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02)
콘스턴 영지 중심에 있는 베렌 공작저는 규모가 굉장했다.
고풍스럽고 역사가 느껴지는 저택이었다.
제국의 유일한 공작인 베렌 공작의 위치를 짐작하듯,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다.
저택으로 들어서 본관으로 가는 길만 마차로 10여 분.
[와! 마커스 저기 좀 봐. 꽃이야, 꽃. 슈리엔 정원처럼 꽃들이 만발해.]마차 창문에 얼굴을 대고 밖을 구경하던 카이의 음성이 들렸다.
카이의 말에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내다보니, 마탑에서 볼 수 있는 사계절 꽃이 만개한 정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법 온실인가 보네.
[마법 아닌데? 뭐지?]-마법 온실이 아니라고?
[응. 이상하네?]카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창밖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야, 공자님. 저기 좀 보세요. 장미꽃이에요. 장미꽃. 우와 끝내주게 근사하다.”
“오, 그렇네요. 확실히 제국 유일의 공작저라 그런지 마법 온실도 있나 봅니다.”
나와 똑같은 말을 하며 탄성을 내지르는 일행을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마법이 아니면 뭐지?
본관에 도착하자. 미리 연락을 받은 건지 베렌 공작이 현관 앞에 나와 있었다.
“어서들 오시게.”
“공작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잘 지내고 있지요. 율리시즈 백작은 잘 있습니까?”
“예, 아버지께서 다음 달, 공작님의 생신 기념일에 맞춰 공작님을 뵈러 오신다고 기대하고 계십니다.”
“바쁜 사람이 이 늙은이 생일까지 신경 쓰다니, 괜찮다고 전해 주시지요.”
말과는 달리 베렌 공작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다들 마차를 오래 타고 와서 피곤할 터인데, 어서들 들어갑시다.”
베렌 공작이 나 뿐만이 아니라 일행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며 반겨 줬다.
나는 율리시즈 백작이 준비해 준 상자를 공작 앞에 내밀었다.
“공작님. 이거 약소하지만, 아버지께서 준비해 주셨습니다.”
“호오, 이런 귀한 것을.”
공작이 상자 속의 물건을 보고 탄성을 흘렸다.
상자 속엔 테니스공만 한 붉은색 마정석에 베렌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방패와 검, 그리고 장미꽃 한 송이.
롤랑 영감님의 작품이었다.
확실히 베렌 공작가라면 장미꽃이로군.
[오! 저거 멋있다. 나도 돌아가면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군.]내 품에 안겨 있는 카이가 조각품을 탐냈다.
“이렇게 귀한 걸 내가 받아도 될까 모르겠군요.”
“아버지께서 공작님께 받은 은혜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허허, 무슨 그런 말을. 율리시즈 백작이 내 제자라는 게 복이지. 아니지. 내가 더 고맙지. 이런 훌륭한 재목을 키워 냈으니까. 이제는 선조님을 봬도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작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본론에 들어갔다.
“그래, 우리 선조님 기념관에 가 보고 싶다고 했던가요?”
“예, 이번 일로 영웅님들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가십시다.”
“아닙니다. 바쁘실 텐데 위치만 말씀해 주시면 저희가 찾아 가겠습니다. 공작님.”
“허허, 모처럼 나도 선조님께 인사를 드릴까 합니다. 자 갑시다.”
공작은 직접 콘스턴 영웅의 기념관으로 우릴 안내했다. 기념관은 본관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
공작을 뒤따라 걸어가고 있는데, 카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마커스, 저거 왜 저런지 물어봐. 근데 향기는 좋네.]-그래.
“공작님. 저 장미 정원, 이런 추운 날씨에도 꽃이 피어 있네요.”
“우리 영지의 축복이죠. 겨울에도 피는 장미.”
“마법 온실이 아니라는 말씀이네요.”
“그렇죠.”
베렌 공작이 발걸음을 멈추고 장미가 펴 있는 넓은 정원을 바라봤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일설에 저 장미는 우리 선조님의 피라는 설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인간과 마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가 바로 우리 선조님이신 콘스턴 영웅이셨지요.”
“혹시 그 전투 이름이 스톤 전투입니까?”
조용히 듣고 있던 에른이 물었다.
“예, 바로 그 전투일 겁니다.”
“그때 이후, 마물들이 콘스턴 영웅 이름만 들어도 혼비백산하며 도망쳤다고 역사서에 쓰여 있었습니다.”
“선조님께서 전투가 끝난 후, 영지를 마물들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당신의 피를 뽑아 영지 곳곳에 뿌렸다더군요. 당신의 냄새만 맡아도 마물들이 못 쳐들어올 거라면서요. 그 피가 장미꽃이 되었다는 설이 내려오고 있지요.”
베렌 공작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시선은 길가 장미꽃으로 향했다.
[우리 집에 돌아가면 내 피도 좀 뿌려볼까? 그러면 무슨 꽃이 필까? 음, 뭐가 좋지? 마커스, 슈리엔 정원에 있던 꽃 이름이 뭐지?]갑자기 카이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 종처럼 생긴 꽃말이야. 아, 아니다 신과가 낫겠다. 이왕 피로 만드는 거라면 먹을 수 있는 게 낫지. 좋았어, 그럼 난 망고신과를 만들래.]-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저건 조상을 신격화하기 위해 과장된 거라고.
으레 전설, 영웅전은 그랬으니까.
나는 장미 정원을 지나가면서 이유를 짐작했다.
-정원을 지나가면서 못 느꼈냐? 열기가 은은하게 느껴지지 않디?
[음, 그랬던가?]-내 생각에 정원 밑에 온천이 있을 거야. 뜨겁지도 않고 적당히 따뜻한. 그래서 지면이 따뜻한 거지.
[엥? 그런 거였어? 저거 피로 만든 꽃 아니었어?]-그럼 그걸 믿었어?
[하하하, 후손들의 상상력은 참으로 뛰어나군.]카이가 아닌,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용사님이었다. 그럼 다른 이유가 있는 거예요? 이렇게 물어보려는데, 베렌 공작이 손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다 왔습니다. 저 건물입니다.”
웅장한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감회가 새롭군.]마밸리 용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봤던 곳이에요?
[저 건물을 물어보는 거라면 아니다. 그러나 이 땅에 와 봤다고 물어보는 거라면, 그래 아는 곳이다.]건물 앞에는 큰 동상이 두 개가 세워져 있었다. 하나는 4명의 영웅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서 있는 군상이었고, 또 하는 방패와 검을 들고 있는 기사의 동상이었다. 발밑엔 장미덩굴 조각이 있었다.
콘스턴 영웅이군.
[오, 여기 냄새가 좋다.]카이가 코를 킁킁거렸다.
-그런 것 같네.
콘스턴 기념관과 바트롱가 기념관이 다른 점은 여기엔 전투 장면이 그려진 그림이 많다는 거다. 그런데 그림 속에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우왓, 저거 마커스 네 품속에 있는 것과 똑같이 생겼어.]카이가 앞발로 그림을 가리켰다.
“어? 공자님, 저 검…….”
“대장님, 저 검 손잡이 대장님이 갖고 계신 것과 똑같이 생겼는데요?”
“대장님, 저기 저 용사가 들고 있는 검 말입니다.”
세이건과 헤인켈도 놀란 표정을 하며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에른은 이미 그림 앞으로 가서 서 있었다.
저들은 카이처럼 내 품에 있는 검과 똑같은 게 그림 속에 있어서 놀랐겠지만, 나는 그 검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보고 놀란 거였다.
-요, 용사님. 저분. 용사님 아니세요?
[크흐흠, 맞다.]마밸리 용사님이 대답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베렌 공작이 우리를 들러보면서 물었다.
“아, 이걸 손에 넣었습니다.”
“오, 마밸리 용사님의 검이로군요.”
베렌 공작은 검신이 없는 검 손잡이만 보고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다.
“검신은 없습니다.”
“용사님의 검신은 눈에 보이는 검신이 아닙니다.”
알고 계시네.
“마나검입니다. 그리고 디파인 석이 붉게 빛나는 거로 보아, 대장은 선택받은 자로군요.”
나를 바라보는 베렌 공작의 눈빛이 뜨거웠다.
“선택받은 자라니요. 아, 그 전에 마밸리 용사님을 아십니까?”
“마물을 죽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용사님이시죠. 세간에선 4대 영웅이 이 대륙을 마신으로부터 구했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들과 용사님들 모두가 힘을 합쳐 대륙을 구하신 거죠. 자, 이리 오시죠.”
그때였다. 마밸리 용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베렌 공작이라는 자. 썩 괜찮은 자로군. 콘스턴 영웅의 후손다워.]베렌 공작은 우리를 3층으로 안내했는데, 그곳은 용사 전시실이었다.
[흠흠, 저거 내가 썼던 투구로군.]-기억나세요?
[당연하지 흠, 그렇다면 그것도 있을까?]-찾으시는 게 있어요?
[그런 게 있다.]그 후로도 전시실을 돌면서 용사님은 계속 이야기를 했다. 주로 유물을 보면서 그때 동료들이나 그 당시 상황을 이야기했다.
“4대 영웅님들의 기념관을 들러볼 계획이라고 했지요?”
“예, 황도인 애틀리스에 갔어도, 카발라 제국에 갔어도 영웅님의 기념관은 안 가 봤거든요. 선조님들의 기운을 받아 볼까 해서요.”
정확하게는 성물을 찾을 목적이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이 일대에도 성물이 있는 게 틀림없다. 주변에 은은하게 빛나는 게 느껴졌으니까.
그때, 공작의 비서관이 다가왔다.
“공작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았네. 곧 가지.”
공작은 비서관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우리를 보며 말했다.
“이거 객이 온 모양입니다. 이 늙은이는 이만 자리를 뜰 테니 천천히들 구경하고 저녁에 봅시다.”
“예, 그럼 저녁에 뵙겠습니다.”
공작이 내려가자 우리는 다시 전시실로 돌아가 유물들을 구경했다.
용사들이 마물을 무찌르는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유난히 이 그림 속의 마물들이 사람인지, 마물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
“이게 정말 마물을 그린 거라면 누가 마물인지, 사람인지 분간을 못 할 것 같아요.”
세이건이 그림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내 생각도 그래.”
만약 저런 모습이라면 나도 마물을 찾아내지 못할 것 같았다. 다만, 마물이 마기가 짙어서 내 레이다에 걸리면 모를까.
“그래서 마물이 사람들 속으로 쉽게 파고들었대요.”
“그런데 말이야, 마물이 완전히 사라졌을까? 정말 다 죽었을까? 저렇게 사람처럼 생겼는데, 몇몇은 살아남지 않았겠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살아남아서 우리 곁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죠.”
“흠흠, 예전에 마신과 마물이란 수업을 들었을 때, 원로원의 수뇌부들은 마물인가, 아닌가로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에른의 말을 헤인켈이 받았는데, 우리 모두 고개를 동의한다는 듯 끄덕였다.
[그놈들은 사라지지 않았다.]마벨리 용사님이 단호한 목소리로 우리의 추측을 지지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그래, 사라질 놈들이 아니다.]-원로원 놈들이에요?
[그건 나도 모른다. 내가 살았을 땐 원로원이라는 조직이 없었으니까. 그놈들을 직접 보면 알겠지.]음, 콜린스나 톨먼 같은 녀석들은 적어도 마물은 아니라는 소리군.
용사님의 말에 확신이 섰다. 마물은 아직 존재한다.
우리는 각자 흩어져서 서로 보고 싶은 걸 구경했다. 에른은 1층 고서 전시실에, 세이건과 헤인켈은 무기 코너에.
[마커스, 우리 저 밖에 나가보자.]-그래.
카이가 가 보고 싶은 곳은 기념관 뒤편 정원. 아마 은은하게 불빛이 흘러나오는, 성물이 있는 곳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