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21)
“사이드라는 마법사가 있었습니다. 물론 흑마법사였죠.”
마물의 본거지 이야기를 하던 중에 가테지가 불쑥 마법사 이름을 언급했다.
“죽었습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건 마지막을 못 봤기 때문이죠. 사이드는 제 동기였습니다. 롤린스 제국 북부 디토아 영지 출신이었죠.”
“디토아 영지요?”
“아는 곳입니까?”
베랑토와 인접한 디토아 영지, 거기서 판테라 녀석들에게 줄 식재료를 샀던 곳이다.
“가 본 적 있습니다.”
“가 봤으니 알겠군요. 광산주가 아닌 이상 대다수 영지민은 광산주 밑에서 일하며 근근이 벌어 먹고사는 그런 곳이지요. 어느 날, 사이드로부터 전서가 한 장 날아왔습니다. 그땐, 제가 원로원에 몸담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 제가 원로원 소속이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서에 드디어 나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당시 사이드와 저는 세뇌, 심문, 일루전 등 정신계 마법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을 때였죠.”
“저는 정신계 마법에서 마법사님이 최고라고 알고 있는데요?”
내 말이 마음에 드는지, 가테지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대륙엔 숨어 있는 고수가 아주 많습니다. 그 친구의 실력이 궁금해서 당장 만나러 가겠다고 전서를 띄웠죠.”
“거기가 데스케이드예요?”
“아닙니다. 롤린스 제국의 어느 작은 마을이었지요. 그러나 저는 그 친구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사이드는 가테지가 찾아올 것을 알고는 연구 자료를 남겨 놓은 채, 사라졌다. 그 연구 자료에 있던 어떤 자를 만나 계약했고, 세뇌와 심문 마법을 배웠다.
그런데 그 계약자가 바로 마물이었다.
“사실은 제가 소바주 공자가 마물에게 세뇌당했다는 사실을 한눈에 파악한 것도 다 그 친구가 남겨 놓은 자료를 공부한 덕입니다.”
가테지가 왜 카셀이 소멸하면 제딘도 죽는다고 말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혹시 친구분도 계약한 마물이 소멸해서 죽었을 수도 있겠네요?”
“그랬을 수도 있겠죠.”
씁쓸한 표정을 짓는 가테지를 보다가 문득, 마물의 생사가 궁금해졌다.
“마물은 수명이 없나요?”
“마기가 그들의 생명의 원천인데 마기가 충만하면 오래 살겠죠. 그렇지 않다면 죽을 것이고. 아,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마기가 부족한 대신 생명체의 수명을 사서 생명을 연장한다고.”
“수가 불어나는 건요?”
“그것 역시 응집된 마기에서 마물이 탄생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후로도 1시간가량 대화를 더 나눴다. 가테지는 확실히 해박했다. 그건 용사님도 같은 생각이었다.
[확실히 똑똑하군. 앞으로도 네게 도움이 많이 될 작자다.]용사님의 사람 보는 눈이 맞는지.
“이거 필요할 겁니다.”
가테지가 주머니를 하나 올렸다.
“이게 뭔가요?”
“마물은 위급할 때 고유의 마기를 풍기면서 종족들에게 자신의 위험을 알린답니다. 그걸 못하게 막는 가룹니다. 교신을 끊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조금 전에 청명한 목소리에 질문할 때의 내 상황이 떠올랐다. 말도 아니고, 의식을 전달하는 거였지만, 불발이었다. 그런 건가?
“마물과 싸울 때, 이걸 살짝 뿌려두면 그들끼리 교신을 못 할 겁니다.”
“고맙습니다.”
“다음번엔 직접 만들어 써야 할 겁니다. 흑마법 몇 가지를 써야 하는데, 발로우가 그로든에 있다고 했습니까?”
“예, 그럼 그때 만나서 이 가루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오오! 아직도 이걸 만들 수 있는 마법사가 있다니.]-아는 거예요?
[그래. 이것 때문에 영웅께선 흑마법사들과 교류를 하셨지.]-흑마법사만 만들 수 있는 건가요?
[그래. 그렇다. 이것만 있으면 마물들이 동족들을 부르는 걸 막을 수 있지. 그놈들은 꼭 선발대를 보낸 후, 쳐들어오거든.]-흑마법사들은 마물과 한패 아니었어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그런데 네 앞에 있는 이자는 아닐 거다.]나는 가테지를 똑바로 바라보고 속을 읽었다. 용사님의 말대로 거짓이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믿는 건 아니다. 정신계 마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자가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는 것쯤은 아주 쉽지 않을까?
그래도 받았으니, 나도 줘야겠지.
그리고 이걸 받고 나서 내 생각과 다르면 그때 쓱.
가테지의 목을 베는 상상을 하면서 가테지에게 유물 가게에서 산 훈장을 내밀었다.
“이거 받으세요.”
“이게 뭡니까?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만.”
말은 그렇게 하지만, 가테지는 이게 뭔지 이미 알고 있었다.
‘호오, 이런 걸 내게 주다니. 믿을 만한 자라고 짐작은 했지만, 확실히 선조의 피를 이어받아 그런가.’
그런 가테지에게 나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이게 뭔지는 알고 계실 겁니다. 사용법도 아시죠?”
“알고 있습니다. 혹시 알트 시에서 승리한 것도 이것 덕분입니까?”
“예.”
“고맙게 쓰겠습니다.”
* * *
나는 상대방의 생각을 읽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게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아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사연을 줄줄 읊어 내게 할 수는 없다.
“계약했습니다.”
“그가 누군지 알고 있습니까?”
가테지의 담담한 목소리에 제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무슨 계약을 했는지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도 제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옆에서 호위 기사가 내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었다.
“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도련님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갑자기 신파가 된 상황.
“제 이름은 하비입니다. 도련님 옆에서 15년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게는 저보다 7살 어린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7살 어린 하비의 동생이 죽어 가고 있었다. 하비는 동생을 위해 백방으로 쫓아다녔다. 그러다 마물이란 존재를 알게 되었다.
하여 하비는 자신의 수명 20년과 동생의 생명을 바꾸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카셀이 나타났죠.”
카셀은 하비가 아닌 제딘에게 제안했다. 자신을 반년만 비서로 써 주면 하비의 동생을 낫게 해 주겠다고 했다. 만약, 동생이 낫지 않으면 계약은 무효로 하자면서.
“전 그저 우리 가문의 상술을 배우려는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단다.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도저히 가문에 해를 끼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죽으려고 시도도 했습니다.”
“안 되었죠?”
“예, 건물 꼭대기에서 떨어졌는데도 멀쩡했습니다.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내가 계약한 자가 사람이 아니라고요.”
“죄 죄송합니다. 도련님. 저 때문에…… 크흑.”
“동생은 좀 어떻습니까?”
“살아나긴 했습니다.”
“어째, 건강하지 않다고 들리는데요?”
하비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기회가 되면 한번 봐 주죠. 자, 이제 포션을 마실 시간입니다. 이걸 마시면 세뇌에서 완전히 해방될 겁니다.”
단숨에 포션을 입에 털어 넣은 제딘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거 도대체, 아니 어떻게…… 이 귀한 걸 제가 마셔도 되는 겁니까?”
“하하하, 다 마시고 나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합니까? 한 방울이라도 남겨 주고 그런 말을 하면 또 몰라.”
“아, 그, 죄송합니다. 남겨 드렸어야 했는데.”
제딘이 가테지의 말에 당황했다.
“농담입니다. 효과를 보려면 그걸 다 드셔야 하죠. 그나저나 도대체 어떤 맛인지 그런 표정을 짓는 건지, 궁금하군요.”
“천상의 맛입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더 궁금한데요? 자 그럼 나를 보십시오.”
다행히 가테지에겐 세뇌가 풀린 걸 마물에게 들키지 않게 하는 마법이 있었다. 가테지는 두 사람에게 그 마법을 시전했다.
제딘의 거처를 나오는 내 손에 책이 들려 있었는데, 가테지가 그걸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걸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모르겠군. 나도 그렇게 찾아 헤맸는데도 못 찾았는데.”
내 손에 들린 책은 하비가 건네준 마물의 약점이 기록된 오래된 책이었다.
“복수를 위해 칼을 갈았다지 않습니까?”
“저 두 사람. 보기가 좋군요.”
가테지는 대답 대신 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 두 사람이 있는 방을 바라봤다.
* * *
“나 참. 어디든 다 똑같군.”
하비에게 받은 책엔 마물의 약점에 대세 속속들이 적혀 있었다. 마치 내부고발자가 입에 칼을 물고 비리를 쏟아 내는 것 같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머릿속에 내용을 집어넣었다.
소설인 척하며 진실을 풀어 놓은 책이 한두 권이어야지.
그때였다.
[넌 뭘 보는데, 실실 웃고 있냐?]-아 맞다. 용사님. 이게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뭔데?]-이거 마물들 장단점을 모아 놓은 건데, 용사님들이 기록해 놓으신 건 아니죠?
-1급 마물 중에 눈동자가 붉은색 마물은 손톱에 독선이 있다. 손으로 악수하자고 하면서 손톱으로 살을 긁어 독살한다.
[흠.]모습을 드러낸 용사님은 옆에서 앉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심각하게 듣고 계셨다.
[다른 건?]-3급 마물 중에 노란색 머리카락을 가진 마물은 4급 마물과 맞먹는다. 그러나 약점이 있다. 그 마물은 번개를 맞으면 10초간 움직일 수 없다.
[그랬군. 그래서 그놈이 내 검을 피할 수 없었던 거였군.]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용사님을 보니, 용사들이 쓴 건 아닌 것 같았다.
-후배 용사님들이 기록하신 거예요?
[우리는 마물에 대해 그렇게 세세하게 알지 못한다. 1급 마물보다 강한 흑마법사가 있었는데, 그 마법사가 1급 마물을 고문해서 그나마 마물 들이 급수가 있다는 걸 알았지.]-그러면 이건 마물들이 쓴 게 맞네요.
나는 피식 웃으면서 용사님에게 물었다.
-마물들도 파벌 싸움이 있어요?
* * *
한편, 마물 휴식장의 두 마물이 건물 안에서 나오더니, 야외에 마련된 의자에 털썩 앉았다.
“으어어. 시원하다.”
“흐어어. 역시 마기방이야. 이제야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군. 하루빨리 여기처럼 마기가 풍부한 대륙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 알트 시. 너희가 먹었다면서?”
“그래. 운이 좋았지. 가트 부대가 그렇게 가 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 흐흐흐.”
“그런데 누가 가트를 쳤대? 혹시 테일런 부대야?”
“설마, 그냥 인간들이라던데?”
“호오! 가트가 약했던 거야, 아니면 인간이 강한 거야?”
“가트 쪽에 실수가 있었겠지. 설마 용사급도 아닌 일개 인간들이 어떻게 우리 마물을? 말도 안 되지.”
“그렇지. 용사도 없는 지금, 마신님이 깨어나시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런데 너 그 머리 어디서 염색했어? 노란색일 때보다 훨씬 멋있는데?”
“이거? 알트 시에서. 괜찮은 미용실이 있더라고.”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두 마물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마커스가 활짝 웃었다.
그러고 곧장 깜깜했던 하늘에 번쩍 번개가 내려쳤다.
꽈과쾅!
* * *
마물은 번개를 맞자마자 마네킹처럼 굳었다.
-카이, 잘했다.
[흠, 이 정도야 뭐.]남은 시간은 10초. 가테지가 줬던 가루를 녀석들에게 뿌린 후, 용사의 검을 양손으로 잡고 최대한 빨리 하강했다. 유리아의 힘이 스며든 검신이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툭두둑 툭툭.
하강하면서 실린 무게로 검은 마물의 정수리를 뚫고 내부 장기까지 모조리 갈랐다.
[히힛, 된다. 바로 마기도 제거되는데?]신성석 검을 써 보고 싶다던 카이는 마물의 심장에 검을 꽂았다. 용사님의 말대로 마기까지 바로 제거해 버렸다.
이거 작은데도 아주 쓸모 있는 검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거는 좋군.”
마물은 소멸한다. 재도 남지 않고 모조리 사라진다. 하여 시체를 치울 번거로움도 없이 바로 다음 마물을 맞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