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06)
정말 저 드래곤이 카이 부모님? 고개를 들어 드래곤을 올려다봤다.
그때였다.
시선을 멀리 하고 있던 드래곤의 눈동자가 움직이더니 나를 내려다봤다.
“어?”
나는 두 눈을 깜빡인 후, 다시 올려다봤다. 드래곤의 눈동자는 처음 봤을 때처럼 멀리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하. 놀랄 만도 하지요. 나도 이곳에 처음 방문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올보그 황제는 나를 보고 웃더니 나직이 말을 덧붙였다.
“여기 비밀을 말해 줄까요? 밖에서는 드래곤 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렇게 높이 우뚝 서 계신데 말입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층보다 높아 보이는 조각상이다. 그런데 황궁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이 정도 크기라면 황궁 밖에서도 보여야 할 거다.
다른 사람도 아닌 초월적인 시력을 가진 내가 못 봤다는 건 분명, 어떤 힘이 작용한 거다.
“들어갑시다.”
올보그 황제는 조각상 뒤에 세워진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갑자기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와 함께 드래곤 상 앞에 놓인 단 위에 망고 신과와 포도 신과, 그리고 보라색 마정석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거 먹어. 그리고 나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마커스도 있고, 팅거, 벨라, 그리고 여긴 없지만 친구들도 많아. 케이홀, 스피카, 호크, 호크 녀석은 되게 이상하게 생겼는데 착해. 그리고 하늘을 나는 로이칸도 있고, 맞다 반달이도 친구야. 아, 되게 약한데 루나라는 애도 있어.]부모님께 말을 전하고 있군. 카이 녀석이 하는 거로 봐서는 저 두 드래곤은 죽은 것 같았다.
앞으로 더 잘해 줘야겠군.
[안 죽은 거 아니까 연락해.]뭐야? 너 부모님 살아 있었어?
“들어가시죠.”
“아, 예.”
놀라 잠시 멈칫하고 서 있던 나는 황제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은 아주 화려했다. 마치 드래곤 레어라도 된 것처럼 입구부터 번쩍였다.
위잉.
삼중으로 쳐 있던 결계를 해제하고 들어갔더니, 넓은 공간에 빛이 환하게 비추었다.
[우와, 유리아 있어.] [블론도 많은데?]올보그 황제는 성물들을 지나치며 걸어 들어갔다.
“이 성물들은 마신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겁니다. 이것들은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우선 대장, 그대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겁니다.”
올보그 황제가 서 있는 곳엔 방패가 있었다. 순간 감이 왔다. 이거구나. 용사님이 말씀해 주신 방패가.
“이게 바로 시조님의 영광스러운 방팹니다. 그 어떤 마물도 이 방패를 뚫지 못했답니다.”
올보그 황제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자격이 있는 자만이 선조님의 방패를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커스 율리시즈, 당신은 이 방패를 얻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보그 황제는 그 말만 남기고 뒤를 돌아 걸어 나갔다.
뚜벅뚜벅.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바로 방패에 그려진 그림.
[드래곤의 혼이 서린 방패, 애틀리스 방패다.]갑자기 들려온 용사님의 목소리.
[보관을 아주 잘해 놨군. 힘이 전혀 줄지 않았어.] [당연하죠. 드래곤의 힘은 한 번 깃들면 사라지지 않아요.]모습을 드러낸 카이가 보라색 눈동자를 반들거리며 방패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자신만만한 표정.
아마 네가 이걸 만들 때면 나는 죽어 사라졌겠지. 그러나 이 말을 하는 대신.
-그래. 기대하지.
[크핫핫핫핫. 기다려라.] [그래, 벌써 이렇게 강한 네 녀석을 보니, 그럴 것 같다.]용사님도 깔끔한 대답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용사님, 이걸 어떻게 새겨요? 그냥 새겨져라, 외치면 되는 거예요?
[손을 뻗고 눈을 감아라. 네가 자격이 있다면 저 방패는 너를 선택할 거다.]눈을 감자 건물이 울렸다.
후우우웅.
분명 실내였건만 바람이 불어닥쳤다. 후웅, 점점 더 거세졌다. 마밸리 언덕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힘이 나를 밀어붙였다.
“큭!”
불구덩이가 머릿속으로 헤집고 들어와 머리가 지져지는 것 같았다. 참기 힘든 고통이 엄습했다.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목도 타들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이 실제로 탔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다만 목이 불구덩이를 삼킨 것 같았다.
그리곤 가슴으로 점점 화마의 기운이 아래로 내려왔다. 그렇게 몸을 한 바퀴 휘감던 불구덩이는 손바닥으로 갔다.
치지지직.
다행인 건 손바닥은 뜨겁지 않았다. 주먹에 불의 저항성이 있어서 그런 건가?
“후우, 이젠 살겠군.”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대단한 녀석이군.]용사님의 말이 들려왔다.
[선택받은 인간이군. 눈 떠도 된다.]눈을 뜨자, 눈앞의 방패가 사라졌다.
[네 손바닥에 있다.]손바닥을 보니, 드래곤 방패가 내 손바닥 가득 새겨져 있었다.
* * *
“후, 도착했군.”
알트시와 애틀리스 왕복에 1만 마나가 차감됐지만,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툭, 카이가 앞발을 내 손에 얹었다.
[펴 봐.]오른 손바닥을 펴니, 방패가 새겨져 있었다. 방패 안에 새겨진 골드, 실버 드래곤이 얼마나 실감 나게 새겨졌는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히힛.]-좋냐?
[뭐, 그렇지.]말과는 달리 카이의 입이 실룩거렸다.
그림으로라도 엄마, 아빠를 봐서 기분이 좋은 거겠지.
-다음에도 또 가자.
[응.]주머니엔 훈장이 들어 있었다. 마물로부터 흔적을 지울 수 있는 성물. 내가 갖고 있는 것까지 합하면 12개.
[생각보다 많군.]용사님이 방에 모습을 드러냈다.
-용사님.
[호헨과 그의 부하들이 많이 훔쳐갔거든.]-호헨은 검을 훔쳐갔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게 있으면 마물을 상대하기에 좋거든. 너도 느끼지 않았느냐, 만약 네가 그게 없었더라면 그놈은 너를 바로 찾아냈을 거다.]하긴, 그건 신기하게 생각한다.
[그건 나중에 네 동료들에게 나눠 주도록 하고, 이제 방패를 사용하는 연습을 하자.]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무기를 들고 사용 못 하는 것만큼 멍청한 일이 또 있을까?
-예.
용사님 말대로 나는 속성으로 방패 사용법을 익혔다.
-그냥 손만 뻗으면 되네요.
[그렇지. 선택받은 자들은 배울 필요도 없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군. 지금 당장 그놈을 만나도 괜찮겠어.]-당장 가서 없앨까요?
[죽이러 가자!]대답은 용사님 대신 카이가 했다.
-카이 너 그거 뭐냐?
[멋있지?]카이 가슴에 훈장이 반짝였다.
[나도 멋있지?] [나는?]가슴에 대고 있으면 저절로 붙어버리는 훈장이 카이, 팅거, 벨라의 가슴에서 반짝였다.
[싸우러 가자.] [응, 마물을 없애자.] [맞앙. 나쁜 놈은 사라져야 해.]녀석들이 의기양양하게 출사표를 던지고 있었는데, 통신구가 울렸다.
“마커스 율리시즙니다.”
=율리시즈 대장, 여기 본부로 좀 와 줘야겠습니다.
지로드 교수의 다급한 목소리가 통신구에서 흘러나왔다.
이 늦은 시각에 나를 호출했다는 건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뜻.
나는 그게 뭔지 시청에 도착하기도 전에 알아차렸다.
율리시즈 호텔과 시청 사이에 넓은 공원이 있는데, 거길 가로질러 가는 게 지름길이다. 당연히 공원을 가로질러 달려갔는데, 갑자기 비명이 들렸다.
“끼야아아!”
야심한 밤, 그곳도 공원에서 여자의 비명소리.
그때였다.
[마커스, 사람이 쓰러졌어.] [마커스, 여기, 여기야.]팅거, 벨라가 알려 준 곳은 바로 비명이 들린 장소. 그곳에서 희미한 마기가 감지되었다.
“카든은 마기가 감지되지 않았었는데, 뭐지?”
나는 서둘러 현장으로 달려갔다. 도착한 그곳엔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고 여자는 내가 도착했어도 여전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시청에서 나왔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나는 여자가 겁을 먹을까 봐 미리 소속을 밝혔다.
“저, 저기. 저기요!”
여자는 팔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는데, 팔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여자가 가리키는 곳엔 다람쥐가 남자 목을 뜯고 있었다. 데빌몬스터였다. 나는 곧장 손가락을 들었다. 데빌몬스터에게 마나를 날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바꿨다. 쓰러진 남자가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기 때문.
“포획”
찌직 찍찍찍찍. 포획마법으로 잡힌 다람쥐가 발버둥을 쳤다. 치지직. 나는 놈을 끌어당겨 그대로 태워 버렸다.
놈의 정수리에서 새어 나오는 마기는 곧바로 제거해 버렸고.
“흐, 흐흐흑.”
흐느끼는 여자와 숨을 가삐 쉬는 남자. 응급조치를 취한 후, 남자를 업고 시청으로 갔다. 여자는 울면서 뒤따라 왔다.
대낮처럼 환한 시청에 도착하니, 사태가 짐작이 갔다.
“빨리 왔군요.”
지로드 교수가 입구에서 나를 맞이했다. 지로드 교수 뒤로 기사들이 정렬해 있는 거로 봐서 데빌몬스터를 토벌하러 나갈 참이었던 것 같았다.
“데빌몬스터를 목격했습니다.”
지로드 교수가 사람이 바글바글한 복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내가 거리를 돌아다닐 땐 마기를 감지하지 못 했다. 그렇다는 건 내가 애틀리스에 간 사이, 데빌몬스터가 출몰했다는 뜻.
“갑시다. 가면서 설명하지요.”
“예.”
지로드 교수와 나, 그리고 뒤따르는 몇몇 무장한 기사들과 함께 우리는 공원 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대장에게 연락했을 때, 최초 연락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그러기에는 희생자가 너무 많아 보이는데요?”
지로드 교수에게 연락을 받은 지 20분. 그것도 여자와 남자를 데리고 오느라 늦은 거였다.
“혹시 초동 대처가 늦은 겁니까?”
신고에 누락이 있었냐는 표정으로 지로드 교수를 바라봤다. 데빌몬스터의 출몰은 긴급사항이다.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게 데빌몬스터 출몰 신고였다.
데빌몬스터가 대륙 어디에서든 나타나면 토벌대 본부로 즉각 보고가 이뤄진다.
그런데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신고가 없었다니. 분명 중간에 누락된 보고가 있었을 거다.
“나도 처음엔 이해가 안 갔습니다. 혹시 데빌몬스터를 봤습니까?”
“에, 다람쥐처럼 생겼던데요?”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놈을 데빌몬스터라고 생각을 못 했던 겁니다. 지금까지 봐 왔던 데빌몬스터와는 너무나 이질적이었으니까요.”
“맞습니다. 그 데빌몬스터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저 귀여운 다람쥐라 생각하고 오히려 좋아했대요. 그래서 옆에 돌아다녀도 신경 쓰지 않았대요. 아니, 오히려 안기도 하고 먹을 걸 주면서 같이 있는 건 반겼대요.”
옆에서 다른 대원이 말을 덧붙였다.
이해가 갔다. 만약 그놈이 남자의 목을 물어뜯고 있지 않았더라면, 마기가 감지되지 않았더라면 나도 그저 귀여운 동물이라 생각했겠지.
“다람쥐가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몇 되겠습니까? 그게 문제였는지, 벌써 사망자만 벌써 천 명이 넘었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지요.”
“훨씬 많을 겁니다. 그놈들은 이미 알트 시 전역에 다람쥐 형태의 데빌몬스터를 쫙 뿌려놓은 후, 동시에 공격했을 겁니다. 허를 찔린 거죠. 데빌몬스터 토벌대는요?”
“오고 있다는데, 그래도 시간이 걸릴 겁니다.”
“우리끼리 해결해야죠.”
“그런데 놈들을 죽인 후, 마기는 어떻게 제거해야 할지.”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헤인켈 기사가 있군요.”
“예.”
나와 카이, 그리고 팅거, 벨라가 채찍으로 마기를 없애지만, 굳이 지금 이야기해서 지로드 교수를 놀래키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은 놈을, 귀엽게 생긴 데빌몬스터를 잡아야 하는 게 급선무니까.
“으아아악!”
남자의 비명. 우리는 곧장 현장으로 달려갔다.
* * *
“사람들은 겉모습에 참 잘 속아.”
카든은 다람쥐 형상을 한 데빌몬스터, 데빌스큐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마침 데빌스큐가 한 남자의 목을 물어뜯고 있었다.
귀여운 것과는 달리 데빌스큐의 이빨엔 치명적인 독이 있어서 물리면 살아남기 힘들다. 그렇게 본다면 마커스에게 구조된 남자는 운이 좋았다. 마커스의 응급조치 덕분에 살았으니까.
“콜린스.”
“예.”
“에반 스카너에게 말해라. 아주 잘 했다고. 앞으로도 기대해 보겠다고.”
“가, 감사합니다.”
“좋아. 아주 좋아. 이런 모습이면 나도 키워보고 싶다니까.”
카든이 손가락을 까닥거리니까, 데빌스큐가 쪼로로 다가왔다. 그리곤 카든의 손에 머리를 비벼댔다. 누가 봐도 귀여운 다람쥐.
카든은 그런 데빌스큐의 머리를 슥슥 문지르면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현장을 지켜봤다. 그때였다.
번쩍! 저 먼 곳에서 강력한 마나의 힘이 느껴졌다.
“뭐지?”
생각을 이어 나갈 틈도 없이 카든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