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135)
쏴아아아아.
우르르릉 쾅쾅.
사상 유래 없는 폭우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장.
“꺄아아악.”
“으아아아!”
“아악, 살려. 살려 줘.”
“아아악!”
쉬지 않고 이슈타 산에서 토사가 뿜어져 내려오는 현장에서 주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콰과쾅쾅.
바위와 진흙의 무시무시한 속도에 가옥과 나무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커억!”
“큭!”
무시무시한 속도로 밀어닥치는 토사는 미처 도망칠 새도 없이 주민들을 가차 없이 집어삼켰다.
기록적인 장마로 역대급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오플람 영지의 블릴렌의 피해는 참혹했다.
뒤로는 이슈타 산이, 앞으로는 노이슈타 강이 흐르는 브릴렌은 오플람 영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진 곳이지만, 한순간에 저주받은 땅이 되어 버렸다.
뒤로는 산사태가 앞으로는 강물의 범람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토사가 쏟아지는 현장에 한 무리가 도착했다.
오플람 영지 소속의 기사와 병사들, 그리고 마법사였다.
마법사가 끊임없이 흘러 내려오는 토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복구!”
원래대로 돌아가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마력을 뿜어냈다. 마법이 통했는지, 토사는 잠시 주춤했으나 이내 더욱 맹렬한 기세로 터져 나왔다.
“으으윽!”
“피, 피해야 합니다!”
“으아아아.”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산사태에 이를 막고 주민들을 구조하러 온 마법사와 병사들이 도망치기에 바빴다.
브릴렌 마을이 토사가 무너져 매몰되는 그 순간, 윌라드 자작은 브릴렌 마을과 멀지 않은 곳에서 노이슈타 강을 노려보며 부하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수문을 열어라. 수위를 조절하라. 더는 불어나면 안 된다.”
이대로라면 이 일대 전부가 침수된다. 윌라드 자작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포세드 마법사께서 열심히 마력을 쏟고 있습니다만, 수위가 급작스럽게 불어나는 바람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수문을 열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는 말.
“수압이 너무 세서 수문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둑이, 둑이 무너질 것 같습니다. 자작님 피신하셔야 합니다.”
부하의 말에 윌라드는 대답 대신 소리쳐 물었다.
“구조대들은?”
“제국구조대는 도착하는데 며칠 더 걸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근 영지에 다 구조요청을 했습니다만, 율리시즈 백작께서만 구조대를 보내 주겠다고 했습니다. 조만간 선두 구조대가 도착할 거라고 합니다.”
“크윽!”
기사의 대답에 윌라드 자작은 침음성을 흘렸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 누가 구조대를 파견해 주겠다고 할까? 다들 자기네 영지를 수호하기에도 바쁜 마당에.
윌라드 자작은 마을이 무너져 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눈에서 피눈물이 나는 것 같았다.
왜 이리도 무능할까.
그때였다.
쐐에에에엑.
갑자기 하늘에서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쿠웅 쿠웅 쿠웅.
장대 같은 빗줄기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지반이 흔들렸다.
“어어어어어!”
“히이이잉!”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가 몸이 흔들릴 만큼 큰 진동이 울리더니 커다란 바위들이 강으로 흘러 들어갔다.
큰일이다. 윌라드 자작의 낯빛이 흑색으로 물들었다.
산사태가 여기까지 이어졌구나. 바위까지 굴러 내려오는 산사태와 강물의 범람.
앞으로 그들에게 남은 건 저 물에 쓸려나가는 것일 뿐.
“다들 대피하라!”
윌라드 자작은 고작 이런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와와왁!”
“으아아아!”
다들 비명을 내지르면 도망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윌라드 자작은 시시각각 불어나는 강의 수위를 노려봤다.
조금 있으면 댐이 터져 범람할 그 강물을.
‘조금이라도 이 상황을 미리 알아차렸더라면, 그래서 미리 수문을 열어 수위 조절을 했더라면.’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수위가 조금 더 높아졌을 뿐, 댐은 터지지 않았다.
혹시 마법사가 성공했나?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와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
여태 장대 같은 빗소리에 사람들의 비명만 들리던 자작의 귀에 환호성이 들려왔다.
“음?”
환청인가 싶었는데, 기사 한 명이 달려왔다.
“자작님. 살았습니다. 구조대가 도착했습니다.”
“뭐?”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윌라드 자작은 기사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윗덩어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가?
“뭐, 뭐지? 모, 몬스터인가?”
이 상황에 몬스터까지 출몰하다니.
환호성과 구조대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굳었던 얼굴이 펴지려던 윌라드 자작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베어독입니다.”
대답은 뒤에서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이글나이트 기사단장인 프레드였다.
* * *
윌라드 자작으로부터 출동 지원을 요청받았을 때는 구조대가 이미 출발하고 난 후였다.
율리시즈 구조대의 이러한 신속한 판단과 행동력은 반년 전에 창설된 율리시즈 재난안전연구소 덕분이었다.
카우덴 광산 붕괴 현장을 겪은 마커스가 율리시즈 백작에게 강력하게 주장해 세운 연구소였다.
산사태 소식에 마커스가 황도에서 출발하면서 판테라 대장 탄과 베어독의 정신적 지주이자 반달이의 할머니, 레티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두 종족은 흔쾌히 마커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즉시 마커스는 율리시즈 백작에게 알렸고 작금의 상황에 이르렀던 것.
물론 프레드를 비롯한 이글나이트는 그들의 그리핀을.
베어독은 야생그리핀을 타고 날아왔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윌라드 자작님. 프레드 율리시즈입니다.”
“고,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멍하니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 있던 윌라드는 프레드의 인사에 정신을 차리곤 덥석 손을 잡고 감격했다.
* * *
며칠을 쏟아붓던 폭우가 잦아들자 산사태로 매몰된 마을의 모습이 처참하게 드러났다.
산에서 밀려 내려온 토사가 마을을 완전히 덮친 현장은 참혹했다.
1분 1초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 겨우 몸만 피신한 주민들은 무너져 내린 삶의 터전을 바라보며 그저 발만 동동거리고 있었다.
그나마 그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많은 영지민이 아직 흙더미에 속에 파묻혀 있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도 알 수 없는 상황.
산에서 토사는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쓰러진 나무가 마을 곳곳을 막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절망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구조 작업이 한창이었다.
“아무도 없습니까? 대답 좀 해 보십시오.”
앞에선 베어독과 판테라가 괴력을 발휘하며 흙과 잔해들을 파헤치고 있었고, 뒤에선 구조대원들이 마도구 전등을 환하게 비추면서 생존자를 확인했다.
“누구 없습니까?”
구조대원들의 애타는 목소리. 율리시즈 재난 구조대원은 판테라와 베어독과 협력해 구조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황제가 파견한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구조대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허,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건지!”
판테라와 베어독이 흙을 퍼다 나르고 쓰러진 나무를 치우는 등 현장 복구를 하는 장면이 너무나 낯설었다. 공격을 해 오진 않을지, 무섭기도 하고.
그들에겐 몬스터는 죽여 없애야 하는 대상이지, 협력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
그러나 이미 카우덴 광산에서 한번 경험해 본 대원들은 여유로웠다.
“걱정하지 말게나. 저 몬스터들은 우리가 공격하지 않으면 절대로 먼저 공격해 오는 일이 없으니까.”
부대원의 제각각 반응은 킬리안 황태자와 펠로톤 3황자에도 일어났다.
미리 도착해 몬스터를 지휘하며 현장을 감독하는 사람, 마커스를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킬리안 황태자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신세를 지는군.”
그런 킬리안 황태자를 보는 펠로톤 3황자의 눈빛이 서늘했다.
‘잘됐군. 산사태에 몬스터라. 사고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현장이지.’
올보그 황제는 역대급 장마가 휩쓴 남부 지역, 오플람, 율리시즈, 타트, 솔버그, 멜크 영지를 재난지역으로 선포한 후, 킬리안 황태자를 재난복구 책임자로 임명, 현장으로 파견했다.
킬리안 황태자는 앞으로 5개 영지를 돌면서 사태를 수습할 예정이다.
그리고 펠로톤 3황자는 율리시즈 재난연구소를 방문해 신기술을 재난국에 도입한다는 목적으로 파견되었다.
이번 일로 올보그 황제가 재난 예측 기술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 * *
-다들 고생했다. 저기 먹을 게 준비되었으니까 마음껏 먹도록.
[은인, 도와야 한다.] [은인 명령! 복종한다!]-많이 먹어, 모자라면 말하고.
[알았다. 고맙다.] [많이 먹는다.]쿠오오오, 쿠와와와. 소리 지르며 음식이 차려진 곳으로 판테라와 베어독들이 몰려갔다.
그러한 모습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구조대와 인근 주민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장관입니다.”
킬리안 황태자가 다가오면서 말했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카스카 왕국에서 반달이 가족들을 구조했던 생각이 나는군요. 아, 반달이는 잘 있습니까?”
“예, 많이 컸습니다. 언제 시간 나시면 한번 보러 오시지요.”
“그러죠. 그때 구조된 베어독은 율리시즈 영지 옆, 로나인 영지에 있다고 했습니까?”
“예. 지금 여기서 구조활동을 펼치는 베어독은 다 로나인에서 왔습니다.”
“대단하군요. 어떻게 저 몬스터들을 한데 모아서 살게 할 생각을 했습니까? 아니, 그전에 베어독은 그렇다고 칩시다. 워낙 순한 몬스터니까.”
킬리안 황태자는 판테라와 베어독,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기사들과 병사들이 섞여 있는 걸 바라보면서 헛웃음을 웃으며 말을 이었다.
“판테라와 사람이 한데 어울려 식사를 하다니요.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됩니다.”
“충직, 복종, 성실. 저 녀석들은 배신이라는 것을 모르지요.”
“충직한데다가 배신을 모른다. 후우, 정말 대단한 존재들이군요.”
“등을 맡길 수 있는 존잽니다.”
“등을 맡길 수 있는 존재라. 부럽군요.”
판테라를 바라보는 킬리안 황태자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그런데 율리시즈 영지는 피해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아, 예. 미리 준비를 해 놔서 그럴 겁니다.”
“어떤 준비를 했길래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렇게 다를 수 있습니까?”
펠로톤 3황자가 다가와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는 그가 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틀어 눈으로 인사를 나눈 후, 펠로톤 3황자가 묻는 말에 대답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노면 마차로를 깔 때, 지반탐사 연구원들을 영입했는데, 그들 덕을 많이 봤습니다.”
물론 연구원들 덕을 보긴 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판테라와 베어독 사이에 끼어서 고기를 얻어먹고 있는 카이 덕분이다.
저 고기를 얻어먹겠다고 호캣으로 변신까지 하면서 말이다.
나는 산을 돌아다니면서 카이에게 지반이 약하거나 돌산에 흙이 살짝 덮인 곳을 말해 달라고 했다.
단단한 암반 위에 1, 2m 정도로 흙이 덮혀 있는 곳에서 산사태가 주로 일어나니까.
토층과 암반을 경계로 토층이 무너지면서 미끄러지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게 산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사실까지 이 두 사람에게 알려 줄 필요는 없지.
“흐음, 이번에 돌아가면 아바마마께 지반탐사 연구원? 그들을 영입하라고 해야겠군.”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이번에 저희 연구원들이 제법 많은 연구를 하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발표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3황자에게 웃어 주면서 카이를 불렀다.
-카이, 다 먹었냐?
[왜?]팅거스러운 퉁명스러운 대답에 나는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다 먹었으면 재미있는 놀이 하나 하자.
[놀이?]-응, 놀이가 끝나면 네가 지금 먹은 것보다 훨씬 맛있는 거 사 줄게.
[무슨 놀인데?] [나도! 나도 껴 줘.] [나동, 뭔데?]여태 나무 위에서 빈둥거리며 있던 팅거와 벨라까지 호들갑을 떨었다.
재미있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는 녀석들이다.
-다른 게 아니라, 킬리안 황태자를 지켜 주는 놀이를 할 거야.
[엥? 그게 뭐야?] [시시해 보이는데?] [난 그냥 쉴래.]순식간에 싸늘한 반응.
-펠로톤 3황자, 누군지 알지?
[안다. 재수없게 생긴 놈.] [알앙. 먹을 거 혼자서 먹는 사람.]팅거와 벨라. 두 녀석 뒤끝 있다.
예전에 녀석들이 황궁에 돌아다닐 때, 펠로톤 3황자가 과자를 주지 않았다며 툴툴거렸는데, 그걸 아직 꽁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맞아. 펠로톤 3황자가 킬리안 황태자에게 몇 번 공격을 시도하는지 알아맞히는 놀이야.
[에이 시시해.] [날 뭘로 보고!] [시시해.]-뭐로 공격이 들어올지 모르는데? 독을 쓸 수도 있고. 칼로 찌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방법도 있고.
[난, 강으로 떠밀기!] [나 같으면 얼려 죽일 거야.] [오! 그거 재밌겠다.]그럴 줄 알았다. 나는 세 녀석이 목소리를 높이며 다양한 케이스를 늘어놨다. 그런 녀석들을 보며 씩 웃어준 후, 말을 덧붙였다.
-덤으로 공격을 한 번 막을 때마다 마정석 하나씩 상으로 줄 거야.
[블론.] [나도 블론] [나도 블론.]세 녀석 다 눈을 반짝이며 신성석의 또다른 이름인 불론을 원했다.
-그래, 블론을 찾으면 줄게.
[속임수를 간파하는 현자의 눈]을 발동해 펠로톤 3황자의 의도를 알아차린 이상, 그냥 당하고 있을 수는 없지.펠로톤 3황자는 어수선한 복구 현장을 핑계로 킬리안 황태자를 암살할 생각이다.
판테라에게 누명을 씌울 생각인 것 같은데.
어림없지.
3황자는 그 후로도 몇 번 더 질문하더니, 임무 운운하면서 황태자를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나는 녀석들에게 따라가라는 지시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