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153)
* * *
초대받은 랭커스 별장은 드찬테의 상징인 첨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오랜 역사가 짐작되는 웅장한 건물이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커스 율리시즙니다.”
“어서 오십시오.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구즈만 랭커습니다.”
“티티제 베이큽니다.”
건물 앞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랭커스 상단의 상단주, 그리고 상단 총괄 지배인.
그런데 총괄 지배인의 이름이 내 시선을 끌었다.
베이크.
4대 영웅을 배신하고 독자 노선을 걸었던 자, 그가 바로 호헨 베이크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호헨 베이크가 자리 잡았다는 곳이 바로 이곳, 드찬테였으니.
여러모로 보나, 의심해 볼 필요는 있어 보였다.
두 사람은 곧바로 우리를 접객실로 안내했고, 이어 간단한 다과가 차려졌다.
“아크리스 왕국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정말 감탄이 나오는 도십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우리 선조들의 바람이 평화로운 삶이었지요. 그 바람대로 살고 있을 뿐입니다.”
카이도 나와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내 무릎 위에서 코를 킁킁거리는 카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흠, 이곳 마음에 든다. 냄새도 좋고.] [으힛, 나는 저 첨탑에 가 볼 거다!] [나동. 팅거 같이 가.]팅거와 벨라도 평소보다 훨씬 들떠 있었다.
심지어, 소심한 루나까지 발로우 무릎 위에서 고개를 쳐들고 실내를 구경했다. 평소라면 낯선 곳이라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을 건데.
“듣던 대로 고문님은 동물들을 참 좋아하나 봅니다. 그나저나, 저 동물들. 크흐흠. 동물이라고 해야겠지요?”
랭커스 상단주가 내 근처에서 늠름하게 앉아 있는 스피카와 호크를 보며 살짝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옆에 앉은 티티제 베이크도 마찬가지.
나는 두 사람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준 후, 녀석들에게 말했다.
“스피카, 호크, 손!”
커헝!
꾸웩!
스피카와 호크는 대답하는 거였지만, 두 사람을 비롯해 이곳 관계자들의 낯빛이 사색이 되었다. 그것도 잠시 이내 두 녀석이 앞발을 절도 있게 든 채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걸 보며 감탄을 흘렸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지는 울음 성량 조절.
컹컹커어어어엉!
꾸웩꾸웩꾸웩꾸웽!
컹컹!
꾸웩!
컹!
꿱!
내가 지시하는 대로 울음소리를 크게, 작게, 그리고 길게, 짧게 내지르는 걸 보고는 두 사람은 손뼉까지 쳤다. 아니 두 사람뿐 아니라 우리 일행들도 격렬한 반응을 내보였다.
“이야, 정말 대단합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군요. 어떻게 동물 마음을 그렇게 잘 아십니까?”
“허헛, 이제야 이유를 확실히 알겠습니다.”
무슨 이유?
“사실 우리 왕국에서 유행병이 나돌 때 말입니다. 이 늙은이는 고문님이 왜 그런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밀어붙이는지 이해를 못 했습니다. 자국도 아닌, 타국에서 말도 안 되는 압박을 받아 가면서 말입니다.”
아, 그때 그거?
“초반에는 이 늙은이 또한 고문님을 의심했었고요.”
“다들 처음 본 치료법이나. 그럴 수밖에 없었죠. 자, 이제는 쟤들 신경을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밖에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을 전해 주세요.”
그냥 있으면 그때, 이야기를 계속 나누게 될까 봐, 나는 화젯거리를 바꿨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티티제 베이크는 문 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비서로 보이는 자에게 가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들어보니 내가 했던 말을 전하고 있었다.
티티제가 다시 응접 테이블로 걸어오고 있을 때, 발로우가 입을 열었다.
“상단주님, 뭐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 말씀하시지요.”
“여기 드찬테에 오니, 첨탑 위에 올려져 있는 둥그런 구가 가장 눈에 들어오더군요.”
발로우는 이곳 응접실 창문으로 보이는 첨탑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거와 같은 모양의 조형물들이 이 도시 곳곳에 눈에 띄던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요.”
“란데우스라는 곳을 아십니까?”
* * *
“아크리스 왕국의 옛 왕도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잠시나마 가 봤습니다.”
랭커스의 질문에 마커스가 스스럼없이 대답하자, 티티제의 눈이 살짝 커졌다.
‘흠, 테페론 신전에 들린 것이 우연인가?’
만약, 본인이 생각하는 것을 찾으러 다니는 거라면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지 않을 건데.
티티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커스를 관찰했다.
“오! 그랬습니까? 영광이군요. 이 도시는 란데우스가 왕도였을 때, 부흥했던 도시지요. 한마디로 고대 유적지나 다름없지요.”
“그랬군요. 어쩐지 도시가 유서가 깊은 곳으로 보였습니다.”
“여기서 가까운 곳에 프라이본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아, 우리 랭커스 상단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거기에 아주 오래전에 드워프들이 터를 잡고 살았답니다.”
“드워프요?”
“예. 그 종족이 솜씨가 좀 좋습니까? 그런 드워프들이 예전부터 모시는 신이 있는데, 그 신에게 경배하기 위해 만든 성물이 저렇게 생긴 거였답니다.”
랭커스가 창밖에 보이는 첨탑을 가리켰다.
“드워프끼리 경쟁이 붙었고, 그 결과 성물이 곳곳에 놓이게 되었답니다. 결국은 이곳 드찬테까지 영역이 넓혀졌고, 이렇게 된 것이지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아크리스 왕국이 건립된 이후, 단 한 번도 외침을 받아 본 적이 없거든요. 아, 물론 몬스터의 공격도요.”
랭커스의 말을 듣고 있던 티티제가 말을 덧붙이며 어깨를 쫙 폈다.
티티제의 말에 담긴 뜻은 엘라로투스보다 우리가 우세한 국가다. 명백히 마커스를 겨냥한 소리였다.
그러나 마커스는 방금 랭커스 입에서 나온 드워프들의 신과 성물을 생각하느라 티티제가 한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 * *
“드워프가 믿는 신이라고요? 처음 듣는 이야기로군요.”
마법사의 호기심은 끝을 모른다고 하더니, 내가 묻고 싶은 말이 발로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테페론을 경배하는 드워프’에 나온 내용을 떠올리며 랭커스 상단주의 입에 집중했다.
그러나 의외로 티티제 베이크 쪽에서 입을 열었다.
“고대에는 드워프가 모셨던 신을 우리 인간들도 함께 숭배했다고 합니다.”
“그런 말은 처음 듣습니다.”
“저도요.”
발로우와 헤인켈이 진심으로 놀란 듯 티티제 베이크를 바라봤다.
“아, 불꽃 기사님 앞에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그렇습니다만, 고대에는 그랬다 그 말이죠.”
티티제 베이크의 말을 듣고 그가 나뿐만이 아니라 일행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뭔가 있을 수도 있겠군. 경계심을 늦추면 안 되겠다.
카이, 벨라, 팅거가 여길 마음에 들어 하는 것과 별개로.
“드워프가 모시는 신전이 프라이본 일대에 점점 늘어났죠.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의 솜씨가 얼마나 대단한지. 인간들은 그들의 작품을 부수고 싶지 않았던 거죠. 게다가 중요한 건, 드워프들이 자신들의 신전을 세운 이후로, 마을이 평화로워졌답니다.”
“평화요?”
“예, 곡식도 잘 자라고, 동물들도 무탈하게 잘 컸답니다. 물론 환자들도 별로 없고.”
티티제의 말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나는 티티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확신했다.
프라이본에 유리아가 있는 게 틀림없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유리아의 정체를 알고 있다.
* * *
프리아본에 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집사와 고용인이 들어와 테이블 위에 다과를 세팅했다.
팅거와 벨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호! 이거 맛있어 보이는데?] [아투벡 쿠키보다 더 고소한 냄새가 나.]하여간에 귀신같단 말이야.
“우리 상단에서 생산하는 쿠킵니다. 한번 드셔 보십시오.”
랭커스 상단주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자랑대로 맛있었다.
“우와! 진짜 맛있는데요? 공자님. 고소하고 부드러운 게. 아투벡 쿠키보다 훨씬 맛있어요.”
“허허, 정말이군요. 우리 마법사들도 한 입맛 하는데, 이건 참 맛있군요. 상단주님, 이거 어디에 가면 살 수 있습니까?”
발로우가 넉살 좋게 물었다.
“이곳 드찬테에 우리가 소유한 상점이 몇 군데 있는데, 그곳에서 취급하고 있지요.”
“다른 곳은요? 한 번 참석했지만, 축산 박람회 때 못 본 것 같습니다.”
“아, 출품하지 않습니다. 알아서들 다 사 가니까요.”
티티제 베이크가 고개를 빳빳이 들며 대답했다.
“이렇게 좋은 제품을 우리 제국민들이 맛을 못 본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니, 적어도 황궁에는 납품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황궁이요?”
“예, 생각이 있으시면 제가 다리를 좀 놔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말에 두 사람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걸 본 나는 확신했다. 기다리면 되겠구나.
“여기 추천해 줄 만한 곳이 있나요? 이런 좋은 곳에 온 김에 둘러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사실은 저기 첨탑에 가 보고 싶어서요. 하하하.”
“여길 처음 오는 분들은 다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첨탑은 들어가는 절차가 까다로우니, 안내할 이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지요.”
“허어, 호헨, 아니 베이크 지배인이?”
“예, 다른 분도 아니고 고문님 아닙니까? 당연히 제가 모셔야죠.”
됐다고 할까 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나를 경계하는 티티제가 내게 호의를 베풀다니.
그렇다면 속내가 뭔지 알아봐야지.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티티제는 다음 날 아침에 우리를 데리러 온다고 하고 별장을 나섰다.
“정원이 진짜 좋네요.”
넓은 정원에서 로이칸, 스피카, 호크가 편하게 쉬고 있는 걸 보며 발로우가 말했다.
발로우는 루나를 안고 있었는데, 아주 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대장님. 대장님은 조금 전 젊은 지배인이라는 자에게 이상한 느낌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티티제 베이크 말입니까?”
“예. 마법사는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좀 기운이 색달라서요.”
“힐러예요?”
“그것도 아닌 것 같더군.”
스피카와 호크, 로이칸에게 저녁을 챙겨 주던 세이건이 묻는 말에 발로우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흠, 그렇다면 사제인가요? 조금 전 드워프의 신을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그 종교의 사제일 수도 있죠. 헤인켈 기사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사님은 사제님들은 많이 보셨으니까, 아실 것 같은데요.”
이번에는 에른이 물었다.
[유리아의 기운과 비슷하다.]그런데 답을 한 건 스피카 옆에서 고기를 먹고 있던 카이였다.
-유리아라니? 그럼 그자가 호헨 베이크의 후손이 맞단 말이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유리아 기운이 조금 느껴지긴 한데, 다르다.]-그건 또 무슨 말이야?
[그런 게 있다.]카이는 자기 할 말만 하고는 다시 고기를 뜯었다.
가만, 조금 전에 랭커스 상단주가 티티제 베이크에게 호헨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벨라, 보호막 좀 쳐 줘.]나는 벨라에게 사일런스 보호막을 걸어달라고 한 후, 통신구를 꺼내 레가시에게 연락했다.
=공자님!
“호헨에 대해 알아봐.”
=엇? 그러지 않아도 공자님께서 바이슐에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을 드릴 침이었습니다.
아니 진짜로 얘, 도대체 어떤 놈이지? 어떻게 된 놈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이렇게 잘 아는 거지?
그러나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린튼 백작, 아니 월트셔가 움직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