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15)
“이 검 하나하나에 우리 선조들의 피땀이 서려 있죠.”
“…….”
나는 상단주의 말에 뭐라도 대꾸도 하지 못 한 채 보물고를 둘러봤다.
분명, 지하로 내려왔건만, 저 높은 곳에 달린 전등은 뭐냐 말인가?
은은한 것이 눈도 부시지 않는 걸 보면 아주 값비싼 마도구임이 틀림없다. 유물이 빛에 훼손될까 봐 저런 전등을 사용했겠지.
게다가 적당한 온도, 그리고 지하라고 느껴지지 않는 산뜻한 공기까지.
“우리 가문은 선조들의 흔적을 좇아 대륙 곳곳을 누비고 있습니다. 특히 4대 영웅님들과 용사님들의 유물을 발굴하려고 애를 쓰고 있죠. 영웅 바트롱가의 유물도 몇 점 보관하고 있습니다.”
상단주의 자부심이 묻어 있는 목소리.
“아래층엔 단검, 장검, 양날검. 양손검 등 기본적인 검들 위주로, 위층엔 마법이 깃든 검이나 특별한 재료로 만든 검, 용사님들의 검 등, 특수 검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상단주는 그렇게 말을 한 후, 계단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마 내가 위층을 보고 싶어한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아래층부터 구경해도 괜찮지요?”
“아, 그러시겠습니까?”
상단주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내 말에 기분이 좋아진 것 같다. 나 또한 기분이 좋다.
신성석으로 만든 검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검 좀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확실히 대장님은 오래된 것에 흥미가 많군요.”
“아, 예. 선조님에 관해 알아가다 보니, 관심이 생기네요.”
* * *
‘유물에 관심을 보인다길래, 귀족가 자제들의 허세라고 생각했건만, 보는 눈이 상당하군.’
마커스가 대거를 집어 들자, 상단주의 눈이 반개했다. 장식도 손잡이에 문양도 없는, 그러나 이 대거에는 반전이 있었다.
이걸 만든 이가 드워프였다. 게다가 검신은 신성석. 바로 소바주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였던 것.
그런데 이런 귀한 걸 따로 보관하지 않고 여기에 놔둔 건, 바로 후계자를 선정할 때 보는 시험 때문이었다.
삼남인 자신도 이 신성석을 선택해서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흔치 않은 일이지만, 보물고에 초대받은 이의 수준을 테스트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상단주가 마커스를 아래층을 패스하고 곧바로 위층으로 안내한 것도 다 시험의 일부분.
‘흐음, 시험에 통과했으니 3층을 개방해 드려야겠군.’
3층엔 소바주에서도 굉장히 귀하게 여기는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 하여 선택받은 자만이 소바주 보물고 3층에 입장할 수 있다.
* * *
암살 같은 밀접전과 활 대신 던져서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대거.
이 단도는 전투용으론 안 맞아. 그렇다고 장식용은 아닐 거고, 암살용으로 쓰인 건가?
-용사님, 이걸 마물의 심장에 꽂으면 어떻게 되나요?
지금까진 용사님의 검을 마물의 정수리에 꽂았어야 했다.
[죽지. 신성석으로 만든 검이니, 마기를 따로 제거할 필요도 없다.]-우와, 그러면 이거 엄청난 거 아니에요?
[뭐, 이론상으로는 그렇지.]용사님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론상이요? 이걸 써서 마물과 싸워 본 사람이 없어요?
-아!
신성력이 없는 용사들이 마기를 제거하기 딱 좋은 물건이었겠다.
용사님이 말을 덧붙였다.
[너나 카이가 마기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해도 이런 검을 지니고 있으면 좋지. 고위 마물일수록 죽고 나서 내뿜는 마기량이 어마어마하거든.]-욕심이 나네요.
[나 이거 사 줘.]언제 왔는지, 카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응, 마물 심장에 꽂아 넣어 보게.] [허헛, 그놈 참. 역시 위대한 두 분의 피는 못 속이는 군. 만약, 구할 수 있다면 하나 사 주는 것도 괜찮겠지. 그놈들은 드래곤에 약하니까 가능할 거다.]-사 줄게.
용사님의 말을 들으니 카이에게 딱 맞는 검 같았다.
[이히히, 좋았어. 그럼 다른 것도 구경하러 갈게. 아. 맞다. 마커스, 그거랑 똑같이 생긴 거, 저 통 안에 많던데?]-통이라니?
[계단 뒤에 커다란 통 있어, 그 안에 이런 거 엄청 많아.]나는 지금까지 들어가 봤던 보물창고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신성석 검은 시작에 불과했다.
위층에 올라가니, 중앙 단상에 꽂혀 있는 검이 우리를 맞이했다.
“저 검은 슈콜렌의 벼락이라 불립니다. 300년 전, 롤린스 제국의 슈콜렌 황제가 반란군을 제압할 때 썼던 검입니다.”
웅웅웅, 검에서 마나가 흘러나왔다.
“마나가 서린 검으로 검 이름대로 벼락을 내렸다는 설이 있는 검입니다.”
“이게 이번에 슈콜렌으로 갈 검이군요.”
“예, 이젠 돌아가야죠.”
상단주의 얼굴을 보니, 대업을 끝마친 후련한 표정이었다. 롤린스 제국의 황제파였던 이들의 선조가 이곳에 정착한 지 150년. 역사책에 보면 그 당시 롤린스 제국은 혼돈 그 자체였다.
춘추전국시대였다고 할까.
상단주의 선조들은 황제의 명을 받아 이리로 온 거군.
귀해 보이는 검들을 구경하는 가운데, 카이 목소리가 들렸다.
[마커스, 여기 올라와 봐. 유리아 있어.]그러지 않아도 올라갈 생각이었다. 저 계단 끝에 은은하게 빛이 흘러 내려오고 있었거든.
저게 아마 건물을 밝혔던 빛이었을 터. 때마침 상단주가 적절한 말을 건네왔다.
“이젠 위로 올라가 보실까요?”
지금까지 내 뒤에서 따라오던 상단주는 3층에 올라갈 땐, 앞에서 나를 안내했다.
“3층엔 영웅님들과 용사님들의 물건이 보관돼 있습니다. 검 이외 것들이 훨씬 많다고 할 수 있죠.”
상단주의 말대로 검은 몇 자루 없었다. 그렇지만.
“바트롱가 검입니다.”
그렇게 찾던 검이 바로 눈앞에 누워 있었다. 지금까지 검들은 죄다 세워져 전시돼 있었는데.
이유는 곧바로 찾을 수 있었다.
“부서졌군요.”
“예.”
손잡이도 사선으로 두 동강이 나 있었고, 크로스 가드도 부서져 있었다. 게다가 검신도 부러졌고.
여간해서 부서지지 않는 재료일 터인데 이렇게 부서졌다니.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치렀는지 와 닿는 검이었다.
[그건 바트롱가 영웅님의 검이 아니다.]-아니라고요?
-혹시, 선조께서 쓰신 검은 맞는데, 마신과 싸울 때 쓴 검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그래. 잘 아는군. 그건 영웅께서 마물을 상대할 때 쓰던 검이다.]-그런데 이렇게 되었다니, 엄청난 마물인가 봐요.
[그렇지. 그놈은 6급 마물이었는데, 힘이 어마어마했다. 그때 싸움으로 영웅께선 상처를 입으셨지. 다행히 궁극의 물로 치료를 해서 목숨을 구하셨지만, 흉터는 지워지지 않았다고 들었다.]-상처요? 혹시 왼쪽 옆구리를 다치셨습니까?
[흠, 아마 그랬던 것 같다.]용사님의 말에 나는 눈이 커졌다. 내 왼쪽 옆구리에도 길게 흉터가 있었으니까. 흉터는 김민혁일 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흉터를 보고 놀란 나는 세이건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내가 오래전에 옆구리를 다친 적이 있었냐고.
세이건은 없다고 했다.
마침 상단주가 입을 열어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사실은 바트롱가 검이 하나 더 있긴 합니다. 그건 양도해 드릴 순 없고 이거라면…… 어디까지나 영웅님들의 물건은 상징일 뿐이니까요.”
상단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사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받아. 받는다고 해.]-이걸요?
[그래도 저 검 엄청나게 강하다. 무려 6급 마물을 죽인 검이니까.]좋아, 드워프에게 수리 의뢰해 보자.
나는 완전 망가진 검을 내려다봤다.
“그럼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싱단주가 말했던 또 다른 바트롱가 검은 으리으리한 보관함에 있었는데.
[이거 가짜네.]그렇게 나는 바트롱가 검을 손에 넣었다.
* * *
“생각지도 않게 귀한 것들을 손에 넣었네.”
소바주 상단주가 마련해 준 거처에서 보물고에서 획득한 전리품들을 쳐다보고 있는데, 에른이 통신구를 내려놓고는 입을 열었다.
“검은 토드 비서관님께서 직접 드워프 영감님들께 전달했답니다.”
“영감님들께 조만간 연락이 오겠군.”
상단주의 말대로 양도 계약서를 작성하는 순간, 검은 본가로 이동됐다.
카이는 신성석 검을 팅거, 벨라에게 자랑했다.
[이것 봐라. 이 검 내 거다. 멋있지?] [뭐, 괜찮아 보이긴 하네. 그거 드워프 할아버지들이 만든 거지?]팅거가 검 위에 통통 뛰어다니더니,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런 것 같아. 밋밋하지만 유려한 맛이 있어 보여.]벨라까지, 날개를 파닥거리며 검을 품평했다.
나는 슬며시 미소 지으며 에른에게 용사님께 들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저게 그렇게 대단한 검이었습니까?”
“그래, 그렇다더군.”
그때였다.
[마커스! 그렇게 재미있는 곳에 간다면 말을 했어야지!]온종일 맥카시를 돌아다니다가 온 팅거가 툴툴거렸다. 아마 카이가 검을 챙겼다는 것에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도 재미있었잖아.]벨라가 작은 유리아를 굴리면서 말을 받았다.
-그게 다야. 검 외는 별다른 건 없었어.
[그래도, 우리도 보고 싶었는데.]-다음엔 꼭 말해 줄게. 그건 그렇고 여기 둘러보니 어때?
[프라이본과 완전 비슷해. 아, 그런데 저기 숲으로 가면 슈리엔 정원과 비슷한 곳이 있어.]조금 전까지 툴툴거리던 팅거의 목소리가 급변했다. 아주 즐거웠나 보다.
[웅, 막 신수도 있고 그랬다? 유니콘이 날 보고 귀엽다고 했어. 헤헤헤.]밀퍼드 같은 곳이 또 있군.
-가 보자.
그때였다. 정원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가 보고 싶군.]로이칸까지.
-그래, 가자.
몰래 나가 정탐해 볼 생각이었지만, 생각을 바꿔 상단주를 찾아갔다.
“오, 제가 깜빡했습니다. 우리 맥카시의 밤은 재미있답니다. 게다가 야경도 아주 근사하지요. 마차를 내 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산책 삼아 천천히 돌아다녀 볼 생각이에요.”
“그러시겠습니까? 하하하. 역시 젊은 사람이라 힘이 넘치십니다.”
그때였다.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누군지 짐작이 갔다. 아니나 다를까, 제딘과 호위 기사, 그리고 마물이 등장했다.
“아이고 여기 계셨군요. 그러지 않아도 찾아뵈러 가고 있었습니다.”
“어디 아픈 데라도 있습니까?”
“하하하, 반댑니다. 저도, 이 친구도 말짱해졌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릴 참이었습니다.”
“정말이냐?”
상단주가 기쁜 듯 물어봤다.
“예, 아버지. 지끈거리던 머리가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이 친구도 기침을 안 하고요. 율리시즈 님은 명의예요, 명의.”
“정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상단주가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있는데.
“그런데 지금 어딜 가시는 것 같은데, 제가 붙잡은 거 아닙니까?”
“하하하, 귀빈들께서 우리 시를 구경하고 싶다고 하시더군. 그래서 내가 야경이 괜찮다고 말씀드렸지.”
“가시죠,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 괜찮…….”
말을 꺼내는데, 상단주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으로 말했다. 제발 거절하지 말아 달라고.
아, 제딘이라는 이자는 거절당하면 눈이 돌아버린다고 했지?
“좋습니다.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하하, 그럼요. 저만 믿으십시오.”
세 사람을 따라나서는데,
[저놈, 죽일까?]카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아직은.
[신성석 검 써 보고 싶은데.]-그거 방에 있잖아. 다음에 기회를 봐서.
[가지고 왔지롱. 주머니 안에 있어.]-그래?
[응, 세 자루 다 가지고 왔지.]-조금 있다가 기회를 보자.
[알았어.]-아, 카이. 저놈 심장이 어딨는지 알지?
[응, 조금 전에 봤잖아.]탁탁, 카이가 긴 꼬리를 내 어깨를 쳤다.
“그런데, 그 호캣, 정말 예쁘게 생겼습니다. 제가 본 것 중에 최고로 예쁘게 생긴 호캣입니다.”
제딘이 말을 걸어왔다.
니야오!
카이가 좋다고 길게 울음을 내뱉자, 마물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카이가 드래곤인 줄 모를 텐데.
확실히.
본능적으로 드래곤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