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08)
오킬즈 영감님을 흥분시킨 건 바로 마물 카든이 품고 있던 검은색 병.
“어때요?”
두근두근.
약간의 긴장감이 흐른 후.
=굉장해. 드디어 이걸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다니.
“알고 계신 거였어요?”
카이와 팅거, 벨라도 궁금한지 통신구 주변에 모였다.
=우리 드워프들의 치욕과 자긍심이 동시에 들어간 작품이지.
긴 한숨 뒤에 흘러나오는 한탄,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마물이 나타난 거냐?
“예.”
=이걸 손에 넣었다는 건 마물을 잡았다는 뜻이겠지?
“예.”
=잘했다.
옆에서 카이와 팅거, 벨라가 말을 덧붙였다.
[나도 도왔는데.] [나도.] [우리도 도왔어요. 오킬즈 영감님.]그러나 들려오는 소리는.
니야오, 뾰로롱, 짹짹.
=흠흠, 귀여운 녀석들. 그 녀석들도 마물을 잡아서 좋아하는 것 같군. 그건 그렇고 방금 오킬즈 영감이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 궁금할 거다.
“예, 궁금해요. 롤랑 영감님.”
=우리 드워프들은 테페론 신의 부름을 받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족속이지. 우리가 만든 작품에 신께서 직접 신성력을 불어넣어 주셨으니까.
=검은병에 혈목이라는 게 쓰였다.
혈목, 내가 궁금했던 재료가 오킬즈 영감님 입에서 흘러나왔다.
“오킬즈 영감님, 설마 피로 물들인 나무여서 혈목인 건 아니죠?”
=맞다. 피로 물들인 나무다. 우리 선조의 피가 담긴 나무지.
“……네엑?”
피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단언컨대 드워프의 피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이건 마물들이 우리 선조들을 핍박해서 만든 결과물이다. 너도 알다시피 유리아는 우리 드워프들이 만든 작품 중에 최고의 작품이다.
오킬즈 영감님과 롤랑 영감님 입에서 검은병이 세상에 나오게 된 사연이 흘러나왔다.
마신에게 두려운 존재는 테페론 신뿐이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테페론 신이 내뿜는 신성력. 그게 마신의 약점이었다.
그러나 마신에겐 완벽한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었다. 대륙 곳곳에 그의 부하들이 장악해 있었으니까.
마신의 부하들은 테페론 신이 나타날 징조만 보이면, 즉시 마신에게 알렸다. 마신은 테페론 신을 피해 가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신은 갑자기 숨이 가빠오고 눈이 멀어 아무것도 안 보였다. 본능적으로 강력한 신성력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도망친 마신은 테페론 신이 나타났는데도 보고하지 않은 부하들을 닦달했다.
그렇게 알게 된 유리아라는 존재.
마신의 눈이 회까닥 돌아갔다. 유리아에 신성력이 아닌 마기를 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드워프들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어느 날, 마물은 드워프를 신기한 재료, 희귀한 재료로 유인해 잡아 가뒀다.
그렇게 해서 잡은 드워프들에게 유리아와 같은 물건을 만들길 종용했다. 신성력 대신 마기를 저장하는 그런 물건을.
드워프들은 당연히 반대했고, 저항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선조들께선 가족과 친구, 동료들이 눈앞에서 희생당하는 걸 도저히 볼 수가 없으셨던 거지.
[이잇, 나쁜 놈들. 마커스, 그놈들 죽이자, 죽이러 가자.] [맞다. 마커스 가자!] [힝, 불쌍해. 너무 불쌍해.]드워프 영감님들의 말을 들으면서 카이와 팅거는 마물들을 죽이러 가자고 악악거렸고, 벨라는 드워프들이 불쌍하다고 훌쩍였다.
=선조님들께서 그놈들이 원하는 걸 어쩔 수 없이 만들긴 했지만, 당연히 유리아 이상은 만들 수 없었지. 유리아를 우리 선조들이 만들긴 했으나, 마무리는 테페론 신께서 하셨으니까.
“아!”
그건 몰랐네.
=그렇다고 우리 선조들께서 가만히 당하기만 하지 않으셨지. 바로 이 혈목이 그 증거다.
나는 눈이 커졌다. 무시무시하다고 생각한 재료가 드워프들의 자긍심을 세워 준 거라고?
반전인가?
=테페론의 눈물이라는 게 있다. 신께서 우리를 위해 흘린 눈물이지.
=시중엔 그 눈물만 있으면 모든 병을 치유한다고 알려져 있지. 맞는 말이다. 그런데 눈물엔 능력이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눈물의 위치를 찾아내는 능력도 있지. 그래야 숨겨져 있는 신의 눈물이 세상에 도움이 될 테니까.
=드워프들의 피와 테페론의 눈물이 스며든 흑목이 바로 혈목이지.
그때였다.
마물의 검은병.
[랜도르, 루몰, 흑목, 덴드론, 얀틴, 네오듐, 투세륨, 시타론, 혈목, 테페론의 눈물.]검은병 재료의 전 성분이 허공에 나타났다.
반전 맞구나.
마신에게 검은병을 주고, 영웅께 테페론의 눈물을 쥐여 주면…….
멋진 복수네.
=선조께선 마물에게 검은병을 만들어 준 후, 후손들에게 알렸지. 마물을 잡기 위해선 테페론의 눈물이 필요하다고. 자세한 건 세이건에게 들려 보낸 책을 보면 나와 있을 거다.
=이제 모든 재료를 알아냈으니, 드디어 네가 주문한 마나, 신성력을 저장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이것보다 훨씬 대단한 걸 만들어 주지.
그것으로 드워프 영감님들과의 대화는 끝이 났다.
“테페론의 눈물이라는 게 이건가?”
나는 주머니에서 유백색 병을 꺼내 흔들어봤다. 헤렌제 왕국 보물고에서 챙겨온 것이었다. 국왕은 이걸 보고 궁극의 생명수라고 말했다.
“이걸 훈장에 한 방울씩 떨어뜨리라고 하셨지?”
나는 용사님이 가르쳐 준 대로 훈장에 테페론의 눈물을 떨어뜨렸다. 눈물은 훈장에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스며들었다.
[와! 반짝거린다.] [응, 훨씬 빛이 나.] [흠, 난 이거.]녀석들이 좋아하면서 훈장을 하나씩 골라잡았다.
“도대체 그 책에 무슨 말이 쓰여 있을까?”
병을 보며 테페론의 눈물과 드워프의 자긍심의 상관관계를 생각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났다.
나는 주머니에 병을 다시 집어넣고는 말했다.
“들어와.”
“대장님. 레온 주교님이 보내 주신 자룝니다.”
헤인켈과 에른이 자료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많네.”
테이블 가득 자료가 쌓였다.
“이건 이 자료들을 정리한 겁니다.”
에른이 맨 위에 있는 서류철을 내게 넘겼다. 나는 그걸 보면서 에른과 헤인켈이 조사한 내용도 함께 들었다.
“결국, 마물이 지금까지 잠잠했던 건 마신이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 자료 대부분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에른이 내 물음에 답했다.
“그럼 지금 마물이 나타나 활동하고 있는 건 마신이 힘을 얻고 있다는 뜻이겠군.”
“아무래도요.”
“심각하군. 마물이 활동하던 시기에 가장 많았던 건 몇 마리였어?”
나는 온화한 귀공자 스타일로 사람들의 환심을 샀던 카든을 떠올리며 물었다.
“스톤 전쟁이 일어나기 50년 전부터 스톤 전쟁 직전까지가 마물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데, 그때 대륙에 알려진 마물만 삼천이 넘었답니다.”
“삼천?”
“예, 기록된 게 그랬으니까 훨씬 많을 겁니다. 제 생각엔 여기서 5배는 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 오천이라고? 휘유, 엄청나네. 마물이 아니라 데빌슬롯 같은 놈이 만 오천이라고 해도 끔찍하네.”
“으, 그놈들은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데빌 슬롯을 겪어본 헤인켈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데 삼천 마리 중에 인간형 마물은 오백 마리 정도랍니다.”
“그래? 그러면 나머지는?”
“여러 동물의 형상을 한 마물들이랍니다.”
에른이 쌓여 있는 자료에서 책자 몇 개를 빼서 그중 하나를 펼쳤다. 동물도감처럼 동물들 그림이 그려진 책자였다.
“그냥 동물들을 그려 놨다고 해도 믿겠는데요?”
“정말이네요. 전 구별 못 할 것 같습니다. 이것들도 마찬가지고요.”
헤인켈이 내민 책에는 사람이 등장했는데, 그중에는 카든과 비슷한 모습도 있었다.
“헤에, 그놈, 고위 마물이었군.”
“대장님이 상대한 마물이 이놈이었습니까?”
“응.”
“후, 이런 놈이 마물이라면 전 못 찾아낼 것 같습니다.”
에른이 허리를 의자에 붙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동감입니다. 대장님, 어떻게 이놈이 마물인지 알아내셨습니까?”
“맞습니다.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헤인켈과 에른의 눈동자가 내게로 향했다.
“그게…….”
나는 왼쪽 가슴에 장식처럼 붙어 있는 훈장에 손을 갖다 대며 입을 열었다.
“이거 보이지?”
“훈장 말씀이지요?”
“그래.”
“이게 바로 마물을 잡아내는 장치야.”
“그게요?”
에른과 헤인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마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장치이기도 하지.”
“보호해 준다고요?”
“대장님, 이거 혹시 성물입니까?”
에른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반면, 헤인켈은 뭔가 아는 눈치였다.
“맞아. 테페론의 훈장. 테페론 신께서 용사님들께 내려주신 성물이지.”
“아!”
“그렇군요.”
“마물이 근처에 나타나면 이 훈장이 진동해.”
성물이란 말에 두 사람은 훈장의 능력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성물이니까.
“그럼 마물로부터 보호해 준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혹시 은신 능력이 발휘되는 건가요?”
“그건 아닌데, 비슷해. 마물이 용사가 가진 마나와 신성력을 눈치채지 못하게 차단해 주지.”
에른은 마나가, 헤인켈은 마나와 미약하지만 신성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해가 잘되는 눈치였다.
“잠깐만 있어 봐.”
나는 테이블 위에 펼쳐진 책들을 접어 밀어 놓고는 애틀리스에서 가지고 온 테페론의 훈장이 든 주머니를 내려놨다.
“애틀리스에서 받아 온 거야. 하나씩 챙겨.”
“이걸 제가요?”
“제가 이걸 받아도 되나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두 사람은 눈을 반짝이며 골랐다.
에른과 헤인켈이 감탄하며 훈장을 가슴에 붙이자.
부르르르. 지이잉. 징징징.
갑자기 훈장들이 일제히 진동했다.
두 사람은 곧장 거실 입구 쪽으로 달려가 문 바로 옆에 섰다. 헤인켈의 손은 이미 검집에 가 있었다.
잠시 후, 똑똑 거실문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나는 나직이 말했다.
“다들 훈장을 한번 손으로 가볍게 쳐.”
훈장이 진동하고 있을 때, 손으로 톡 건드리면 진동이 멈춘다.
두 사람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카이와 팅거 벨라도 제각각의 방법으로 훈장을 터치했다.
“네.”
에른이 영업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자, 호텔 직원이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말했다.
“시청에서 율리시즈 대장님을 찾아왔습니다.”
호텔 직원이 뒤로 물러나자, 한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율리시즈 대장님. 가론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임시 대책반에 소속돼 있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지?”
나는 느긋한 걸음으로 가론 이라는 놈에게 다가갔다.
“지로드 교수님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지금 2지구 구역에 데빌몬스터가 출몰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지구?”
“예. 교수님과 대원들은 이미 출동하셨습니다.”
“알았다. 준비를 마치고 나가지.”
“쉬셔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그럼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가론이라는 놈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자. 벨라가 말했다.
[저 마물, 웃었어.] [나도 봤어. 엄청 즐거운가 봐.]즐겁겠지. 조금 있으면 자기들이 판 함정에 내가 퐁당 빠질 건데. 얼마나 즐겁겠어?
“저렇게 허술합니까? 통신구도 아니고 직접 찾아오다니요.”
“시청에서 이 호텔까지, 마차로 와도 10분은 타고 와야 하는데, 출동을 직접 찾아와서 말한다니. 참 나. 이건 그냥 티를 팍팍 내는 것도 아니고.”
에른과 헤인켈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 훈장, 엄청난데요? 대장님이 말씀하신 게 뭔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에른, 나가서 우리가 2지구로 갈 때, 너는 이걸 들고 시청에 가서 지로드 교수님께 가라. 훈장에 대해선 내가 통신구로 연락을 하지.”
나는 방으로 들어가 지로드 교수에게 연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