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194)
산불이 났다. 그것도 이번에는 두 군데서 동시에.
페리고르 산이든, 유니센이든 당장 날아가 불을 꺼야 한다. 나는 지도를 테이블 위에 펼쳐 페리고르 산과 유니센을 찾았다.
“어? 페리고르 산과 유니센이 의외로 가까운데요?”
발로우가 지도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우리가 날아다녔던 그로스 산과 로이츠 산보다 가까워요.”
“그렇네요. 지도로 보면 그로스 산에서 퍼호든 정도 거리 같은데요?”
발로우와 내 눈이 마주쳤다. 희망이 보였다.
“그러면 일단 두 군데 중 한 군데를 먼저 가서 불만 꺼뜨린 후, 다른 곳에 가면 되겠군요. 우선 순위를 정해야겠군요. 사실 여기가 대장 영지만 아니라면 유니센에 가자고 말했을 겁니다.”
발로우가 페리고르 산 바로 옆에 있는 로나인을 손으로 집으면서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명 피해가 유니센이 훨씬 많을 테니까.
그렇지만 나는 내 땅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순간 망설여졌다.
[빨리 가자! 불 꺼야지.]카이가 문 앞에서 나를 보며 인상을 썼다.
-가야 하는데, 어딜 먼저 가야 할지 모르겠어.
[먼저 가다니 왜?]-페리고르 산과 유니센에서 동시에 불이 났거든. 그리고 두 군데 다 산이라서 지난번처럼 불을 끄는 데 우리가 필요해.
[그때처럼 하면 되지. 나랑 발로우랑 로이칸 타고 가고, 넌 너 혼자 불 끄면 되겠네. 아, 아니다 팅거, 벨라랑 함께.]-아! 그렇게 하면 되겠군.
나는 발로우에게 카이의 말을 전달했고, 발로우도 나처럼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확실히 헤츨링이어서 그런지, 카이 님은 굉장히 똑똑하고 대범하군요.”
[에헴!]발로우의 말을 들었는지, 카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난번 화재 진화 때, 발로우는 카이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 후로 발로우는 꼬박꼬박 카이 님이라고 말하며 존경심을 표시했다.
마법을 스스로 터득한 위대한 존재라나.
그래서 그런지 카이는 그런 발로우를 좋아하고 챙겼다.
“그럼 가서 서로 상황을 연락하죠.”
“예.”
우리는 남은 워프 스크롤 2장을 이용해 각자의 목적지로 갔다.
* * *
워프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은 내가 가본 장소여야 했다. 하여 내가 도착한 곳은 로나인.
“후, 아직 여긴 괜찮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갑자기 눈앞에 황금색 글씨가 떠올랐다.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퀘스트: 로나인을 사수하고 방화범을 찾아라.
퀘스트 보상: 워프 능력 부여. 단, 도착 장소와 거리에 따라 마나가 차감. (5천~2만)
히든 보너스 보상: ?
헉! 나는 두 눈이 부릅떠졌다.
오랜만에 퀘스트가 뜬 것도 놀라웠지만, 보상이 엄청났다. 워프라니, 워프.
마침 워프의 편리함에 맛본 차에 이런 보상이 나오다니.
진범을 찾으라는 게 눈에 확 들어왔다.
지금까지 퀘스트는 내가 완수할 수 있는 것만 나왔다. 그렇다는 건 이번에는 방화범을 잡을 수 있다는 뜻.
나는 즉시 던피 영감님과 이 일대 판테라들의 대장, 보우에게 산불에 대비해 방공호로 대피하라고 지시했다.
데빌몬스터 습격에 대비해 만들어 놓은 방공호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드워프들이 만든 방공호는 웬만한 화기는 버틸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물론 여기까지 불이 번지게 놔두진 않을 거지만.
“페리고르 산이 롱턴산 너머에 있는 산 맞죠?”
“예.”
“그럼 우리 영지 입구에 있는 강줄기 위치만 조금 이동해 놓으면 훨씬 안전하겠군요.”
“강 위치를 바꾼다고요?”
“금방 합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던피 영감님이 뭘 어떻게 하려는지 짐작은 갔지만, 지켜볼 시간은 없었다. 나는 즉시 페리고르 산으로 이동했다.
[저기야, 저기!]벨라가 시커먼 연기가 치솟는 곳을 가리켰다. 페리고르 산이었다.
나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 봤다.
“후, 장난 아니구나.”
저 아래 산 입구에 베이스캠프가 설치된 게 보였다.
레온 주교가 애드린 치료소 사람들과 도착했다고 했으니, 저 근처 어딘가에 레온주교가 있을 거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지만, 불부터 끄고 물어보자.
나는 상공으로 날아올라 즉시 속성마법을 시전했다.
“속성마법!”
* * *
베이스캠프로 마법사들을 업은 기사들이 속속 도착했다.
“저기, 3번 천막으로 모셔요.”
“여기 5번 천막 비어 있습니다.”
침상이 빈 천막에서 치료사와 힐러가 뛰어나와 외치며 실신한 마법사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실신한 이들은 지금까지 불을 끄느라 마나를 소진한 자연계 마법사들이었다.
신성 기사들 역시 굉장히 힘들고 고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생명체가 죽어 생긴 메루트와 마기를 제거하느라 신성력을 소진했다. 그들 역시 중간중간 쉬어 주면서 신성력이 차오르기를 기다려야 한다.
제국에서 속속 마법사들과 구조대원들이 도착하고 있지만, 역부족이었다.
베이스캠프 침상엔 구조된 환자들보다 과로로 쓰러진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그만큼 일이 더디고 힘들었다는 뜻이다.
레온 주교는 침상에 쓰러진 사람들에게 신성력을 불어 넣어 주고 있었는데, 그 역시 지친 모습이었다.
레온 주교는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천막에 들어가면서 기도했다.
제발 나올 땐, 불길이 조금이라도 사그라들기를.
그러나 나와서 산을 바라보면 꺼지긴커녕 더욱 활활 타오르기만 했다.
“후우, 어떻게 불이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고 더 치솟기만 하냐!”
레온 주교가 한탄을 내뱉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사제가 말을 받았다.
“이럴 때 비라도 내려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렇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원망스럽…… 어?”
사제는 말을 하다 말고 손바닥을 내밀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방금 빗방울이 떨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
“비, 비가 옵니다, 비. 여러분 비가 내려요!”
비가 온다고 해도 저 불이 꺼진다고 장담은 못 한다. 그런데 이 비는 희망을 줬다.
장대비. 굵은 비가 세차게 바닥을 때려 흙바닥에 홈이 패였다.
사람들은 비를 바라보며 빌었다.
제발 불을 꺼뜨릴 수 있기를.
그때였다. 누군가가 크게 소리쳤다.
“저기 보십시오!”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한 곳을 응시했다. 하늘 끝까지 치솟을 정도로 기세가 대단한 시뻘건 불이 차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 * *
불을 끄기 시작한 지 벌써 세 시간.
불이 더 번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줄어든 것도 아니었다.
“후, 확실히 카이가 없으니까 힘들긴 하네.”
하늘에서 비를 내리고 카이가 지하수를 끌어 올려 불을 끌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힘은 들었지만, 불타오르는 숲을 내려다보니, 마음이 급했다.
나무와 풀, 꽃들이 괴로워하는 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1분이라도 빨리 불을 지워 버리는 것뿐이다.
내 손바닥보다 작은 팅거도 저렇게 고생하는데. 팅거는 속성마법으로 비를 쉬지 않고 뿌렸고, 벨라는 그런 팅거에게 마나를 계속 흘려 넣어줬다.
“속성마법!”
수도 없이 속성마법을 외치며 비를 뿌리고 있는데, 갑자기 우레와 같은 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좋은 능력을 두고 왜 썩히고 있냐?]헙! 뭐지?
지금 내면의 내가 나를 야단치는 건가?
마음을 다잡자.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더 열심히 비를 뿌렸다. 그랬더니 또다시 소리가 들렸다.
[바람에게 도움을 받으면 될 것을, 너 자연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면서?]잠깐, 이 목소린…….
“마밸리 용사님!”
[어이쿠야! 뭘 먹었길래 소리가 그렇게 크냐? 귀청 떨어질 뻔했네. 작게 말해도 다 알아듣는다. 그건 그렇고 내 이름을 잘 알고 있군.]내게 용사의 검이 내 거라고 말해 준 마밸리 용사가 맞았다.
-그런데 바람? 그건 무슨 말이에요?
[너 그때, 바람과 자연의 힘을 얻었지 않았느냐?]-아, 예. 그랬었죠.
[바람에게 부탁해. 불을 막아 달라고.]-그게 돼요? 바람이면 불을 날려 버리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불이 다른 곳으로 빨리 퍼지잖아요.
나는 마밸리 용사의 도움을 받아 불길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마밸리 용사님!
[열심히 해. 나 간다.]바람의 도움으로 불이 빠르게 진압됐다.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자, 나는 베이스캠프로 뛰어 들어갔다.
구조대원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불꽃 기사들도 동원됐는지, 하늘에 그리핀들이 기사를 태우고 날아다녔다.
레온 주교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율리시즈 대장님!”
레온 주교가 내 손을 덥석 잡으면서 감격의 눈빛을 보냈다.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베이스캠프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도움을 주십사 연락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와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좋은 게 있었거든요. 워프 스크롤이요.”
“아, 그랬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 귀한 걸 우리를 위해 써 주시고.”
그 후로도 레온 주교는 한참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고 했다. 지친 얼굴로 말이다.
나는 적당히 받아 주면서 레온 주교와 베이스캠프와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갔다.
“주교님, 브레먼은 왜 그냥 놔두는 겁니까? 그자가 원로원이라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 않습니까?”
“증거를 못 잡았습니다.”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이거 예전부터 궁금한 거였는데.”
“원로원의 수하들을 왜 안 잡아들이냐고 물어보고 싶은 거죠?”
“아시네요.”
“저라고 왜 안 그러고 싶겠습니까? 지금도 우리 교단의 기밀이 빠져나가고 있을 텐데.”
말하는 레온 주교의 표정에 고뇌가 가득했다. 한참 땅만 바라보고 있던 레온 주교가 다시 입을 열어 말을 이어나갔다.
“브레먼 보좌관은 평판이 상당히 좋습니다. 오죽하면 차기 대주교감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겠습니까? 아크리스 왕국의 전 국왕처럼 드러나는 죄목이 있으면 모를까. 교단에 반하는 행동이 드러나지 않은 한 힘들 겁니다.”
“그렇다면 교단에 위협하는 행동이 발각된다면 그를 처넣을 수 있겠군요.”
“아마 그렇겠죠. 그런데 브레먼 보좌관이 사제 생활을 한 지 20년도 넘었습니다. 그동안 의심받지 않았다는 건 조심성이 아주 많다는 뜻이겠죠.”
“아니면 조력자가 있거나. 아, 유니센 화제 이야기도 들으셨죠? 지금은 거길 좀 가 봐야겠습니다.”
여긴 내가 더 있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불꽃기사단에서 그리핀 부대가 출동해, 산을 뒤지고 있다. 그리고 역시 불꽃기사단의 신성기사들이 마기를 제거하고 있었고.
“감사의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시작되는 인사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유니센 일이 끝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번엔 꼭 잡아야죠.”
마침 브레먼이 마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팅거, 벨라 저놈 좀 감시해.
[좋지!] [재밌겠다!]녀석들은 그렇게 고생을 했으면서도 힘들다고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일 끝나면 뭐 먹고 싶냐?
[망고!] [난 포도 신과!] [앗 나도 포도 신과!]-그래, 내가 꼭 구해 줄게.
기특하고 착한 녀석들.
나는 베이스캠프로 걸어오는 브레먼을 보며 하늘로 나라올랐다. 그리고 나직이 외쳤다.
“은신!”
* * *
“아니 저거 왜 저래? 불타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
“예 분명, 아침까지는 불이 활활 치솟고 있었는데…….”
브레먼은 로운관을 수거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그는 내심 아직 불길이 타오를 거로 생각했다.
“후, 일단 수거부터 하자. 다들 챙겨놨대?”
“아마 그럴 겁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브레먼은 대주교의 위로의 말을 전한 후, 구조대원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가겠다며 현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그의 머리 위로 팅거와 벨라가 맴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