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168)
* * *
“일간지에서만 접했던 영웅을 만나볼 수 있다니, 이거 긴장되는군.”
“하하하, 너답지 않게 왜 그래? 모헨 대공 전하께 박박 대들며 뛰쳐나간 놈이.”
“그게 이거와 같아? 마커스 율리시즈라는 분이 보통 분이시냐? 내가 지금 이렇게 편안하게 숨 쉬고 살 수 있는 것도 다 그분 덕분인데. 내가 어떻게 긴장 안 하겠냐, 응?”
“하긴, 나도 그렇긴 해. 그분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겠지. 아니면 벌써 원로원에 납작 엎드려 있거나. 금단 현상이라는 거 엄청 힘든 거더라고.”
발로우는 중화마기 흡입을 중단한 후, 겪었던 금단 현상을 떠올리곤 몸을 흠칫 떨었다.
초기였을 뿐이었는데도 참기 힘들었다. 정말이지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만약, 마커스에게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나도 그래. 매일 기침으로 밤을 지새우고, 연구도 못 했던 그땐 정말이지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어.”
발로우가 유니센에서 만난 친구, 벨저 마법사는 5년 전부터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 초기 때는 그저 무리하면 숨이 가쁘고 간간이 기침할 정도였지만, 증상이 점점 심각해져 갔다.
“포션도 처음에는 좀 듣는 것 같더니 나중엔 하루에 몇 병을 마셔도 기침이 멈추지 않더라고.”
“고생이 많았겠군.”
“후, 어쨌든 내 목숨의 은인인 위대한 영웅을 만난다는 거지. 네 덕분이야. 더군다나, 그분께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벨저는 몇 년 전부터 신성력이 마법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본인이 미미하지만 신성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느끼고 나서였다.
벨저는 그 후 신성력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성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어쨌든 그런 자신의 연구가 은인에게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니, 마커스를 만나러 가는 벨저의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그때였다. 발로우와 벨저,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상한데, 갑자기 주변에 마나가 증폭하는 거 같지?”
“너도 그래? 나도 그런데, 설마…….”
발로우가 얼굴이 사색이 된 채 뛰기 시작했다.
“크, 큰일 났다.”
타닥탁탁탁탁.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벨저도 따라 뛰었다.
그러나 뛰는 것도 잠시, 두 사람은 이내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웅웅웅웅웅웅.
공기 중에 맴도는 마나가 너무나 강력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허…… 저건 피싱?”
“어, 어떤 마법사가 저렇게 아름다운 마나 그물을 짤 수 있지?”
두 사람은 그 자리에 멈춘 채, 오색찬란한 마나 기운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멈춰 섰던 발로우와 벨저는 마나가 쏟아지는 곳으로 달려갔다.
누군지 보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그들은 곧이어 경악했다.
“대, 대장?”
“저분이 바로 피싱 마법을 쓴 마법사?”
마나그물에 잡혀 악악거리고 있는 월트셔 따윈 관심 밖이었다. 그들은 오직 손에서 형용할 수 없는 성스러운 마나를 내뿜는 마커스만 바라봤다.
후우우…….
“저분이 율리시즈 영웅?”
벨저에겐 마커스는 영웅이었다. 하여 벨저는 감히 마커스에게 영웅 이외의 호칭을 붙일 수 없었다.
“그래.”
“네가 마나치료술로 금단 현상을 치료했다길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제야 알 것 같군.”
마커스가 내뿜는 마나는 고차원적인 기운이었다.
발로우는 이제야 자신이 해독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천재는 항상 있기 마련이지.”
천재. 그거로 이 모든 상황이 정리됐다. 발로우 역시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천재이신 것 같아.”
* * *
“이 미친놈아, 이거 안 풀어?”
“풀어 주고 싶은 생각, 없는데?”
“뭐?”
월트셔가 마나그물 안에서 악악거리며 소리쳤다.
“두, 두고 보자. 네놈이 언제까지 웃고 있는지.”
월트셔는 마나그물 안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버튼을 눌러댔다.
“후, 너무 시끄러운데? 야. 너 잠시만 자고 있어라.”
“뭐? 이 자식이! 네놈의 입을 막아 주지.”
월트셔는 여전히 같은 동작을 반복했고, 근처 나무 위에서 내려 보고 있던 팅거가 짜증이 난다는 듯 날개를 퍼덕이며 말했다.
[쟤 진짜 시끄럽다.] [죽일까?] [오! 그거 좋은 생각이다.] [맞앙. 쟤 나쁜 놈이잖아. 마커스를 죽이려고 했엉.] [죽여야겠군.]카이가 갑자기 월트셔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더니, 앞발을 들었다.
-카이, 안 돼.
[왜? 시끄럽고 나쁜 놈인데? 죽어야지.]-나쁜 놈이라 그냥 죽이면 안 되지.
[왜?]-죽으면 끝이니까. 그렇게 간단하기 죽이면 아깝잖아.
그렇게 말을 하곤 나는 마나그물에 걸쳐진 월트셔의 어깨를 부여잡고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으아아악.”
그때였다. 두 사람이 옆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던 상황.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발로우의 발걸음 소리였고 나머지 한 사람도 적의가 느껴지지 않아서 그냥 있었던 것.
“저자. 혹시 월트셔입니까?”
“예.”
“월트셔, 꼴 좋다.”
“……네노오은……누…….”
풀썩. 월트셔는 말도 다 끝맺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죽은 겁니까?”
“아뇨, 시끄러워서 잠을 좀 재웠어요.”
“죽이지 그랬어요, 아니 그전에 대장님, 이 마나그물은 대장님이 펼치신 겁니까?”
“아, 뭐.”
“대단하십니다. 피싱은 상위 마법인데, 그걸 펼쳐 보이시다니.”
그런가? 엘스테어 마법사님이 가르쳐줬던 대로 했더니, 그냥 되던데.
“저놈,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음, 우선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야 할 것 같아요.”
“벨저. 혹시 창고 같은 델 알아봐 줄 수 있어?”
“근처에 내 창고가 하나 있어. 그리로 끌고 가면 되겠네.”
“아, 발로우 친구분입니까? 초면에 신세를 지는군요.”
나는 간단하게 인사를 건넨 후,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저 뒤에 이놈 부하들도 있습니다.”
* * *
벨저 마법사의 안내로 도착한 창고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건물 전체가 창고였다.
“여긴 조금 과격한 실험을 할 때 쓰는 장소입니다.”
“그럼 방음 같은 것도 잘되어 있겠네요?”
“물론입니다. 마법진도 설치해 놔서 함부로 드나드는 것도 힘든 곳이죠.”
카이와 팅거, 벨라가 감시하고 있어서 저놈들이 어차피 도망은 치지 못할 거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주 좋군요.”
잠시 후, 세이건이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공자님,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
세이건이 마차에서 왕진 가방을 가지고 왔고, 나는 왕진 가방에서 수술용 메스를 꺼냈다.
그리곤 메스로 아직 마취된 월트셔의 손과 다리에 상흔을 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내가 뭘 하는지 몰라서 눈만 굴리고 있었다.
-카이. 저놈이 깨면 알려 줘.
[알았다.]나는 사람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서 말을 꺼냈다.
“발로우 마법사님.”
“예.”
“일루전 마법 시전해 주실 수 있죠?”
“예, 어떤 종류를 원하십니까?”
“그게…….”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이야기해 줬다. 그러자 발로우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 거라면 이 친구가 저보다 훨씬 잘할 겁니다. 그런 세세한 감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탁월한 친굽니다.”
“정말입니까?”
“아, 네.”
“조금 있으면 월트셔가 깨어날 겁니다. 그놈이 그 부위가 가렵고 아파서 깨어나는 거로 해 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처음 본 저를 믿어 주셔서.”
감격한 표정을 짓는 벨저에게 발로우가 말했다.
“내 친구라 널 좋게 보신 거야. 알겠지? 우리 대장께서 나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그럴 리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걸 맡기지.
벨저는 이미 두 가지 관문을 통과 한 자였다.
속임수를 간파하는 현자의 눈과 유리아를 최초 발견했을 때 받은 특별 보너스인 상대방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었다.
아, 그리고 보니, 그때 얻은 능력이 또 있었지.
바로 마기를 제거하는 능력.
조만간 발로우에게 이걸 써서 남아 있는 마기를 모조리 없애 줘야겠네. 그리고 그때, 케일런 폭발 사고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도 말해 주고.
그때였다. 윌트셔가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 * *
“으으으…….”
월트셔는 팔을 벅벅 긁으며 눈을 떴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리 쪽도 이상했다. 가려우면서 따갑고, 콕콕 쑤시기까지.
“깼냐?”
귓가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던 월트셔는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바로 그놈. 자신을 포획한 마커스 놈의 목소리였다.
“……네놈!”
아직 완전히 마취가 풀린 게 아니라 월트셔의 말소리는 어눌했다. 그렇지만, 노기는 치밀어 올랐다.
월트셔는 안간힘을 끌어모아 마커스를 노려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월트셔는 아직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팔을 긁었다. 긁어도 시원하지 않았다. 점점 더 쑤시는 것 같았다.
“가렵지? 따갑고. 쑤시기도 할 거다.”
헉. 자신의 증상을 그대로 말하는 마커스에 월트셔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제는 마취가 풀렸기에 증상은 더욱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월트셔가 어느새 일어나 앉아서 다리를 긁고 있었다.
시야도 회복된 상태. 월트셔는 긁으면서 팔과 다리를 쳐다봤다. 가려운 부분이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자세히 보니, 뭔가 파고든 것처럼 생채기도 심하게 나 있었고.
“뭐, 뭐지?”
당황하는 월트셔에게 마커스가 비어 있는 시험관을 손에 들고 흔들었다.
“원로원에서 이런 걸 주더라고. 케이홀 연구소에서 받아 온 거라고 했던가?”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고 안 믿고는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나야 그들이 부탁하는 대로 해 줬을 뿐이야.”
월트셔의 귀에 부탁이라는 단어가 쏙 박혔다.
“뭐, 부, 부탁? 네놈에게 우리 원로원에서 부탁할 게 뭐가 있다고?”
“우리 원로원? 말 잘했네. 그 말은 너도 원로원이라는 소리겠지?”
“무, 무슨 소리냐?”
“어쨌든 그들은 너를 버렸어. 아, 버린 게 아닌가? 그거 몸에 심어 놓으면 ‘펑!’”
마커스는 빙긋이 웃으면서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케일런에서 왜 그런 사고가 일어났나 했지. 원로원은 드로튼 백작이 세를 불려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지?”
마커스의 말에 월트셔는 양손으로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아, 아니야. 아버지가 그럴 리가 없어. 없다고!”
온몸을 구부린 채, 떨고 있던 월트셔가 갑자기 팔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마커스가 메스로 살짝 피부를 살짝 긁어냈던 그 자리였다.
벅벅벅벅.
월트셔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팔을 긁어댔다. 긁다 보니 몸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 같이 느껴졌다.
꿈틀.
“으아아아아!”
마커스가 생채기를 냈던 곳뿐만이 아니라 월트셔는 온몸 전체를 긁어댔다. 피가 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팔다리를 긁어대던 월트셔가 이제는 이빨로 자기 살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피가 줄줄 흘러도 멈추지 않았다. 월트셔는 몸속으로 파고든 벌레, 시드를 뽑아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다 월트셔가 손에 힘을 끌어모았다. 후우웅, 검은색 마나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자기 집무실에서 기사들을 태운 그 기운이었다.
[어? 저놈 재미있는데?]후웅.
카이가 앞발을 세워 그 까만 연기를 흩날렸다.
“이, 이 왜 안 되는 거야?”
월트셔는 계속 검은색 마나를 뿜어댔고, 카이는 재미있다며 계속 흩날렸다.
반복될수록 월트셔의 모습은 기괴하게 변해갔다. 얼굴에 살이 움푹 패기 시작하더니, 눈에 핏발이 서고, 서서히 몸에서 살이 빠져나갔다.
“어어어!”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던 발로우와 벨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카이는 재미있다고 니야호호를 외쳤다.
그때였다.
두두두두두.
신수밀렵 단속반이 말을 타고 유니센 거리를 질주했다.
아직은 해가 지지 않은 이른 저녁. 마차와 말들이 도로를 돌아다닐 시간이었지만, 도로에는 마차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단속반은 원래 속도를 유지하며 그대로 도심지를 통과했다.
단속반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유니센 행정 당국에서 조처한 것.
방음이 된 건물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단 한 사람, 마커스만 빼고. 마커스는 싱긋 웃었다.
“도착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