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121)
일주일간의 스튜빌 생활이 끝난 후, 모헨 대공저로 돌아왔다.
“율리시즈 치료사님, 고생 많았습니다.”
“고생은요. 좋은 구경 많이 하고 왔는데요.”
“하하하,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니, 부탁한 이쪽이 마음이 편하군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로이튼 남작 부인의 병세가 아주 좋아졌다고요? 로이튼 남작께서 아주 흡족해 하더군요.”
“약이 잘 들었습니다.”
“호오, 율리시즈 알약이라는 걸 말하는 거죠?”
“예.”
“전담 치료사에, 힐러, 좋다고 하는 포션을 다 먹어도 낫질 않아 고생했는데, 그 율리시즈 알약이라는 게 굉장히 좋은 포션인가 봅니다.”
“제 입으로 말을 해서 그렇긴 한데, 시중에 나온 심장 포션 중에 우리 상단 거 이상으로 효과가 좋은 건 없을 겁니다.”
율리시즈 알약은 이미 엘라로투스 제국에서는 제국민 심장병 치료약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호오, 그 정돕니까?”
“효과로는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사실이니까.
“로이튼 부인의 경우만 봐도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거 같긴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포션을 아주 싼 값에 판다고 들었습니다. 보통은 그렇게 좋은 포션은 아주 비싸게 내놓는 거 아닙니까?”
묻는 모헨 대공의 표정에 의문이 깃들었다.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어째서입니까?”
“그 포션은 매일 복용해야 하는 건데, 비싸면…… 그건 안 될 말이죠.”
“하긴, 매일 먹어야 하는 게 비싸면 엄두를 못 내겠지요. 그런데, 괜찮습니까?”
“뭘 말입니까?”
“포션값 말입니다. 환자들에게는 좋지만, 판매하는 상단은 그다지 좋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포션이라는 사업이 이문이 많이 남는 장사 같지만, 속사정은 다르지 않습니까? 포션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원료도 비싸고요.”
에이, 모헨 대공님, 그런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운만 띄워 주면 득달같이 덤벼들어 밤낮을 연구소에서 지내는 숀과 도니 같은 연구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리고 싼 재료도 많고요.
바로 웜우드, 아테미사처럼 말이다.
세르만달과 계약을 끝낸 즉시, 나는 사람을 불러 광산 앞 벌판에 잡초정리를 싹 했다. 물론 잡초가 아닌, 아테미사였지만.
그게 뭔지 모르는 세르만달은 내가 젊은 치기로 거길 멋지게 꾸밀 계획이냐고 물으며 웃었다.
그가 보기에는 남에게 자랑하는 것에 치중한 놈으로 보였겠지.
그리고 베어낸 아테미사는 지금쯤 율리시즈 영지로 가고 있을 거다.
그런 사정을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기에, 나는 대공에게 그저 싱긋 웃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역시, 소문대로군요.”
“소문이요?”
“율리시즈 상단은 가문의 영달보다 제국의 부흥을 위해 애를 쓴다더니, 사실이군요. 몬스터의 습격을 받은 지역마다 율리시즈 가문에서 보급품을 보낸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짐작은 했습니다. 나라를 진정으로 위하는 가문이구나.”
와전된 소문이었지만, 굳이 정정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저런 이미지가 앞으로의 계획에 도움을 줄 것 같기도 했고.
“아, 그리고 플린 의장이 내일 들린답니다. 율리시즈 치료사가 귀국하기 전에 검사를 받아보고 싶답니다. 시간 괜찮습니까?”
“플린 의장이요?”
“예, 아무래도 로이튼 남작가를 방문한 소식을 들은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내가 로이튼 쪽으로 넘어간 게 아닌가, 확인할 생각인 것 같았다.
다음 날, 플린 의장이 검진이 끝난 후, 입을 열었다.
“우리 바인랜드 전 치료소에 이 검사 장비를 도입하고 싶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플린 의장은 바인랜드 보건국 국장. 그가 이런 제안을 해 오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책임자에게 말해 두겠습니다.”
“흠흠, 내가 좀 알아봤는데, 마벨렌이라는 걸 도입하려면 면허라는 게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마벨렌 작동 허가 면허 말씀입니까?”
“네, 흠흠. 그래서 말입니다. 율리시즈 치료사께서 시간을 좀 내 주면 안 되겠습니까?”
“무슨 시간을요?”
“여기 치료사들 사이에 마벨렌 도입에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어서 말입니다. 율리시즈 치료사가 나서면 그런 분란이 싹 가실 거 같습니다.”
요즘 앨버부르크 치료탑은 건물 한 동을 짓고 있다. 각국에서 연수를 받고 싶다고 신청하는 치료사들이 넘쳐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치료사 ‘면허 후 과정’을 새로이 만들어 거기에 마커스 솔루션 등을 넣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플린의 말은 어폐가 있다. 분명, 나와의 연을 이어 가고 싶다는 뜻일 터.
나를 이용하고 싶다는 거다.
“좋습니다.”
“역시, 젊은 사람이라 시원시원하군요. 내 조만간 연락드리리라.”
로이튼과 플린에게 내가 당신들에게 관심이 있소, 라는 느낌을 팍팍 풍겨 준 후, 나는 율리시즈 영지로 돌아왔다.
일단, 구충제 개발이 우선이니까 나는 자루 두 개를 들고 들고 연구소로 갔다. 하나는 아테미사, 또 하나는 트락슨이 든 자루였다.
만달 광산에서 보낸 물건이 여기 도착하려면 멀었기 때문이다.
“공자니임!”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도니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눈 밑이 시커멓고 눈이 퀭한 걸 보니, 얼마나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지 알 거 같았다.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숀 역시 도니와 다르지 않았다.
“아니, 몰골이 왜 이럽니까? 요즘도 연구소에서 밤을 새우십니까?”
“하하하, 연구할 게 너무 많아서 어디, 집에 들어갈 수가 있어야죠.”
찌든 몰골과는 달리, 두 사람의 눈빛만큼은 형형했다. 성과가 좋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잠시 후, 그 성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거긴 실처럼 가느다란 것이 둥둥 떠 있었다.
“이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세상에 이게 도대체 뭡니까?”
“글쎄요.”
기생충이란 거죠.
나는 말을 삼킨 후, 장비를 다시 자세히 봤다.
“이게 확대 마도구로군요.”
“주벨로 마법사는 진짜 천잽니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했는지, 아니, 생각은 공자님이 하셨다고 했나요? 어쨌든 요즘 연구할 맛이 납니다.”
도니가 주벨로에 대한 찬양을 해댔다. 하긴, 나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최대 배율이 20배.
마이크로 단위를 넘어 나노 단위를 따지는 전자현미경이 있는 세계를 경험한 나로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20배율의 확대 마도구는 혁명 그 자체였다.
이 확대 마도구에 자신이 붙은 주벨로가 연내로 40배율까지 만들어 보겠다고 했으니, 조만간 미생물 연구 붐이 일어날 거다.
그 중심에는 도니 치료사와 숀이 있을 거고.
“숀.”
“예.”
숀은 미리 준비해 놓은 포션에 아테미사를 섞은 걸 들고 왔다.
아직 완성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효과가 없지는 않을 터. 확인만 하면 된다.
숀과 도니에게 포션 사용법을 설명해 준 후, 트락슨을 들고 만달 광산에서 봤던 것을 이야기해 줬다.
“그러니까, 이거로 벌레 기피제를 만들 거라는 말씀이죠?”
“그래, 붐무제와 고형을 만들어야 할 거야.”
연구소에서 나온 나는 율리시즈 백작을 만나러 본관으로 갔다.
“아버지, 저 왔어요.”
“마커스, 고생했다.”
나를 바라보는 율리시즈 백작의 표정에는 걱정과 대견함이 서려 있었다.
나 또한 율리시즈 백작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동안 정이 쌓였는지, 백작이 이제는 가족으로 느껴졌다. 물론 말에서 뛰어내려 허겁지겁 달려오는 프레드와 제이든 형들도.
쾅!
집무실 문이 세게 열리더니, 프레드와 제이든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마커스가 왔다면서요?”
“마커스!”
“형님!”
“잘 왔다.”
“고생했다.”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 또한 율리시즈 백작과 다르지 않았다.
처음 둘을 만났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따뜻한 눈빛이 나를 감쌌다.
그래, 이게 가족이지.
나는 모처럼 마음이 꽉 차는 느낌을 받았다.
“내일이면 만달 광산에서 물건이 도착할 거다.”
“위블에서 출발한 수송팀들은 모레 저녁이면 도착한다더라.”
“고마워요, 형님들.”
“고맙긴, 다 네가 만든 수송팀인데.”
위블에 있었을 때, 율리시즈 백작과 검은 상단의 토드 두스카에게 연락했었다.
아무래도 우리 상단만으로는 위블에 거리의 동물들을 수송하기에는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달 광산에서 거둬들인 아테미사, 트락슨, 그리고 약간의 암염까지도 같은 방법을 취했다.
잠시 힐링의 시간을 가진 나는 이곳에 온 또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제피크 마법사들은요?”
* * *
쿵, 덜컹.
육중한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마커스였다.
그 모습을 본 블록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하, 잘난 놈이 납셨네.”
“잘 지냈나 봐. 그렇게 인사를 할 여유도 있고.”
“뭐야? 잘 지내다니! 누구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됐는데!”
마커스의 비꼬는 말에 블록이 화를 버럭 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옆에 앉아 있던 세니아가 블록을 노려봤다.
‘누구 때문이긴, 당신 때문이지. 그때, 당신이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면 잡히지도 않았을 거야.’
그리고 옆에서 두 사람을 쳐다보는 칼레이 역시 두 사람을 원망하고 있었다.
‘어휴,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러게 반장님은 왜 두 사람을 함께 보낸 거야. 차라리 한 명만 보냈다면 이 꼴은 안 났을 거 아니야! 아니야, 저놈 때문이야. 저놈이 조금만 신중했다면 성공했을 텐데.’
원망의 화살이 자신에게 향해 있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블록이 마커스에게 물었다.
“그래, 잘난 양반, 우릴 왜 불렀냐!”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볼까 해서.”
“뭐야!”
“워워, 너무 그렇게 화를 내지 말라고. 듣자 하니 세 사람 다 상당히 촉망받는 마법사라면서?”
“흥, 이제 알았냐! 내가 이 구속구만 없다면 네놈은 이미 제 세상 사람일 거다.”
“어, 음.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그거 없지 않았냐?”
“이 자식이!”
블록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때, 냉랭하고도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릴 이렇게 모이게 한 건 화를 돋우기 위해서가 아닌 거 같은데요? 원하는 게 뭐예요?”
마커스는 빙그레 웃으며 세니아의 질문과 상관없는 말을 늘어놨다.
“여기서 하루 종일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거, 심심하지 않아? 보던 책과 하던 연구가 그립지 않아? 아, 천재들이라서 상관 없으려냐? 그냥 생각만 하면 머릿속에 다 떠오를 테니까.”
세 사람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연구를 이어나가지 못한다는 게 갇혀 있다는 사실보다 더 괴로웠기 때문이다.
“드로튼 백작을 알고 있나?”
“드로튼? 헤렌제 왕국 백작을 말하는 건가?”
지금까지 고개를 떨구고 있던 칼레이가 마커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그자는 왜?”
반문은 블록의 입에서 나왔다, 그런데 블록은 드로튼을 백작님도 아니고 그분도 아닌, 그자라고 지칭했다.
“뭐, 차기 제피크 마탑의 이사장을 맡는다는 소문이 들리길래, 물어본 거야.”
“뭐라고? 드로튼이!”
“모헨 대공님은요?”
블록과 세니아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글쎄. 모헨 대공이 조금 난처한 입장인 거 같더라고. 아마 네놈들도 그 난처한 입장에 한몫했을 거고.”
* * *
나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에 내가 빌리드 공국에 다녀왔거든?”
“뭐야?”
“모헨 대공의 초청을 받아 갔지. 라일라 공녀가 좀 아팠거든.”
“고, 공녀님은 괜찮은가?”
불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확실히 모헨 대공은 제피크 마탑의 마법사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군.
레가시와 우디올에게 조사를 바탕으로 한 추측이 지금 반응과 일치했다.
바즐리 마법사같이 예외도 있지만, 제피크 마탑 출신 마법사 중 대부분이 헤렌제 출신 흑마법사들과 척을 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 중심에는 드로튼 백작이 있었고.
“내가 갔으니 당연한 거고, 그건 그런데, 그거 알고 있나? 데빌트릭스.”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나를 노려보는 세 사람의 표정이 험상궂게 변했다.
“설마, 모헨 대공님을 협박한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나는 네놈 같지 않아서, 평화주의거든.”
“흥,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무슨 소리. 당신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거 보면 모르겠어?”
“그건 당신네들이 우리가 필요한 거겠죠.”
“잘 아네. 데빌트릭스가 실패했거든. 그래서 모헨 대공이 책임추궁을 받고 있지.”
“뭐? 실패했다고요? 그럴 리가 없는데.”
지금까지 차분함을 유지하던 세니아가 갑자기 흥분했다.
“뭐, 그건 그렇게 됐다. 그래서 말인데, 너희들이 존경하는 모헨 대공이 실패하고, 드로튼 백작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 거 같냐?”
“이익!”
“그건 안 될 말이에요.”
“그자는 우리 대공 전하를 죽일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나와 거래를 하지 않을래?”
내 말에 세 사람의 이목이 순식간에 집중됐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날 도와주면 모헨 대공은 내가 책임지고 구해 주지.”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눈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런 후, 칼레이가 입을 열었다.
“잠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 만약, 나를 도와준다면 너희들의 연구를 지원해 주지. 그렇다고 풀어 준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감방을 나오면서 확신했다.
저들이 이제 내 수족이 될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