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116)
현 엘라로투스 제국은 황제파의 전성기다.
귀족파가 몰락해 황제파의 기세가 등등해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대륙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는 올보그 황제가 탄탄하게 뒤를 받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베렌 공작과 메타렌 후작이 있다.
그런 황제파의 주요 인물인 메타렌 후작을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내 수긍했다.
메타렌 후작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리프 공작과 마찬가지로 수리산을 호시탐탐 노렸던 만큼 욕심이 많은 자니까.
“소금 광산 하나를 매물로 내놨는데, 메타렌 후작께서 연락을 주시더군요.”
대답은 로이튼 입에서 나왔다.
“하하하, 누가 잡아채 가기 전에 부리나케 왔습니다. 돈이 된다면 장사치가 어디든 못가겠습니까?”
메타렌 후작은 지금 이 상황을 은근슬쩍 넘어갈 생각인 거 같았다.
“홀스탄 영지도 그렇고, 이 근방은 소금이 유명한가 봐요?”
“하하하, 그런 편이죠. 소금 광산뿐 아니라 소금 호수도 있습니다. 에르토 염호(소금 호수)가 제일 크고 유명하지요.”
“광산에 염호까지? 대단하군요.”
“아마 대륙에서 유통되는 소금의 반이 이 근처에서 생산된다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메타렌 후작이 말을 덧붙였다.
아, 그래서 그랬군.
한때 소금, 설탕, 후추 가격이 폭등했을 때가 있었다.
올리프 상단. 모건 상단 그리고 검은 상단이 주축이 되어 율리시즈 영지에 생필품 공급을 끊었을 때였다.
폭등 현상의 주범이 바로 이들이었다.
소금은 귀하다. 귀한 만큼 가격도 비싸다. 분명 원로원의 주요 수입원일 거다. 그런 것을 메타렌 후작에게 넘긴다고?
이 말 자체가 거짓이거나, 아니면 메타렌 후작이 소금 광산을 받을 만큼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니면 앞으로의 이익을 미리 당겨 주거나.
뭐가 됐든, 원로원과 메타렌 후작은 긴밀한 관계라는 뜻.
원로원이라는 작자들은 대단히 무서운 사람들이다. 그들의 힘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대화를 나누면서 도착한 곳은 접객실.
나는 접객실에 마련된 응접 소파에 앉으면서 물었다.
“환자의 용태는 좀 어떻습니까?”
“허허, 천상 치료사군요. 먼 길을 달려왔으니, 목이라도 축인 후, 이야기를 시작하지요. 시장할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왕진까지 요청하신 거로 봐서 환자의 증상이 중하다는 얘기일 테니, 환자를 먼저 보겠습니다.”
아무리 내가 목적이 있어서 이곳에 왔다고 해도, 환자를 보는 의무를 저버릴 수는 없다.
“좋습니다.”
로이튼이 테이블에 있는 종을 흔들자, 집사로 보이는 자가 접객실로 들어왔다.
“치료사께서 환자를 보고 싶다고 하시는군.”
“준비하겠습니다.”
잠시 후, 나는 별관에 있는 어느 방으로 안내됐다.
“콜록, 콜록.”
파리한 안색의 중년 부인이 침실에 딸린 소파에서 나를 맞이했다.
로이튼 남작 부인이었다.
로이튼의 작위는 남작. 이곳 스튜빌 영지의 영주다.
“안녕하세요, 치료사님. 이런 모습을 보여서 죄송해요.”
소파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려는 부인에게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대로 있으라고 말했다.
“아닙니다. 일어나지 마세요.”
나는 소파에 앉아 부인에게 물었다.
“좀 어떻습니까?”
왕진 의뢰를 받으면서 들었던 부인의 증상은 이러했다. 잦은 기침으로 인한 호흡곤란, 만성 피로, 조금이라도 무리했다 싶으면 찾아오는 흉통, 때때로 오는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아침부터 기침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가슴이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1시간 전에 통증 완화 포션을 드셨고요.”
대답은 뒤에서 들려왔다. 젊은 여인이 서 있었다.
“우리 부인의 전담 치료사입니다.”
로이튼이 여인의 정체를 이야기해줬다.
“안젤라입니다. 율리시즈 치료사님을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
이 먼 곳까지 나를 알아보는 치료사가 있다니, 생각보다 치료사들의 네트워크 시스템이 대단하네.
“반갑습니다.”
나는 왕진 가방을 열었다. 말이 가방이지, 휴대용 마벨렌과 간단한 수술도구, 처방 포션들이 들어 있는 가방은 여행용 큰 트렁크만 했다.
이것 역시 솜씨 좋은 드워프 작품이다. 나는 마벨렌을 트렁크에서 꺼내 테이블 위로 올렸다.
“부인의 증상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한 검사장비입니다.”
“오, 이게 그 마벨렌이라는 마도구입니까?”
로이튼이 관심을 내비쳤다.
“예.”
나는 고개를 돌려 안젤라에게 말했다.
“안젤라 치료사님, 잠시 도와주시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안젤라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으며, 나는 호위병 한 명을 호출해 달라고 로이튼에게 말했다.
건강한 심장과 비교해 보며 설명하는 게 이해가 빠를 테니까.
“이게 바로 건강한 심장입니다.”
“오오, 정말 뛰고 있군요.”
“이제는 부인의 심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역시 짐작대로 로이튼 부인은 심장이 커져 있었다.
“전형적인 LVH이군.”
“예?”
아, 나도 모르게 예전에 쓰던 말이 튀어나왔다.
“여기 보시면 조금 전에 봤던 심장과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어머, 그러고 보니, 호위병과 비교하면 이곳이 좀 부어 있는 것 같긴 해요.”
“예, 이게 바로 좌심실비대(Left ventricular hypertrophy, LVH), 즉 심비대증이라고 합니다.”
“엘, 아니 심비대증이라고요?”
나는 간단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후, 그렇다면 고치는 건 요원한 일이군요.”
로이튼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이 병 관리의 목표는 병증을 완화하고 진행을 더디게 하는 겁니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에요? 지금까지 좋다는 포션을 다 드시게 해 봤지만, 그다지 효과가 있었다곤 말씀 못 드리겠어요.”
안젤라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율리시즈 공자, 그대 가문의 상단에서 나온 율리시즈 알약이라는 게 심장병을 치료하는 약 아닙니까?”
메타렌 후작이 율리시즈 알약을 알은 채 해왔다.
“예, 바로 그 알약을 드시면 편안해지실 겁니다. 기침도 좀 덜하실 거고요.
나는 왕진 가방에서 약통을 꺼내, 부인에게 약을 내밀며 무슨 약인지 설명해줬다.
“며칠에 걸쳐 부인께 맞는 용량을 조절할 예정입니다.”
“먹기에 아주 편하게 보이는군요.”
“보관도 쉽고, 운송도 쉽습니다.”
“그래 보이는군요. 깨질 염려도 없고.”
그렇게 말을 하던 로이튼이 갑자기 인상을 썼다.
“으윽.”
“왜 그러십니까?”
옆에 앉아 있던 메타렌 후작이 놀라면서 물었다.
그때였다. 안젤라가 로이튼 옆으로 가서 포션을 까서 손에 쥐여 줬다.
“남작님. 드시지요.”
“으으.”
로이튼은 손을 벌벌 떨면서 포션을 겨우 받아 마셨다.
음, 뭐지? 지병이 있나?
식은땀을 흘리며 옆구리를 움켜쥐는 걸 보니…… 아, 그건가?
잠시 후, 통증이 가셨는지, 로이튼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
“미안합니다. 내가 원래는 이러지 않는 사람인데.”
“괘, 괜찮습니까?”
“예, 지난달부터 가끔 옆구리가 칼로 찌르듯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로이튼을 바라보고 있던 메타렌 후작이 내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물었다.
“율리시즈 공자, 왜 이런 겁니까?”
“로이튼 남작님, 검사 한번 받아보시겠어요?”
메타렌 후작에게 대답하는 대신 로이튼에게 물었다.
“이따금 아픈 게 다인데, 괜찮습니다.”
“볼일 보실 때, 피가 보이기도 하실 텐데요.”
내 말에 로이튼이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헛기침했다.
“크흐흠, 그럼 신기술을 한번 경험해 볼까요?”
로이튼 남작은 짐작대로 요로결석이었다.
나는 투시 마도구로 보이는 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그냥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 그러니까 포션, 포션 중에 저 돌을 녹일 수 있는 건 없습니까?”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아는 범주에서는 없습니다.”
“그럼 어떡해야 합니까?”
요로결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야기를 들은 로이튼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마도구로 보이는 돌은 제법 컸다. 그래서 수분섭취나 운동으로 자연 배출은 기대할 수 없는 크기였다.
“직접 몸 밖으로 꺼내야죠.”
체외충격파쇄술 같은 치료법을 쓸 수 없는 지금으로는 그 방법밖에 없다.
“진통 포션으로 통증을 가라앉힐 수는 있겠지만, 마커스솔루션을 받아야 할 겁니다.”
* * *
자신의 병을 투시 마도구로 확인한 로이튼은 충격이 컸다. 몸에 돌이 있다니. 그리고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니.
로이튼의 두 눈동자가 떨리는 모습을 본 메타렌 후작이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저 상태로는 실수할 수도 있겠어.’
메타렌 후작은 마커스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안다.
명석하면서 상황 판단도 빠르다. 여기서 로이튼 입에서 자칫 엉뚱한 말이 나오기라도 한다면, 눈치 빠른 마커스에게 자신이 예전부터 로이튼과 관계를 이어 온 걸 들킬 수도 있다.
‘아직은 원로원에 대해 아는 거 없겠지만, 언젠가 알 수도 있다. 그때, 그들과 나를 연관 짓게 할 수는 없다.’
조심해야 한다. 눈앞에 마커스라는 작자가 얼마나 강한 자인지, 메타렌 후작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메타렌 후작이 로이튼에게 나직이 말했다.
“남작, 잠시 쉬고 오는 게 어떻겠습니까? 많이 힘들어 보이는군요.”
“그래도 어떻게 손님들을 두고…….”
“걱정 마십시오, 그동안 제가 잘 구슬려 보겠습니다.”
“그럼.”
그때, 마커스가 로이튼에게 말했다.
“로이튼 남작님, 물을 좀 마시면서 쉬시는 게 통증이 빨리 가라앉을 겁니다.”
“아, 그런가요?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자리를 잠시 비우겠습니다.”
“물 많이 마셔야 합니다. 여기 이 병에 담긴 양 만큼이요.”
메타렌 후작에게 뒤를 부탁한 후,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로이튼은 침실에 걸터앉아 고개를 양팔 사이에 파묻었다.
“끄으응. 왜 이런 병이 생긴 건지.”
몸속에 돌이 생겼다니, 오십 평생 처음 듣는 이야기에 로이튼은 절망스러웠다.
치료법이라고는 몸을 갈라 꺼내는 거 외는 없다니.
통증이 가시긴 했지만, 휴식을 취하는 게 낫다는 말에 로이튼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상태.
“혹시 최근에 중화마기를 많이 흡입했는데, 그것 때문인가?”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다.
플린 의장을 견제하기 위해 할 일이 많아진 로이튼은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내기 위해 틈만 나면 중화마기를 흡입했다.
힘들어서 흡입하고, 통증 때문에 흡입하고.
“그래서 돌이 커진 건가? 돌이 점점 커질 거라고 했지?”
그렇게 되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지?
부인의 병을 빌미로 마커스를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던 로이튼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롯이 자신의 앞날만 걱정됐다.
한편, 로이튼이 자리를 비운 후, 메타렌 후작과 마커스는 별궁에서 나와 정원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허허, 말만 들었지, 마벨렌이라는 게 그렇게 엄청난 마도구인지 몰랐습니다.”
“대단한 물건이죠.”
“그래 보이더군요. 그걸 고안한 이가 율리시즈 공자라면서요?”
“아, 운이 좋았습니다. 마침 그걸 구현해 줄 마법사를 잘 만난 덕이지요.”
“허허, 어찌 그렇게 비상한 능력을 지녔는지. 머리도 뛰어난데다가 몬스터와 싸워서 이길 힘도 있고. 거기에 각국 황제께서도 율리시즈 공자를 치켜세워 주니…… 율리시즈 백작은 좋겠습니다.”
메타렌 후작은 이 말을 시작으로 마커스를 계속 치켜세우더니, 말머리를 슬쩍 바꿨다.
“그런데 말입니다. 율리시즈 공자는 만족합니까?”
“예?”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제국만 봐도 그렇습니다. 공자가 우리 제국에 얼마나 대단한 공을 세웠습니까? 공자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영지 몇 군데는 초토화가 되었을 겁니다. 경제적으로 파탄 난 건 물론이고.”
“……?”
마커스가 말이 없자, 메타렌 후작이 말을 이었다.
“허허, 율리시즈 공자가 어려서 나라 경제가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모르는 거 같은데, 율리시즈 공자 덕분에 몬스터를 막지 않았습니까? 그로 인해 이익을 본 건 말로 다 할 수 없는 정돕니다. 간단하게 말을 하면 율리시즈 상단의 1년 수익 10배는 넘을 겁니다.”
“그렇군요.”
이미 올보그 황제에게 들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에 마커스에게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메타렌 후작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이용만 당할 게 아니라 제대로 대접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 *
후작이 나를 떠보는군. 그렇다면.
“제대로 된 대접, 좋지요.”
나는 슬쩍 말을 흘리며 정원을 둘러봤다. 그런데 머리 위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마커스, 여기 좀 이상해.]벨라 목소리였다.
[눈이 먼 동물들이 많다.]이번엔 팅거 목소리였다.
[맞앙. 애들이 불쌍하게 여기저기에 쿵쿵 박고 다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