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42)
* * *
암바토는 연일 축제 분위기였다.
“마기가 넘쳐나니 몸이 근질근질하군. 어떤 놈이 걸려도 다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그래. 이럴 때 데스케이드 호수에 뛰어들면 바로 방패가 씌워질 텐데. 아까워.”
“나도 그래.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는데 말이지.”
“크으, 10년 전 그때를 생각하니 아까워 죽겠다. 지금처럼 마기가 충만했다면 방패가 씌워지다 벗겨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이참에 데스케이드로 날아가면 좋을 텐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그놈들이 그래, 잘 왔다고 우릴 반겨 주겠냐?”
“안 반겨 주면? 그냥 박아 버리면 되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지금 우리 기운이라면 그놈들 발아래야.”
“에이 그건 너무 나갔다. 갈라스 놈이 나서면 우리 중 반은 해롱댈 텐데. 그냥 인사하고 돌아설 거다.”
“사실 나도 갈라스는 좀 무서워. 그놈 눈만 보면 그냥 말을 들어야 할 것 같단 말이지.”
“지금은 아닐걸? 나 어제 리페록스 갔었는데,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앉아 있었거든? 그런데 인간들이 너도나도 와서 그냥 알아서 계약하던데? 어젯밤에만 인간들 수명 200년은 챙겼지.”
수다 떠는 무리에서 세뇌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마물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네가? 너 수명 10년 챙기는 것도 힘든 놈이잖아.”
“내 말이. 그러니까 이제는 갈라스에게 속절없이 당하진 않을 거다. 무력으로도 안 당할걸?”
“어때? 지부장님께 말을 한번 해 보는 거? 데스케이드 호수에 루페도스 불이 타오르고 있다는데. 기회 아니야?”
“그래, 한번 말씀드려 보자.”
“내가 갔다 오지.”
마석 동굴에 모여 있는 마물 중 비행 속도가 가장 빠른 마물이 동굴을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외쳤다.
“어? 이거 왜 이러지?”
“왜 그래? 어? 나 왜 이러지? 마기 흡수가 안 돼.”
“무슨 소리야? 마석을 앞에 두고 헛소리…… 가 아니네. 이거 왜 이러냐? 다들 마기 흡수를 해 봐.”
“이상하다. 나도 안 된다.”
“나도!”
지금까지 개선장군 같았던 마물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한 놈도 아니고, 동굴 안에 있는 모든 마물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으니까.
“마기가 사라졌다.”
지금까지 마석에서 퍼부어 주다시피 했던 마기가 갑자기 뚝 끊겼다.
긴장감이 팽팽하던 그때.
“우리가 마기를 너무 많이 흡수한 거 아닐까? 한두 놈도 아니고 이 일대 놈들이 다 와서 이러고 있으니, 진즉 고갈될 때가 됐지. 난 마석이 지금까지 버텼던 게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 그럼 좀 쉬면 다시 차오를까?”
“그럴 것 같은데?”
갑자기 희망 회로를 돌리기 시작한 마물들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고, 결론지었다.
“자자, 다들 나가고 내일 다시 오자.”
“그럼 난 이것까지 지부장님께 보고하러 갈게.”
원래 보고하러 가려던 마물이 레톨리로 향했다.
다음 날, 레톨리에서 웨인과 라테온이 도착해 마석 동굴로 입장했다. 따라 입장한 마물 수는 스물.
요 며칠 떼를 지어 동굴로 들어오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 마기 과잉 노출을 막기 위한 방법이었다.
“마기가 갑자기 뚝 끊겼다고 했나?”
웨인은 보고 받았던 사항을 마물들에게 재차 확인했다.
“예, 지부장님. 그렇게 퍼부어대던 마기가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마석이 원래 그런 건가요?”
“글쎄, 그런 얘기는 못 들었지만,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뭐든 퍼 쓰다 보면 바닥을 보이기 마련이니까.”
여유로운 걸음으로 동굴에 입장한 웨인은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마석에서 나오는 마기를 마물들이 족족 흡수했다고는 해도 하룻밤이 지났는데, 조금이라도 마기를 뿜어야 하지 않나? 함께 온 라테온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데요? 너무 깨끗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 누군가의 화들짝 놀라는 말을 했다.
“어? 마, 마석이 어디 갔지?”
“마, 마석이 사라졌다!”
정말이었다. 마석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웨인의 노성이 동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누군가가 조용히 운을 뗐다.
“저어, 그으…….”
한 마물이 눈치를 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하기엔 분위기가 너무 살벌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지도자인 웨인 지부장의 날카로운 눈빛은 당장이라도 마물 몇은 태워 버릴 기세였다.
“말해라.”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말을 하지 않아도 죽을 것 같았다. 주저하던 마물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러니까 데스케이드에서…….”
말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웨인은 못다 한 말이 뭔지 바로 알아들었다. 옆에 서 있던 라테온이 물었다.
“데스케이드 놈들이 마석을 훔쳐 갔을 거란 말이지?”
웨인과 라테온이 허공에서 눈빛을 교환했다.
“우리 걸 뺏길 순 없지.”
“당연하죠. 자격이 되는 애들을 데리고 가죠.”
“그래. 이참에 우리도 애들에게 옷을 입혀 주자고.”
웨인의 말에 쥐 죽은 듯이 서 있던 마물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웨인이 언급한 옷이 바로 파이테스 방패라는 걸 모르는 마물은 없으니까.
‘드디어 나도 방패를 갖는구나.’
‘방패를 갖는 게 꿈이 아니었어.’
‘이참에 데스케이드도 먹자.’
‘당연하죠.’
마물들은 서로 각자의 수준에 맞는 다짐을 하며 레톨리 지부는 데스케이드를 치기로 결정했다.
* * *
꽝!
드래곤의 두 쌍의 눈에서 네 줄기의 빛이 제단 위로 떨어졌다.
화르륵, 네 줄기의 빛이 마석에 닿자마자 불꽃이 하늘로 치솟았다.
[우와, 우와, 불꽃이 엄청 커.] [내가 얼마나 높이 치솟는지 보고 말해 줄게.]심지어 팅거는 불꽃이 얼마나 크고 높은지 확인하러 날아갔다.
[메타오, 자네 보고 있나? 우리를 짓밟았던 마석이 드디어 이 땅에서 사라지고 있다네.]용사님이 모습을 드러내 타는 마석을 노려봤다. 올보그 황제도 마찬가지였다.
“위대한 기적이 일어나는 이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올보그 황제의 엄숙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카알리 왕이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게 아쉽군요. 누구보다 마석이 사라지는 걸 보고 싶을 터인데.”
어떨 수 없지. 허락된 자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니. 한동안 불타오르던 불꽃이 더욱 크게 치솟더니 잦아들었다. 마석이 녹기 시작한 것.
미요호호! 뾰롱뾰롱! 째째잭잭.
[녹는다! 마석, 죽어라 마물.] [녹는다. 마석, 죽어라 마물.] [녹았당 마석, 죽어라 마물!]카이, 팅거, 벨라는 신이 난 듯 마석이 완전히 녹아 사라질 때까지 목청을 높여 노래 불렀다.
마석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 올보그 황제는 미리 준비해 온 것들을 제단 위에 올렸다. 당연한 일.
황제가 준비한 것들은 음식과 성물, 마정석도 포함돼 있었고, 언제 준비했는지 신과도 몇 종류 제단 위에 올라갔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카이가 제단으로 통통 뛰듯 걸어가서 제단 위 양쪽에 다양한 과자를 올렸다. 저거 아껴 먹는다고 챙겨 놓은 과자들 같은데.
[이거 맛있어. 먹어.]그때였다. 보라색 빛이 두 줄기가 흘러 내려왔다. 조금 전과는 다른 은은하고도 따뜻한 기분이 드는 빛이었다. 사르르. 과자가 둥둥 하늘로 올라가면서 사라졌다.
“오오오! 드래곤께서 드셨습니다. 흡족해하신 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올보그 황제는 거의 울부짖듯이 드래곤을 찾았고, 카이는 뒷짐 진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카이의 입꼬리가 실룩였다.
좋은 소식은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에게도 전파됐다.
특히 카알리 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기뻐했다.
“드디어 선조님의 한을 풀었습니다.”
카알리 왕은 후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율리시즈 대장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전하께서 마법을 걸어 주신 덕분입니다.”
카알리 왕의 말도 맞고, 내 말도 맞다.
다시 생각해도 멋진 플레이였지.
마석을 손에 넣었을 때가 불과 몇 시간 전이었는데, 아주 오래전 일인 것만 같았다.
카알리 왕은 마기가 강한 마석을 손에 만질 수 없고, 나는 마석에 마법을 걸 수 없다.
이걸 협공으로 돌파했던 것.
나는 카알리 왕의 로브를 두르고 카알리 왕을 품에 안았다. 불경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성공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카알리 왕도 수긍했고.
어쨌든 카알리 왕을 안은 채 은신으로 동굴 안에 잠입했다. 다행인 건 마물들이 동굴 안에서 날아다니진 않았다. 만약, 그놈들이 마구 날아다녔다면 들켰을 수도 있었겠지.
나는 비어 있는 상공을 이용했다. 무사히 마석에 도착. 카알리 왕은 즉시 마석에 마법진을 새겨 넣었다.
예상대로 놈들은 당황했고, 나는 그 틈을 타서 마석을 들고 순간 이동, 카이는 마물에게도 발동되는 일루전 마법을 시전했다.
놈들은 우리가 여기 도착할 때까지 동굴에서 마석이 사라진 줄 몰랐을 거다.
지금은 발칵 뒤집혔겠지.
“과거의 한을 풀었으니, 이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차례입니다.”
“그놈들이 나눈 대화로 보아 분명 레톨리 마물들이 데스케이드를 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레톨리는 빈집이 될 겁니다. 대신 데스케이드는 북적거리겠지요.”
“한판 싸움이 일어나겠는데요?”
“그렇겠죠. 전력을 따져 봐서 어딜 치는 게 우리가 이길 수 있을지 의논해 봅시다.”
“우리 전력으로 갈 곳은 정해졌습니다.”
지로드 교수가 말했다.
“우리 대군들이 슈커럴 검과 기운 저장돌을 지녔다고는 하나, 데스케이드는 무립니다. 가서 마물 몇몇은 죽일 수 있겠지요. 대신 우리 대군도 목숨을 잃을 겁니다.”
“저는 데스케이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실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말로만 들었지, 마물이 실제 어떻게 공격을 해 오는지,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가테지 마법사는 어땠습니까?”
올보그 황제가 율리시즈 영지에서 마물과 싸웠던 일을 물어봤다.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저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그런 어린아이 말입니다. 내 힘으론 아무것도 못 하는. 전 그저 율리시즈 대장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율리시즈 대장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아무런 결정을 내릴 수도, 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무력한 기분은 처음이었습니다.”
회의실 안의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조금 전에 마석을 없앴다며 기뻐했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가테지가 얼마나 강한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전투를 봐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전투 방법을, 전력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테지가 목소리를 높였다.
* * *
그런 이유로 내가 대표로 데스케이드에 오게 됐는데,
“휘유우, 개판 났네.”
이거 잘못하다간 내가 죽겠다. 지난번에 앉았던 호숫가 나무 위에 앉으니, 허공에 응축된 마기가 휙휙 지나가는 게 보였다.
마물 대 마물.
마물의 강점과 약점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나는 지피지기백전불태를 중얼거리며 놈들의 전투를 지켜보며 적절한 때를 기다렸다.
촤아앗! 촤랏, 촤랏.
불길이 넘실거리는 호수가 일렁였다. 물결이 거세졌다.
-얘들아, 가자!
나는 카알리 왕이 준 로브를 입은 채 쏜살같이 호수로 날아갔다. 팅거, 벨라, 카이는 로브 안에 적당히 자리 잡고 있는데, 녀석들의 부리와 앞발엔 마밸리에서 보내온 마나 증폭기가 달린 기운 저장소가 들려 있었다.
참고로 기운 저장돌에는 유리아에서 추출한 신성력과 마나가 가득 차 있었다.
내 작전은 치고 빠지기.
아귀다툼하듯 싸우는 마물들보다 한층 더 위로 비행하여 호수 한가운데에 다다랐다. 뜨거운 열기가 후끈 올라왔다. 호수 온천의 중심부라는 게 피부로 와닿았다.
저기가 바로 방패가 시작되는 곳. 바로 저 아래에 마물이 극혐하는 마나와 신성력을 투하할 거다.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내려다봤다.
[마커스, 뱀대가리가 보일 때 던져야 한다고 했지?]-그래.
그냥 던져 봤자 그리 큰 타격을 주지 못한다. 마나나 신성력 기운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뱀은 숨어 버린다.
벨라가 말했던 바로 그때, 던져야 뱀 대가리가 죽는다. 그놈이 방패를 연성하는데, 마나와 신성력에 노출되면 방패를 못 만든다는 뜻이다.
촤르륵.
검은 형체가 떠올랐다.
-지금!
후웅, 툭, 탁, 탁.
우리는 목적한 것을 투하한 후, 그대로 레톨리로 워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