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6)
“이런 미친…… 놈.”
트로링거의 칼날처럼 뾰족한 발톱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코호드의 허벅지는 피부, 근육 할 거 없이 엉망이었다.
죄다 짓이겨 있어서 뭐가 뭔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이런 젠장. 하나도 안 보이잖아! 도대체 무슨 혈관이 터진 거야?”
뭐가 보여야 처치라도 할 텐데, 마구잡이로 찢긴 너덜너덜한 환부는 피로 낭자했다.
우선 대퇴동맥이라도 압박하자.
“월트! 이리로 와. 그리고 세이건은 주위 사람들을 이쪽으로 못 오게 막고.”
“알겠습니다.”
월트는 대답도 없었다. 걸어오는 폼도 어디 끌려오는 거 같았다.
“월트, 여길 꾹 눌러.”
“여기는 왜?”
“대퇴동맥을 압박해. 출혈이라도 조금 줄여보게.”
“대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알았다.”
월트가 허벅지 안쪽에 있는 대퇴동맥을 압박하자, 출혈이 아주 조금 줄었다.
그래도 눈으로 혈관을 확인하는 건 역부족이다.
나는 마법 스크롤을 펼치며 외쳤다.
“코호드의 내부 장기들을 보고싶다.”
원하는 바를 말하자마자, 코호드의 속이 훤하게 보였다. 혈관, 신경, 인대, 근육까지 모조리 자세하게 보였다.
“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우선 마취부터 하고.
나는 곧장 작업에 들어갔다.
트로링거의 발톱가루를 코호드 입에 털어 넣었다. 소독액으로 손을 씻은 후, 지체 없이 피가 흘러나오는 혈관을 찾아 나섰다.
그 어떤 기계가 이런 걸 대신할 수 있을까? 엑스레이? CT? MRI?
어림도 없다. 마법 스크롤이 최고다.
마취 효과가 있는지, 신음을 내뱉던 코호드가 잠잠해졌다.
“월트! 이 녀석이 숨을 쉬는지 확인해라. 그리고 혀가 말려 들어가면 밖으로 빼고!”
“…….”
대답이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외쳤다.
“월트!”
* * *
“…… 아, 알았다.”
마커스의 호통에 월트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마커스 저놈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갑자기 쭈그려 앉아서 쓰러진 코호드 몸에 대고 바느질을 해 대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 봐 왔던 놈의 기행 중 가장 기괴한 행동이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장면에 월트는 등줄기에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비단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월트만은 아니었다. 세이건에게 저지당하는 선발대들도 월트와 같은 생각으로 마커스를 노려봤다. 그중에는 분명 치료사도 있었다.
“저 저, 저놈이!”
마커스의 기행에 다들 한소리씩 내뱉었다.
정리해 보면, 죽어가고 있는 코호드에게 무례한 짓을 저지르는 놈을 즉각 막아야 한다였다.
그러나 누구 하나 발을 떼지 못했다.
세이건이 흉흉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각오하십시오!”
게다가 로이칸, 스피카, 호크의 흉포한 눈빛이 그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감히 뚫고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흐르던 피가 점점 잦아들었다.
피가 멈췄다는 건…….
결국, 코호드가 죽었구나.
탄식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누군가가 마커스에게 덤벼들었다.
“이 자식이!”
전투 치료사인 레이몽은 지금까지 참고 있던 울분을 마커스에게 그대로 쏟아부었다.
쓰러진 코호드는 레이몽을 유난히 잘 따랐다. 스피카가 마커스를 따르는 거처럼.
상처를 입고 쓰러진 것도 괴로웠는데, 저 마커스 놈이 아예 숨을 끊어 버렸다.
당연히 놈은 죽어야 한다.
지금 레이몽에게는 로이칸의 부리부리한 눈빛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레이몽은 전력으로 마커스에게 달려들어 검을 겨누었다.
“크아압!”
죽어라! 레이몽의 눈이 번뜩였다.
깡!
마커스는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뛰어올라 검을 발로 공 차듯 뻥 차 버렸다.
“어……?”
당황도 잠시, 정신을 차린 레이몽은 주먹을 내질렀다. 동기 중에서는 단연 최고의 주먹을 자랑하는 레이몽은 마커스의 턱을 노렸다.
휘이익!
텁!
“왜 이러십니까?”
레이몽의 주먹을 한 손으로 잡은 마커스가 물었다.
“이 자식! 맥톤을 죽였잖아! 맥톤을 살려 내!”
레이몽이 울부짖었다.
“답답하긴. 죽기는 누가 죽어요!”
마커스가 버럭 화를 내며 레이몽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자, 보세요!”
마커스가 레이몽을 맥톤이 누워 있는 쪽으로 내동댕이쳤다.
“숨을 쉬나 안 쉬나 보라고요! 무슨 사람을 학대범으로 몰고 있어!”
마커스는 진심으로 화를 냈다. 레이몽은 기세에 눌려 맥톤을 살폈다.
“어?”
싸늘하고 딱딱해야 할 맥톤의 몸에 온기가 느껴졌다. 게다가 아직 환부가 너덜너덜 흉측했지만, 분명한 건 피가 나지 않는다는 거다.
“이, 이런 일이!”
레이몽의 눈빛이 시시각각 변했다.
절망, 놀람, 환희, 그리고 경외!
마커스를 바라보는 레이몽의 눈빛에는 경외 그 이상의 감정이 서려 있었다.
그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의 감정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놀라움이 가시기 전에 누군가가 급하게 뛰어왔다. 슈미트 교수였다.
“코호드가 다쳤다고 들었다. 어딨나?”
슈미트 교수는 다급했다. 평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전시와 같은 상황이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코호드가 죽어 가고 있다니.
코호드는 동료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재다. 그게 사람이 됐든, 코호드가 됐든 상관없다. 일단 무리로 받아들이면 동료다.
동료 중에 누구 하나가 다치고 죽기라도 한다면 타격이 심하다.
코호드 한 마리가 전투사 10명 이상의 몫을 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래서 급하게 달려왔건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죽었구나. 슈미트 교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저기 쓰러져 있는 코호드가 죽은 모양이다.
“후우, 그렇군. 할 수 없지. 다들 들어라. 코호드 치료 전투사는 자신들의 코호드를 잘 달래 주도록!”
그렇게 말하면서 슈미트 교수는 죽은 코호드에게 걸어갔다. 그런 쓰러져 죽은 코호드의 몸이 움찔거렸다.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런데 코호드가 고개를 쳐드는 게 아닌가!
놀란 슈미트 교수는 코호드를 자세히 살폈다.
“다행히 힐러가 제때 온 모양이군.”
“그건 아닙니다. 교수님.”
레이몽이 그간 있었던 상황을 슈미트 교수에게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슈미트 교수의 눈이 점점 커졌다.
“마커스. 이게 무슨 말인가?”
* * *
뭐긴요. 잘린 혈관을 꿰맸습니다만.
“새로운 지혈 방법입니다.”
“새로운?”
“치료탑에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치료에 집중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 상태로 뒀다가는 조직 괴사가 올 거 같았다. 회복 포션이든 마나주입이든 뭐라도 해 줘야 한다.
“아, 그렇지. 그게 우선이지.”
슈미트 교수는 코호드에게 포션을 먹였다. 그런 후 디컴이 힐을 시전했던 거처럼 손을 환부에 대고 가만히 있었다.
아무래도 저게 마나를 주입하는 거…… 어?
쏴아아아!
슈미트 교수 손에서 노란빛이 흘러나와 환부를 비추었다. 손바닥보다 더 크게 벌어져 있던 환부가 점점 줄어드는가 싶더니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하게 작아졌다.
“와!”
이걸 수술과 접목하면 대박이겠는데? 회복시간도 엄청 줄어들 테니 야생동물들에게는 진짜로 좋을 거 같다.
“맥톤!”
조금 전에 내게 대거리를 해 온 전투사, 레몽드가 코호드를 힘껏 앉았다.
“앞으로 일주일은 회복 포션을 먹여야 할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교수님!”
슈미트 교수는 레몽드에게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지혈을 했는지 당장이라도 캐묻고 싶은 표정이다.
“돌아가서 이야기 좀 함세.”
저도 궁금한 게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노란빛이 손에서 나오나요?
“예.”
수미트 교수와 대화를 나누는데, 스피카가 걸어왔다. 꼬리를 쓱쓱 흔들며 눈이 반달인 걸 보니,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였다.
[주인님, 감사합니다.]-응?
[맥톤을 살려 주셔서요.] [너 쟤 처음 본 거 아니야?] [보기는 처음 봤죠. 그렇지만 우리 동족이니까요. 지금 주인님과 앞에 계신 분께 우리 코호드들이 굉장히 고마워하고 있어요.]-고맙기는. 내가 해야 할 일인데.
[코호드들이 인사하고 싶대요.]스피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십 마리의 코호드들이 단체로 하울링을 했다. 목소리에 기쁨이 묻어나는 하울링이었다.
아우우우우우웅!
녀석들의 하울링이 다슈타 산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녀석들이 합창했다.
[은인!] [은인!] [은인!]..[은인!]
그때였다.
[반신반몬을 치료해 마나가 1 축적되었습니다] [죽어가는 반신반몬을 치료해 보너스 마나가 2 축적되었습니다] [토리누 대륙 최초의 봉합 수술을 시도했습니다] [보상: 수술 시 회복 속도가 2배 빨라집니다] [위대한 업적을 쌓아 마나가 10 축적되었습니다] [코호드가 당신을 은인으로 생각합니다] [코호드가 당신을 따릅니다] [스킬 목록이 추가되었습니다!] [치료한 야수의 특성을 이어받습니다] [복종시킨 야수의 특성을 흡수합니다]*실버울프의 위험감지 능력을 계승합니다.
*그리핀의 폭발적인 힘을 계승합니다.
*코먼호크의 단단한 피부를 흡수합니다.
*트로링거의 악력을 흡수합니다.
*코호드의 전투력을 계승합니다.
그 후로는 순조로웠다. 로이칸과 스피카, 호크가 앞장서 몬스터와 맞섰고, 우리는 뒤에서 떨거지들을 처리했다.
“몬스터 토벌이라는 게 이렇게 쉬운 거였어?”
“그냥 동네 바람 쐬러 온 거 같아. 이러다 우리 전직하게 되는 거 아니야? 난 쟤들을 뒤따르면서부터 검을 들어본 적이 없어.”
“하하하, 나도 그래. 이럴 거라면 놈들이 매일 쳐들어와도 상관없겠어.”
여유롭게 걸어가는 모습이 흡사 뒷산 산책 나온 사람들 같았다.
그렇게 어슬렁거리다 보니, 어느새 몬스터들의 씨가 말랐다.
“후, 이제는 더 잡고 싶어도 보이질 않는군.”
마취 효과가 좋았던 트로링거의 발톱을 더 모으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녀석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갔다 왔는지, 팅거가 빨간색 날개를 퍼덕이면서 나타났다.
[놈들이 레니어쿡 산으로 가 버렸어.]팅거 녀석, 정찰 갔다 온 모양이군.
[녀석들이 위험신호를 주고받더니 죄다 가 버렸군.]로이칸이 말했다.
울부짖는 소리가 그런 거였나?
아무튼, 시원섭섭했다.
위험한 놈들이 사라진 건 좋은 일이었는데, 트로링거 발톱과 코먼호크의 뿔을 구할 수 없는 건 아쉬웠다.
“몬스터들이 레니어쿡 산으로 쫓겨 갔답니다.”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그래? 그걸 어떻게 알지?”
선발대 중에 한 사람이 물었다. 나는 손가락을 치켜들어 로이칸을 가리켰다. 팅거가 말했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거 같거든.
“얘가 그렇게 말을 하던데요?”
“캡틴 그리핀이? 그럼 다른 부대는 상황이 어떤지 확인을 해 봐야겠군.”
전투사 중에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대화를 나누는 걸 보니, 그쪽도 몬스터가 없다는 거 같았다.
“여기서 잠시 휴식한다.”
아마 흩어져 있는 대원들과 연락을 취할 모양이겠지.
기다리는 사이에 쉬는 사람도, 주변을 둘러보는 사람도 있었다.
[으힛, 이제 아투벡 성문이 열리겠지? 쿠키를 왕창 쟁여놔야지. 야, 마커스!]로이칸 이미 위에 앉아있던 팅거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말했다. 어지간히 신나나 보다.
-왜?
[이번에 쿠키 살 때 많이 좀 사. 좀팽이처럼 찔끔찔끔 사지 말고.]-그러지 뭐. 그런데 갓 구운 게 맛있다고 하지 않았어?
[크흐흠, 그냥 사라면 사. 사고 또 사면 되지.]하여간에 욕심은!
저런 놈을 누가 신조라고 하겠어? 지나가는 새도 저놈보다 욕심이 없겠다.
[어, 그러면 우리 이제 고기 먹을 수 있는 거예요?] [꾸훼훼훼, 고기! 고기!]스피카와 호크가 고기 타령을 하며 즐거워했다.
“흐흐흐, 내려가면 고기 파이 완전 많이 먹어야지. 공자님!”
“왜?”
“아투벡 성문 열자마자 바로 가요, 예?”
“후, 알았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죄다 먹는 타령이냐. 내가 굶겼냐, 굶겼어?”
“그래도요. 생환 기념인데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디선가 신음이 들렸다.
냐오…….
“고양이?”
로이칸 이마에서 벨라와 노닥거리던 팅거가 갑자기 날아올랐다. 녀석도 소리를 들었나 보다.
아무래도 아픈 거 같은데? 가 봐야겠다. 어디지?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선발대에서 외쳤다.
“몬스터를 퇴치했다. 다들 하산하라!”
“하산!”
“하산한다.”
순간적으로 슈미트 교수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목례를 하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