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117)
팅거, 벨라의 이야기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혹시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인가? 그것도 아니면 소금 광산이라는 것이 햇빛을 반사한다든지.
눈이 먼 동물이 많다는 얘기에 백내장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백내장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자외선이다.
언젠가 뉴스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매년 백내장으로 실명하는 1600만 명 중 20%가 자외선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보고된다고.
적도와 가까운 인도에 젊은 백내장 환자가 많은 건 비단 우연이 아니다.
설산도 빛 반사가 심하다고 하니, 소금 광산도 그렇지 않을까, 짐작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습니까?”
“소금 광산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요.”
“하하하, 안 가 본 모양이군요.”
“예.”
“마침 내일 소금 광산을 둘러볼 생각이었으니까, 같이 갑시다.”
“그래도 되나요?”
“단, 눈독은 들이지 맙시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혹시라도 내가 소금 광산을 사겠다고 할까 봐 미리 선을 긋는 메타렌 후작에게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팅거, 벨라에게 말했다.
-얘들아, 근처에 있는 동물들에게 말해라. 아픈 애들이 있으면 치료받으러 오라고.
[알았다.] [웅, 마커스 너무 착해. 헤헤헤.]그렇게 대답한 후 팅거와 벨라가 휙 날아갔다.
그 후로도 메타렌 후작의 나를 띄워 주기가 이어졌는데, 1시간 이상 대화가 오갔지만, 별다른 정보는 얻질 못했다.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라, 말을 아꼈기 때문이다.
하긴, 그러니까 지금까지 메타렌 후작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지.
본인은 이번 처음 로이튼과 연결이 됐다고 하지만,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두 사람이 한자리에 있을 때 기회를 노리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동물들이 속속 이리로 오고 있기 때문이다.
“후우, 새벽부터 움직였더니, 조금 지치네요.”
“아, 그렇지. 내가 피곤한 사람을 잡고 너무 말이 많았죠? 그럼 저녁 시간까지 좀 쉬시는 게 낫겠습니다.”
“아,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나는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창문을 여니, 팅거와 벨라, 그리고 카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애들이 저기 와 있어.]벨라가 파란색 날개로 창문 밖을 가리켰다.
-그래, 나가 보자.
왕진 가방을 챙겨 방에서 나오자, 시종이 서 있었다. 내가 여기 묶는 동안, 나를 도와줄 시종이었다.
“마님께 가시는 겁니까?”
“아니, 정원에. 정원에 동물들이 제법 많더라고. 시간도 있고 하니, 걔들을 좀 보러 가게.”
시종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나를 따라나섰다. 내가 뭘 하는지 보고해야 할 테니까.
정원에 나오니, 동물들이 10마리 정도 눈에 들어왔다.
토끼, 너구리, 사슴, 여우.
녀석 중에 중증 환자처럼 아주 심각한 동물은 없었다. 그나마 심각해 보이는 녀석이 사슴과 토끼.
토끼는 긴 귀가 찢어져 있었고, 사슴은 발목에 끈이 감겨 있었는데, 감긴 게 오래됐는지, 끈이 살을 파고든 상태.
이 두 마리는 봉합이 필요했다. 먼저 토끼.
-따끔할 거다. 놀라지 마라.
[네.]동물 친화력이 높은 나는 거리낌 없이 토끼에게 주사를 놓을 수 있었다. 주사액은 데빌투스쿠스의 이빨로 만든 부분 마취제였다.
데빌투스쿠스에 물리는 즉시, 5분간 근육이 마비되는 성질을 이용해 만든 주사액이다.
녀석들은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데빌몬스터를 생산해 냈지만, 나는 그놈들을 이용해 생명체를 살리고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놈들은 어떻게 나올까.
“헉! 그, 그…….”
뒤에서 놀란 소리가 들렸다. 시종이 내는 소리였다.
나는 무시하고 다음 처치를 이어 나갔다. 사슴의 상태는 토끼보다 조금 더 심각했다.
-사슴, 너는 내일도 와라.
[감사합니다.]그렇게 나는 정원에서 동물들 진료를 이어 나갔다. 그사이에 나를 담당하는 시종이 자리를 비웠고, 다른 시종이 내 시중을 들었다.
아마, 먼저 시종은 로이튼에게 내 행동을 보고하러 갔을 테지.
* * *
“율리시즈 치료사가 정원에 나갈 수도 있지, 그런 걸 왜 일일이 보고하나?”
로이튼은 시종에게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 그렇습니다만, 치료사님 행동이, 아니 행보가 좀…….”
좀처럼 표정 변화도, 목소리의 기복도 없는 시종이 횡설수설하는 모습에 로이튼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치료사님께서 동물들 치료를 해 주고 계십니다.”
“동물들?”
“예, 저택에 사는 동물들이 꽤 되는데, 그 동물들을 살펴 주고 계십니다.”
말이 저택이지, 규모가 작은 성이나 다름없는 로이튼 남작저. 사람이 먹이고 관리하는 말과 소, 돼지 등 외에 야생동물들이 꽤 많다.
“호오, 그래?”
로이튼이 관심을 내보이자, 자초지종 이야기를 늘어놨다.
시종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로이튼을 마커스를 반드시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겠단 생각을 하며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마커스솔루션을 해야 한다면, 꼭 율리시즈 치료사에게 받아야겠어.’
로이튼은 마커스에 대한 호감이 짙어졌다.
* * *
식당에 들어서자 로이튼 남작 부부가 나를 반겼다. 옆에는 메타렌 후작도 자리하고 있었다.
로이튼 남작 부인은 낮에 봤을 때보다 나아 보였다.
“낮에는 못 볼 꼴을 보였습니다.”
“환자가 아픈 걸 돌보는 건 치료사가 할 일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대답을 하며 두 사람의 안색을 살폈는데, 진료를 봤을 때보다 나아졌다.
특히 부인의 호흡 소리가 훨씬 안정적이었다. 기침도 줄고. 심잡음도 줄었고.
약이 듣고 있다는 뜻이다.
아, 그러고 보니, 진도가 얼마만큼 나갔을까?
얼마 전, 드워프 공방에 청진기와 혈압계 제작을 의뢰했다. 그림을 그려 가면서 대략적인 설명을 했는데, 오킬즈와 롤랑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최초 제작’이라는 말에 눈을 번뜩이며 호승심을 내보였다.
그것들이 제작만 된다면 일반 치료사들도 조금 더 구체적인 심장 검사를 할 수 있을 거다.
그나저나 청각이 더 예민해진 것 같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심잡음을 들으려면 환자 가슴에 손을 얹고 집중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숙녀분들에게는 감히 검사해 볼 생각도 못 했었는데.
지금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도 아주 잘 들렸다. 이게 모두 경험치가 쌓인 덕분에 체력지수가 올라간 덕이다.
“율리시즈 치료사가 실력자라는 소리를 듣기만 했는데, 이렇게 직접 경험을 해 보니, 지금까지 접했던 치료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알겠더군요.”
식사를 하다말고 로이튼이 과한 칭찬을 건넸다.
“과찬이십니다.”
“정말 훌륭하세요. 이렇게 오랫동안 기침이 나오지 않은 건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콩알만 한 거 하나 삼켰을 뿐인데.”
남작 부인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 더욱 좋아지실 겁니다.”
“아, 동물들을 돌봤다고요?”
역시, 시종이 보고했나 보군.
“예, 여기 환경이 좋아서 그런지, 동물들이 꽤 많이 보이더군요. 마침 아픈 동물들이 눈에 띄길래, 치료를 좀 해줬습니다.”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대단합니다. 지금까지 치료사들을 제법 많이 봤지만, 율리시즈 치료사 같은 분은 못 봤습니다.”
“그런데 시종의 말로는 꽤 심도 있는 치료를 하는데도 동물들이 반항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비결이 따로 있습니까? 나 같은 사람은 치료는커녕 지나만 가도 후다닥 도망만 가더이다.”
“음, 어릴 때부터 동물들을 좋아했습니다.”
달리 할 말이 없는 나는 빈약한 대답을 내놨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니까.
“우리 제국의 황태자 전하께서 실버울프를 키우고 계십니다.”
메타렌 후작이 멜리크를 언급했다.
“그런데 그 실버울프를 율리시즈 치료사가 치료해 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실버울프는 황태자 전하 이외는 아무도 만질 수가 없지요. 아주 사나운 놈이거든요.”
“허어, 역시 몬스터를 부하처럼 부린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군요.”
“그렇지요. 나도 그에 관한 건 전해 듣기만 했는데, 엄청났다고 하더군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시선을 교환하더니, 로이튼이 목소리에 힘을 줘 말했다.
“엘라로투스 제국에서는 율리시즈 치료사님을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겠군요.”
“그렇긴 한데, 아직 어려서 그런지 성과에 비하면 아쉽지요.”
메타렌 후작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율리시즈 공자보다 훨씬 못한 공을 세운 자들도 훨씬 나은 대접을 받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음, 성년이 되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아직은 제가 좀 어린 편이니까요.”
분위기에 맞춰 대충 대답하자 메타렌 후작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기에는 황태자 전하도 그렇고 황자 전하들이 계셔서 힘들 겁니다. 전하들보다 율리시즈 치료사를 드높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겠군요. 무릇 신하는 주군을 빛낼 존재이니.”
“그렇죠. 아무래도 율리시즈 치료사는 공을 높으신 분들께 돌려야 할 운명일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내 약을 살살 올리는 말을 주고받았는데, 그걸 듣고 있던 부인이 탄식했다.
“율리시즈 치료사님은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으세요.”
“맞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로이튼 부인은 단순한 감정으로 말을 했겠지만, 이 두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기회다 싶었는지, 올보그 황제뿐 아니라 카발라 제국의 황제와 교단, 그리고 나머지 왕국의 왕들까지 언급하면서 그들이 나와의 친분이 두텁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었다.
심지어, 메타렌 후작은 이런 말까지 했다.
“율리시즈 공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위치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정점에 우뚝 설 겁니다. 그리고 만약 그런 결심을 한다면 나는 공자를 지지할 것입니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로이튼이 말머리를 바꿨다.
“그건 그렇고, 율리시즈 치료사님.”
“예.”
“여기 계시는 동안, 몇 분 더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진료 말씀입니까?”
“예, 주변 친분이 있는 이들이 있는데, 나이가 다 비슷비슷한 연배입니다. 아무래도 한번 확인을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로이튼이 아는 사람이라. 그자들은 대부분 원로이거나 원로와 관계된 자들이거나.
내가 바라던 바였다.
“어차피 로이튼 부인 경과를 보는 거 말고는 딱히 바쁜 일도 없으니, 좋습니다.”
“하하하, 역시 젊은 사람이라 그런지 화통하군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율리시즈 치료사께서도 소금 광산에 관심이 있다고요?”
“아, 그저 한번 보고 싶은 것뿐입니다. 가 본 적이 없으니까요.”
“좋습니다. 그럼 내일 함께 가십시다.”
“부인을 진료 시간 이후면 따라가겠습니다.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에 검사할 생각입니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저녁 식사는 끝이 났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동물들 진료를 이어 나갔다.
동물들 줄을 세우고 있는 팅거를 불렀다.
-팅거.
[왜?]-여기 실명한 동물들이 많다며? 그런데 왜 안 보여?
[왜긴, 걔들은 눈이 멀어서 여기까지 올 수가 없으니까 그렇지.]-아, 그렇겠다. 그런데 걔들 중에 아픈 애들은 없어?
내 생각에 많을 거 같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여기저기 부딪치기도 할 거고, 찢기고 뜯기고, 심지어 구덩이에 빠지기도 할 텐데.
[없기는, 엄청 많지.]그때였다.
카이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후, 나뭇가지가 살짝 휘청거리더니, 툭, 소리가 났다. 그런 후 정원 한가운데 산양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호캣으로 분한 카이가 서 있었고.
카이가 지금까지 은신술을 써서 로이칸과 산양의 모습을 감추었던 것.
메헤헤헤. 산양은 무서운지 주저앉아 가늘게 울음소리를 냈다.
한두 번 일어나려고 애를 썼으나, 다시 주저앉았다.
“어딜 다친 거지? 골절인가?”
산양에게 가서 살펴보니, 앞다리가 부어 있었다.
“골절인 거 같은데?”
그런데, 녀석은 바로 옆에 있는 나와 눈을 전혀 마주치지 않았다. 처음 본 인간인데 말이다.
-산양, 너 앞이 안 보이냐?
[메헤헤헤, 응.]백내장인가?
나는 산양의 눈을 쳐다봤다. 백내장이 진행되면 하얀 수정체에 Y자가 보인다. 이걸 거꾸로 뒤집은 벤츠 마크라고도 하는데, 이 마크가 수정체 단백 경화인지, 백내장인지 간단하게 감별하는 방법으로 쓰이기도 한다.
검안경이 없이 Y자 모양을 정확하게 볼 수 있을까? 있겠지? 나는 산양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눈동자가 뿌옇지도, Y자 모양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아니, 왜 이런 게 눈 안에 있어?”
산양의 눈에 안충(눈에 기생하는 기생충)이 꿈틀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