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169)
* * *
“내가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볼까?”
자신의 몸을 긁고, 물어뜯느라 바쁜 월트셔는 내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헬로타 왕국을 재건한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뭐?”
지금까지 자기 몸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던 월트셔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원로원 내부에서 나온 소리니까, 확실할 거야. 고대 헬로타 왕국 연구 자료를 수집하고 다닌다고 하더라고. 린튼 호텔이라고 바이랜드 공국 템파론 시에 있는 호텔인데, 거기서 제법 많은 자료를 입수했나 봐.”
“뭐라고? 너 지금 뭐라고 말했어?”
“뭐, 그렇다고. 그래서 최근 원로원이 바쁘대. 고대 헬로타 왕국 영토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하더라고. 아, 린튼 호텔이 원로원 의장 큰아들이 운영하는 거라면서? 너 알고 있었어?”
며칠 전에 레가시가 반스 플린이 린튼 호텔의 사장 자리에 앉았다는 정보를 전해 줬다.
월트셔는 입을 쩍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핏발이 선 눈동자는 당장이라도 레이저가 쏘아질 것 같이 번들거렸다.
“너, 너 그거 어디서 들었어? 누가 그런 말을 했냐고!”
“이크, 너무 그렇게 몰아세울 건 또 뭐가 있냐? 내가 한 것도 아닌데. 난 그저 들은 대로 이야기를 했을 뿐이야.”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었냐고!”
“글쎄.”
“……으아아아!”
월트셔가 괴성을 내지르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아니, 그러려고 했으니, 이내 마나그물에 막혔다.
월트셔는 몇 번이나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온갖 소리를 질러댔지만, 번번이 가로막혔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국 넌 원로원에서 버려졌어. 그리고 네가 지금까지 쌓아 온 것은 모두 원로원이 차지하게 되겠지.”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월트셔에게 말했다.
“내 걸 그놈들이? 하하하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못 가지면 그놈들도 못 가진다. 내가 그렇게 멍청한 줄 아냐?”
“그런가?”
“당연하지, 그놈들은 절대로 그건 못 찾아. 내가 어디다 숨겨 놓은 줄 알고. 린튼 호텔? 백번 뒤져 봐라. 흥.”
“글쎄, 그들은 벌써 네가 성물을 찾은 것도 알고 있던데? 그리고 앞으로 어디서 찾을지도.”
“뭐라고?”
월트셔가 매섭게 나를 째려봤다.
“이제 봤더니, 그놈. 호헨이 나를 가지고 놀았군. 나를 떠보라고 원로원에서 보낸 자였어. 두고 봐라, 베이크 그놈.”
“베이크가 좀 욕심이 많긴 하지.”
“그렇지?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럴 줄 알았어. 실력은 없는 주제에 욕심만 넘쳐서는. 그놈이 뭐라고 말한 줄 아냐? 참나. 자기가 호헨 베이크의 뒤를 이어 왕국을 세우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크리스 왕국부터 그 아래 공국들을 가져갈 테니, 내게 나머지 대륙을 책임지라고 말했지. 뭐 그놈 주제에 그 정도면 크게 가져가는 거지.”
“언젠간 그것도 네가 다 먹을 거잖아.”
“오! 네가 나를 좀 아는군.”
“네놈이 티티제 그놈보다 낫다는 건 알고 있지.”
“그놈 이야기는 하지도 마라.”
월트셔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보는데, 나 또한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말발굽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쯧, 시간이 얼마 없군.
월트셔 저놈에게 빼내야 할 정보는 아직 한마디도 못 들었는데.
나는 팔짱을 낀 채,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녀석에게 말했다.
“뭐, 네놈이 지금 이 꼴이 되었으니, 대륙 제패는 물 건너갔군. 아, 티티제 그놈이 원로원을 구워 삼킬 수도 있겠군. 원로원과 호헨이 손을 잡으면…….”
“그래 봤자 소용없다.”
월트셔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잡아 봤자. 결정적인 걸 못 찾을 건데, 무슨 수로? 자료를 손봐 놓길 잘했군. 성물 10개만 찾으면 마신을 찾을 수 있다고? 천만의 말씀. 크기가 다른 성물을 모아야 하는데, 그걸 같은 크기라고 고쳐 놨으니, 절대로 불가능한 이야기지.’
월트셔의 속마음을 읽은 나 또한 웃음이 나왔다. 저런 꼼수를 써 놨다니.
그 후로도 나는 그의 생각에서 여러 가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내가 원했던 것까지.
두두두두.
점점 커지던 말발굽 소리가 어느 순간 뚝 끊겼다.
탁탁타닥닥닥닥.
말에서 내린 단속반이 건물을 에워싸는 소리가 들렸다.
“잘 가라.”
나는 월트셔에게 이 한마디만 남긴 채 밖으로 나갔다.
“이잇, 너 어딜 가는 거냐?”
“원로원에게 말을 해 줘야지. 지금쯤 네가 들고 있는 버튼과 같은 걸 들고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아아악, 안 돼, 그것만은 안 돼. 나와 협상하자. 네가 원하는 거 다 말해 줄게. 아니 내가 왕국을 세우면 널 재상으로 데려가 주지.”
“누구 마음대로.”
* * *
신수 단속반이 월트셔와 그의 부하들을 잡아가고 난 후, 우리는 예전에 한 번 갔었던 광장의 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먼저 주문하고 먹고 있어.”
그렇게 말을 하곤 나는 조용한 곳으로 갔다.
-벨라 사일런스 보호막 좀 부탁해.
[웅, 알았어.]사일런스 보호막이 쳐지자, 나는 올보그 황제에게 연락을 했다. 월트셔를 태운 호송차가 출발했다는 것과 월트셔의 상태가 정상은 아닐 거라는 사실을 보고했다.
=뭐, 어차피 사형당할 인물인데, 정신이 정상이면 어떻고, 돌았으면 또 어떻습니까?
“바로 그자를 사형하실 겁니까?”
=먼저 원로원에 알릴 생각입니다. 그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할 테니까요.
“배상금을 받아내야죠. 그것도 왕창.”
=하하하, 시원하게 말을 해 줘서 좋군요. 맞습니다. 지금까지 밀렵꾼을 잡는데 들인 경비가 보통 많았습니까? 그들과 거래를 끝낸 후에 월트셔 그자의 생사를 결정 지을 겁니다.
“폐하 청이 있습니다.”
나는 월트셔에게 행한 것들을 올보그 황제에게 보고했다.
=그러니까, 그자가 착각하도록 만들어 달라 그 말이군요. 장담컨대 월트셔 그자는 사형당하기 전에 심장마비로 죽을 겁니다.
“천천히, 서서히 죽여 주십시오.”
=당연한 말입니다.
나는 월트셔가 공포에 사로잡혀 죽길 바랐다. 그리고 그놈은 그렇게 죽을 것이다.
통화를 끝낸 후, 식당에 오니, 일행이 2층에 있었다.
“이야, 여기서 광장이 한눈에 다 보이는군요.”
“그래서 축제 땐 너도나도 이곳에 앉길 원한답니다.”
벨저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팅거, 벨라를 위한 견과류를 얹은 망고도 접시에 있었는데, 그걸 보더니 카이가 눈을 반짝였다.
그리곤 곧장 망고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옆에 있던 케이홀도 망고 접시에 관심을 보였다.
[오! 이건 뭐냐? 아주 맛있는데?]카이가 망고를 한 입 먹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있지? 망고라는 건데, 여기 망고가 제일 맛있어.] [응응. 야. 마커스 이거 더 주문해라.]주문이라는 말은 또 어디서 배웠는지, 카이는 당당하게 말했다.
“채소나 과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호캣들이 망고는 참 잘 먹는단 말입니다. 이것 좀 보세요. 얘들도 진짜 잘 먹지 않습니까? 우리 마탑 뒷산에 사는 호캣들을 보고 싶으면 이 망고만 있으면 볼 수 있죠.”
벨저는 카이와 케이홀이 접시에 고개를 처박고 망고를 먹는 걸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호캣이 망고를 좋아해요?”
“예,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호캣을 잡고 싶으면 망고만 있으면 된다.”
“이야, 그걸 몰랐네. 카이, 케이홀. 앞으로 망고 자주 사 줄게.”
세이건이 새로운 걸 알았다는 듯 말했고, 나 또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놈들이 망고를 이용해 호캣을 유인했을 수도 있겠다는 그 사실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월트셔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는데, 맞은 편에 앉은 벨저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푹 숙였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리처드 벨저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유니센 마탑 소속입니다.”
“거기 수석 마법사랍니다.”
부연 설명을 덧붙이는 발로우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니, 그냥 오래 있다 보니, 나이가 차서 그 자리에 올랐을 뿐입니다.”
“무슨 그런 말을 하십니까? 월트셔의 반응을 지켜보니까 마법사님이 엄청난 실력자인지 알겠던데요. 앉으세요, 벨저 마법사님. 저도 벨저 마법사님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말 적절할 때, 와 주셔서 일이 잘 풀렸어요.”
정말이었다. 벨저의 일루전 마법은 의심 많은 월트셔를 감쪽같이 속였다. 지금쯤 월트셔는 호송 마차에서도 덜덜 떨고 있을 거다. 언제 자기 몸이 터져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긴박감에 속내를 많이 드러낸 월트셔 덕분에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닙니다. 제가 대장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릴 참이었습니다. 대장님 덕분에 아직도 목숨을 연명하고 있으니까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 친구. 율리시즈 알약을 먹고 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숨이 차거나, 심장이 두근거리진 않고요?”
“괜찮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다행입니다. 처방받으러 갈 때마다 마벨렌으로 심장과 콩팥, 꼭 확인받으세요.”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는 벨저의 얼굴이 조금 상기 되어 있었다. 뭐지? 혹시 일루전 마법을 너무 많이 써서 몸에 무리가 갔나?
“이 친구, 대장님을 한번 꼭 만나 뵙고 싶다고 해서 제가 데리고 온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긴장을 많이 하고 있네요.”
발로우가 벨저의 등을 가볍게 툭툭 치면서 웃었다.
“예? 저를요?”
“예, 대장님이 이 친구 영웅이랍니다. 그런 영웅이 대단한 마나까지 지니고 있으니. 아, 그건 그렇고 대장님. 그때 보여주신 그 마나는 어떻게 된 겁니까? 지금까지 그런 환상적인 마나는 느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말이 많은 발로우는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주절댔다.
“영웅, 아니 대장님. 성물, 아시죠?”
벨저가 성물을 언급했다.
“성물이요?”
“예, 대장님의 기운은 성스러운 기운이었습니다. 왠지 마나와 신성력이 함께 작용하면 그런 기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알아보는군.]망고를 배불리 먹고 헤인켈 무릎에 드러누워 있는 카이의 목소리였다.
“신성력을 알고 있습니까?”
“아, 예. 사실은 지금 연구하고 있는 게 바로 그겁니다. 고대 영웅들이 마신을 무찌를 때 쓴 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물론 바트롱가 영웅 후손이시니까 저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계시겠지만요. 제가 지금까지 연구해 온 거로 추측해 보건대 대장님께서 그런 힘을 쓰시지 않으셨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라빈스 동굴에서 알게 된 사실을 벨저는 연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니. 성물을 찾는 데 도움이 되겠는데?
“지금 연구하는 걸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 * *
연구물이 집에 있다며 벨저는 우리를 초대했다. 그리고 벨저는 우리가 유니센에 묵는 동안 자신의 집에서 지내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음, 얘들 말고도 동물들이 좀 있습니다.”
“이 친구에게 들었습니다. 코호드와 코먼호크가 있다면서요, 아, 캡틴 그리핀도요. 그 동물들이 지내기에 충분할 겁니다. 그리고 그 동물들이 순하다고 하던데, 정말입니까?”
“먹을 걸 좀 밝히는 것만 빼면 아주 훌륭한 녀석들이죠.”
벨저 말대로 저택은 넓었다. 나무가 많아서 스피카와 호크, 그리고 로이칸이 편히 쉴 수 있는 장소였다.
저택에 들어서기 전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거기에 이 향기.
투본산에서 맡아 본 향기가 솔솔 풍겼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마차에서 내린 카이와 케이홀은 저택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여러분을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벨저의 안내로 집에 들어선 나는 나무 위에서 쉬고 있는 로이칸을 발견했다. 팅거와 벨라도 근처에 있다는 뜻.
녀석들도 냄새를 좇아 여기까지 온 거였다.
결론은 하나다.
바로 여기에 성물이 있다.
생각지도 못하는 상황에 입꼬리가 가만히 있질 못했다. 간신히 끌어내리며 말했다.
“아주 좋은 곳이군요.”
“감사합니다. 연구실로 모시겠습니다.”
벨저는 별관으로 나를 데리고 갔는데,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별관에 들어가자마자 확 풍겨오는 향긋한 내음.
어디서 나는지 둘러봤더니, 이 층에서 향기가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이 층에 제 연구실 겸 유물 보관실이 있습니다.”
“유물요?”
“유물도 있고, 책도 있고 그렇습니다. 유물은 4대 영웅들의 발자취를 연구하다가 몇 점 발굴하게 됐습니다. 뭔가 대단한 유물 같아 보이긴 한데 그게 뭔지 아직 밝혀내진 못했습니다.”
성물을 발굴한 거네. 그렇게 생각하고 발로우를 따라 올라갔는데, 2층 복도 끝 장식장에서 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