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126)
“응?”
마력차폐석, 그리고 또 하나의 상자.
그 상자 안에 들어 있던 돌 조각을 본 카이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한 표정으로 상자 안의 물건을 쓰다듬었다.
마나가 뿜어져 나오는 조각은 은은한 빛까지 뿜어내고 있었다.
-야, 카이. 이게 뭐냐? 뭐길래 네가 그렇게 좋아하냐?
[모르는데? 그냥 좋은데?]하여간에 이놈이나 팅거 놈이나. 만약 벨라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줬을 텐데. 이럴 땐 벨라의 부재가 아쉽다.
그때였다. 카이가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가게?
[응, 볼일 다 봤으니, 나가야지.]대답하는 카이의 앞발에는 상자에서 꺼낸 조각이 들려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조각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거 갖고 나가게?
[당연하지.]당당하게 대답하는 카이에게 시선을 돌려 상자를 찾은 곳을 쳐다봤다.
거기엔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 있었다.
선조 때부터 내려오는 골동품이어서 버리기엔 찝찝하지만, 그렇다고 보물로 취급하기에는 좀 그런? 것들을 모아 놓은 느낌이다.
어쩌면 이방에 이 상자가 있었다는 걸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네가 좋다니까…… 그래, 그러자.
[에헤헤헤.]-대신 여기에 넣어서 나가자.
[왜?]상자에 다시 집어넣는 게 싫은지, 카이는 도자기인지 타일인지 모를 조각 파편을 손에 꼭 쥐며 물었다.
-그걸 그냥 가지고 나갔다간 저 위에 있는 마법사들에게 뺏길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알지? 마법사들이 마나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감히 마법사 따위가 나, 카이님의 물건에 손을 댈 수 없다!]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카이는 순순히 조각을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그게 왜 그렇게 좋은데?
[몰라. 이걸 보니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데? 마나도 아주 기분 좋게 살랑거리고 신성력도 시원하게 느껴지고, 딱 좋아.]-신성력?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마나는 감지가 되었지만 신성력은 전혀 못 느꼈으니까.
하긴 쥐꼬리만큼 있는 신성력으로 내가 뭘 느낄 수 있겠냐만은.
-진짜로 신성력이 깃든 물건이라고?
[그렇다니까. 마커스 나 이거로 목걸이 만들어 주라.]카이는 이게 진짜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알았어.
나는 마나와 신성력이 깃든, 이건 어디까지나 카이의 주장이다, 조각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밖으로 나갔다.
“마커스. 슈미트 교수님이 찾으셔.”
“알았어.”
월트를 따라 슈미트 교수에게 가니, 드로튼 백작이 앉아 있었다.
* * *
한창 대륙 전반에 걸친 문제들에 관한 주제로 대화가 오가던 중, 드로튼 백작이 화제를 전환했다.
“아크리스 왕국에서 율리시즈 대장이 행했던 활약은 그야말로 영웅전 그 자체더군요. 그토록 젊은 청년이 한 나라를 구해 내다니. 일간지에 실린 기사를 읽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더군요.”
“옆에서 보고 있어도 마찬가집니다. 율리시즈 대장은 우리 범인들과 생각 자체가 다른 사람이지요.”
슈미트 교수가 드로튼 백작의 말을 받으며 허허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우리 치료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치료의 역사는 마커스 율리시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누가 방역이란 걸 떠올렸으며, 누가 살아 있는 사람의 배를 갈라 치료할 생각을 했단 말입니까?”
“그건 그렇군요.”
슈미트 교수가 마커스솔루션을 대화에 올리자, 드로튼 백작은 생각했다.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인간병기는 진즉 개발이 되었을 건데, 아깝군.’
암염산 벌레를 이용해서 폭발물을 사람의 몸속에 심으려고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던가.
“우리 케일런에서도 아크리스 왕국과 같은 기적이 일어나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드로튼 백작의 걱정을 들으며 슈미트 교수는 주변을 둘러봤다. 식사는 이미 끝난 상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 것 같았다.
“이제 앞으로 일정을 의논합시다.”
* * *
우리는 다음 날 아침부터 조사에 착수했다.
“흙, 식수, 음식 등 모든 것이 다 조사 범주에 들어갑니다. 여기 이 통에 시료를 담아 오시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환자들은 따로 검사할 겁니다.”
“영지민들을 광장에 집합시킬까요?”
벤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모읍니까? 조사원들이 방문할 겁니다.
“조사원, 알겠습니다.”
나는 드로튼 백작에게 우리를 도와줄 조사원을 요청했다.
조금 전 조사원들에게 질문지와 샘플 담을 봉투를 나눠 줬다.
검사할 것들을 거둬들이면서 역학 조사까지 같이 행할 계획이다.
질문을 통해 어디서 옮았는지, 언제 증상이 나타났는지 등등.
잠복기를 아직 모르는 상황에서는 이렇게 유추를 해 나갈 수밖에 없다.
질문지를 훑어보던 벤덴이 말했다.
“저, 치료사님들. 치료소에서 진료하는 것도 아닌데 질문지는 생략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들도 환자들입니다.”
슈미트 교수는 벤덴의 말을 일축하자. 벤덴은 고개를 숙이며 조사원들에게 가면서 혼잣말을 했다.
“한낱 영지민들에게도 진료를 정석대로 하실 생각이시다니, 대단하신 분들이다.”
질문지를 진료의 연장으로만 생각하는 벤덴을 보며 나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이걸 보고 역학 조사를 떠올릴 사람은 없겠지.
만약, 있다면 드로튼 백작이 우릴 죽이려고 들 테니까.
“자 이제 현장으로 나가 봅시다.”
슈미트 교수를 필두로 우리는 챙겨온 왕진 가방을 들고 현장으로 나갔다.
월트와 나는 한 조가 되어 돌아다녔는데, 방금 검사한 영지민 집 밖에서 월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 답답하다. 어떻게 눈에…….”
“그래도 다행인 건 시력은 남아 있었잖아.”
“그래, 그건 다행이었어.”
시력이 남아 있다곤 해도, 통증과 가려움으로 정상 생활을 할 수가 없을 거다.
검사를 하는 내내 안충 감염자들은 몸을 비틀고 있고, 입에선 쉼 없이 신음이 흘러나왔다.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조사 첫날 밤, 슈미트 교수가 한탄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하더군요. 그나마 율리시즈 대장이 만든 구충제를 먹여서 안심되긴 했지만요.”
“몇 번 더 먹어야 할 겁니다.”
숀과 도니는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구충제를 잽싸게 만들어 애틀리스로 보냈고 그걸 지로드 교수팀이 받아서 여기로 가지고 왔다.
우리는 그걸 검사를 하기 위한 과정이라 말하고 사람들에게 먹였다.
“그거라도 어딥니까? 내가 치료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여길 그냥 놔뒀다간 조만간 제2의 피니에르 섬처럼 될 것 같더이다.”
“멸망할 것 같다 그 말씀이죠?”
“그렇습니다. 여기가 어디 사람이 사는 마을 같습니까? 저런 영지민들을 두고 어떻게 호의호식하는지. 나 원 참.”
지로드 교수가 드로튼 백작과 그 일당을 비난했다.
“저도 지금 당장 여기 영지민들과 동물들에게 적극적인 치료를 하고 싶습니다. 구충제를 먹는다고 눈에 돌아다니는 안충이 저절로 빠지진 않으니까요.”
반드시 직접 뽑아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실명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치료도 중요하지만, 드로튼 백작의 생각이 뭔지 알아내는 게 급선무입니다. 지금 당장 치료해 나간다고 해도, 또다시 감염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당분간은 환자들에게 구충제를 복용케 하는 것에 집중해야죠. 그게 우리 목적이기도 하고요.”
“그럽시다. 그리고 이거.”
슈미트 교수가 내게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율리시즈 대장이 말했던 환자들입니다.”
나는 조사원들에게 몸에 상처가 난 환자들은 따로 체크해 놓으라고 지시했다. 슈미트 교수는 그 환자들을 말하는 거다.
“흠, 이십 명이군요.”
“내일은 더 나올 테지요.”
내가 우리 방역팀이 가가호호 방문해야 한다고 주장했건 건 이것 때문이었다.
벌레에게 물린 것처럼 보이는 상처, 몸에 그게 있는 환자들에게 상황을 이야기 듣기 위해서였다.
“이 사람들 공통점이 있네요.”
“뭡니까?”
“다들 드로튼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쓰여 있네요.”
“드로튼 백작 소유겠죠?”
“그렇겠죠.”
나와 슈미트 교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지로드 교수가 입을 열었다.
“만약에 드로튼 백작이 이 두 가지의 병을 다 퍼뜨렸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오. 어떻게 자신의 영지민들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도 의문입니다.”
“정말 그게 사실이라면 그자는 정말, 마신의 후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로드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있던 지도를 가지고 와서 회의 테이블 위에 펼쳤다.
“드로튼 교수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피니에르 섬이 자신의 개인 섬이라고.”
“그랬었죠.”
“드로튼 백작의 영지가 이렇게 넓습니다.”
지로드 교수가 지도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내가 알기로는 허먼이라는 이 도시가 드로튼 백작가의 주요 활동무대라고 하더군요. 이 나라 왕도도 가깝고.”
“여기서 제법 머네요.”
“나라면 이곳에 그렇게 자주 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연구소가 이곳에 있다고 해도. 교통도 불편한데.”
“흠, 수상하긴 하군요.”
“드로튼 백작은 머리가 아주 비상합니다. 일단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한 후, 나중에 의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럽시다.”
* * *
“크하하하, 영지민들 집마다 들려서 조사한다고?”
“예.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쓰러진 놈들에겐 치료까지 해 주고 먹을 것도 준다고?”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진료소에서 하듯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 질문도 세세하게 하고, 눈에 마나치료술까지 써 주면서 슬퍼하고 있답니다.”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느라 한세월 가겠군.”
마커스 일행의 행동에 드로튼 백작이 조소했다.
검사를 진행한 지 나흘째 저녁, 방역팀은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여 우리는 이것을 안충이라 명명하며, 일단 이걸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입니다.”
방역팀들은 즉시 팀을 꾸려서 환자들에게 시술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걸 보면서 드로튼 백작은 쾌재를 불렀다.
그들이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영지민들과 접촉 시간이 길수록 드로튼 백작의 계획에는 좋은 것이었다.
그래야 그들이 가기 전에 확실하게 감염될 것이기에.
‘당장 눈앞의 것만 관심을 보이는군. 계획대로 착착 진행할 수 있겠어.’
드로튼 백작은 마커스 일행이 안충에 매진하는 동안, 인간 병기를 많이 만들어 낼 계획이었다.
사실 영지민들에게 안충을 감염시킨 것도 인간 병기를 보다 빠르게, 많이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헤렌제의 국왕, 키드리히에게 보고가 들어간 걸 안 드로튼 백작은 불처럼 화를 냈었다.
자신의 영지민들이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인가.
제피크 마탑을 보다 빨리 손에 넣기 위해 많은 실험체로 확실한 결과를 내고자 했을 뿐이다.
그런데 성미 급한 키드리히 국왕은 엘라로트스 제국에 손까지 벌렸고, 결국 방역팀까지 왔다. 일이 마무리도 안 됐는데. 자칫 잘못하면 실험이 중단될 위기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저 멍청이들은 자신의 계획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영지민들이 불쌍하다는 이유로.
‘그게 오히려 내가 득이 되었다니.’
저들 50여명 모두를 감염시켜 인간 병기로 만들어 엘라로투스 제국으로 보낼 테다.
고위 관료들이니, 엘라로투스 고위 귀족뿐 아니라 대륙의 정상들을 없앨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드로튼 백작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들의 안충 제거 작업에 최선을 다해 서포트 해 줬다.
* * *
마취에서 깨어난 소가 큰 눈을 껌뻑이더니.
[어! 보인다.]음머어. 아주 기분 좋은 소리로 울었다.
그때였다.
허공에 황금색 글씨가 큼지막하게 떠올랐다.
[무적 체력Lv2 5230/10000]벌써 오천이 넘었군. 나는 체력 수치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하긴 여기서 치료한 동물들만 해도 수백에 가까울 거다.
“으으, 쟤들이 뛰어다니는 걸 보니, 기분이 너무 좋네.”
사람들도 앞이 보이지 않으면 살기 팍팍한데, 하물며 동물들은 말해 뭣 하리.
특기 야생에서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추릅.
방금 내게 치료를 받은 소가 큰 혓바닥으로 내 얼굴을 핥았다.
-그래, 그래. 너도 기분 좋지? 나도 좋아. 앞으론 조심해.
그리고 동물들이 전부 들을 수 있게 외쳤다.
-내 말 명심해라. 물은 어디서 마시라고?
[정수기!] [저쑤기!] [종수기!]공수받은 정수기를 산에 있는 개울에 곳곳에 설치해 놓은 걸 말하는 거다.
그때였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스킬 목록이 개방되었습니다]*그리핀과 동화될 수 있습니다.
동화?
게다가 레벨도 2로 높아졌다.
궁금증은 생각보다 빨리 해결되었다.
펑!
갑자기 조용한 밤하늘에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뭐지?
나는 급한 마음에.
“플라잉.”
부츠에서 날개가 돋아나더니 몸이 떠올랐다.
슈웅.
부츠의 힘으로 날아가는데, 뒤에서 갑자기 펄럭 소리가 났다.
“음?”
소리를 듣고 로이칸이 날아오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는데.
“흡!”
로이칸이 아니라 바로 내 뒤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 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