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35)
* * *
레톨리는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이다. 경치가 아름답고 여유가 느껴지는 분위기 덕분인지, 휴양지로 제법 이름이 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레톨리의 유일한 호수, 데온 호수 주변으로 크고 작은 리조트가 즐비했다. 중앙 귀족들이나 지역 유지들의 별장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중 한 저택으로 마차가 들어갔다.
마차에서 내린 사람은 바로 라테온, 월트셔가 언급한 5급 마물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라테온은 마치 제 집에 온 마냥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이 층 서재로 향했다.
“왔군.”
서류를 훑어보고 있던 집주인, 웨인이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네.”
“실패했다고?”
웨인의 시선이 서류에 향해 있는 걸 알았지만, 라테온은 대답 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면서 접객 소파에 몸을 맡겼다.
“쓰읍. 이제야 좀 살 것 같네요.”
“웬일이야? 네가 그런 말도 다 하고.”
“힘들었거든요.”
서류를 보고 있던 웨인의 시선이 라테온으로 향했다.
“힘들었다니,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저도 제가 그럴 줄 몰랐어요.”
라테온은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소파에 허리를 더욱 깊숙이 묻었다.
“어우, 진짜 힘들었다고요.”
“데스케이드 놈들과 대치하기라도 했나? 그런 보고는 들은 적이 없는데.”
“그건 아닌데, 그냥 애틀리스에 있기가 힘들었어요. 게다가 율리시즈 그자가 얼마나 쥐새끼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지, 아, 그런데 지부장님, 혹시 무슨 말 들으신 거 없어요?”
“무슨 말이라니?”
“제가 애틀리스에 이 주 정도 있었는데, 갑자기 기운이 확 달라졌거든요.”
웨인은 라테온을 빤히 바라봤다.
“기운이라니? 무슨 기운을 말하는 거지? 애틀리스에 새로운 성물이라도 들어간 건가?”
“그건 모르겠어요, 갑자기 한기가 서리는 게, 아, 드래곤 기운이 더 강해진 것 같았어요. 그러지 않아도 애틀리스는 원래 기운이 강해서 가기 싫은 곳인데.”
“드래곤 기운이 강해지다니?”
“갑자기 힘이 빠지고 손이 떨리는 게, 세뇌도 잘 안 먹히더라니까요.”
“네가? 자세하게 말해 봐.”
다른 마물도 아니고, 라테온이 저런 말을 하다니. 웨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조금 전 실패 운운했던 표정보다 심각했다.
“제가 요즘 원로원 조직원들을 만나고 다녔잖아요.”
“그래, 우선 그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데스케이드 상황이 어떤지.”
마물들의 본거지라고 알려진 데스케이드와 레톨리. 여긴 지명일 뿐 아니라 마물들의 양대 세력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웨인과 라테온 두 마물은 당연히 레톨리 파였고, 레톨리 파의 수장이 웨인이었다.
“정보가 맞았어요. 북부 놈들, 마기 부족에 허덕이고 있대요.”
“공급책이 연달아 사라졌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래서 암바토를 탐내고 있다네요.”
“흠, 그냥 몬스터웨이브나 일으키고 말 것이지, 왜 남의 것을 탐을 내?”
몬스터웨이브, 그리고 천재지변. 마물들이 마기를 대량 수집하는 방법들이었다.
몬스터가 많이 서식하는 북부 지역에선 주로 몬스터웨이브를 일으킨다.
다량의 동물과 사람, 그리고 몬스터까지 죽여 마기를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마커스가 등장한 이후로 그 길이 막혀 버렸다.
몬스터는 추운 겨울에 먹을 게 없어서 민가로 내려오는 건데, 몬스터 토벌대에서 먹이를 공급해 주고 있으니.
몬스터가 내려올 이유가 사라진 셈.
“그게 힘들어졌대요. 이젠 굶을 일이 없으니까요.”
“아쉽게 됐지. 그놈들이 한번 헤집어 놓으면 마기가 대륙 구석구석 퍼져나갔는데.”
“그래도 한번 해 볼 생각은 있나 봐요.”
“무슨 수로? 몬스터 놈들은 제 배만 부르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놈들인데.”
“갈라스가 붙을 건가 봐요.”
“뭐? 갈라스? 미친놈들이군. 몬스터를 세뇌하기 위해 5급 마물을 붙인다고?”
“뭐, 그만큼 급한 모양이죠. 잘 됐어요. 이참에 우리는 로운관이나 검은병을 심어 두고 잉여 마기나 모으죠, 뭐.”
“그거야 좋은 생각이다만, 지금 로운관은 별로 없어. 그놈이 그렇게 죽고 나서 공급에 차질이 생겼단 말이지.”
“테디어스 말이죠? 아쉽게 되긴 했어요. 꽤 쓸 만했는데.”
“할 수 없지.”
웨인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방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웨인의 비서이자, 3급 마물이었다.
“슈반 상단에 연락해서 공급을 늘리라고 해.”
“얼마나 늘리라고 할까요?”
“두 배.”
“알겠습니다. 바로 지시하겠습니다.”
비서가 나가고 나서 대화는 이어졌다.
“결국, 통신석은 누구 손에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거지?”
“네. 마커스 율리시즈, 그자가 슐라베리스에서 물품을 수령한 후, 곧장 애틀리스로 갔으니, 제 생각엔 애틀리스에 보관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그 말은 그놈이 그게 뭔지 알고 있다는 거군.”
“어쩌면 올보그 황제가 지시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자는 드래곤의 수호를 받고 있으니까요.”
“하긴, 그런 애송이가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지. 그런데 말이야. 마커스 율리시즈가 어떤 거 같아? 정말 그놈이 우리와 대적할 말한 힘이 있어 보여?”
마커스는 모르는 일이지만, 라테온과 마커스는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슈커럴 검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애틀리스에서 마커스가 마법전투사들과 훈련할 때, 일행과 식당에 종종 갔었다. 그때, 라테온이 마커스를 본 것.
“글쎄, 그리 강해 보이진 않던데요? 백작가 공자라 그런지, 함께 있던 일행들이 강해 보였어요. 다만.”
“다만 뭐?”
“드래곤 기운이 좀 느껴지긴 했어요. 요즘 돈깨나 있다는 집 자식들이 유물에 관심이 많다고 하던데, 드래곤 스케일을 하나 샀나 봐요.”
라테온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린놈이 놈이 강해 봐야 얼마나 강하겠는가?
“그래도 마커스 율리시즈에 대해선 좀 알아봐. 데빌몬스터 토벌의 주역이었잖아. 아, 그리고 몬스터 토벌대에도 몸담고 있지 않았나?”
“있었죠.”
“카든, 카롯, 그 녀석들이 실종된 곳에 마커스 율리시즈가 있었어. 아무래도 뭔가 있어 보여. 올보그 황제가 그를 옆에 두는 것도 수상하고.”
“치료사잖아요. 거기에 나라에 봉사하는 가문의 자식이고.”
대화는 1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결론은 데스케이드 놈들이 우리 암바토를 노릴 거란 말이지?”
“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원로원에서 뽑아낼 마기는 점점 줄어들 거 아니에요? 몬스터웨이브도 한계가 있고, 제일 좋은 건 바로 마석이죠. 아니, 사실은 통신석인데, 그건 오리무중이니 제일 손쉬운 게 바로 우리 마석이죠. 암바토가 봉인이 풀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
라테온이 입꼬리를 올리자, 웨인도 피식 웃었다.
“만약, 그럴 줄 알았더라면 앨빈이 데스케이드를 선택하진 않았겠지.”
“마신 님이 데스케이드에 계신 줄 알았으니까요.”
“그렇지. 도대체 그놈들이 어디에 숨겨 놨는지. 그런데, 너 성물 새로 바꿨어? 신성력이 강하게 감지되는데?”
“아, 깜빡했어요. 케링이 지부장님께 드리라고 챙겨 줬었는데.”
라테온이 웨인에게 작은 돌이 박혀 있는 반지 하나를 건넸다.
“작은데 신성력이 강하더라고요. 마기가 쏙쏙 빨려 들어와서 마기 모으기에 아주 좋더라고요. 그나저나 케링은 어딜 갔길래, 연락 두절인 건가요?”
“글쎄. 꿍꿍이가 있는 건지, 아니면 소문대로 소멸한 건지 모르겠군. 그런데 이거 강해 보이긴 하군.”
웨인은 작은 신성석 조각이 박힌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흠, 내가 과민반응을 한 모양이군. 조금 전까지 신성력이 강하게 느껴졌었는데.’
웨인의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둘의 밀회 장소에 객들이 있었다. 그 객은 다름 아닌 마커스, 그리고 카이. 신성력이 강한 객들이었다.
아무리 페이크링과 테페론의 훈장으로 기운을 숨겼다고는 해도 완전히 가려지진 못했으니까.
* * *
“와,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들은 거야?”
나는 호숫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중얼거렸다. 옆에서 카이도 중얼거렸다.
실제론 냐옹냐옹냐오옹. 할 말 많은 호캣이 쫑알거리는 거로 들리겠지만.
[신성석 검을 가슴팍에 콱 쑤셔 넣었어야 했는데.]-잘 참았어.
[둘 다 그냥 앉아 있었는데. 죽일 수 있었는데.]-다음에 죽이자. 다음에.
[쳇!]불만 많은 카이를 달래면서 팅거, 벨라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나와 카이는 레톨리 지부장 집에 잠입을, 팅거, 벨라는 레톨리 전역을 순찰. 우리는 일을 분담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짧은 시간에 빨리 일을 끝내기 위해.
[마커스!] [우리 왔어.]마침 팅거와 벨라가 도착했고, 우리는 재빨리 레톨리를 벗어났다.
[애틀리스 황궁 앞에 도착했습니다. 9천 마나가 차감되었습니다.]애틀리스에서 카델라로, 그리고 레톨리에 갔다가 다시 애틀리스로. 반나절이 넘게 걸린 여정이었다.
그런데, 왜 다들 아직도 여기 계시는 건데요? 바쁜 분들 아니셨나요?
내가 카델라로 갈 때 그대로 멤버들이 회의실을 차지하고 있었다.
“고생했습니다.”
“아닙니다.”
“마커스, 피곤할 테니 이것부터 마시고 시작하거라.”
율리시즈 백작, 내 아버지가 시커먼 용기를 내게 건넸다. 바로 영지에서 백작에 가테지에게 줬던 블랙라벨, 아니 퍼플라인이라 해야 하나? 그 포션이었다.
“그것 참으로 좋더군요. 청춘이 돌아온 듯하더이다.”
클리몬트 대주교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제가 마셔본 기력 회복 포션 중에 최고였어요.”
이번에는 카알라 왕이 말했다. 이어 포션을 칭찬 말이 이어졌는데, 다들 한 병씩 마신 모양이다.
“며칠 밤을 새워도 거뜬할 것 같습니다.”
레온 주교의 쐐기.
“감사합니다. 많이 준비해 놨으니, 염려치 마십시오.”
율리시즈 백작의 마무리 말. 아무래도 긴 밤이 될 것 같다. 나는 포션을 쭉 들이켠 후, 보고 들은 걸 털어놨다.
이야기가 끝나고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심각한 표정들. 그 침묵을 클리몬트 대주교가 끊었다.
“마물들이 성물을 이용해 마기를 채우다니, 충격입니다.”
“성물이 마기를 끌어당길 때, 그걸 중간에 가로챈다는 뜻일 건데,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레온 주교가 물었다.
“카스카 왕국의 토피아에서 마기가 로운관에 빨려 들어가는 걸 제거해 봤습니다. 충분히 가능할 거로 생각합니다.”
좌중의 시선이 내게로 몰렸다.
“가축들 연쇄 폐사 사건 때 말이지요?”
“예, 폐하.”
그 사건은 아는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고위 마물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군요.”
“너무 놀라워요. 신성력을 튕겨 낸다는 방패가 있다는 것도 놀랄 일인데, 클리몬트 대주교님 말씀대로 너무 충격이네요. 이거 원래 마물들이 그랬는지, 아니면 진화한 건지 모르겠어요.”
카알리 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흠, 마물들이 후계자 자리를 두고 경쟁한다는 건 어쩌면 우리에게 희소식을 수도 있겠군요.”
“나도 올보그 황제 이야기에 동의합니다. 지금 당장 시급한 사항은 두 가지인 것 같군요.”
“말씀하십시오, 대주교님.”
“마석 봉인이 풀린 것, 또 하나는 몬스터웨이브. 그것들은 먼저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카알리 왕이시여.”
“네, 말씀하세요.”
“메타오 용사님의 기백을 이어 나갈 수 있겠습니까?”
암바토에 가서 마석을 다시 봉인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최선을 다해 임무 완수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몬스터웨이브가 남았군요.”
몬스터웨이브는 내가 해결한다. 그놈들과 의사소통을 할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테니.
“그 일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역시, 젊은 사람은 다르군요. 보통 이런 경우라면 다들 자신의 안위를 위해 몸을 사릴 건데.”
“이거 바로 젊은이의 패기라는 겁니다.”
올보그 황제가 뿌듯하게 나를 바라봤다.
패기가 아니라 생존입니다. 폐하.
회의가 끝난 후, 나는 오랜만에 탄에서 연락을 취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바꿨다.
직접 가서 대화를 나눠 보는 게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