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28)
“슈, 슈커럴 검 말씀입니까?”
가테지가 말을 더듬으며 나와 올보그 황제를 번갈아 바라봤다. 옆에선 발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역시 몹시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 슈, 슈, 그러니까 마기를 벤다는 전설의 검 말씀입니까?”
올보그 황제는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답을 달라는 뜻.
“조금 전 입궁하기 전에 영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호오!”
“폐하께서 말씀하신 검을 만들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만, 완성작은 아닙니다.”
“드래곤 스케일을 못 구한 모양이군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올보그 황제였다.
“예, 폐하.”
“그건 내가 해결하죠.”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말하다니, 새삼 올보그 황제가 드래곤의 수호를 받는 존재라는 게 실감 났다.
“문제는 검을 많이 만들어야 할 텐데, 가능할지 모르겠군요. 아니, 그 전에 칼레이가 협조를 할지 그것도 문제고.”
“제가 영지로 가서 만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젊으니까 이런 게 좋다니까.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돌격하는 자세. 아주 마음에 듭니다. 하하하.”
아닌데요. 충분히 생각하고 말하는 건데요?
만약, 칼레이가 검 제작을 거절해도 내겐 믿는 구석이 있다. 구원 투수, 드워프 영감님들이 있으니까.
검은병과 로운관을 보기만 했는데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대번에 알아내는 영감님들이 칼레이가 만든 슈커럴 검을 못 만드실까?
재료야 뭐, 내가 알아낼 수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나도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가테지가 나섰다.
“하하하, 가테지 마법사도 슈커럴 검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거로군요.”
“……예. 보고 싶습니다.”
“그럼 함께 다녀오도록 하시지요.”
가테지의 율리시즈 행이 결정되었다.
대화가 시작된 지 2시간이 지나자 황제가 잠시 쉬고 오후에 다시 보자며 자리를 떠났다.
“자, 우리도 좀 쉬고 나서 다시 대화를 나눕시다.”
가테지의 말에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지로드 교수가 입을 열었다.
“저 마법사님들, 비행마법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없겠습니까?”
“아, 그건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먼저 마법전투사들의 실력을 보고 말씀드리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 가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럽시다.”
우리 모두 지로드 교수를 따라나서는데, 시종이 내게로 다가와 드래곤 관으로 모시겠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황제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시종의 말을 들은 가테지가 내 손을 슬쩍 내려다봤다.
“수호 드래곤께 인사를 드리는 게 맞겠죠. 우리 먼저 가 있겠습니다.”
확실히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나는 그러라며 인사를 한 후, 드래곤 관으로 갔다.
“여기서도 안 보이는군.”
나는 고개를 쳐들고는 하늘을 올려다봤지만, 맑은 하늘만 보일 뿐, 드래곤 석상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마법을 걸어놨길래, 코앞에 서 있는 것도 안 보이냐?
그래도 마나 밀도는 높네.
나는 마나가 가득한 공기를 마시며 황제를 기다렸다.
그때, 갑자기 눈앞에 환한 빛이 쏟아져 내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하늘로 시선이 갔다.
어…… 음, 어떻게 이런 일이……?
카이를 닮은 보라색 눈동자 두 쌍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로 지난번에 봤던 드래곤 상, 그리고 내 손에 새겨진 두 마리의 드래곤이었다.
나를 꿰뚫어 보는 두 쌍의 눈동자가 내뿜는 위압감에 나는 그대로 석상처럼 굳었다.
영겁과 같은 시간. 씩, 드래곤의 눈이 휘어졌다. 꼭 카이가 기분 좋을 때 짓는 눈빛 같았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고 있었군요.”
올보그 황제였다.
“폐하. 오셨습니까?”
뒤를 돌아 올보그 황제에게 인사를 하는데, 카이가 나를 보고 씩 웃고 있는 게 아닌가? 황제 품에 안겨서.
-넌 왜 그러고 있냐?
[데리러 왔길래.]카이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황녀 궁에 가서 직접 모셔왔죠.”
“예?”
모시다니, 누구를? 그런 생각으로 황제를 바라봤지만, 황제는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들어갑시다.”
“아, 예.”
드래곤 관은 지난번과 변함없이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담 하나를 두고 마나와 신성력이 바깥보다 몇 배나 강했다. 황제를 따라 드래곤 상이 세워진 곳으로 걸어갔는데, 팅거, 벨라가 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이거 되게 맛있어. 빨리 와서 먹어.] [응, 힘이 막 나는 것 같아.]둘 다 입에 뭔가를 먹으면서 우리를 반겼다.
[어? 누벨로잖아? 히힛.]카이가 폴짝, 황제 품에서 뛰어내려 도도도, 나무로 달려갔다. 그런데 카이가 호캣이 아니 원래 모습인 헤츨링의 모습을 한 채 나무로 달려가는 게 아닌가?
“어?”
나는 놀라 카이를 불렀다.
-카이, 너 지금 변신이 풀렸어!
혹시 황제가 어떻게 생각할까, 옆으로 시선을 돌리니 올보그 황제 역시 놀란 표정이었다.
사실, 그리 놀라진 않았다. 이 공간이 어떤 공간인가? 드래곤을 위한 공간이 아닌가?
어쩌면 헤츨링을 봤다며 감격할 수도 있지.
“알고 있습니다.”
올보그 황제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알려 주셨습니다.”
“예? 알려 줬다니요, 누가?”
도대체 누가 황제에게 카이에 대해 말을 해 줬지? 그러나 올보그 황제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드래곤 상을 올려다봤다.
“이곳에 와서 두 분을 모시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합니다.”
설마, 용꿈을 꾼 건가? 나는 잠자코 황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율리시즈 대장이 이곳에 왔다 간 다음 날, 평소와 같이 새벽에 여길 왔었지요. 단상 앞에 무릎을 꿇고 두 분께 기도를 올리는데 갑자기 주변에 신성한 기운이 가득차면서.”
올보그 황제가 말을 하다말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두 분이 나타나셨습니다.”
“아!”
“많은 얘기를 해 주셨습니다. 특히, 대장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대신 해 달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카이 이름을 아셨군요.”
“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저 나무가 생겨났습니다. 저 열매, 보통 열매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듣고 보니, 반짝거리는 게 귀하게 보이긴 하다.
“저 나무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그때였다. 카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누벨로, 이 나무 이름이야.]나는 카이가 일러줬던 대로 대답했다.
“누벨로…….”
“역시 알고 있군요. 누벨로, 영혼을 맑게 해 주는 열매입니다.”
“아!”
그래서 쟤들이 저렇게 열심히 먹나?
카이는 아예 팅거, 벨라가 앉아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 세 녀석이 나란히 앉아서 너무나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누벨로를 먹고 있었다.
그때, 누벨로를 먹고 있는 카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 참. 마커스에게도 가져다줘야지.] [맞아. 잠깐만. 내가 잘 익은 거 따올게.] [나도.]-괜찮아. 나 신경 쓰지 말고 너희들이나 많이 먹어.
진심이었다. 녀석들이 맛있게 먹고 있으면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으니까.
[아냐,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잠시만.]잠시 뒤, 카이가 도도도 달려와서 앞발을 내밀었다. 열매 두 개가 각각 앞발 위에 놓여 있었다. 하나는 내게, 또 하나는 올보그 황제에게.
올보그 황제는 하던 말을 끊고선 카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 자세를 낮췄다.
[먹어. 엄청 힘이 나.]-그래. 잘 먹을게.
누벨로는 가까이에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반짝였다.
“나도 주는 겁니까?”
올보그 황제가 감격하며 누벨로를 받았다.
[마커스, 이거 되게 맛있어, 먹어.]-그래.
카이 이마를 쓱쓱 쓰다듬어 주고 누벨로를 한입 베어 물었다.
“어?”
입안 가득 청량한 기운이 맴돌았다. 맛있다. 달콤하다. 부드럽다. 새콤하다. 향긋하다. 이런 말들로 표현할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그래, 드래곤의 기운을 마시는 느낌이었다.
[맛있지? 힘 나지?]-응.
[히힛!]카이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엉덩이를 양옆으로 흔들면서 나무로 달려갔다.
“온몸이 개운하군요. 10살은 젊어진 것 같습니다.”
젊어진 것까진 모르겠는데, 올보그 황제의 얼굴이 환해졌다.
“율리시즈 대장, 누벨로 따 보겠습니까?”
“아, 예.”
하나 더 먹고 싶으신가 보네.
나무로 걸어갔다.
“이야, 이거 뭘 따지?”
열매 색깔이 가지각색이었다. 빨강부터 보라까지. 무지개색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제일 맛있는 건 노랑색이고, 기운이 나는 건 보라색이야.]팅거가 말했다.
-그래? 그럼 두 개 다 따 가지 뭐.
노란 열매와 보라색 열매를 따서 올보그 황제가 서 있는 곳으로 갔다.
“폐하, 노란색이 제일 맛있답니다.”
“역시, 짐작대로군요. 이제 희망이 보입니다. 내가 대장에게 이걸 따오라고 말했던 건 이걸 확인하려고 한 겁니다.”
올보그 황제가 나무로 가서 열매에 손을 올렸다.
“이것 보십시오.”
황제가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누벨로가 절대로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누벨로는 선택받은 존재만이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올보그 황제가 나를 바라봤다. 그럼 내가 선택받은 존재라는 건가? 아니지, 카이, 팅거, 벨라도 아무렇지 않게 따는데?
“누벨로의 다른 이름이 뭔지 압니까?”
“글쎄요. 드래곤 기운이 서린 곳에서 피어난 열매이니, 드래곤 나무?”
“비슷합니다. 드래곤 스케일, 그게 바로 이 나무의 숨은 이름입니다.”
“드래곤 스케일이요? 그럼 이 열매로 슈커럴 검을 완성할 수 있겠네요.”
물론 농담이었다. 아무리 이름을 드래곤 스케일로 붙였다고 해서 진짜로 드래곤 스케일리가 없지 않겠는가.
“슈커럴 검이 완성된 이상, 해 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올보그 황제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누벨로를 바라봤다.
정말 이게 드래곤 스케일이라고? 드래곤 몸에 붙은 비늘이 스케일 아니었어? 어느덧 내 시선은 드래곤 비늘 하나하나를 기가 막히게 조각해 놓은 드래곤 상에 가 있었다.
[일이 이렇게 풀리다니, 하하하하, 카이 저 녀석은 복덩이야, 복덩이.]갑자기, 용사님이 사자후를 터뜨리듯 크게 웃었다.
[마커스, 너 저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아느냐?]-드래곤 스케일이라고 말씀하시네요.
[그렇지. 그런데 저 나무, 저건 드래곤 레어에서만 크는 나무라고.]-귀한 나무라는 거죠?
[당연하지. 저 나무를 찾으려고 우리 용사들이 얼마나 애를 썼는데, 대륙을 샅샅이 뒤져도 못 찾은 나무란 말이지. 그게 눈앞에 있다니. 좋아! 이제는 승산이 있다.]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지로드 교수 휘하에 있는 마법전투사들에게 무기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1, 2급 마물 정도는 쉽게 죽일 수 있을 거다.
그건 가테지, 발로우, 벨저도 나와 의견이 같았다.
“마법전투사들, 생각보다 기량이 훨씬 뛰어나더군요. 슈커럴 검만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입니다.”
가테지가 차분한 톤으로 말했다.
옆에서 발로우, 벨저가 가테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아쉽군. 내가 봤더라면 평가를 내려 줬을 터인데.]-다음에, 슈커럴 검으로 훈련할 때 봐주세요.
[알았다. 내가 확실하게 봐 주지. 오늘부터 특훈이다.]용사님은 나로 하여금 전투사들을 용사로 만들 생각이신 거다.
-예. 용사님.
무기가 해결되니, 이번에는 마법전투사들의 낮은 마나 수준이었다.
“그리 좋은 마법을 우리 대원들이 수준이 낮아서 못 쓴다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제가 가르쳐 드린 방법대로 수련을 하면, 마나가 성장할 겁니다. 다만 지금 당장은 어려우니, 마정석이나 성물을 몸에 지니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조금은 채워질 겁니다.”
그때,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있던 돌이 생각났다. 나는 얼른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에른이 눈을 반짝였다.
“이게 뭡니까?”
“루페도스가 소멸하고 남긴 돌입니다. 신성력과 마나를 담고 있죠.”
“지금 여기서 보여 주는 걸 보니, 이거로 부족한 기운을 채울 수 있다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대단하군요, 그 마물이 마나와 신성력을 빼앗아 간다더니, 사실이군요. 이거 내가 좀 봐도 괜찮겠습니까?”
“허어, 나도 한번.”
“흠흠, 나도 궁금하군요.”
회의실에 앉은 사람들 모두가 돌을 손에 쥐고 자세히 들여다봤다. 올보그 황제까지 눈을 반짝였다.
“각자 하시는 방법으로 기운을 거두시면 돼요.”
그렇게 말을 하곤 내가 돌을 들고 시범을 보였다.
“전 이렇게 하거든요.”
손을 드니, 갑자기 돌 두 개 모두가 투명하게 변했다. 신성력과 마나가 돌에서 빠져나갔다는 뜻.
“오! 나도 해 보고 싶군요.”
“나도.”
다들 제각각의 방법으로 기운을 빨아들였다.
발로우가 투명하게 변한 돌을 보고, 또 보다가 작은 결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 번개를 일으켰다.
“우와! 이거 도대체…….”
사실 난 발로우가 실제로 번개를 일으키는 것만 봤으니, 잘 모르겠다. 지금 저 작은 결계 안에서 번쩍이는 게 어느 수준인지.
“세상에. 내가 드디어 이걸 해내다니. 지난번 보다 마나가 훨씬 세졌어.”
발로우가 세상 다 가진 표정으로 웃었다. 그런데 그런 표정을 짓는 사람은 발로우만이 아니었다. 회의실 안에 모두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마나 부족, 신성력 부족.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이 귀한 돌이, 하필이면 루페도스 그놈을 죽여야 얻을 수 있다니…….”
올보그 황제가 돌을 손에 쥐고는 아쉽다는 듯이 바라봤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