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93)
한창 상공을 비행하고 있는데, 팅거가 외쳤다.
[어, 어, 벨라 날개가 반짝여!]-뭐? 정말이냐?
절로 벨라에게 시선이 갔다. 벨라 날개 안쪽에 빛이 반짝거렸다.
-잠깐, 얘들아. 남쪽 성물이 있다는 곳이 여기 아니냐?
처음에는 생소해서 가 보려고 했던 것이 이제는 꼭 가 봐야 하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긴 진짜 평화롭기 그지없어 보이는구나.”
사방이 푸르렀다. 꽃들도 만개해 있었고, 무엇보다 따뜻한 봄날 같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음, 역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군.”
마나도, 신성력도. 그리고 마기도.
“이게 정상이지.”
마신이, 마물이 이 땅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없애 버리는 게 아닌, 바로 이런 세상.
테페론 신도 이런 세상이 정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야. 그래서 이 대륙을, 자신이 애정하는 이 땅도 그렇게 되길 바라는 것이고.
그래서 우릴 돕고 있겠지.
그걸 바라는 테페론 신이 과연 찾기 힘든 곳에 성물을 숨겨 놨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진 소문으로 성물이 있는 장소를 찾았는데, 여기는 그럴 수가 없겠군.”
그렇다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야지.
나는 지금까지 성물을 찾았던 장소를 복기하며 숲을 천천히 걸었다.
상공에서 내려 봤을 때, 노란 나무가 즐비한 곳에 넓은 호수가 있었다.
“아주 넓잖아.”
챱챱챱챱.
물을 마시는 소리.
진원지를 찾으니, 동물들이 호숫가에서 물을 마시며 내는 소리였다.
신수, 일반 동물 할 거 없이 다양한 동물들이 보였다.
하긴, 이 추운 겨울에 따뜻하고 평화로운 곳이니, 동물들이 알아서 모여들었겠지.
그때, 호수 주변을 날아다니던 팅거가 물 수면으로 내려와 물을 마셨다.
[맛있어?]벨라가 물었다. 그랬더니 팅거 녀석은 고개도 들지 않고 날개만 한번 성의 없이 퍼덕거려 줬다. 그리곤 계속 물을 마셨다.
그걸 보던 벨라도 고개를 처박았고.
음, 이거 왠지 쇼어 힐러관이 생각나는데.
나도 녀석들을 따라 물을 마시려고 손바닥에 물을 떴다. 무심결에 호수를 내려다봤는데, 호수 바닥이 파랬다.
넓고 깊은 호수여서 그냥 물색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바닥 전체가 푸른색이었다.
“음, 설마 호수 전체가 성물은 아니겠지.”
나는 호수 근처를 살폈다.
그때, 때마침 호숫가에 바람이 가볍게 불었다. 그러자 호수 근처 풀이 흔들렸다.
저 파란색은 뭐지? 풀 사이로 보이는 흙더미 중에서 파란색이 섞여 보였다.
“파란 흙은 아닐 거고.”
나는 파란색 지면을 따라 걸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마치 이쪽으로 가라는 듯, 풀들이 알아서 옆으로 누웠다.
저절로 생긴 길.
나는 파란색 길을 따라 걸어갔다. 파란색 길은 큰 바위 앞까지 이어졌다.
바위 뒤에서 졸졸졸, 샘물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가 호수 수원지인가?
나는 바위 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랬더니, 생각대로 작은 샘이 있었다.
“이거로군.”
나는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춰 옹달샘에 손을 넣었다.
그 순간, 옹달샘으로 빛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빛은 뭉쳐지더니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아름답다.]언제 왔는지, 카이가 덩어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벨라 털 색과 똑같아.] [웅, 예뻐.]팅거와 벨라까지 옆에서 옹달샘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우리 주변으로 동물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마커스, 손.]-어, 음.
카이의 말에 나는 옹달샘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스르륵, 파란 덩어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손에 착 달라붙었다.
* * *
[으헤헤헤헤!] [우와, 끝내준다.] [마커스, 너무 멋있어!]우리는 불이 꺼지고 있는 장면을 내려다보면서 박수쳤다.
[히힛, 이제 마기만 거두면 되겠다. 그런데 거둘 것도 없네. 쟤가 일을 다 해.]결론부터 말하자면.
-벨라, 너 최고다! 이게 다 네 덕이야.
[헤헤. 그냥 아는 강 이름을 말했을 뿐이야.]내 칭찬에 벨라가 기분이 좋은지, 날개를 파닥거렸다.
벨라 덕에 손에 넣은 파란돌, 성물은 정말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
파란돌은 회생 능력을 지녔다.
카이가 끊임없이 물을 끌어 올려 타오르는 불을 진화했다. 카이가 끌어올리는 물은 당연히 파란돌을 찾았던 호수의 물.
마신이 일으켰을 게 틀림없는 불을 아주 시원하게 꺼뜨렸다.
쇼어 힐러관의 물은 마기중독을 고치고, 파란 호수의 물은 마신의 불꽃을 꺼뜨렸다.
대단한 성물들이다.
[마, 마커스 저길 봐봐!] [나무가, 나무가 살았어.]나는 녀석들의 말에 이 불 속에서도 살아남은 나무가 있다는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무가 살아나고 있었다.
잿덩이가 푸른 나무로. 재가 되어 날아가 버린 풀들이 파릇파릇하게 나부끼고 있었다.
롤린스 제국에서, 그리고 프라이본에서 훼손된 숲이 회복되는 걸 목격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 더 빠르고, 더 완벽하게 복구되었다.
하물며 잿더미로 온통 회갈색으로 뒤덮인 하늘도 맑게 걷혔다.
쉴 새 없이 들리는 감사의 인사들.
거기에 따라 끊임없이 반짝이는 금색 찬란한 글씨들.
기분이 아주 좋았다. 역시 생명을 살리는 일은 참으로 위대하고도 기분이 좋은 일이다.
-혹시 마기가 강한 곳을 발견하면 알려라.
동식물들은 물론이고, 흙, 바람, 강물까지 인사를 해오는 것을 기회 삼아 나는 마신의 등장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최근 수상한 일이 있다면 그것도.
[아, 이상한 일이 있긴 있었다. 난 여기 터줏대감인 아스퍼나무다.]-무슨 일인데?
[일단 날 살려 줘서 고맙다. 내가 불타기 바로 직전에 기분이 살짝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 되지. 그러고 바로 불타 버렸으니.]-그렇군. 기분이 왜 좋았던 건데?
[내 뿌리 밑에 뭉쳐 있던 마기가 한꺼번에 뽑혔다. 그것들 때문에 늘 약한 통증이 있었는데, 해방되었지. 그래서 맑은 기운이 오고 있구나, 생각했는데.]-불덩이가 몰려왔나 보군.
[그래.] [그건 우리 바람도 마찬가지였어요. 날아다니다 보면 간혹 걸리는 마기가 갑자기 사라져서 기분이 참 좋았거든요.] [내 경우는 달랐다. 갑자기 강력한 마기가 느껴졌다.]아스퍼 나무와 바람을 시작으로 다들 경험담을 풀어놨다.
땅속과 공기 중에 있던 마기 기운이 한꺼번에 사라졌다가 한데로 모였다는 것.
“마신이 흩어진 마기를 모으고 있나 보군.”
마물들은 마기가 제거되지 않으면 시간이 흘러 부활한다. 그런데 그걸 마신의 마기가 촉발하고 있었다.
-마기가 감지되면 당장 알려 줘.
[알았다, 그리고 내 미약한 마나로 막아 보겠다.] [나는 그것들이 뭉치려고 하면 날려 보낼게요.] [내 신과도 효과가 있을 것 같아.]-부탁하지.
그렇게 말을 하곤 나는 곧장 날아올랐다.
그리고 오베르 협곡을 돌아다녔다. 참혹했던 상황은 이미 끝이 난 상황.
더는 이 일대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거로 끝내진 않을 놈이지.”
제2, 제3의 오베르 협곡 참상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드래곤 구슬을 꺼내 봤다.
셀 수 없이 빼곡한 까만 점들이 보였다.
주변에 마물들이 많다는 뜻.
당장 마물 놈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어 한두 마리 더 죽을 순 있겠지만, 그런 것으로 마신은 눈 한번 깜짝하지 않을 거다. 더더욱 죽지도 않을 거고.
지금까지 마신이 있는 위치를 대략 알면서도 가지 않았던 이유.
누구보다 마신이 어떤 놈인지 잘 아는 테페론 신이 굳이 다섯 개의 성물을 찾으라고 말했던 건 이유가 있을 터.
그리고 또 하나. 난 부활할 수 없는 존재다.
한번 죽으면 끝인 상황.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이거다.
“마지막 성물 하나를 빨리 찾자!”
나는 그 자리에서 벨라가 알려 준 장소로 이동했다.
* * *
마커스가 성물을 찾으러 이동한 그 순간, 마신은 당황했다.
자신이 직접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마기폭풍이 힘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게 왜? 어디서 힘이 빠진 거냐?”
마신은 재빨리 검붉은 조각을 마기폭풍이 지나간 자리로 보냈다.
잠시 후, 마신의 두 눈엔 푸른 오베르 협곡이 맺혔다. 마기 폭풍이 일어나기 전의 모습인 푸른 산, 맑은 강이.
그걸 보는 마신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밀려드는 마기를 빨아들이면서 여유로운 표정을 짓던 마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없이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구냐? 감히 누가 내 일을 망치고 있는 거냐!”
마신은 끓어오르는 화를 그대로 분출했다.
마신의 몸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강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순간, 공동 주변이 크게 울렸다. 땅이 갈라지고 바위가 쪼개졌다.
쾅!
쪼개진 바위 조각이 공동 벽에 가 부딪쳐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마신의 터럭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재가 되어 타 버렸다.
마신이 내뿜는 마기로 돌덩이들이 타버렸던 것.
쾅. 콰광. 우르릉 콰쾅.
마신이 있는 공동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집채만 한 바위가 날아다녔다.
쾅!
바위가 공동 벽에 가 부딪쳤지만, 바위만 부서져 내렸다.
쿵!
마신이 들고 있는 지팡이로 바닥을 내려찍었다.
지이이잉. 징징징징.
땅을, 흙을 타고 마기가 흘러 들어갔다.
쿵, 쿵, 쿵쿵쿵쿵쿵.
아무리 지팡이로 땅을 내려쳐도 분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 공동 어디선가 투투둑, 소리가 났다. 그러나 분노한 마신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마신은 여전히 분노했다. 그가 분노를 분출하면 할수록 공동 내에 마기는 점점 그 수치를 높였다.
“감히!”
마신은 괴성을 으르렁거리며 강하게 지팡이로 바닥을 쳤다.
징징징징.
공동에 진동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마신의 크나큰 웃음소리가 공동을 가득 채웠다.
“으하하하하!”
조금 전까지 분노했던 마신은 어디로 갔는지, 마신의 표정은 더없이 좋았다.
웃음을 그친 마신은 천천히 공동을 걸어 다녔다. 아무런 저항이 느껴지지 않았다.
“흐흐, 이렇게 개운할 수가.”
룬데릭과 앨빈이 방문했을 때, 마신은 그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도 있었고, 움직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공동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직 공동에 걸린 결계가 힘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이제는 공동에서 완벽하게 분리되었다.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누군지 몰라도 그놈, 잘했군. 이런 걸 인간들은 은인이라고 했던가?”
복구된 오베르 협곡을 보고 분노했던 것이 이런 복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니.
“고마울 것도 없지. 날 가둔 게 인간 놈들이었으니.”
마신은 분노가 가라앉은 눈으로 다시 한번 오베르 협곡을 살폈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심각한 표정.
아주 유심히, 장면 하나하나를 분석했다.
“자연의 지혜를 손에 넣었군.”
마커스가 파란돌이라고 지칭하는 성물의 이름이었다.
“인간이 제법인데? 누구지? 애틀리스 후손인가? 아니면 호헨의 후손인가?”
마신은 호헨 베이크에게 테페론의 성물에 대해 알려 준 적이 있었다. 만약 그걸 후손들에게 알렸다면.
“자연의 지혜를 손에 넣은 놈이니, 분명 다른 성물도 찾아다닐 게 분명하다. 자연의 지혜와 짝을 이루는 성물이 제니아에 있었지, 아마.”
인간이 성물을 찾아내기 전에 그들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마신이 두 손을 벌렸다. 손뼉만 치면 룬데릭과 앨빈이 모습을 드러낼 거다.
“가만, 해방된 기념으로 이 몸이 직접 움직여 볼까? 제니아에 간 김에 데스케이드도 들리고.”
마신은 데스케이드에 가서 온천 호수에 잠들어 있는 파이테스들을 모조리 다 깨울 생각이다.
그래서 아직 방패가 없는 마물들에게 방패를 모조리 입혀 줄 생각이다. 방패만 입으면 성물의 신성력에 타죽을 일은 없다.
그렇게만 된다면.
“압승을 이룰 것이다.”
마신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제니아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