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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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블린에서 드니체로 가는 길에 들렸던 작은 마을, 인투스. 나는 그곳에 또다시 발을 디뎠다.
“또 겨울이네.”
온통 하얀 풍경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여기서 소중한 인연을 만들었던 추억을 떠올렸다.
[눈이다, 눈! 하얘.]카이가 소복이 쌓여 있는 눈길에 발자국을 내며 뛰어다녔다.
[카이, 여기 되게 좋아. 가자 구경시켜 줄게.] [맞앙, 저기 세피린 나무 뒤쪽으로 가면 호수가 있거든? 거기서 미끄럼 타면 재밌어.] [호수? 미끄럼?]카이가 모르겠다는 듯 뛰어가던 걸 멈추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물인데 차갑고 미끄러워.] [차가운데 미끄럽다고?]벨라 말에 카이의 고개는 더욱 기울었다.
[아, 있어. 가서 타 봐. 그럼 알아.]그 모습을 본 팅거가 툭 내뱉었다. 하여간에 설명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녀석이라니까.
-대리석같이 미끄러운데, 물로 만든 거야. 너 얼음 알지?
[얼음? 차갑고 맛있는 물이잖아.]-그래, 그런 게 넓게 펼쳐져 있다고 생각하면 돼.
[우와! 나 얼음 먹을래. 가자!]카이는 펄쩍펄쩍 달려갔다. 비행에 재미를 붙인 카이가 뛰어가는 건 눈길을 달리고 싶어서겠지.
나는 멀어져가는 녀석들을 눈에 담으며 탄을 불렀다.
-탄.
[…….]-탄, 오랜만이다.
[…….]두 번이나 불렀는데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탄과 의사소통을 한 후 처음 있는 일이다.
“무슨 일이 있나?”
어디가 아픈 건지, 아니면 연락을 못 받을 상황인 건지. 부대장 쿤에게 연락해 볼까?
그런 생각으로 쿤을 부르려고 하는데,
[은인, 오랜만이다.]목쉰 소리가 들려왔다. 탄이었다.
-탄! 너 어디 아프냐? 목소리가 왜 그래?
[난, 괜찮다. 부하, 다쳤다.]-왜? 아니, 이건 필요 없는 말이고, 많이 다쳤나?
[못 걷는다. 입 벌리고 숨 쉰다.]-뭐? 숨을 못 쉬어? 높은 곳에서 떨어진 거냐?
[그건 아니고…….]어떻게 된 건지 상황을 설명하려는 탄의 말을 끊었다. 호흡도 힘든 상황에서 왜 다쳤는지 이유를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됐다. 기다려라, 갈 테니까.
탄과 대화를 끝낸 후 나는 즉시 날아올랐다. 판테라 들의 서식지로 가면서 팅거, 벨라 카이에게 알렸다.
-판테라 서식지로 와라.
[웅.]세피린 나무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니, 판테라 몇 마리가 나뭇잎을 따고 있었다. 아무래도, 쿤에게 먹이려는 것 같은데…….
탁, 세피린 나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착지한 나는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오랜만이다.
나를 본 판테라들이 순간 멈칫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한 마리가 소리쳤다.
[으, 은인!]-그래, 잘 지냈냐?
[으, 은인이다.] [으, 은인이 나타났다!]갑자기 우르르 판테라들이 다가왔다. 뛰어오는 놈도 제법 많았다.
쿵, 쿠웅, 쿵쿵.
멀리서 뛰어오는 놈들까지. 어느새 내 주변엔 판테라로 가득 찼다.
-그런데 너희 대장은 어딨냐?
말이 끝나자마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쿵, 쿵 소리를 나면서 탄이 나타났다.
그런데, 다들 꼴이 말이 아니었다. 몸에 핏자국이 있는 게 부지기수였고, 다리를 저는 놈들, 눈을 제대로 못 뜨는 놈들.
-어떤 놈이냐!
[킹퍼스와 붙었다.]-킹퍼스?
하이에나처럼 생긴 크로쿠타와 승냥이를 섞어 놓은 것처럼 생긴 몬스터, 판테라와 상극인 놈들.
[그렇다.]-이유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안내해라. 쿤은 어딨나?
잠깐이었지만, 칸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했다. 녀석도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궁금할 거다. 그것도 쿤이 아프다고 말하자마자 바로 나타났으니.
그러나 녀석은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묵묵히 걸어서 나를 동굴로 안내했다.
동굴에 들어서자마자 피비린내가 훅하고 코끝을 파고들었다.
쿤은 탄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입을 벌린 채 숨을 얕게 뱉으며 벽에 기댄 채 힘겹게 앉아 있었다.
[눕지 않는다.]칸이 안타까운 눈빛을 쿤에게 보내며 말했다.
-안 눕는 게 아니라 못 눕는 거다. 누우면 숨 쉬는 게 더 힘들어지거든.
나는 곧장 쿤 옆으로 다가가 자세를 낮추면서 상태를 확인했다.
우측 흉벽 전반에 심한 혈반이 보인다. 관통상이 꽤 많군. 이건 교상에 의한 관통상이고, 호흡곤란.
육안으로 쿤의 상태를 짐작해 봤다.
우측 1번에서 5번 사이의 늑골 중 하나, 아니면 두 개가 골절, 피하기종 확인, 타박상. 기흉.
쿤은 교상으로 인한 호흡곤란증과 흉부 출혈을 보이고 있었다.
혈액검사를 했다면, 분명 호중구 증가, 저칼슘혈증, 호흡성 산증, 간수치도 상승했을 거고.
예전의 김민혁 같았으면 당장 응급 수술을 준비하라고 지시했겠지만, 나는 손을 쿤의 다친 흉부 쪽으로 가져갔다.
후우웅.
내 손가락 끝에서 오색찬란한 마나가 흘러나와 고스란히 쿤의 옆구리로 흡수되었다.
궁극의 마나치료술. 수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치료법을 펼친 것.
마나가 쿤의 내부로 스며들면서 호흡이 점점 안정화되어 가는 반면, 옆에 서 있던 탄의 콧김이 점점 거칠어졌다.
[허억! 은인, 무슨 일인가?]탄이 물어왔을 땐 이미 쿤의 허벅지 상처까지 치료가 끝난 상태.
쿤은 편안한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새로운 치료술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탄이 감격하는 눈빛을 하더니,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으, 은인, 고맙다. 은인!]탄이 무릎을 꿇자, 나머지 모든 판테라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입을 모아 외쳤다.
[은인!] [은인!]우렁찬 목소리가 산을 울렸다. 눈앞에 황금색 글씨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기특하다고 상을 주는 모양.
-자, 아픈 녀석들은 내 앞으로 줄 서라. 쿤처럼 고쳐 줄 테니. 탄, 너부터 치료하자.
[나, 대장. 마지막에 치료받는다.]한결같은 녀석.
-그래, 제일 부상이 심한 녀석들부터 치료를 시작하자.
마침 팅거, 벨라, 카이가 도착했다.
[여기 진짜로 재미있어. 그런데 얘들은 왜 이래?] [그러게. 얘들 싸운 것 같은데.] [웅, 아파 보여.]카이, 팅거, 벨라의 등장으로 갑자기 판테라들이 얌전해졌다.
-얘들 왜 이래?
주변을 둘러보다가 탄과 눈이 마주쳤다. 언제나 당당한 탄마저 기죽은 표정.
[두, 두렵다.]-누가?
내 말에 탄이 눈을 굴렸다. 탄의 눈동자가 가리키는 건 바로 카이였다.
-아.
그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드래곤의 기운이 두려웠던 거로군.
나는 카이에게 말했다.
-카이, 얘들은 내 동료야. 그러면 네겐 뭐가 되지?
[마커스 친구는 내 친구다. 너희들은 내 친구다.]언제 모습을 바꿨는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카이가 턱을 치켜든 채 의기양양하게 걸어가 탄 앞에 섰다. 그리곤 짧고 오동통한 앞발을 내밀었다. 악수하자는 뜻이다.
-그렇다는데?
[치, 친구.]-그러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자, 악수.
무릎을 꿇고서도 카이보다 한 참은 큰 탄이 카이와 서로 앞발을 마주쳤다. 카이가 말했다.
[우리 집에 판테라 친구 많다. 여기도 많다.]우리집, 드워프 캠프를 말하는 거겠지? 그런데 그걸 왜 굳이 여기서 말하는 거지? 저 조그만 머리통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친구는 서로 돕는다. 알지?
[당연하지.]-얘들, 다쳤대. 그러니 얘들에게 마나를 나눠 줘라.
[알았어!]셋의 도움으로 치료는 쉽게 마무리되었다.
-자, 이제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 봐.
탄이 상황을 설명했다.
킹퍼스가 난데없이 마을을 습격해 가축들이 꽤 많이 죽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판테라들이 킹퍼스와 맞섰고 작금의 상황에 다다른 것.
-그런데 말이야. 킹퍼스 놈들이 누구와 함께 왔냐? 너희에게 적수도 못 되는 놈들에게 이렇게 당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킹퍼스, 친구 있다. 친구 공격했다.]-친구라고? 그러니까 그놈들에게 조력자가 있었어? 어떻게 생긴 놈들이야?
[흰색 털, 얼굴 동그랗다.] [갈고리 발톱. 아팠다.] [다리 길다. 앞다리 더 길다.]녀석들이 말하는 걸 조합해 보면 데빌슬롯들이 생각났다. 이거 어째 싸한데?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데빌몬스터가 출몰한 건가?
-카이, 너 마기가 감지되냐?
[여기? 아니 별로.]나도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주변에 데빌몬스터가 없다는 뜻인데.
그렇다는 건 순수하게 슬롯 몬스터인가?
[킹퍼스, 명령 안 듣는다. 친구 말 들었다.]-원래 누구 말도 듣지 않는 킹퍼스가 그놈들 명령을 들었다고?
[그래. 친구 명령했다. 킹퍼스 마을 덮쳤다.]데스케이드 마물들이 몬스터를 세뇌해서 몬스터웨이브를 일으킨다고 했는데, 이게 그건가?
잠깐, 갈라스라고 했지? 그놈이 벌써 여기까지 왔다고?
나는 탄에게 슬롯이 여기 몬스터인가 물어봤다.
[처음 본다.]그렇다면 마물들이 자신들이 부리기 쉬운 몬스터를 세뇌해 전 대륙으로 퍼뜨리나 보군.
나는 탄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 세뇌 싫다.]탄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나는 그런 탄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세페린 나무 위에 앉아 있는 녀석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꺼내자.
[알았어.]녀석들이 쪼르르 내 옆으로 날아오더니,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냈다. 드래곤 스케일이었다.
판테라 녀석들이 화들짝 놀라며 일제히 무릎을 꿇고는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드래곤의 기운이 무서운 거다.
-하나씩 먹도록. 이거 먹으면 너희들이 싫어하는 세뇌 안 걸린다.
가테지가 알려 준 말이었다. 드래곤 스케일을 먹거나 갖고 있는 자들은 세뇌에 면역이 된다고.
나와 가테지가 율리시즈 영지에서 마물의 세뇌에 홀라당 넘어가지 않은 이유가 드래곤의 기운 덕분이라고 했다.
다들 고개를 못 들고 있는 와중에 탄이 다가와 앞발을 내밀었다. 내미는 앞발이 떨렸다.
[은인의 명령, 듣는다. 먹겠다.]드래곤 스케일을 먹는 판테라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드래곤 스케일을 잡고 입에 넣을 때까지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먹고 나서는 기쁜 얼굴이 되었다.
[힘, 솟는다.] [친구, 좋다.] [은혜 입었다. 판테라, 은혜 갚는다.] [은혜, 갚는다.] [은인!] [은인!]판테라들의 우렁찬 외침이 산을 진동했다.
-그놈들은 어딨지?
[저 산에 있다.]탄이 뒤에 보이는 산을 가리켰다.
-앞으론 이런 일이 있으면 빨리 말해라.
[고맙다. 은인.]우리는 판테라들에게 인사를 한 후, 탄이 말해 줬던 산으로 날아갔다. 가자마자 아래 킹퍼스 무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으론 슬롯 놈들도.
-음, 확실히 데빌몬스터는 아니군.
[아니야. 마기 없어. 마커스, 쟤들 친구 적이지?]-응.
[죽이자.]카이가 숨을 들이마셨다. 분명 브레스로 날릴 생각인 듯.
-잠깐,
[후아아아, 왜?]-죽이는 건 언제든지 죽일 수 있으니까, 세뇌당한 마물은 어떻게 되는 건지 한번 보게.
[그거 재미있겠다. 나 보고 싶어.] [나도. 막 시키는 건 다 하는 건가?]벨라와 팅거가 흥미를 보였다.
-우리 조금만 지켜보자. 그래야 앞으로 세뇌된 몬스터를 구별해 내지.
그렇게 우리는 은신한 채, 놈들이 잘 보이는 나무 위에 쪼르르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