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55)
오랜 시간 동안 감고 있던 눈을 뜬 마신이 처음 느낀 감정은 어떤 것일까?
드디어 자신의 의지대로 몸이 움직여 준 것에 대한 감탄? 고마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자들에 대한 분노?
아니었다.
마신은 극심한 통증을 느꼈을 뿐이다.
‘크윽!’
죽고 싶을 만큼 강한 고통이 그를 엄습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복수만을 위해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건만.
‘죽고 싶구나.’
말이 반개지, 눈에 실낱같은 공간이 트였을 뿐이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챌 수도 없을 정도로 눈꺼풀이 미세하게 벌어진 게 다다.
그런 그 사이로 마기가 스며들기도 했지만, 그걸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강력한 기운이 반개한 눈을 공격했다.
마신은 죽고 싶을 정도로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아주 짧은 시간, 고민했다. 다시 눈을 감을 것인가, 아니면 이 상황을 이겨 낼 것인가.
당연하게 마신은 후자를 선택했다.
고오오……!
잠시 후, 마신의 눈에 검은 기운이 내려앉았다.
‘후우우,’
통증은 가셨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은 상황. 그러나 마신은 더없이 기뻤다.
드디어 심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기운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던 것.
기운을 운용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됐다.’
이거면 충분하다.
자신이 이러고 얼마나 있었을까? 10년? 100년? 아니면 천년?
그런 건 상관이 없다. 시간은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니.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기운은 느리지만, 몸 전체로 천천히 퍼져 나갔다. 기운은 몸 구석구석 돌면서 자신을 옥죄고 있던 신성력을 몰아내 줄 것이다.
그런 후, 마기로 자신의 몸을 다시 가득 채우면 된다.
봉인에 금이 간 이 순간, 마신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시간만 흐르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터.
마신이 한창 심장을 박동시키며 힘을 복구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그때, 라테온은 마밸리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흐응, 여기 좀 빡센데?”
유니센과 달리, 신성력과 마나가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라테온은 자신의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손가락에 낀 반지 주변이 아주 깨끗했다.
대개는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마기가 조금씩이라도 포착이 된다. 그게 케링에게 받은 반지로 날아오게 되고 자신은 그걸 가로채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마밸리에 들어온 이후, 단 한 줌의 마기도 구경하지 못 했다.
대신 숨도 못 쉴 만큼 마나가 차고 넘쳤다. 거기에 신성력까지.
“빈틈이 있어야 성물을 찾기가 편한데.”
이렇게 빡빡해서야.
쯧, 라테온은 혀를 찬 후,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마침 행인들의 눈을 피할 적당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가 좋겠군.”
라테온의 시야에 들어온 곳은 식당 건물로, 예전 가테지와 모건이 연회를 구경했던 그곳이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신성력을 없앤 후, 흘러들어오는 신성력을 뒤쫓을 생각인 라테온이 손을 들었다.
곧바로 손가락 끝에 시커먼 기운이 감돌았다. 손끝에서 마기가 흘러나와 공기 중에 섞이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신성력이 사라졌다.
“오! 된다.”
라테온은 보다 강력한 마기를 공중에 뿌리면서 새로운 신성력의 행방을 거슬러 갔다.
아주 끈기를 가지면서 장시간 관찰하던 라테온은 그중 아주 강력한 기운의 줄기를 찾아냈다. 바로 마밸리 언덕 쪽이었다.
라테온은 즉시 언덕으로 이동했고,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허억!”
마치 응축마나로 세게 때려 맞은 것 같았다.
순식간에 마기가 빨려나간 느낌.
라테온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리고 조금 전에 했던 대로 가운을 내뿜었다.
쒸이잉.
손가락에서 나오는 대로 마기가 사라졌다. 몇 번을 시도한 끝에 기운이 땅속에서 올라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호오, 이 아래에 있단 말이지.”
성물이 눈앞에 있든, 땅속에 있든 마기로 태워 사라지는 건 똑같을 터.
라테온은 유니센에서 성물을 태웠던 마기보다 훨씬 강력한 응축마기를 땅속으로 투하했다.
마기에 공격받으면 초목들은 순식간에 시커멓게 고사한다. 그러나 마밸리 언덕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걸 1시간이 지나서 알게 된 라테온은 당황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기운이라는 것을.
라테온은 호승심에 불타서 3시간을 더 마기를 퍼부었다. 그러다 결국 포기.
라테온은 그 자리에 털썩 드러누워 생각했다.
“아, 이거 엄청 힘드네.”
마신에게 총애를 받는 마물이 되고 싶었다. 더 나아가 후계자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이렇게 하다간 후계자는커녕 마신의 명령도 수행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어떡할까?
레드애쉬가 나타났다는 게 마물 세계에 소문이 쫙 깔렸다면 조만간 마신의 위치를 찾아내는 놈들이 나올 건 자명하다.
자신이 운이 좋아 마신의 부름을 받았을 뿐.
만약 자신이 성과를 못 낸다면?
자신의 효용 가치는 그날로 떨어지고 말 거다.
결정을 내린 라테온은 자신의 대장인 웨인에게 긴급 메시지를 넣었다. 그러나 연락이 가지 않았다.
“이거 아무래도 기운이 너무 강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렇다면 여기서 벗어나서 연락하자.
라테온은 마밸리에서 벗어나자마자 다시 웨인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그리고 소식을 들었다.
데스케이드 지부 놈들이 북대륙 쪽에서 몬스터웨이브를 일으켰다는 소식이었다.
“뭐라고요? 몬스터들이 족족 항복을 선언했다고요? 말도 안 돼요.”
=갈라스에게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 그제야 라테온은 갈라스가 자신과 함께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랐다.
“그놈 죽었을 거예요.”
=죽어? 흐음, 레드애쉬를 찾은 거로군. 거기 일은 어떻게 되었지?
웨인은 라테온이 갈라스를 레드애쉬에게 던져 줬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그게 말하자면 길어요. 가서 말씀드릴게요.”
혼자서는 힘들다는 걸 깨달은 이상, 동료들을 총동원해서 명령을 최대한 빨리 수행해 내자.
그런 작전을 펼치고 있는 이가 바로 마커스였다.
* * *
“유능한 동료가 있다는 게 이렇게 든든하다니.”
몬스터들의 출몰이 계속되었지만, 내가 손 쓸 필요가 없어졌다. 가테지가 앞장서서 몬스터들을 진압해나갔다.
1차로 팅거, 벨라, 로이칸까지, 몬스터들의 서식지에 가테지 가루를 뿌렸고, 그다음, 가테지가 몬스터 출몰 지역으로 가서 세뇌를 풀었다.
[마물이 세뇌한 걸 풀다니. 볼수록 대단한 자다.]-제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아요. 마법사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해요. 아, 카알리 왕도 계시구나.
[흠, 카알리 왕도 만만치 않지. 그래도 가테지 마법사가 대단하다는 건 변함이 없다.]-그렇죠. 그 덕에 제가 여길 오게 되었으니까요.
나는 새하얀 건축물, 카발라 제국의 카이스 기념관을 바라봤다.
[마커스, 빨리 와 봐. 여기 용사님 있어.]카이의 목소리가 건물 안에서 들려왔다. 저 녀석들은 또 언제 들어간 거야?
-용사님, 들으셨죠?
[흠흠, 그래, 들어가 보자.]은근히 기대하는 목소리, 저럴 때 보면 귀여우시다니까.
-와! 용사님 끝내주게 멋진데요?
콘스턴 기념관처럼 입장하자마자 정면을 차지하는 커다란 벽화.
거기에 순백색의 제복을 입은 용사님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원래 멋있었다.]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말 같은데?
-그러셨을 것 같아요.
내 선조이신 바트롱가 영웅도 벽화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저 검이 바트롱가 검인가요?
[그래. 저 검으로 얼마나 많은 마물을 죽이셨는지. 네가 가진 검 말이다.]-선조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저도 많이 죽일게요.
[당연하지. 그러기 위해 내가 이렇게 네 곁에 와 있는 것이 아니냐.]-그러니까요. 영웅의 검, 거기에 용사님의 가르침. 게다가 유능한 동료. 성공할 수밖에 없다니까요.
[그래, 자신만만해서 보기가 좋다.]용사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2층 성물실에 도착했다. 단상 앞에 있는 유리아를 보는 내 눈이 커졌다.
“유리아가 세 개나 있군.”
더없이 좋은 상황.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한꺼번에 세 개의 유리아의 봉인을 푸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강해지니까.
마신의 위치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더더더, 강해져야 하는 내게 절호의 기회였다.
“죽었다 생각하고 해 보자.”
그리고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콤했다.
기운의 흐름을 보는 눈이 전부 개안이 되었으며, 마물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3급 마물이라든지, 5급 마물을 알아본다는 등 제약이 있는 게 아니라 모든 마물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메타렌 후작이 마물인지 아닌지, 이제 알 수 있겠네.”
아, 여기 사제들 중에 마물이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겠고.
여러모로 쓸 데가 많을 것 같다.
그리고 신성력과 마나. 이제는 카운트한다는 게 무의미해질 정도로 저 둘의 수치가 아주 높아졌다.
그렇게 되니까 이제 관심사는 내 실력이 마신과 비교해 얼마나 뒤처지는가. 어떻게 하면 마신보다 강해질 수 있을까였다.
물론 현 상태의 마신을 말하는 건 아니다. 장담컨대, 지금의 마신은 아주 나약한 존재일 거니까.
기념실 문을 여니, 카발라 제국 황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념실 안으로 들어온 황제는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는 유리아를 보곤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장 덕분에 우리 카발라 제국의 숙원을 이뤘습니다. 이렇게 기운이 강한 성물인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황제는 유리아를 멀리서도 보고, 다시 가까이에 가서 보고, 안아보기도 하면서 유리아의 기운을 만끽했다.
그럴 만도 하지.
나는 황제의 그런 행동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런데 이 정도 기운이면 로나인까지 영향을 미칠까? 그건 힘들겠지? 돌아가는 길에, 로나인에 들러서 신성돌과 마나돌을 심어야겠군.
그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가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클리몬트 대주교 같은데?
황제가 여기 있다고 보고 받고 달려왔겠지.
나는 레온 주교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복기했다.
클리몬트 대주교는 내가 유리아의 능력을 독차지하는 걸 경계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건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고, 이걸 알아내야지.
신성돌과 마나돌, 그러니까 원조격인 루페도스의 돌을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아무래도 내 짐작대로일 것 같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밖에 누가 온 것 같은데요?”
이런 건 원래 황제의 수행 기사나 시종이 알려줘야겠지만, 기념실에 들어올 수는 없는 상황이니, 내가 대신 말해줬다.
그래야 클리몬트 대주교가 허가 찔릴 거니까.
원래 준비가 덜 된 상태일 때, 속마음이 잘 드러나는 법이니까.
“오, 그래요? 확실히 뛰어난 실력자라 그런지, 감각이 뛰어나는군요.”
“모실까요?”
“그럽시다. 대주교도 굉장히 궁금할 터이니까.”
나는 재빨리 걸어가 문을 열었다.
쿵, 육중한 문이 열리자, 문 앞에 클리몬트 대주교, 한 발짝 옆에 레온 주교가 서 있었다.
클리몬트 대주교는 나를 보더니 멈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두 분,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혹시라도 클리몬트 대주교가 레온 주교보고 밖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할까 봐 선수 쳤다.
‘고마워요.’
‘당연한 건데요, 뭐.’
레온 주교와 나는 서로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음, 내가 저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진짜로 레온 주교님을 밖에 서 있게 만들었겠군.
그 생각을 하면서 나는 클리몬트 대주교를 바라봤다. 대주교는 입구에서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서서 유리아가 놓인 단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허, 대주교님, 가까이 가서 보시지요.”
“아, 예.”
황제의 말에 목멘 목소리로 대답을 한 대주교가 천천히 단상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걸음이 얼마나 느렸는지 황제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저런 것일 거요. 나도 이만저만 감격한 게 아닌데, 하물며 대주교는 오죽할까?”
그 말도 맞다, 그러나 기운을 되찾은 유리아를 바라보는 대주교의 심정은 그거 하나만이 아니었다.
감정이 격해진 상대의 속마음은 읽기가 아주 좋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