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123)
* * *
“내 잠시 다녀오리라.”
올보그 황제는 연락실로 자리를 옮겨, 통신구에 대고 말했다.
“오랜만이군요. 키드리히 국왕.”
=엘라로투스의 태양, 올보그 황제 폐하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명백한 군신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인사말이 잠시 오간 후, 헤렌제 왕국의 키드리히 국왕이 용건을 말했다.
=최근 케일런 영지 일대에 기이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어떤 일입니까?”
=다름이 아니라, 사람은 물론이고 동물들이 갑자기 실명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호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저 역시 보고를 받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크흐흠. 그러셨겠습니다. 그런 긴급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알려 주다니 고맙군요.”
사실 엘라로투스 제국과 헤렌제 왕국은 이렇다 할 정식 교류가 없는 상황. 더욱이 얼마 전, 카우덴 광산 사건으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빈말이라도 좋다고 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적국이라 여겨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최근 들어 헤렌제 왕국이 섬기는 롤린스 제국과 엘라로투스 제국 간의 교류가 활발해졌기 때문에 헤렌제 왕국에서는 엘라로투스 제국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엘라로투스 제국은 명실상부한 대륙 최강국이 아닌가.
‘드디어 고개를 숙일 생각을 했군.’
올보그 황제는 작금의 상황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키드리히 국왕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현 케일런 영지 상황은 우리 왕국의 능력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여, 대제국인 엘라로투스 제국, 황제 폐하께 도움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도움?”
=예, 폐하의 제국의 방역 수준이 대륙 최고가 아닙니까? 자칫 병마가 다른 나라로 번지기 전에 부디…….
“검토해 보고 연락을 주겠소.”
통화를 끝내고 집무실로 복귀한 올보그 황제는 방금 통신구를 통해 들었던 내용을 대신들에게 알렸다.
“지금 헤렌제 왕국의 상황이 그렇다고 하더군요.”
“위블과 같은 상황이라는 거네요.”
마커스는 담담한 표정으로 되물었고.
“율리시즈 대장에게 위블 소식을 미리 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헤렌제 왕국 소식을 접했다면, 저 역시 저주가 내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킬리안 황태자는 숨을 크게 들이쉰 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 구충제라는 포션, 한시라도 빨리 완성을 해야겠습니다. 우리 제국에도 언제 이 일이 터질지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아니, 어쩌면 이미 감염자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율리시즈 대장.”
“예.”
“잠복기가 얼마나 된다고 했죠?”
“짧으면 석 달, 길면 몇 년씩도 걸리긴 하는데, 정확하게 알아낼 방법이 아직 없습니다. 마기를 사용해서 잠복기를 당길 수도 있으니까요.”
“후우, 제국민들에게 소독과 방역을 빨리 시행을 해야겠군요.”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는 볼프 탑주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그때, 마커스가 입을 열어 황제에게 물었다.
“그쪽에서는 제가 와 주길 바란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쪽에서 콕 집어 말하더군요.”
헤렌제 왕은 단도직입적으로 올보그 황제에게 마커스를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그에 따른 보상을 충분히 하겠다고 말했지만, 올보그 황제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물론 일국의 왕의 요구에 바로 대답하는 것도 위엄이 안 살긴 하지만, 그것보다 올보그 황제가 주저한 건 그게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마커스에게 황제가 바로 명령을 내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 상황이 달라졌다.
명령이 아닌, 권유 내지는 협조 요청을 해야 하는 상황.
그만큼 마커스의 위상이 대단해진 거다.
* * *
올보그 황제가 자리를 비우자, 다들 한숨을 내쉬며 앞날을 걱정했다.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지도를 보고 있는 지로드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그 무인도라는 피니에르 섬에 관해 조금 더 들을 수 있습니까?”
“어떤 걸 말입니까?”
“그냥 전부 다요. 만약에 우리가 봤던 안충 때문에 그 섬이 망했다면, 다른 지역도 분명 감염 환자가 있을 거예요. 그게 이어졌다가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로군요.”
볼프 탑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헌에 의하면 옛날 피니에르 섬은 이 세 개의 섬과 걸어다닐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고 하더군요. 썰물 때는 진짜로 걸어 다녔다는 기록이 있었으니까.”
저주를 받은 곳은 그곳 한 군데 뿐이니, 다른 곳 주민들은 저주받은 피니에르 섬을 철저하게 고립시켰다.
눈도 먼 사람들이 조업도 못 하고 농사를 짓지도 못하는 상황.
결국은 섬 안의 생명체 모두가 죽었다.
그런데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전염병이 돌았거나, 저주를 받았다고 해도 살아남은 자가 한둘은 있지 않았을까? 심지어 동물들도 그렇다. 생명력인 강한 동물들이 있었을 터.
그래서 다른 곳으로 이주한 케이스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다른 지역으로 더 번지지 않았을까? 기생충이란 놈들은 감염력이 아주 강한데 말이지.
가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가겠습니다.”
“오, 정말입니까?”
“예, 헤렌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제국을 위해서 갈 생각입니다.”
나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황제가 말을 덧붙였다.
“율리시즈 대장이 있어서 정말 든든합니다. 허나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갈 때, 클린 마법 스크롤을 잔뜩 챙겨 가야죠.”
“그거야 당연한 일이고, 율리시즈 대장.”
“말씀하십시오.”
“내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는데, 그 현장 말입니다.”
나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황제를 바라봤다.
“그 땅이 바로 드로튼 백작 영지라는 게 영 찝찝하군요.”
“드로튼 백작이요? 앞으로 제피크 마탑 수장이 될 거라는 그 드로튼 백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나는 부담 없이 물었다. 그랬더니,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땅은 대대로 드로튼의 땅이었습니다.”
“그럼 혹시, 피니에르 섬도 드로튼 백작가 땅입니까? 지도를 보니, 케일런과 아주 가까운 것 같던데요.”
“맞습니다. 여기 이 실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전부 드로튼 백작가 소유입니다.”
“휘유, 굉장한데요?”
“드로튼 백작, 저력 있는 자입니다.”
얕보지 말라는 뜻이겠지.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폐하.”
“말씀하시지요.”
“방역 대원들의 수장으로 슈미트 교수님을 모시고 가도 되겠습니까? 볼프 탑주께서는 우리 제국의 방역을 맡아야 하실 테니까요.”
내 말에 볼프 탑주와 올보그 황제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홍보를 위해서는 볼프 탑주만 한 이는 없다. 제국을 넘어 대륙의 최고 치료사이니까.
이번 방역은 제국민 설득도 힘들겠지만, 치료사들 설득도 만만치 않을 터. 볼프 탑주가 나서 준다면 보다 빨리 홍보가 될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지로드 교수께서도 함께 가면 좋겠습니다.”
“흠, 그 말은 유혈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거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만일을 대비하는 거죠.”
“좋습니다. 정예부대를 꾸려 따라나서겠습니다.”
지로드 교수가 흔쾌히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황태자.”
“예, 아바마마.”
“황태자에게 방역 전권을 주겠다. 황태자는 볼프 탑주와 함께 방역에 힘을 쓰라. 율리시즈 연구소에서 만들고 있는 구충포션도 한시라도 빨리 만들고.”
“명심하겠습니다.”
* * *
서류상으로는 나는 방역팀과 함께 마차로 출발한다. 하여 일주일 정도, 여유가 생긴 셈이다.
나는 일단 앨버부르크로 날아갔다.
세이건에게 지시를 내려야 할 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거 도대체 얼마만이야? 너무 오랜만에 왔더니, 길도 모르겠군. 크헤헤헤.] [킁킁킁, 벌써 냄새가 난다. 크헷, 분명 바비큐일 거다. 야. 마커스. 바비큐 왕창 사라. 알겠지?]팅거와 카이가 성화를 해댔다. 팅거가 갑자기 아투벡 쿠키가 먹고 싶다고 말하니, 로이칸이 아투벡 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거기 돼지 통구이가 맛있었다나.
그걸 들을 카이가 떼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은 왜 그걸 못 먹어 봤냐면서. 꼭 먹어야겠다고.
그걸 안 먹으면 기운이 없어서 마나를 못 쓸 거라나.
은신 유지 능력을 들먹이며 딜을 해 온 것.
어차피 비상식량도 준비해야 하는 나는 아투벡에서 세이건과 헤인켈을 만났다.
“그러니까 정…… 뭐라고요?”
“정수기”
“그 정수기라는 걸 로나인 영지에 설치하라고요?”
“그래, 할 수 있는 최대로.”
“허, 로나인 전부에요?”
“헤인켈과 고생 좀 해. 내가 형님들에게 부탁해 놨으니까 이글나이트 수송팀과 함께 일을 하면 생각만큼 힘들지 않을 거야.”
“그, 그런데요, 공자님. 그 뭐시기냐. 그 판테라놈들이 절 죽이진 않겠죠?”
“걔들은 배만 안 고프면 절대로 공격하지 않아. 걱정하지 마.”
탄을 비롯해 대표 몬스터들에게 연락을 돌린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나저나, 그 녀석들에게 큰 피해가 없어야 할 텐데.
다음 날, 나는 헤렌제 왕국으로 넘어갔다.
“아니 이건 위블에 온 것 같잖아?”
이게 바로 케일런 영지에 도착한 첫 소감이었다.
위블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낮이라 그런지, 주민들이 거리에 많이 보인다는 거.
그러나 대부분은 벽이나 울타리를 의지해 걸어 다니고 있었다.
눈이 안 보이거나, 침침하다는 뜻일 터.
“진짜 심각하군.”
아주 간단하게 도시를 망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런 게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니.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쉰 후, 주변을 둘러봤다.
바닷가라 그런지, 사람들의 피부가 대부분 구릿빛이었다.
나는 여기 사람들처럼 머리카락과 피부색을 바꾼 후,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카이, 클린 마법을 걸어 줘.
[왜?]-내가 여기 왜 왔는지 알면서 묻냐?
[넌 괜찮아. 저런 거 안 걸려.]-그래도. 만에 하나 내가 저런 병에 걸려 죽으면 어떡할래?
[흥, 넌 안 죽는다. 아니, 죽으면 안 된다.]짜식, 그래도 정은 있는 녀석이네. 틱틱 거렸지만, 카이 녀석도 팅거처럼 속은 따뜻한 녀석이었다.
나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녀석을 바라봤다. 카이는 지금 너구리로 변신해, 내 어깨 위에 앉아 있다.
이런 곳에서 하얀색 호캣은 너무 눈에 띈다나 어쩐다나.
[맞아, 마커스는 죽으면 안 돼.]역시 팅거야. 내 생각과 같았군. 앞에서 날아가던 팅거가 카이 옆으로 날아오며 말했다.
[그렇지. 얘가 죽으면 바비큐는 누가 사 주냐? 그거 진짜 맛있던데.]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야. 마커스.]-아, 왜!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돌아갈 때, 아투벡 들렀다 갈 거지?]-몰라.
[참나, 성질머리 하곤.] [네가 참아. 쟤가 좀 그렇지.]두 녀석이 나를 쳐다보며 구시렁거렸다.
뭐라고 한마디 할까 입을 여는데.
꽝!
갑자기 저기 앞에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쳐다봤다.
그때, 다시 한번 꽝 소리가 났다. 그런데 그 소리는 바로…….
[사람?] [힝! 너, 너무해. 사람이 터져 버렸어.]팅거와 벨라가 말했던 것처럼 사람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