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76)
* * *
애틀리스에 도착한 나는 감회가 새로웠다.
흘러넘치는 기운들이 두 눈에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신성력은 유리아로부터, 드래곤 기운은 드래곤 관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리라.
올보그 황제를 만나기 위해 알현실로 가면서 상황을 추측해 봤다.
“펠로톤 황자는 멀쩡하다고 했지?”
펠로톤 3황자와 킬리안 황태자. 이 둘이 함께 있었는데, 킬리안 황태자만 위독했다. 왜지?
이건 킬리안 황태자만 저격한 게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면 펠로톤 황자가 마기 중독이 되지 않는 특이 체질이던가, 방어막을 가지고 있든지.
그리고 그 생각은 대충 맞아 들어갔다.
“그러니까, 유물을 확인하러 가셨다가 봉변을 당하셨군요.”
“가서 직접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둘을 보냈습니다. 사실은 킬리안만 보내려고 했는데, 펠로톤이 따라갔습니다.”
얼마 전에 황실로 정보가 하나 입수되었다. 애틀리스 영웅의 발자취를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영웅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는 탐험가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거대한 석판이 발견된 거다.
대개 그런 경우, 유물학자라든지, 사학자들이 가서 확인할 텐데.
왜 황태자가 갔을까?
“특별히 황태자 전하께서 가야 할 이유라도 있는지요.”
핏줄만 알아볼 수 있는 건가?
“황가에서 내려오는 감별법이 있습니다. 이리로.”
올보그 황제가 나를 가까이에 불렀다. 그러고 나서 끼고 있던 반지를 빼 나에게 보여 줬다.
금반지에 보라색 보석이 박혀 있는 반지였다.
음, 카이 눈동자처럼 생겼군.
“여기에 이걸 떨어뜨리면…….”
황제의 손끝에서 피 한 방울이 반지로 떨어졌다. 그러자 보석에 드래곤 형상이 새겨졌다.
내 손바닥에 새겨진 드래곤 방패 문양과 똑같았다.
“어?”
놀란 내 표정을 보면서 황제가 말을 이었다.
“이런 식으로 확인할 수 있죠. 사실 지금은 영웅들이 남긴 하나하나가 소중할 때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 글귀가 발견되었다고 하니,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해 갔다.
황제가 나설 수도 없고 하니, 황태자가 대리로 갔겠군. 그걸 옆에서 펠로톤 3황자가 따라붙은 거였고.
애초에 처음부터 황태자를 속여 함정을 팔 생각이었나? 아니면 황태자가 유적지에 간다는 정보를 입수한 마물이 움직인 건가?
“유물을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직 확인을 못 한 상탭니다. 가는 길에 당했으니까요.”
확실한 건 나중에 알아봐야겠군.
황제와 나는 알현실을 나와 황태자 궁으로 갔다.
“폐하, 황태자 전하 외 다른 환자는 없습니까?”
“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없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나중이라도 발병할지도 모르니, 대장이 시간이 나면 한번 봐 주시지요.”
“예, 폐하.”
내 생각을 파악한 황제는 내게 길을 터줬다.
황제도 작금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는 거다.
황태자가 누워 있는 곳은 바로 봉인이 풀린 유리아가 있는 방.
올보그 황제는 황태자의 상태를 알자마자 곧바로 유리아가 있는 방으로 옮겼다.
다른 치료법은 소용이 없다는 걸 바로 알았기 때문인데, 그건 참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황태자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황태자는 쇼어 힐러관에서 봤던 환자들과 비슷했다.
황태자를 공격한 마물은 적어도 휘덴을 휘젓고 다녔던 마물 수준은 된다는 뜻.
다만, 통증은 그들보다 약해 보였다. 이 모든 게 유리아의 힘일 터.
“옆에 있어도 되겠습니까?”
황제가 조용히 물어왔다.
“예.”
올보그 황제는 내 능력을 아는 사람 중 한 사람.
나는 즉시 유리아를 소환했다.
순간 방안에 신성력과 마나, 드래곤 기운이 회오리쳤다.
“오오!”
황제가 감격한 듯 탄성을 질렀고, 황태자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이 뚝 끊겼다.
이어 잔뜩 찌푸리고 있던 미간의 주름도 서서히 풀려갔다.
통증이 사라졌다는 뜻. 그것만으로도 황태자의 안색은 훨씬 편안해졌다.
“이제 해독하겠습니다.”
나는 베이유스에서 손에 넣은 치료 성물을 황태자 가슴에 올려놨다. 그런 후, 곧장 해독능력을 발휘했다.
쏴아아아.
치료 성물과 내 능력이 시너지를 일으켜 마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시커멓게 썩은 부위가 서서히 옅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품에서 병을 꺼냈다.
“베이유스에서 챙겨온 겁니다.”
“오, 커즈와일 힐러의 기원이 되는 쇼어 힐러관에 있다는 그겁니까?”
거기에 초록 가루까지 들어있는 물로 황태자 몸을 닦아냈다. 끈적거리는 진물이 닦여 내려가자 새 살이 돋는 게 보였다.
“오! 테페론 신이시여!”
황제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 * *
회복한 황태자는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동굴에서 나와 산을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동굴 안 유물을 확인했다는 뜻이겠군.”
“예, 아버지. 진짜였습니다. 세이네르 님과 주벤엘게 님의 형상이 석판 전체를 가득 메웠습니다.”
“그랬군.”
올보그 황제는 감격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글귀는 봤느냐?”
“보기만 했습니다만,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니었습니다.”
“고대어도 아니었던 모양이군.”
“예.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가 있느냐? 그걸 읽어 낼 인재를 찾으면 되지. 그래, 그건 됐고, 마기중독은 어떻게 된 것이냐?”
“말씀드린 대로 동굴에서 나와 산에서 내려올 때였습니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는가 싶더니, 머리로 뜨거운 뭔가가 파고들었습니다. 처음엔 낙뢰를 맞았나 싶었죠. 그런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만약 낙뢰가 떨어졌다면 천둥소리도 났을 거고 제가 기절했겠죠.”
“그게 마기였군.”
“펠로톤 황자님은 어디 계셨는지 기억나십니까?”
“음, 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거로 기억납니다. 함께 하산하고 있었으니까요.”
“수행 기사들은 어디에 있고?”
“앞뒤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만 다쳤다?”
“예.”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보거라.”
마기 공격을 받은 킬리안 황태자는 불구덩이에 떨어진 것 같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말도 할 수 없었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만약 그때,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었다면 불경을 저지를 뻔했습니다.”
저 말은 마기중독된 환자들 모두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그들은 고맙다고 말하며, 만약 자신들이 움직일 수만 있었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거라는 말도 잊지 않고 했다.
지금 황태자가 했던 말처럼.
“고생했다.”
“아닙니다. 이렇게 살았는데요, 뭐.”
킬리안 황태자가 나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고마움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주변에 수상한 일은 없었습니까?”
펠로톤 황자나 부하들 중 의심 가는 놈은 없냐는 뜻이었다.
“아바마마께서도 아시다시피 제가 귀가 좀 밝지 않습니까?”
“이건 우리만 아는 내용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귀가 얼마나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귀가 밝다는 것도 능력의 하나다.
나만해도 그 덕분에 많은 정보를 얻고 있으니까.
“펠로톤과 수행 기사들과 작은 다툼이 있었습니다. 수행 기사들은 빨리 황궁에 연락해서 그리핀 부대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고, 펠로톤은 아픈 환자를 그렇게 이송하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
“그리고 입산을 금지 시켰습니다. 위험하다고.”
“그건 잘했군.”
“황궁으로 돌아오면서 틈만 나면 제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한탄했습니다. 너무나 아파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울기까지 했습니다.”
그건 너무 나간 거 아니가?
펠로톤 3황자와 킬리안 황태자와의 관계가 어떤지 아는 사람은 다 알 건데.
“그러면서 마차에 아무도 없을 땐, 왜 빨리 안 죽냐고 한탄했습니다.”
“뭐? 그놈이 그랬다고?”
황제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하루에 세 번씩 기념관 앞에 와서 네 걱정을 한다고 보고 받았는데, 그건 걱정이 아니고 언제 죽는지, 확인 차 온 것이로군.”
이 정도면 확신이 갔다. 펠로톤과 마물이 손을 잡고 킬리안을 죽게 만든 거다.
그런데 펠로톤이 원로원과 관계가 있다는 건 황제도 알고 있을 거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그냥 내버려 뒀을까?
진즉 처리했다면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황제가 아들 한 명 죽이는 거야 밥 먹는 것보다 쉬운 일 아닌가?
“짐작하고 있겠지만, 펠로톤을 죽이지 않고 있는 건 원로원을 견제하기 위해서였지요.”
황제는 내 속을 들여다본 사람처럼 펠로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릴 때부터 황태자가 되고 싶었던 펠로톤 3황자는 킬리안을 이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그러나 킬리안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 펠로톤에게 손을 내민 게 바로 원로원.
원로원은 펠로톤을 이용해 엘라로투스 제국을 집어삼킬 생각이었던 것.
“지금이야 많이 축소되었지만, 원로원은 무시무시한 집단입니다. 대륙은 원로원과 비원로원으로 나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요. 지금도 그렇겠지만.”
황제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떤 조직이라도 원로원이 파고들지 않은 곳은 없다.
“그러나 이젠 그럴 상황이 아니니, 이번에 해결을 봐야겠습니다.”
죽이겠다는 소리군. 하긴 저 정도로 대범한 놈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없애는 게 낫지.
“그런데 왜 하필이면, 석판을 보러 갔을 때를 노렸을까요? 만약 킬리안 황태자 전하가 목적이었다면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지금과 같은 일을 벌일 수 있을 텐데.”
“흠, 그건 그렇군요. 킬리안을 죽이는 게 목적이라면 기회는 수도 없이 많았을 텐데.”
우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상황이 너무 수상했기 때문이다.
“그 동굴을 발견한 유물학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건 알아보겠습니다. 설마 석판에 쓰인 글을 읽지 못하게 하는 게 목적이었을까요?”
“그냥 의심해 봤습니다.”
“알아보지요.”
“그러지 말고 지금 현장에 가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내 짐작이 맞다면 마물은 그 석판을 우리가 안 보길 바란다. 그렇다면 가서 봐야지.
분명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쓰여 있을 터.
“지금 이런 상황에서 내가 직접 간다면 신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고, 그렇다면 암행을 해야 한다는 뜻인데…….”
“에이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세요? 황태자 전하께서 위치를 알지 않습니까?”
“아, 알지요.”
“그러면 거기로 워프해서 가면 되죠. 아무도 모르게 우리끼리만.”
* * *
동굴이 눈앞에 보이자, 황제와 황태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 사람 다, 워프 스크롤도 없이 여기에 온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럴 만도 했다.
“주변에 보호막을 쳤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도 들어오지도 못하고 동굴 안 기운도 밖으로 새어 나가지도 않을 거예요. 근데 저 석판 굉장한데요?”
나는 거대한 석판 앞으로 걸어갔다.
동굴 바닥에서 천장까지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석판에는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내가 한 번 더 확인해 보마.”
황제는 반지에 피를 흘려 넣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손가락에 피를 내 석판에 떨어뜨렸다.
순간 석판에서 드래곤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댐이 터져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강력한 기운이.
[와, 와. 카이 부모님이다!]팅거가 외쳤다.
황제 반지에서 봤던 형상이 석판 전체에 그려졌다. 당장이라도 용천 할 것 같은 그런 모습.
“사실이었군. 그런데, 무슨 말을 써 놨는지 모르겠군.”
황태자는 궁에서 이걸 못 읽었다고 말했고, 황제도 모르겠다고 말했으니, 남은 건 나.
올보그 황제와 킬리안 황태자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전혀 모르겠는데요?”
“후우, 그렇군요.”
“고대어 전문가를 데리고 와야 할까요?”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지체될 것 같구나.”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거 나 무슨 말인지 아는데.] [흠, 애틀리스 영웅께선 후손들 걱정이 많으셨군.]카이와 용사님이 동시에 말을 걸어왔다.
아, 맞다. 용사님이 있었지. 애틀리스 영웅과 동시대 인물인 용사님.
-용사님이 저걸 읽을 수 있는 건 알겠는데, 카이 넌 또 어떻게 알아?
[그냥 아는데?]용사님과 카이가 서로 석판에 쓰인 내용을 말해 줬는데.
와, 여기 몰래 온 게 정답이었네.
마물들이 왜 킬리안 황태자를 죽이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