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23)
“크억.”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카롯의 뇌는 부하가 걸린 기계처럼 멈췄다. 도저히 생각이라는 걸 이어 나갈 수가 없는 상황.
그때. 강력한 빛이 카롯의 눈동자를 뚫고 들어왔다.
눈동자가 타들어 가는 고통. 멈췄던 카롯의 뇌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직면했다. 카롯은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
으아아악!
“……!”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성대도 공격받은 건가.
카롯은 곧장 동족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위험 상황을 알린 것.
턱, 터턱, 턱턱.
이미 시커멓게 타버린 카롯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4급 마물인 카롯은 감각이 굉장히 뛰어났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시, 신호가 막혔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순간 카롯의 머리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마커스였다.
‘설마, 그놈이 나를?’
조금 전 상황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마커스가 인도를 걸어가고 있었고, 카롯 자신은 하늘에서 그에게 응축마기를 날렸다.
자신은 보통의 인간이 볼 수 있는 시야를 아득히 넘은 상공에 떠 있었는데, 어떻게 알 수 있었지?
놈은 분명 자신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상공에 불온한 기운의 장막이 쳐졌다.
‘그래, 내 마기가 그 장막에 튕겨나갔지.’
아니다. 마기가 불온한 기운에 막혀 뚫고 내려가지 못했던 게 아니라 사라졌다. 왜?
그러나 카롯은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으어…….
정수리에 뜨거운 것이 파고들더니, 뇌가 타들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 *
치지지직.
“후, 오래도 타네.”
4급 마물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마물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탔다. 카이가 마물의 심장에 박은 신성석 검이 계속해서 빛이 났다.
검이 빛이 난다는 건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그 일이라는 건 마기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용사님이 왜 신성석 검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지, 이해가 갔다. 마기를 제거하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마물 한 놈을 상대해서 여유가 있는 거지, 마물을 여럿 상대하는 경우라면 마기를 깔끔하게 제거하는 건 힘들 수도 있겠다.
“마물이 마기에서 생겨난다고 했으니까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해.”
그래도 끝은 있었다. 마물은 타 버린 재까지 깔끔하게 소멸했다.
-카이, 잘했다.
[히힛. 이제 집에 가자.]-그래.
호캣으로 변한 카이를 어깨 위로 걸치듯이 안고는 마차가 주차된 곳으로 걸어갔다.
-그래. 해 볼 만한 놈이었어.
카이와 나는 최초로 4급 마물을 해치운 기쁨을 만끽하며 마차로 걸어갔다.
마물과의 전투로 사상자가 생겼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수호 방패와 드래곤 방패가 어떤 방패인데.
그러나 이런 반응은 또 적응이 안 되었다.
너무 근사했다. 멋있었다. 등등의 대화가 오가는 흥분된 분위기가 연출된 것.
“뭐가 뭔지 모르겠네.”
마차 앞에 세이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자님, 이번 축포 끝내주던데요? 드래곤을 형상화한 축포는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거예요?”
“다음번에 영지에 들리면 축포연구소에 꼭 들러볼 생각입니다. 무슨 기법을 사용했길래 그렇게 멋진 드래곤을 그릴 수 있는지 대화를 나눠 보고 싶습니다.”
“맞아. 정말 근사했지.”
마밸리에서 수호 방패가 마나 화살을 튕겨 냈던 그때, 연회 참석자들이 축포라고 말했으니, 그 말은 이해했다. 그런데 드래곤이라니?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드래곤의 눈동자 색깔까지 다 따로 그려 놨던데요?”
“불꽃놀이를 보고 나니, 마물들 때문에 날카로워졌던 신경이 단숨에 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요. 훈장이 계속 울려대서 내심 두렵기까지 했거든요. 그런데 축포가 쏘아지는 순간, 두렵다는 생각이 사라지던데요?”
마물은 너무 사람 같아서 깜짝 놀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이번에 율리시즈 연구소에서 개발한 드래곤 축포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격려의 축포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사이 마차는 저택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그걸 불꽃놀이로 생각하는 건 마밸리에서도 그랬으니까 이해가 가긴 하는데, 마물 눈에는 어떻게 보였는지 궁금해졌다.
마물과 싸우는 걸 봤다면 마물들이 당장 덤벼들었을 테니까 사람처럼 불꽃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을까?
의문은 가테지 마법사를 보자마자 풀렸다.
“마법사님!”
가테지 일행이 집에 도착하자, 발로우가 버선발로 달려 나갔다.
가테지 일행은 경매 기간 동안 우리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발로우에게 그 통신 두절 가루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내가 먼저 제안한 거였다.
[똑똑한 아저씨가 왔네.]카이는 훌쩍 뛰어 가테지 품에 안겼다.
“허허, 이 녀석. 참으로 멋지고 귀엽군.”
가테지는 평소에 볼 수 없는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카이를 쓰다듬었다.
니야오호!
카이가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나, 나도 귀여운데.] [나도!]뾰로로롱! 삐야!
팅거, 벨라가 청아한 소리를 내면서 가테지 주변을 맴돌았다.
“대장이 키우는 동물들은 신수 중에서도 굉장히 상위급 신수들이군요. 마나가 아주 높아 보입니다.”
“마정석을 차고 있어서 그럴 거예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카이, 팅거, 벨라는 목소리를 더욱더 높였다.
[굉장히, 상위급, 신수. 크핫핫핫!] [마나가 높대. 히히.] [이 아저씨 마법사. 너무 좋아 보여.]칭찬에 넘어간 녀석들이 가테지에게 급 호감을 보이는 가운데.
“아, 이거 받으십시오. 발로우에게 들으니, 이 집 신수들이 과자를 좋아한다고요?”
“바쁘실 텐데, 이런 것까지 챙겨오시다니, 감사합니다.”
칭찬에 먹을 것까지.
친밀감이 최고조로 이르는 지름길이었다.
녀석들은 목청을 높여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잠시 시끌벅적한 인사를 마친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가테지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대단했습니다. 마밸리보다 더욱 강력한 결계를 보여 주셨더군요.”
가테지 마법사 정도가 되면 보이는군. 그렇다는 건 마물들도 보자면 볼 수 있다는 뜻인데.
그때, 용사님이 해 준 말씀이 생각났다.
마물에 급수가 있다는 것을 어떤 흑마법사가 마물을 잡아 족치는 과정에서 알았다고 했지?
그랬다는 건 정신계 마법이 마물에게도 먹힌다는 뜻.
“보셨군요. 혹시 마법사께서…….”
“사람들은 축포가 터졌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내 의도를 알아차린 가테지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덕분에 좋은 정보도 얻었답니다.”
“정보라니요?”
“대장이 마물과 대치하고 있었을 때, 대부분은 황홀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며 구경했는데, 물론 그들의 눈엔 축포가 하늘을 장식하는 것으로 보였을 겁니다. 그런데 몇몇은 굉장히 괴로워하더군요.”
가테지는 대답 대신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마물들이었죠?”
수호 방패가 발산하는 신성력에, 드래곤 방패에 서린 드래곤의 기운.
마물이 죄다 싫어하는 기운들이 쏟아져 내려오니 당연히 괴로웠겠지.
“드래곤의 기운입니까?”
이걸 알아내다니.
[호오, 가테지라고 했던가? 드래곤의 기운을 읽어 내다니, 뛰어난 자로군.]용사님도 내 생각과 같은지, 가테지의 감각을 칭찬했다.
“아시는군요.”
드래곤의 방패는 올보그 황제가 내려 준 것과 같다. 하여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하여 나는 그 정도로 대답을 하고 말았는데.
“그 기운은 선택받은 자가 아니면 손에 넣을 수 없다지요.”
탁, 탁, 탁.
가테지가 생각에 잠긴 듯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일정하게 두드렸다. 잠시 후, 가테지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한번 믿어 보겠습니다. 그런데…….”
가테지가 품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이거 드리겠습니다.”
가테지는 반지로 보이는 것을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그 기운, 가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리다니, 뭐를? 잠시 눈을 껌뻑이고 있는데, 발로우가 손가락으로 반지를 가리키면서 흥분했다.
“가테지 마법사님. 이거 페이크링 아닙니까?”
“페이크링? 마법사들의 꿈의 반지?”
벨저까지 콧김을 내뿜으며 반지에 시선을 고정했다.
“페이크링이라니요?”
“왜 있잖습니까? 적을 알면 이길 수 있다. 즉, 적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면 싸우기가 낫지 않습니까?”
그렇지.
“특히 마법사들은 서로의 마나 상태를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이걸 끼면…….”
“이렇게 되는 거죠.”
갑자기 가테지 몸에서 엄청난 마나 기운이 느껴졌다.
평소보다 2배 이상 강력한 기운이었다.
[우와, 착한 마법사 아저씨. 되게 강하다. 히힛.]카이도 그걸 감지했는지, 양 앞발로 가테지 팔을 감쌌다.
“그리고 이렇게 되죠.”
가테지가 다시 반지를 꼈고, 순식간에 평소의 마나 수준으로 돌아왔다.
가테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마법사였다.
“페이크였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가테지는 미소 지으면서 반지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조심하는 게 좋겠죠.”
반지를 손가락에 끼니 착 달라붙으면서 형체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느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반지를 낀 느낌은 있었다.
“신기하군.”
그때였다.
[어? 마커스. 너 기운이 사라졌어. 되게 약해 보여.]팅거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그대론데 그냥 그렇게 보이는 거야.]카이 말이 맞았다.
[아저씨, 나도 줘. 나도 갖고 싶다.]냐옹냐옹냐옹.
카이가 가테지 무릎에 폴짝 앉더니, 앞발 두 개를 동동동동 가테지 가슴에 냥냥펀치를 날렸다.
“허허, 이 녀석. 이게 신기한 모양이구나. 그래. 너도 주랴? 아니, 너도 끼는 게 낫겠다. 너처럼 기운이 강한 호캣은 표적의 대상이 될 거다. 예쁘고, 기운도 맑고 강하니.”
가테지의 입에서 저런 단어가 나오다니. 놀란 나와는 달리, 발로우와 벨저 또한 카이를 찬양하며 꼭 끼워주라고 말했다.
그와 별개로 어떻게 호캣에게 반지를 끼워줄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도대체 마법사들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신기하군.
[히힛, 재미있다. 어때, 나 멋있지?]반지를 낀 카이가 잘난 척을 하며 턱을 치켜들었는데.
-반지, 안 보이는데?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확실히 기운이 약하게 느껴졌다. 발로우보다 약하게 보였다.
마물들의 통신 교란 가루, 거기에 기운을 숨기는 반지. 이거 테페론 훈장 하나 주고 큰 걸 받았네.
[크하하하, 내가 뭐라고 말했느냐! 가테지 이놈 뛰어나다고 했지?]용사님도 만족스러운지, 크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연회장에서 마물들이 대장 쪽 테이블을 힐끔거리는 게 신경이 쓰였습니다.”
가테지는 후련한 표정을 짓더니, 발로우를 재촉했다.
“발로우, 가자. 통신 교란 가루 만들어야지.”
“지금요? 12시가 다 되어 가는데요?”
“그래서?”
“아, 아닙니다. 가, 가시죠.”
“벨저, 넌 계속 거기 앉아 있을 거냐?”
“아, 아닙니다. 갑니다, 가요.”
가테지가 두 사람을 앞장세워 방을 나서다가 뒤를 돌았다.
“내일 경매장에 마석이 출품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석판 모양은 아닐 겁니다.”
“봉인됐겠죠?”
“지금까지 마물들이 못 찾은 걸 보면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드래곤의 기운, 그걸 부여받은 율리시즈 대장 당신이라면 바로 알아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