시간 정도 더 가야 하니까요.”
“괜찮…… 그럼 눈을 좀 붙여도 될까요?”
“예, 그러십시오.”
역시 그 과일 음료에 수면 유도제가 들었던 게 분명했다.
나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고 로솝이 통신구로 통화하는 걸 들었다. 로솝은 내가 완전히 잠에 빠졌다고 생각했는지, 대화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렇게 3시간이 지났을까, 마차가 서행하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뜻,
“치료사님, 도착했습니다.”
“으으음.”
나는 진짜 잠에 취한 듯 겨우 눈을 뜨는 연기를 보인 후, 마차에서 내리자 두 사람이 나를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율리시즈 치료사.”
“반갑습니다.”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은 바로 팅거가 녹화한 영상구에서 봤던 로이튼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오랜만입니다. 율리시즈 공자.”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메타렌 후작님.”
그런데 메타렌 후작님, 당신이 여기 왜 있습니까? 당신, 황제파 아니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