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82)
세르만달이 마물이라는 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
나는 감각을 끌어올려 주변을 살폈다.
세르만달 이외 다른 마물이 있는지 확인한 거다.
그동안 마물을 잡으면서 나름의 기준이라는 게 생겼다.
한 번에 한 놈씩 상대하자.
이유는 간단했다. 빠르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으니까.
이유가 어찌 되었든 세르만달은 마물이다. 죽여야 한다.
해야 할 일이 많은 상황에서 이런 놈이랑 실랑이할 필요는 없지.
공격하려 하는 그 순간, 세르만달이 말을 걸어왔다.
“허,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세르만달도 나를 만난 게 상당히 충격이었나 보다.
“내가 할 말이군.”
“그나저나 최근 우리 마물들 사이에서 비상이 걸렸었거든? 아, 보아하니, 내 출신을 아는 것 같으니까 편하게 말할게.”
세르만달이 내게 소금 광산을 넘기던 그때가 떠올랐다.
세르만달 상단 본부의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풍경이 생각났다.
뒤로는 깎아 지르는 듯한 아름다운 산이. 앞으로는 탁 트인 넓고 시원한 호수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아, 호수가 데스케이드 온천 호수가 아닐 수도 있겠네.
그랬군. 거기가 안개 마물의 근원지였어.
“그때 우리 광산에서 만났을 때는 마커스 네가 그렇게 뛰어난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이거 능력을 숨긴 거냐, 아니면 그사이에 성장한 거냐.”
그런데 마물들은 왜 이렇게 말이 많은 거야?
그 루엘이라는 여자 마물도 말이 많았는데.
“글쎄.”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뭐 답이 뭐든 하나 아쉬운 건 있군. 널 그때 죽여 버렸어야 했다.”
“그런 말을 나도 할 수 있겠다.”
“아쉽군, 과거의 고객을 내 손으로 죽여야 한다니.”
“그럼 말든지.”
“그럴 순 없지.”
이왕 놈과 대화를 시작했으니, 속이라도 들여다볼까 했더니, 읽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이제 네놈은 죽어 줘야겠다.
나는 놈을 보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음, 지금 날 공격해 죽이면 너만 손해일걸?”
* * *
순간 마커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걸 포착한 세르만달은 속으로 조소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인간들이란.’
그러나 세르만달의 조소는 이어지지 못했다.
“으아아아!”
밀려드는 격통에 세르만달의 몸이 뒤틀렸다. 세르만달은 온몸이 끊기는 통증에 죽을 것만 같았다. 마커스가 마나 그물을 조였기 때문이다.
“내가 손해를 보든 말든 그건 네가 알 바 아니고.”
마커스는 경련하고 있는 세르만달을 보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네놈 말에 동의한 건 맞다.’
세르만달에게 무슨 비밀이 있기에 저렇게 당당할까.
그게 바로 마커스가 세르만달을 바로 죽이지 않은 이유였다. 그러나 그냥 있을 순 없었다.
세르만달 주변으로 동심원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니까.
‘저놈은 틀림없이 순간 이동 능력을 지녔다.’
마커스가 내린 결론. 도망치지 못하게 결계를 쳐 놓자.
마커스는 세르만달 주변으로 결계를 두 겹이나 더 쳤다. 하나는 벨라가. 또 하나는 카이의 결계였다.
당연히 세르만달의 고통은 몇 배로 커졌다.
“크아아아!”
비명을 지르는 세르만달을 보며 마커스가 중얼거렸다.
‘10분 내로 끝낸다.’
딱 10분.
10분 내로 세르만달에게 이유를 토해 내게 만들자. 그 시간 후엔 죽인다.
사실 직전에 세르만달의 생각이 읽혔다.
“이, 이거 안 놔?”
세르만달이 발버둥을 쳤다.
‘호오, 그새 통증에 익숙해졌나 봐? 생각보다 강한데?’
마커스는 마나그물에 신성력을 조금 더 걸어줬다.
“아, 이 말을 안 해 줬네. 그거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욱 좁아질 거야.”
그러다가 나중엔 몸이 두 동강 날지도 몰라.
그러나 이 말은 아직 해 주지 않았다. 한창 날뛰면서 정신이 쏙 빠지게 만들 거니까.
마커스는 마나 그물에 신성력을 조금씩 계속 불어넣었다.
“으아아아!”
세르만달이 괴롭게 뒹굴었다.
놈의 속셈을 더 알게 되면 좋고, 아니면 이대로 죽이면 되고. 마커스는 세르만달이 괴로워하든 말든 그의 생각에 집중했다.
“호오, 그래?”
마커스의 눈앞에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지금까지 마나그물에 얹었던 기운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
마커스는 손끝에 맺힌 기운을 응축했다.
어느새 마커스는 가는 검을 들고 있었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검이었다. 자세히 보면 블레이드처럼 생겼다.
탁. 마커스가 검을 세르만달에게 날렸다.
검은 마나그물에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있던 세르만달의 심장 바로 옆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컥!”
* * *
세르만달의 단발마. 그러나 아직 죽은 건 아니었다.
나는 세르만달에게 달려들어 블레이드를 오른손에 쥐었다. 그런 다음 제일 먼저 한 건 바로 시간을 천천히 가게 만든 것.
“슬로우!”
무적 체력으로 승급한 후, 받은 보상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세르만달의 움직임이 멈췄다.
“음, 이것도 능력에 따라 속도가 달라지는군.”
이 보상을 사용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예전엔 느려도 움직이는 게 포착되었다면, 지금은 아예 멈춤을 누른 것 같은 상황.
나는 세르만달의 몸을 블레이드로 도려 나갔다.
“출혈점 소작.”
흐르던 피도 멈추고.
잠시 후, 나는 세르만달의 심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세르만달의 심장이 펄떡거리고 있었다.
[우와, 마커스, 마기기원을 찾으려고?]카이가 흥분했다. 카이는 ‘슬로우’에 아무런 영향을 안 받는군. 카이 뿐 아니라 팅거, 벨라도 영향이 없어 보였다.
음, 이거 괜찮네.
[지금 찌르면 되는 거야? 아니면 마기 기원을 찾고 찌를까?]-카이, 너 그때 그 소금돌 내놔 봐라.
[소금돌이라니?]-그 왜, 이놈 집에서 챙겨온 돌 있잖아. 세르만달의 눈물이었던가?
[카이, 마커스가 소금 맛 나는 금색 돌을 말하는 것 같은데?]옆에서 벨라가 말했다.
[그거? 그건 왜? 내 건데.]-네 거라는 거 아는데, 그것 좀 쓰자.
하여간에 욕심 많은 드래곤이라니까.
[돌려줘야 해.]-그건 좀 힘들겠다.
[왜? 왜?]-여기 쑤셔 넣어야 하니까.
[왜?]-나중에 그거보다 훨씬 더 좋은 거 줄게, 일단 여기에 쑤셔 넣어봐. 아, 팅거가 조절해 줘. 이거 집어넣을 때 심장 터지면 안 되니까.
[알았어.]-얘들아, 소금돌에 기운을 집어넣어야 해.
[알았어.]참 신기한 게 이런 건 이유를 물어보는 일이 없다니까.
카이가 세르만달의 눈물을 꺼내자, 우리는 기운을 주입했다. 그러지 않아도 황금색으로 번쩍이던 돌이 더욱더 휘황찬란하게 빛났다.
“어…… 으?”
마네킹처럼 가만히 있던 세르만달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리고 입에서도 놀란 듯 신음이 새어 나왔다.
지금 우리가 뭘 하려는 건지 알았다는 뜻.
“진짜 느리군,”
이 슬로우,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보상. 앞으로 종종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팅거가 소금돌을 세르만달의 심장에 쑤셔 넣었다.
세르만달이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으…… 아…… 아…… 아!”
느려서 그렇지 아프지 않은 건 아닐 터.
세르만달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사이, 나는 봉합하고 원래대로 회복시켰다.
그리곤 곧장 놈을 안고 세르만달 광산으로 워프했다.
순식간에 눈앞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많이 돌아다닌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된다니.”
나는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호수를 내려다보며 세르만달에게 말했다.
“잘 가라.”
“으아아아아!”
마기그물에 꽁꽁 묶인 세르만달이 호수 속으로 떨어졌다.
“세르만달이 안개 마물을 만들어 내는 놈이었다니.”
첨벙,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피로 능력을 전수하는 것도 놀랄 일인데, 그 피에 소금을 뭉쳐 안개 마물을 만드는 건 어떻게 한 건지.”
도대체 마신은 어떤 놈인지, 진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 *
거대한 공동에 검은 마기가 자욱하게 깔렸다.
순간순간 밝은 빛이 빛났지만, 이내 검은 마기에 잡아먹혀 버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검은 마기가 빛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채, 사라졌던 공간이었다.
쩌, 쩌어억.
무언가가 금이 가는 소리가 조용한 공동에 울려 퍼지더니.
툭!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갑자기 공동에 환한 빛이 터져 나갔다.
화아악!
강한 빛은 마신의 얼굴을 강타했다.
“윽! 이건 끝까지 날 괴롭히는군.”
마신의 말대로 그게 끝이었다. 강력한 빛은 이내 소멸했으며 공동에는 검은 마기만 넘실거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마신은 자유로운 팔을 흔들어봤다.
“흐, 흐흐, 흐하하하하하!”
마신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한동안 공동에 울려 퍼졌다.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야.”
마신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손을 계속 움직였다.
오른손을 쫙 펴자, 손으로 무언가가 빨려 들어왔다.
지금까지 흘러들어오는 마기가 아니었다.
마신은 더욱 강한 힘으로 마기를 끌어당겼다.
쏴아아!
“으하하하!”
마신의 웃음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오베르 협곡에는 마기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루엘과 오카론이 일으켰던 마기 폭풍은 이것과 비교하면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해야 하는 수준.
마기 폭풍은 오베르 협곡을 따라 계속 이어졌다. 마기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너무나 고요했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오베르 협곡이 속한 곳은 파리에토 공국과 아크리스 왕국.
그러나 정작 피해는 엉뚱한 곳에서 일어났다.
* * *
세르만달을 호수에 떨어뜨린 후, 반응을 지켜보고 있는데, 레가시로부터 연락이 왔다.
“왜?”
=카이는 잘 있죠? 어디 다치거나 그렇지 않고요?
“카이 걱정하지 말고 네 걱정이나 해라. 카이가 어디 아픈 애냐?”
=건강하단 소리군요. 다행이에요.
“그거 물어보려고 이 비싼 통신구를 연결한 거냐? 마정석이 썩어 나냐?”
=공자님이 그런 걱정을 다 해 주시다니. 괜찮아요. 없으면 공자님이 주실 거잖아요.
“끊는다.”
=아, 아니, 그렇게 끊으시면 어떡해요? 다 사정이 있어서 연락한 건데?
“말해.”
=솔버스에 간 사람들이 연락 두절이래요. 어제부터 몇 사람이나 의뢰해 오는지 모르겠어요.
“연락이 안 된다니? 통신구를 말하는 거냐?”
=네.
“통신교란이 일어났나 보네, 다시 연락해 보라고 해.”
=솔버스뿐 아니라 서남부 영지와 연락이 안 된대요.
“그래? 혹시 마기가 짙어도 통신이 두절 되냐? 거기 솔버스에 원로원 조직들이 로운관을 또 만드는 거 아니야?”
예전에 로운관 공방을 폭파한 기억이 떠올라 레가시에게 물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로운관 정도 가지곤 통신두절은 안 될걸요?
“그럼 가 보라고 하면 되겠네.”
=율리시즈 백작님이 정찰대를 보내셨을 거예요.
“그런데 내게 연락한 이유는?”
다른 이유가 없다면 굳이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을 놈이라는 걸 아는 나는 레가시에게 이유를 물었다.
=아무래도 뭔가 일이 일어난 것 같아서요.
“일이라니? 혹시 마물에 관한 일이냐?”
=얼마 전에 한 마을이 전멸했잖아요. 안개 마물사건.
“또 일어난 거냐?”
=그땐 한 마을이었잖아요. 그런데 이번엔 의뢰가 들어오는 지역을 보니 너무 광범위해서요.
레가시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비가 내리는 지역도 구역이 있었다. 그다음 안개 마물이 등장한 것도 구역이 딱 정해져 있었고,
솔버스 영지만 해도 굉장히 넓다, 그런데 더 아래 지역까지 연락 두절이라고?
그렇다는 건 큰 사건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그 전체 일대를 피비나 안개 마물이 점령하려면 보통 마기론 힘들 터.
“음, 너무 지역이 넓은데?”
=그래서 연락드린 거예요.
“마신을 의심하는군.”
=너무 강력하잖아요.
레가시는 이번 일은 마물들이 아니라, 마신이 직접 움직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마신의 힘이 아주 강력해졌다는 건데…….
뭐가 됐든 바트롱가 검으로 하늘 찌르기를 해 볼 기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