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79)
* * *
펠로톤이 죽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 소식을 전하는 올보그 황제의 표정이 뭔가 어색했다.
황자를 죽였다는 이유로 눈 깜짝도 하지 않을 황제가 표정이 좋지 않자, 나와 함께 소식을 들은 킬리안 황태자가 물었다.
“아바마마, 뒤처리가 신경 쓰여서 그러십니까?”
귀족들이 펠로톤 3황자를 밀고 있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 킬리안 황태자는 그걸 걱정하는 것이다.
“그런 놈들을 내가 신경 쓸 이유는 없지.”
“그런데 왜 그렇게 심려가 가득하십니까?”
“내가 죽인 게 아니다.”
황제가 들어올 때부터 인상을 쓴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펠로톤 3황자를 제거할 생각을 한 황제는 곧바로 황자를 소환했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생긴 거다.
펠로톤 3황자는 황제의 부름을 받지 않고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다.
“자, 자결이라니요. 펠로톤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나도 킬리안 황태자와 생각이 같다.
펠로톤 그놈은 다른 사람을 죽이면 죽였지, 자기가 죽을 놈이 절대로 아니다.
누군가가 펠로톤을 죽였다는 건데, 아무래도 마물의 지시가 아닐까.
영웅의 후손을 예의주시하라는 건 결국 죽이라는 소리일 테니까.
만약, 킬리안이 죽고 나면 펠로톤이 후계자가 된다. 그렇다면 펠로톤도 예의주시해야 할 인물이 되어 버린다.
그 이유로 죽인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가?
이유야 뭐가 되었든, 펠로톤을 죽인 그놈은 제거해야 할 놈이다.
펠로톤에게 물어볼 말이 있었는데, 대신 그놈에게 물어봐야겠군.
“그렇지. 오히려 나와 거래를 하든, 무슨 짓을 하더라도 살려 달라고 매달릴지언정 죽을 놈은 절대로 아니다.”
“호위 기사입니까?”
“일단 측근들은 모조리 가뒀다. 조사해 보면 나오겠지.”
“이 일을 계기로 이득을 보는 무리가 범인이겠군요.”
“그럴 거다. 혹시 의심이 가는 데가 있느냐?”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
올보그 황제가 고개를 틀어 나를 바라봤다.
“원로원의 조직원이 황궁에 제법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원로원이라니? 그놈들은 지난번에 모조리 제거한 거로 알고 있는데. 아닙니까?”
황녀 세뇌 사건을 말하는 거였다.
“클리몬트 대주교를 보좌했던 브레먼을 기억하실 겁니다.”
“충신이라 착각하게 만든 자로군요.”
“펠로톤 3황자 전하께선 오래전부터 지목당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 건 펠로톤을 아주 잘 아는 놈이겠군요.”
“그럴 거라고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이번 일로 자신의 정체가 밝혀질 것을 걱정해 일을 저지른 것 같군요.”
“후계자를 노렸을 수도 있고요.”
“우리 황가를 없앨 계획이었군요.”
황제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올보그 황제는 생각의 정리를 마쳤는지, 여기 온 목적으로 화제를 돌렸다.
“자, 어제에 이어서 들어볼까요?”
우리는 곧장 석판 해석에 돌입했다.
나는 용사님의 번역 전달을, 올보그 황제는 황가에서 내려오는 마신과 마물에 관한 정보를 풀었다.
올보그 황제는 마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용사님이 처음 듣는 이야기도 있었다.
[안개 마물이 피비를 앞세운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다.]-그러니까요. 피비가 내렸으니, 조만간 안개 마물이 나타나는 거 아닐까요? 황제 폐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던데.
[준비해야지.]-그런데 장소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파리에토에서 피비가 내렸으니, 안개 마물도 그 지역에 출몰하는 건가요? 아니면 피비는 그냥 경고의 개념으로 피비가 내린 지역과 상관없이 출몰할까요?
[그건 나도 모르겠다.]용사님도 모르시는구나. 후우, 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대비는 어떻게 해야 하지?
“율리시즈 대장, 혹시 파리에토의 가인로드에서 일어난 일을 걱정하고 있나요.”
“아, 예. 피비와 안개 마물이 연계돼 발생한다고 하셔서, 잠시 걱정에 빠져 있었습니다.”
“나도 그 보고를 받고 곧바로 대장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시기상조라 함은 마신의 힘이 아직 약해서입니까?”
“아무래도 성물에 갇혀 있으니까요.”
“지금 분위기로 보면, 마신이 힘을 되찾는 중 같은데요?”
“그게 걱정이긴 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폐하께서 말씀해 주신 겁니다. 가인로드에서 발생한 비 피해와 안개 마물에 관한 대비책이 같다는 거요.”
“아, 그건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나는 황제에게 지금까지 상황을 이야기했다.
“하마터면 그런 인재를 놓칠 뻔했군요.”
“다행이죠.”
칼레이를 죽였다면 어쩔 뻔했어?
황제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애틀리스 선조께서는 호헨 베이크의 생각을 알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석판에 호헨 베이크에 관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세간에선 호헨을 배신자라 부르지만, 절대로 배신자가 아니다. 후세에 가면 밝혀지겠지만, 그는 위대한 동료라고 강조했다.
음, 이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칼레이와 티티제에게 말해 줘야겠다.
티티제가 대륙 최고의 지도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배신자라는 낙인이 싫어서였다.
최고 지도자가 되어 악명에 덧씌우고 싶었던 건가?
석판 해석이 끝난 후, 황제는 서둘러 돌아갔다. 펠로톤 일을 처리해야 할 게 많을 거니까.
기념관에 며칠 더 묵기로 한 황태자를 뒤로하고는 나도 기념관을 나섰다.
“그놈을 잡으러 가 볼까?”
나는 누가 킬리안 황태자를 공격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토비 피터스를 찾아갔다.
토비 피터스, 펠로톤 3황자의 개인 교수로 펠로톤 3황자가 3살이 되는 해부터 담당을 해 온 자다.
“이 시간이면 주로 식당에 있다고 했었는데.”
지로드 교수와 종종 들렀던 식당으로 가니 토비 피터스가 앉아 있었다. 나는 토비 피터스가 있는 자리로 걸어갔다.
“교수님, 소식 들었습니다.”
“아, 율리시즈 대장이시군요.”
토비 피터스는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나타난 것에 굉장히 놀라고 있었다.
역시 이런 자니까, 들키지 않았겠지.
나는 적당히 토비를 위로해주면서 속을 떠봤다.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팔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도움도 못 드리고, 혼자서 괴로워하셨을 생각을 하니…….”
“황제 폐하께서도 상심이 크신 것 같습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위급한 상황에서 3황자 전하께서 그렇게 되셨으니…….”
“율리시즈 대장께선 황태자 전하를 치료하러 오셨군요.”
“아, 예.”
“어떻습니까? 황태자 전하는 꼭 쾌차하셔야 하는데.”
“그렇죠. 그러셔야 하는데…….”
나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저으면서 말을 흐렸다.
“가…… 망이 없는 겁니까?”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도무지 무슨 병인지 알 수가 없어서 접근 자체를 하지 못 하고 있는 상탭니다.”
“아이고 이런, 빨리 나으셔야 하는데 걱정이네요.”
내 말에 토비가 걱정해 줬다.
목소리엔 걱정이 담겨 있고, 눈은 웃고 있었다.
속마음 역시 웃고 있었다.
토비는 황태자를 이미 죽은 사람 취급했다. 에반의 공격을 받고 살아 있는 자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황태자를 공격한 놈이 에반이었군.
내가 알고 싶은 건 알아냈고. 이놈이 혹시 피비 사건에 대해서도 아는 게 있을까?
“그거 알고 있나요?”
“뭐 말입니까?”
“최근 파리에토 공국에 난리가 난 사건이요.”
“아, 들었습니다.”
토비는 허리를 숙여 상체를 앞으로 당겼다.
“사람들끼리 서로 죽인다면서요? 저주받았다고 하던데.”
“그거 마물들 소행이래요. 교수님은 알고 계셨죠?”
“예, 들었습니다. 사실 믿기진 않지만, 현실이니 받아들여야죠.”
토비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속으로는 우리를 비웃었다.
그런 거로 저주 운운한다며.
그리고 아주 중요한 다음 예정지를 알려 줬다.
물론 그가 그런 장소를 알고 있는 건 간단했다.
원로원 동료들에게 위험지역을 미리 알려 줄 요량이었던 것.
그나저나 빨리 나가서 연락을 해 봐야겠군.
“교수님…….”
그때, 식당 직원이 다가와서 말했다.
“주문하신 거 포장해 놨습니다.”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그럼 교수님, 힘내십시오.”
“대장님도 빨리 황태자 전하의 치료법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밖으로 나온 나는 표정을 굳히면서 곧바로 통신구를 품에서 꺼냈다.
토비가 말한 다음 예정지 중 한 군데가 바로 우리 영지 근처에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마차로 한 시간이면 가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 두에르가 다음 예정지라고 말했다.
-벨라, 실드를 쳐 줘.
[웅, 알았어.] [통신구 울리는데?]벨라가 실드를 쳐 주자마자 손에 쥐고 있던 통신구에서 소리가 났다. 소리를 들으니 율리시즈 영지였다.
“예, 아버지.”
=지금 어디 있느냐?
“애틀리스예요.”
나는 간단하게 여기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어차피 백작도 알아야 할 내용이니까.
율리시즈 백작이 황궁에서 일어난 일들을 유감이라 말을 했다. 그러나 나는 대답하는 대신 백작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으세요?”
이 시국에 통신구를 받으면 좋은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걸 잘 아는 나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근처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래서 연락을 한 거다. 혹시 네가 알고 있는지.
“무슨 일인데요?”
=마을이 사라졌다.
“마을이 사라졌다니요? 이 겨울에 홍수라도 난 거예요?”
=아, 정정하마. 마을은 그대로 있고 마을 사람이 사라졌다.
“두에르인가요?”
=벌써 황궁까지 소식이 전해졌느냐?
“바로 갈게요.”
나는 곧바로 영지로 이동했다.
* * *
“다음 날 가니까 아무도 없었단 말이지?”
“그랬다니까. 그때 우리와 함께 간 호위 기사님이 바로 백작님께 말씀드린 거야.”
줄리가 상황을 이야기했다.
분명 전날에 소를 치료했었는데, 재진하러 갔더니 마을에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소만 놔둔 채 사람들이 없어진 게 너무 이상하지 않아? 그것도 서른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어떻게 같은 시간 사라지지?”
“혹시 그 먹구름과 관계된 거 아닐까?”
“먹구름이라니?”
“마을에서 저택으로 가고 있는 사이,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어. 너무 시커먼 구름이어서 마차 창문을 열고 자세히 볼 뻔했다니까.”
안개 마물. 그놈이 두에르에 나타난 거다.
두에르 마을이 예정지라는 걸 알았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동기들이 거기로 봉사하러 간 건 아닐까.
두에르엔 소를 다섯 마리에서 열 마리 정도를 키우는 축산 농가가 있다. 다들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이라, 분명 봉사하러 갔을 거로 생각했다. 그 생각은 맞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친구들이 무사하다는 것.
만약, 안개 마물이 마을을 덮쳤을 때, 얘들이 마차에 있지 않고 바깥에 있었더라면…… 후우, 생각하지 말자.
그나저나 이 녀석들에게 고마워해야겠는데?
지난번 가테지와 영지에서 마차를 타고 가다가 마물의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물론 마물을 퇴치했지만, 카이와 팅거, 벨라는 굉장히 분해했다.
마물이 쳐들어오는 게 기분 나쁘다면서 마차마다 작은 신성석 조각을 매달았고, 거기에 신성력을 불어 넣어 증폭시켰다.
그것뿐 아니었다. 저택과 드워프 캠프 등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는 곳은 신성석을 죄다 매달았다.
그 덕분에 월트, 줄리, 디컴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얘들아, 너희들이 그때 마차에 신성석을 매단 게 최고였어. 너희들 덕분에 이 친구들이 살았어.
[히힛, 다행이다.] [그런데, 마물 안개가 생기는 건 마신이 힘이 세졌다는 거 맞지?]-그래, 그게 걱정이다.
[빨랑 안개 마물을 잡고 마신 때려잡으러 가자.]-일단 현장에 가 보자. 뭐라도 흔적이 있겠지.
두에르에 가 볼 생각으로 밖으로 나왔는데, 갑자기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아, 이게 그거로군.
안개 마물이 등장할 것 같았다.
[마커스, 저 멀리 구름이 가득한데?]카이가 앞발로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니, 시커먼 구름이 가득 차 있었다.
“저기가 어디지?”
“어디?”
“구름이 가득한 저기 말이야.”
줄리가 내 시선과 똑같이 바라봤다. 그러나 고개를 가로저었다.
“뭘 보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
하긴 그게 정상이지.
심각하군.
당장 안개 마물을 만나도 딱히 해결책은 없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바로 기적의 포션, 예방책이었다.
“세이건!”
“예, 공자님.”
“이거 연구소에 가져다드려. 당장. 로이칸으로 이동해.”
“알겠습니다.”
나는 세이건을 연구소로 보낸 후, 곧장 시커먼 구름이 몰려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