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10)
용사님이 미친놈이라 말한 마물은 카든처럼 생긴 인간형 마물이었다.
그놈이 하늘 위에 둥둥 떠서 현장을 내려다보다가 곧바로 사라졌다.
나는 곧장 품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됐다. 넣어둬라.]-대비해야죠.
[지금은 안 나타날 거다.]-아군이 전멸한 걸 보고 그냥 간다고요? 혹시 지원군을 부르러 간 건가요?
[그렇지. 조만간 올 거니, 그때까지 쉬면서 마나와 신성력을 정비해라. 놈과의 전투는 이전 같지는 않을 거다.]언제 왔는지, 카이, 팅거, 벨라도 내 옆에 쪼로록 앉아서 용사님의 말을 경청했다.
처음엔 용사님의 말이 전혀 안 들리던 녀석들인데, 카이가 용사님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벨라와 팅거도 용사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녀석들 앞에는 검은병이 놓여 있었다. 그새 마물들에게 가서 검은병을 수거해 온 거였다.
[신실한 녀석들이군.]용사님이 카이, 팅거, 벨라를 칭찬했다.
[방금 그놈은 서열 3단계 고위 마물이다.]-고위 마물도 서열이 있어요?
[그래. 네가 처음 봤던 카든 놈은 고위 마물 중에 가장 낮은 1단계 마물이다. 카든 같은 놈 10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게 저놈과 대치하는 것보다 훨씬 쉬울 거다.]-휘유, 그럼 엄청 강한 거잖아요?
방금 세 마리를 나와 카이가 상대하기에도 벅찼는데, 10마리라고?
용사님은 잠시 아무 말이 없으셨다. 나는 다시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저놈에게 우리 대원을 잃었었다. 나 혼자만 살았지. 아무튼, 나는 저놈을 내가 죽는 날까지 하루도 잊어버린 적이 없었다. 설령 저놈이 그때의 내가 알고 있던 놈이 아니라 하더라고, 너는 저놈을 반드시 없애라.]-예.
[놈은 강하다. 단 한 가지 약점이 있긴 하지. 놈은 드래곤의 힘에 약하다.]그때였다. 갑자기 지면이 울릴 만큼 크나큰 소리가 들렸다.
콰아앙……!
그리고 깜깜한 하늘이 대낮처럼 환하게 빛났다.
화르륵! 불길이 솟아올랐다.
“으왓! 저게 뭐지?”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불이 나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가자. 불 끄러.] [그래. 속성마법이 어떤 건지 보여 주지.] [불쌍해. 애들이 또 다 탔겠어. 그런데 좀 이상한데?] [응, 이상한 것 같긴 해. 열기가 안 느껴지는 것 같아.] [그러게, 왜 그러지?]이제 제법 잘 날게 된 카이는 팅거와 벨라와 함께 날아갔다. 녀석들은 날아가면서 몇 번이나 이상하다는 말을 했다. 그때였다.
[뜨겁지 않아요.] [이거 괜찮아요. 불 난 거 아니에요.]갑자기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 수목의 목소리였다.
-그게 무슨 말이지?
[불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주고 싶었어요.] [맞아요. 우리 풀들은 마커스 대장에게 고마워하고 있으니까요. 친구들이 알려 줘야 한댔어요.]날아가던 나는 멈추고 적당한 곳에 착륙했다. 그리곤 눈앞에 보이는 여러 나무 중 가장 큰 나무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들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줄 수 있니?
[그래. 저건 마물들이 함정을 판 거다. 저 불은 진짜 불이 아니라 함정이다.]함정이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나왔다.
-불이 함정이라니?
[저 불은 넝쿨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번 닿으면 헤어 나오기 힘들 거다.] [나무 아저씨. 왜 가만히 있는 저랑 저런 저급한 마물의 함정과 비교하는 거예요?] [쓰읍, 그렇다는 거지. 그렇게 생각했다면 미안하다.] [흥, 어쨌든 비슷하긴 해요. 불길이 다가가면 옭아맬 거예요, 그리고 마나를 흡수할 거예요.] [맞아요. 마나와 생기를 흡수해요. 그리고 그건 모두 마물이 갖고 있는 검은병으로 흡수돼요. 우리 조상님이 말씀해 주셨어요.]생각지도 못했던 정보를 나무, 풀들이 이야기해 줬다. 그렇다면 지금 저 녀석들도 위험하다.
-얘들아, 이리로 좀 와 봐.
[응.] [갈게.] [웅, 알았어.]녀석들은 ‘왜’라는 말 한마디도 없이 곧장 내게로 날아왔다.
[허어, 정말 신실한 녀석들이군. 어쩌면 네 녀석에게 최고의 무기는 이 녀석들일 수도 있겠군.]-그런 것 같아요. 늘 힘이 되어 주는 동료예요.
용사님께 녀석들을 자랑하고 있는 사이. 톡, 톡, 탁. 녀석들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녀석들에게 방금 초목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해 줬다.
녀석들도 나처럼 마물이 왜 마나와 신성력을 흡수하냐, 이상하다. 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해야 할 문제. 우선 닥친 일을 해결하자는 내 생각과 일치했다.
[아, 그래서 뜨겁지 않았구나. 난 또 내가 엄청 강해져서 그런 줄 알았지.]카이가 고개를 끄덕였고.
-얘들이.
팅거는 내가 가리키는 나무와 풀에게 가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될 줄 알았는데,
[허허, 이놈 참. 인사성이 참 바르군. 내가 널 위해 좋은 걸 주지.]큰 나무가 너털웃음을 짓더니. 투두두둑, 땅으로 뭔가가 떨어졌다. 도토리처럼 생긴 열매가 왕창 있었다.
[먹어라. 그거 먹으면 마기 갈고리가 미끄러질 거다. 마커스 너도 먹고. 네 동료들에게 나눠 줘라. 아주 유용할 거다.]나는 이번에도 통역을 담당했다.
[우왓, 신기한 거네. 먹자.] [이힛, 고소해.] [흠 맛이 있긴 하군.]녀석들이 신이 난 표정으로 열매를 먹었고, 나도 몇 개 집어 먹었다. 그리고 남은 건 각자의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고맙습니다.]벨라가 톡톡톡 걸어가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나 카이, 팅거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호호호, 너무 귀여워.] [허허, 마커스 너보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소식을 전해주지. 우리의 목소리에 늘 귀를 기울여라.]-고맙다.
[지금 저기엔 늑대 같은 놈들이 뛰어다닐 거다. 그놈들의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다고 거기 있는 나무가 전해줬다.]-늑대?
[조심해라.]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아, 이럴 게 아니라 지로드 교수님께 연락하고 이동하자.”
통신구를 집어 들려 하는데, 통신구가 울렸다.
“예, 지로드 교수님.”
=괜찮습니까? 지금 복귀하려던 차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들어와서 말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연락을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들었던 정보를 지로드 교수에게 간단하게 전해줬다.
=후우, 이젠 원로원이든 뭐든 그런 집단을 쫓고 진압하는 건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마물이 세상에 나타났으니 말입니다.
“이 사실을 상부에 연락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빨리 지원군을 투입하라고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것을 끝으로 나는 가짜 화재 현장으로 달려갔다.
* * *
“확실히 불길이 살아 있군.”
자세히 보면 불의 끝부분이 갈고리 형상을 하고 있다. 화르륵 타오르는 불이 허공을 헤집고 올라가는데, 꼭 뭔가를 낚아채려고 허우적거리는 손같이 보였다.
그리고 초목들 말대로 아래의 나무, 풀들이 멀쩡했다. 시커먼 연기도 나지 않았고.
“후, 초목이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네.”
원래 하던 대로 불 속으로 뛰어들어 정신없이 물을 뿌려댔을 거 아니야? 그랬다면 백발백중으로 잡혀서 마나를 탈탈 털렸을 거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한담?”
그냥 놔뒀다간 분명 큰 피해가 있을 거고. 어쨌든 이 상황을 진압해야 하는데.
그때였다.
휘익. 지나가는 매 한 마리가 불길에 말려들었다. 휘리릭. 어느새 시뻘건 불길이 매를 돌돌 동여맸다.
끼엑!
매가 울부짖었다. 그 순간 불길 끝부분이 매의 정수리에서 어른거렸다.
마치 내가 마물의 정수리에 검을 박아 내리는 것처럼.
탕.
나는 손끝에 모아 놨던 마나를 있는 힘껏 튕겼다.
스걱.
불길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힘을 잃었다. 그 순간을 틈타 매는 도망쳤다.
-멀리 가라.
끼에에!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매는 아주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곤 두어 번 선회하더니 사라졌다.
“흠, 마나 공격이 먹히는군.”
그러나 기뻐한 것도 잠시. 화르륵, 조금 전 불길이 더욱더 높이 치솟았다.
“끄응.”
이거 어떻게 하지? 어떡해야 저 불들을 진화하지?
그때.
“으아아아!”
“커억!”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몇몇 사람들이 조금 전 매처럼 불길에 둘둘 말려 있었다.
화재를 진압하려고 모인 사람들이다. 물폭탄이 던져지는 거로 봐서는 마법사들도 있는 것 같았다.
마나, 신성력을 흡수하는 마물들에겐 더없이 좋은 상황.
지로드 교수님께 했던 말이 아직 상부에 전달되지 않았을 거니까.
팅, 팅, 팅.
조금 전처럼 나는 마나를 튕겼고.
팅탕팅탕, 통통통.
카이와 팅거, 벨라도 내가 했던 것처럼 사람들을 말고 있는 불길에 마나를 튕겼다.
사람들은 잠시 불길에 벗어났지만, 그뿐이었다.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불길에 다시 잡혀 버렸다.
“후, 이 방법은 임시방편이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저 불길을 없애지? 나는 아래를 내려 봤다. 도대체 이 불은 어디서 계속 생겨나는 거지?
그때, 커다란 형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크르르릉.
스피카 보다 훨씬 큰 늑대 형상을 한 마물이 입에서 불을 뿜어내고 있었다.
“저거다! 저놈을 잡으면 되겠다.”
나는 검을 꺼내 들었다.
조금 전 마물과 싸웠을 때보다 훨씬 더 크고 밝은 순백의 마나 검신이 생겨났다.
나는 그대로 날아가면서 검으로 불꽃을 베었다.
큰 나무가 준 열매를 믿고 불꽃으로 뛰어든 것.
휙, 휙, 휙.
파지지직!
검에 베인 불꽃이 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쉬지 않고 불꽃을 베면서 늑대 형상의 마물에게 다가갔다.
붉게 타오르는 듯한 눈동자, 붉은색 갈기가 휘날리는 마물은 그런 나를 보며 아가리를 더욱더 크게 벌렸다.
잘됐군.
놈의 아가리의 크기를 파악하고 휙. 단검을 날렸다.
순간 마물의 눈이 웃는 것 같았다.
턱. 마물은 단검을 물었다. 아마 물어서 부러뜨릴 생각이었을 거다. 아니면 던지면 물고 보는 본능이 발동했거나.
어쨌든 찰나였지만, 마물은 나를 보지 않았다. 단검에 신경이 가 있었을 거니까.
캉!
나는 검을 마물의 머리에 꽂았다. 마물은 정수리에 용사의 검을 꽂아야 죽으니까.
그르륵.
입에 검이 물린 마물은 비명도 못 지른 채, 숨이 끊어졌다. 나는 검을 끝까지 찍어 내렸다.
투두둑,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림과 함께 치지직 살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물은 순식간에 타버렸고, 새어 나오는 마기는 카이가 곧바로 제거했다.
타 버린 재까지 사라지고 난 자리엔 두 개의 돌이 떨어져 있었다.
순백색의 돌과 붉은색 돌.
* * *
호텔로 돌아온 나는 테이블에 놓인 전리품을 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용사님도 처음 봤다는 돌.
“후우, 이건 또 뭐지?”
테이블 위에 흰색 돌과 붉은색 돌이 수십 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검은색 병도 몇 개나 있었고.
고위 마물과의 전투에서 획득한 검은색 병이 총 다섯 개. 돌이 서른 개.
[그래도 돌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다.]-어, 정말이요?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지금 궁금한 건 그거였다. 눈앞에 보이는 돌에서는 마기가 감지되긴 했다. 그러나 아주 미약했다. 대신 마나와 신성력이 충만했다.
이런 걸 도대체 마물이 왜 갖고 있냐는 거다.
-아니 그 전에 이런 걸 마물이 가지고 있어도 되는 거예요? 신성력이 닿으면 썩는 거 아니었어요?
실제로 눈으로 몇 번이나 봤던 진실이었다.
[그건 그렇지.]-그런데 왜 이런 게 마물에게 발견된 거지요?
[호헨 베이크, 그자가 연구한 거라고 알고 있다.]-호헨이요?
용사님의 말에 티티제 베이크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