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124)
사람이 터졌다.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폭탄이 터지듯 폭발한 거다.
사방으로 튕겨 나간 핏덩이가 길바닥에 툭툭, 떨어지는 장면에 놀란 나는 소리를 지를 새도 없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타닥탁탁탁.
나는 뛰어가면서 애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너희들 무슨 소리 들은 거 있어?
[무슨 소리?]-폭탄이 날아가는 소리나, 바닥이나 건물 같은 것에 떨어지면서 터지는 소리 같은 거 말이야.
내 귀엔 안 들렸거든. 혹시 귀에 문제가 생겼나? 아니면 그동안 감각이 떨어지기라고 했나?
[못 들었는데?] [나도.] [아무 소리도 안 났다. 그냥 저 ‘꽝’ 소리 외엔.]근처 야산에서 오랜 시간 비행으로 인한 피로를 풀고 있는 로이칸을 제외한 팅거, 벨라, 카이가 동시에 대답했다.
-다들 나처럼 못 들었단 말이지? 그럼 저건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몰라!] [나도 궁금행.]-혹시 그거 아냐?
[뭐?]-그때, 바트롱가 광장에서 봤던 그 나비 폭탄 같은 거.
[그건 아니야.]팅거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랬다면 내가 알았겠지.]-하긴,
그때, 녀석이 내게 조심하라며 주의를 줬었다. 그렇다면 그건 제외. 그럼 뭐지?
소리도 없이, 마나도 없이 폭발하는 게 뭐가 있을까? 뭘까?
머리를 끊임없이 굴리면서 현장에 도착했다.
그때였다.
펑!
귓고막이 얼얼할 정도의 폭음과 함께 말 한 마리가 하늘 위로 날아갔다. 정확하게는 말이 갈기갈기 찢긴 파편들이.
툭! 투두둑.
제일 먼저 핏덩어리가 된 말머리가 바닥에 툭 떨어지더니, 이어서 갈기갈기 찢어진 핏덩이들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이런 젠장!”
또다시 일어난 폭발.
핏방울을 흩날리며 떨어지는 덩어리를 노려보며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지금까지 많은 죽음을 목도했다. 내가 직접 몬스터를 때려잡기도 했었고. 마법 폭탄으로 사람과 몬스터가 죽는 광경을 지켜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놀란 적은 없었다.
이건 창이나, 화살, 폭탄 같은 외부 공격으로 인한 죽음이 아니었다.
그냥 터져 죽은 거다.
[으헉!] [힝, 어떡해, 어떡해.]현장으로 날아가던 팅거와 벨라도 너무 놀랐는지 비명을 내질렀다.
[내가 지금 본 게 뭐지? 저 생명체들이 왜 스스로 터져 죽은 건가?]-나도 모르겠다.
[흠!]카이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내 어깨 위에 서서 발톱을 잔뜩 세운 채 현장을 응시했다.
“으아아아아!”
“꺄아악!”
“무, 무슨 일이야?”
“으으으.”
느닷없이 들려온 우레와 같은 소리, 진동하는 피비린내. 아우성치는 사람들.
거리는 순식간에 공포에 잠식됐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두 눈으로 지켜본 내가 이렇게 어이가 없는데, 저 사람들의 저런 행동은 너무나 당연했다.
“이거 잘못하다가는 큰 사고가 나겠는데.”
도시 경비병들이 나타나서 상황을 정리하는 걸 기다리기에는 긴박한 상황. 그리고 그 관리들도 상태가 멀쩡하다는 보장도 없고.
나는 상태창에서 획득한 통솔력을 발휘했다.
“다들 진정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으라.”
통솔력의 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런 후, 핏덩어리가 떨어진 현장에 발을 디디면서 동물들에게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단 흔적부터.”
나는 최대한 감각을 끌어올려 주변을 훑었다.
마나를 탐지해 봤으나, 팅거, 벨라, 카이가 내뿜는 마나를 제외하고는 미미했다. 이 정도는 야외 어디서든 느껴지는 수준.
“그럼 마기를 한번 살펴볼까?”
나는 몸 안에 축적된 신성력을 끌어올려 주변에 마기가 깔려있는지 확인했다.
미약하게나마 마기가 감지되기는 했다.
“평범한 거 같은데?”
이 정도는 마기는 최근 들어 웬만한 곳에서는 감지되는 수준이라 넘어가…….
똑.
무언가가 내 머리 위에 떨어졌다. 뭐지?
“이건?”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니, 나뭇가지에 핏덩어리가 엉켜 있었는데, 거기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사람이 폭발할 때, 파편이 저 나뭇가지에 걸린 모양이다.
후웅.
나는 점프해서 나무에 걸린 다리를 잡아 내렸다.
뭔가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피범벅이 된 다리를 살피던 나는 방금 지나친 부분을 다시 더듬어 올라가 매만졌다. 손에 느껴지는 촉감이 다른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 여긴 뭐지? 누가 물었나?”
나는 카이에게 말했다.
-카이, 여기에 클린 마법을 걸어 줘.
[알았다.]핏덩어리에 보라색 빛이 맴돌더니,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나는 손으로 살살 덩어리를 만져 조금 전에 이상하다 여겨졌던 부분을 찾았다.
“여기다.”
그곳엔 아주 조그맣게 구멍이 나 있었다. 만약 이 다리를 손으로 만져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거다.
며칠 전 우디올로부터 연락이 와서 헤렌제 왕국의 케일런에 간다면 암염산 벌레를 대비해야 한다고 했었다.
추가로 드로튼 백작을 조심하라는 말까지.
“그 말이 사실이었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내 피부가 코먼호크처럼 단단하다고는 해도, 벌레에 안 물린다는 보장은 못 하니까.
하여 나는 만달광산에서 광부들이 했던 대로, 트락슨과 소금을 섞은 것을 온몸에 바르고 왔다. 물론 광부들처럼 신발에도 깔창처럼 얇게 바른 상태.
“세르만달 광산에 가 보길 정말 잘했군.”
만약, 거길 가지 않았다면 암염산 벌레는 물론이고, 그놈들의 기피제도 알지 못했을 거니까.
“역시 정보가 자산이라니까.”
* * *
마커스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 시각, 케일런 연구소는 살얼음판 그 자체였다.
“이오드 소장, 다시 한번 말해 보겠소?”
“그, 그게 연구를 받고 있던 실명 환자들이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무슨 사고지?”
“예, 실명 환자들이 연구소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는데, 하필이면 폭탄을 가지고 나가서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흠, 실명 환자가?”
드로튼 백작이 좌중을 한번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만약, 당신들이 앞이 보이지 않소. 그런 상황에서 삼엄한 보안을 뚫고 연구소 밖을 나갈 수 있겠소? 그 보안, 당신들이 고안한 거로 알고 있소만.”
“…….”
이오드 연구소장을 비롯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연구원 다섯 명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고개를 숙였다.
“왜 다들 아무 말도 없는 거요? 소장.”
이오드 소장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검사를 받으러 온 영지민들이 연구소를 드나들다 보니, 보안을 잠시 소홀히 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더 철저히 했어야지, 보안의 허술로 인해 자식 같은 내 영지민들이 죽었소. 그걸 어떻게 책임을 질 생각이오?”
“죄송합니다.”
“이 연구소에 마법사가 몇인데, 사람 통제도 제대로 못 하다니. 그따위 쓰레기 같은 실력으로 뭘 하겠다고, 쯧.”
드로튼 백작의 핀잔에 이오드 소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드로튼 백작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들은 케일런 연구소의 정예 멤버. 헤렌제 왕국의 손에 꼽는 흑마법사들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직접 설계한 보안을 뚫고 탈출한 실험체는 쥐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그들은 이것을 자랑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드로튼 백작의 명령으로 깨진 것.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자존심이 상했다.
내일이면 당장, 일간지에 자신들을 비난하는 기사가 실릴 거니까.
그런데 뭐? 쓰레기?
‘아무리 백작이지만, 이건 절대로 묵과할 수 없다.’
이 순간, 드로튼 백작은 몰랐다.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이 자리의 흑마법사들이 분노했다는 것을.
드로튼 백작은 연구소에 있는 실험체 서른 명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확실한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드로튼 백작은 명령을 내렸다.
일반 영지민들을 실험체로 삼으라고.
이오드 소장을 비롯한 연구원들은 당연히 반대했다.
그들이 행하고 있는 연구는 너무나도 위험한 것이었기에.
드로튼 백작은 사람을 시켜 우물이나 개울에 안충을 풀어 사람을 인위적으로 눈을 멀게 했다. 그것도 자신의 영지민을.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을 인간 병기로 만들 것을 지시했다. 몸에 마법폭탄을 설치하고, 원하는 때에 폭발시키는.
그런데 쉽지 않았다. 몸에 장착하면 눈치챈 실험체들이 떼버리기 일쑤.
하여 몸속에 장착할 계획을 세운 것.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암염산 벌레를 이용하기로 한 것.
암염산 벌레가 피부를 뚫고 들어갈 때, 통증 억제 물질을 분비한다. 피부가 뚫릴 때, 아프면 사람이나 동물이 바로 눈치채고 벌레를 때려잡을 거니까.
그런 성질을 이용해 암염산 벌레에게 아주 작은 폭탄을 장착했다.
성능은 우수했다.
근처 3m 내에 있으면 가뿐하게 함께 죽어 버린다. 운이 좋으면 5m까지 효과가 있었다.
소규모 인원 살상용으로 아주 좋았다. 만약, 더 큰 효과를 내기 위해선 인간 병기를 한 자리에 여러 명 모아놓으면 된다.
영지민들을 희생시키는 미친 계획이었지만, 드로튼 백작에겐 감흥도 없었다.
눈앞에 있는 연구원들도 그에겐 소모품에 불과했으니, 영지민들은 오죽할까.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어. 이대로 진행만 된다면 아주 쓸모 있는 무기가 될 것이야.’
조금 전 사고를 가장한 실험현장을 생각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드로튼 백작. 그를 지켜보는 아이반은 혀를 내둘렀다.
‘세간의 눈을 피하고자 이런 연극까지 하다니, 참으로 주도면밀한 자다.’
연구소가 아닌 거리에서 실시한 실제 폭발 실험은 숨길 수 없다. 그렇다면 사고로 만들자, 드로튼 백작은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
이 상황은 사고로 포장되기 위한 연기였던 것.
케일런 연구소는 대외적으로는 화염 마법을 막는 방패를 개발하는 연구소다.
그러니, 폭발 사고가 그리 드물 일도 아니다.
이번 사고도 그런 일련의 사고로 보도가 나갈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이 연구는 아직은 세간에 알려져서는 절대로 안 되니까.
* * *
시간이 흘러 엘라로투스 제국에서 지원군이 도착했다.
나는 케일런에서 마차로 반나절 떨어진 도시에서 그들과 접선했다.
슈미트 교수와 지로드 교수를 필두로 총 50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지원군이.
25명의 치료사와 5명의 힐러. 그를 돕는 기사와 병사들로 구성되었다.
치료사들은 대부분 전투치료사들이었고, 나머지는 피닉스 기사단과 지로드 교수의 수하에 있는 마법전투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 반가운 얼굴도 보였다. 월트 도니홀.
전투치료사로 합류한 월트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슈미트 교수가 기다란 물통 하나를 손에 들고 물었다.
“이게 바로 정수기라는 겁니까?”
“예.”
자루 안에는 오킬즈와 롤랑 영감님이 만들고 샤렌 마법사가 클린 마법진을 각인한 휴대용 정수기가 들어 있었다.
“물은 꼭 여기에 담았다가 마셔야 할 것입니다.”
“혹시 단체로 뭔가를 먹어야 할 때는 어떡합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기 클린 마법 스크롤이 있으니, 그걸 쓰면 됩니다.”
카이에게 만찬 같은 게 잡히면 클린 마법을 해 줄 것을 부탁해 놓은 상황. 안충은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암염산 벌레와 폭발에 대한 연관성을 못 찾아서 그렇지.
지로드 교수, 슈미트 교수와 나는 케일런에 도착할 때까지 마차 안에서 작전을 짰다.
“어서 오십시오. 귀한 분들이 이렇게 먼 곳까지 와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드로튼 백작이 침통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심려가 크겠습니다.”
슈미트 교수가 대표로 드로튼 백작에게 작금의 상황을 위로했다.
“후우, 선량한 영지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생각에 한숨만 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저주를 받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주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적당한 인사가 오간 후, 여기 관리들을 소개받았다. 사무관부터 치료사, 심지어 마법사들까지.
간단한 소개 인사가 끝난 후, 우리는 상황을 보고받았다.
상황 보고에는 사람과 몇몇 동물들이 폭발했다는 내용은 단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왜, 왜. 사람이 폭발하고 말이 날아간 사건은 말을 안 해?]몸을 숨긴 채, 내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카이가 소리쳤다.
-글쎄, 숨기고 싶은 거겠지.
[쳇, 이상하다. 수상하다.]카이는 연신 수상하다. 이상하다는 말을 해대더니 끝내 기분 나쁜 냄새가 진동해서 못 참겠다는 말을 하며 툴툴거렸다.
아무래도 마기 때문인 거 같다.
드로튼 백작가 별장이라는 이곳은 곳곳에 마기가 깔려 있으니까.
[어? 야. 마커스!]-왜?
[무슨 냄새 안 나?]-글쎄 잘 못 느끼겠는데.
내 코가 너처럼 뛰어난 건 아니라서 말이지.
[신기하네. 이런 쓰레기더미 같은 곳에서 좋은 냄새가 나다니.]카이는 그렇게 말하곤 폴짝, 내 어깨에서 내려와 어디론가 도도도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