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78)
베이유스는 평화로웠다.
고즈넉한 분위기, 깨끗한 공기. 지난번의 전쟁통 같았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쇼어 힐러관 역시 조용했다.
팅거, 벨라가 물을 마시는 소리까지 크게 들릴 정도였다.
[히힛, 여기 물 진짜 맛있다.] [웅, 성물이 있던 곳이라 그런지, 진짜 맛있어.] [정말? 그럼 나도.]준비해 간 병에 물을 담고 있는데, 세 녀석이 찹찹찹 물을 마셔댔다.
[마커스, 진짜 맛있어, 날아갈 것 같은데?]-너 원래 날잖아.
[아, 그렇지. 아무튼 엄청 맛있어, 시원하고. 마셔 봐.]얘가 이렇게 뭔가를 권하는 애가 아닌데, 나는 고개를 한번 갸우뚱거린 후 손으로 물을 떠서 마셔 봤다.
“어?”
진짜 맛있잖아? 맛 표현에 서툴러서 제대로 표현을 못 하는 게 한탄스러울 정도였다.
뭐랄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성물을 녹여 마시는 느낌?
그리고 나도 모르게 힘이 생기는 것 같고.
“그래서 이게 마물들에겐 쥐약인 건가?”
우리에게 좋은 건 마물에겐 무조건 나쁠 거니까.
혹시 이런 거 아닐까?
이 성물을 마물에게 뿌리면 녹아내리는 거.
파이테스 방패가 없는 마물이 유리아의 기운으로 타죽는 것과 같이.
“혹시 모르니까 가득 챙겨가자.”
병을 더 꺼내 물을 양껏 담고 돌아가려는데, 쇼어 힐러관으로 마차 한 대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누가 아픈가? 설마 마기중독은 아니겠지?”
마기중독이어도 여기 힐러들 수준이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할 터.
-얘들아, 돌아가자.
애들에게 돌아가자고 말을 하는데, 마차 문이 벌컥 열렸다.
오싹!
갑자기 오싹한 느낌이 나다가 사라졌다.
들것에 실려 힐러관 안으로 들어가는 환자는 두꺼운 이불에 둘둘 싸여 있었는데도, 덜덜 떨고 있었다.
“어디가 아픈 거지?”
마기가 아주 희미하게 감지되기는 했지만, 심각하게 여길 정도는 아니었다. 롤린스 제국에선 저 정도 마기는 흔히 감지되니까.
-얘들아, 여기 힐러관으로 오고 있는 마차가 또 있냐?
내 말에 팅거와 벨라가 높이 날아올랐다.
[없는데?]-알았어.
마차가 없다는 건 후송되는 환자가 없다는 것.
내가 걱정할 상황은 아닌 것 같군.
나는 힐러관으로 들어간 오한 환자 생각을 털어냈다.
“월트셔를 심문해 정보를 알아낸 후, 율리시즈 영지로 가자. 가서 이 물을 전해 주자.”
그러고 나서 피비 대비책을 세운 후, 파리에토 공국으로 날아가야지.
아, 영지로 돌아가기 전에 애틀리스 석판을 다시 한번 봐야겠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빡빡하다.
* * *
“세상이 아주 좋아졌던데?”
월트셔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렇지 뭐. 앞으론 더 좋아질 계획이야.”
“내가 좋아지는 건 맞는데, 넌 살기 힘들어질 것 같던데?”
“설마.”
“후, 이젠 여기도 이제 끝이겠군. 지긋지긋했다.”
“어딜 가게?”
“앞으로 우리 세상이 될 건데, 당연히 날 모시러 오지 않겠어?”
“얘가 뭘 모르는 모양인데, 원로원, 완전히 쪼그라들었어. 내가 주고 간 일간지, 주간지를 봤다면 잘 알 텐데.”
“어허, 네가 몰라서 그렇지 우리 원로원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아.”
“그건 네 생각이지. 원로원이 옛날 원로원도 아니고, 힘도 없어.”
“흥, 입만 살아서는.”
월트셔가 나를 째려봤다.
“우리 원로원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안다면 그렇게 자신만만할 순 없을 거다.”
“그래봤자 한번 쏟아진 물은 담을 순 없지.”
나는 월트셔가 나를 비웃을 시간을 잠시 주었다. 그래야 속마음이 읽히지.
“에반은 어떤 사람이야?”
“에반 스카너 님을 말하는 거냐?”
“그래, 너와 내가 아는 에반은 그놈 말고 또 누가 있냐?”
“어허, 그놈이라니. 네가 에반 님을 몰라서 그런데,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안다면 네가 지금 그러고 있지 못할걸?”
“누구긴 마물이지.”
“헙!”
월트셔는 무척이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 정보도 모르고 내가 널 찾아왔겠냐? 아마 네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에반이 안다면 당장 널 죽이려 들 거다.”
“나, 나를 왜?”
“몰랐어? 입막음하기 위해서지. 마물은 자신들의 정보가 새어나가는 걸 무척이나 싫어한다면서?”
“…….”
월트셔의 눈동자가 잠시였지만, 흔들렸다.
“다행인 건 네가 여기 있다는 거지. 마물이 드래곤 기운을 두려워한다는 건 알고 있겠지? 신성력도.”
“그건 하급 마물이나 그렇지, 에반 님처럼 상위 마물에겐 통하지 않아.”
월트셔는 평소처럼 차가운 태도로 말을 했지만, 속은 복잡한지, 많은 정보가 흘러나왔다.
“그것도 강한 기운엔 못 당하지. 너라면 지금 애틀리스 기운이 달라졌다는 걸 알 건데?”
“뭐…….”
월트셔가 내 시선을 피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고 있다는 뜻.
“정 원한다면 에반에게 널 데려다줄 수도 있지. 그러나 네 생명은 장담 못 해. 원로원이 와해된 게 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던데.”
“거래하지.”
“말해. 난 정보에 비례해서 널 취급할 거다.”
“알고 싶은 게 뭐냐?”
“마물의 약점.”
월트셔가 나를 노려봤다.
“그건 너도 모르는군. 그럼 마물의 본거지 위치. 가르다 사막에 있다는 건 아니까 구체적인 위치를 말해.”
나를 노려보던 눈빛이 놀람으로 변했다.
“허튼수작 부릴 생각은 하지 마.”
“마리케라는 도시가 있다. 거기서 동쪽으로 반나절 거리에 사막의 선이 보일 거다, 그 선 아래에 있다.”
“뜬구름 같은 소리지만, 일단 가 본다. 만약 거짓말이라면 넌 즉시 죽는 거야.”
“만약 이렇게 자세하게 말해 줬는데, 찾지 못한다면 네놈이 멍청한 거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앞으로도 네 쓸모를 보여. 그러면 살려 줄 테니.”
감옥에서 나온 나는 곧바로 석판이 있는 애틀리스 기념관으로 갔다.
-용사님, 어제 못다 읽은 거 말씀해 주세요.
[그러지.]용사님은 석판에 쓰인 내용을 읽어 나갔다.
[어느 날 갑자기 안개가 나타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고 쓰여 있군.]-안개가 달라붙었다고요?
[그래, 그 후로 안개가 사람을 집어삼켰다는군. 아무래도 이거 식인 마물을 말하는 것 같은데?]-식인 마물이라니, 사람을 먹는 마물이에요? 몬스터처럼?
[그래. 사람을 통째로 삼키는 마물이지.]-그런 마물이 있어요? 마물은 그냥 마기만 수집하는 거 아니었어요?
[네가 말하는 건 상급 마물이고, 하급 마물 중에는 몬스터와 비슷한 놈들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처음 마물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몬스터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지.]-피해가 컸겠네요.
[카이스 영웅이 신성력으로 그놈들을 잡아 죽이기 전에는 말도 못 하게 피해가 컸지.]-그때부터 사제가 마물을 잡기 시작한 거예요?
[그렇지. 카발라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신 카이스 영웅께서 신성 기사의 시초였다.]-아, 그래서 카발라 황제께서 신성력이 강했군요.
[그렇지. 후손이니까.]카발라 제국의 황제가 클리몬트 대주교님보다 신성력이 그리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그거였군. 원래 강했던 거야.
아, 그러고 보니, 레온 주교님은 잘 계시겠지?
조금 이따가 연락드려 봐야겠군.
[식인 마물을 직접 본 적은 없다만, 한 마을을 순식간에 집어삼킨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다. 그냥 사람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라더군.]-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겠는데요? 마물이 사람을 죽인다면 그래도 시체라도 남잖아요. 마기에 당한 건 한눈에 파악할 수 있고요.
[그래서 식인 마물은 수면에 드러나는 게 오래 걸렸지.]-마물이 그놈들을 주력으로 삼지 않은 이유라도 있나요? 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한 건데요. 식인 마물보다 더 나은 마물은 없어 보이는데요?
[나도 한때는 너처럼 생각했다. 잠들 때를 노려 조용히 공격하면 그만인 것을.]-그렇죠.
[그런데 그놈들 수가 얼마 안 돼. 우리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지.]-아, 그런 문제가 있네요. 전 안개 운운하시길래, 피비처럼 생각했어요.
[그랬다면 지금 너희들은 없겠지. 그때, 마신과 마물이 승리했겠지. 다행이지. 아, 여기 그놈에 대해 쓰여 있군.]-뭐라고 쓰여 있는데요?
[안개 마물은 수백 마리가 집단으로 움직인다. 안개 마물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오한을 호소한다. 그것을 명심할 것. 하급 마물이니 간단한 성물로도 방어가 가능하니, 어떤 거라도 좋으니, 성물을 지니고 있도록.]오한? 잠깐. 쇼어 힐러관에 찾아온 환자가 추위에 덜덜 떨었었는데.
* * *
겨울 방학을 맞이한 마커스의 동기, 디컴, 줄리, 월트는 집으로 돌아가 쉬는 것보다 현장 실습을 선택했다.
언젠가 마커스와 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하루라도 빨리 실력을 연마할 생각인 그들에겐 쉬는 건 사치였다.
그들이 선택한 실습장은 다름 아닌 율리시즈 영지.
“끝났다.”
“그럼 마취를 풀게.”
“난 힐을 쏴 줄게.”
월트와 줄리, 디컴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잠시 후, 마취에서 깬 소를 보고 소 주인이 이들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목장이라고 해 봐야 소 다섯 마리를 키우는, 입에 겨우 풀칠을 하는 농가였다.
이들에게 치료사를 부르는 건 사치였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왕진까지 해 주니, 고마울 수밖에.
“마커스가 아니었다면 이런 기분은 못 느꼈을 거야.”
“솔직히 난 포션을 만들 생각으로 온 거지, 동물을 치료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어.”
“난 형을 이길 생각밖에 없었지.”
“자, 여긴 이거로 끝인 거 같지?”
“응, 이만 정리하고 출발하자.”
그들은 수술 도구를 정리하면서 웃었다.
“그런데 그 녀석은 참 신기하단 말이야. 어떻게 이런 방법을 다 알았을까?”
수술 방법이나, 치료법을 말하는 거다.
“몰라. 난 언제였지? 행사 때였나? 그때도 슬그머니 연회장을 빠져나와 동물들 치료해 주더라니까. 그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걘 항상 그랬던 것 같아.”
“진짜 동물을 좋아하는 놈이라니까.”
“그러니까 여기에 이런 봉사 단체를 만들었지.”
그들이 말하는 건 ‘율리시즈 비영리 치료 봉사 단체’였다.
마커스가 주축이 되어 율리시즈 영지에서 치료 활동을 하는 치료사를 중심으로 만든 봉사 단체였다.
“대단한 녀석이야.”
“돈도 많고 재능도 뛰어난데, 고생은 우리 중에 제일 많이 하고 있어.”
“내 동기라는 게 자랑스럽다.”
“나도.”
“나도 그래. 멋진 녀석이야.”
세 사람은 마커스가 앨버부르크에 방문했을 때, 이번 방학에는 현장 실습을 많이 하고 싶은데, 힘들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작년까지는 의료봉사 팀에 들어가 오지를 탐방했는데, 이번엔 몬스터의 기승으로 중단되었다는 말까지 전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월트가 불쑥 마커스에게 제안했다.
율리시즈 영지는 위험지역도 아니니 거기서 봉사를 하는 건 어떻겠느냐.
줄리는 포션 연구실에 견습을 해도 되고.
“여기 오길 참 잘했어.”
“진짜 보람 있는 것 같아.”
“나도. 쟤들이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마침 호크와 스피카가 그들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마커스가 동기들의 경호를 이 두 녀석에게 맡긴 것.
“어, 난 귀엽던데? 착하고.”
줄리가 호크를 보면서 웃었다.
“저 보호장비를 채우지 않았다면 겁날 수도 있는데, 귀여워. 주인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 반려동물 같아.”
“하여간에 그 녀석은 돈도 많아. 누가 자기 반려동물에게 마정석 목줄을 해 주겠어?”
“로이칸 투구는 너무 번쩍여서 왕관 같아.”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하고 있는 마차를 탔다. 스피카와 호크도 올라탔고.
마차로 저택까지는 1시간 거리.
마차가 이동하는 동안, 월트와 디컴은 피곤한지 잠이 들었고, 줄리만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시커먼 구름이 하늘 위로 드리워졌다.
“비가 오려고 하나?”
줄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만약 여기가 율리시즈 영지가 아니고 앨버부르크나 고향 영지였다면 마음이 급해졌을 거다.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쳐 오도 가도 못 한 채 갇혀 버릴 수도 있으니까.
“남쪽은 이래서 좋네.”
줄리는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먹구름을 구경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스피카가 크게 짖었다.
커, 커어어 컹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