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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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평화가 찾아왔다.
우리를 괴롭히고 대륙을 벌벌 떨게 했던 온갖 것들이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다.
만약, 내 옆에 저 녀석들이 없었더라면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여긴 어때?]툭, 마정석 하나가 테이블에 넓게 펼쳐진 지도에 떨어졌다.
카이가 던진 거다.
[웅, 거기 근처에 녹음관이 있는데.]벨라가 마정석이 떨어진 곳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렇다는데? 너 굳이 녹음관 옆에 집을 지을 거야?
[뭐 어때? 우리 집도 있고, 녹음관도 있으면 좋지.]-그건 좋은데, 녹음관이 있는데 굳이 저택을 지을 필요가 있겠어? 거기 애들은 아프지도 않을 건데.
[그런가? 그럼 내가 거기 갈 때 지내면 되지 뭐. 어차피 그 근처에는 우리 집도 없잖아.]또 나왔다.
카이의 ‘우리 집’.
카이는 한결같이 ‘우리 집’에 집착했다. 지금 벌써 우리 집이 10개다.
물론 이 열 개에는 율리시즈 백작저나 드워프 캠프도 포함돼 있지만.
-너 그럼 거기에 별장을 지으면 녹음관엔 놀러 안 갈 거야?
[갈 건데?]-그럼 그 집에서 혼자 잘 거야?
[내가 왜 혼자 자?]-난 거기 갈 일이 있으면 녹음관에 가서 잘 생각이거든. 간 김에 슈리엔 분들도 만나고. 그리고 유리아 기운도 받고.
마신과 마물이 사라진 지금, 성물들은 모두 제자리를 찾아갔다.
녹음관에 있던 유리아도 마찬가지.
봉인이 풀리기 전에도 마나가 충만했던 녹음관은 지금은 그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성력이 충만한 축복의 땅이 되었다.
[난 거기 동물들을 만나러 걸 거야. 걔들이 딸기 신과를 챙겨 놓는다고 말했거든.] [맞아. 거기 딸기 신과 되게 맛있었는데.] [요즘은 더 맛있어졌다던데?] [정말? 마커스 우리 거기 언제 가? 딸기 신과는 겨울철에 먹는 게 제일 맛있다고 했는데.]-그래? 그럼 그때 가지 뭐.
[히힛, 좋아. 애들에게 미리 연락해 놔야지.] [그로스 산 애들에게도 말해놔야지.]벨라가 룰린스 제국의 산불이 났던 지역을 언급했다.
-아픈 놈들이 있으면 그때 날 보러 오라고 해.
[알았어.] [음, 결정했다!]카이가 그렇게 말하면서 후, 입김을 내뿜었다. 그러자 조금 전에 지도에 떨어뜨린 마정석이 옆으로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웅, 거긴 그로스 산들이 있는 곳 같은데?]벨라가 말한 그로스 산들이란, 그로스 산, 베리드, 포호드 산 등 과거 화재가 발생했던 산들을 뜻했다.
[맞아. 거기. 그 근처에 집을 지어야겠어. 겨울에 애들 추울 거잖아. 집을 지어서 따뜻하게 해 줘야지.]-그거 괜찮네. 그럼 여기로 하자.
[이히히, 그럼 다음번 우리 집은 어디로 할까?]카이가 새로운 마정석을 들고 지도를 바라봤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에른이 입을 열었다.
“결정하신 겁니까?”
“응, 롤린스 제국의 그로스 산 근처에 짓고 싶은가 봐.”
“알겠습니다. 적당한 곳을 물색하겠습니다.”
에른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펜을 들고 수첩에 썼다.
지금 우리는 대륙 지도를 펼쳐놓고 쉘터를 세울 장소를 물색하는 중이다.
마신이 사라지자, 올보그 황제를 비롯해 각 나라의 지도자들이 앞다퉈 감사의 인사를 해 왔다.
물론 빈손으로 인사를 해 오진 않았다. 나는 그들이 준 차고 넘치는 재화로 새로운 계획을 수립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녀석들, 카이. 팅거, 벨라의 이름을 역사에 남길 생각이다.
하여 나는 이 녀석들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재단을 세웠다.
이름하야 ‘벨팅카 재단’.
벨팅카 재단의 첫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거다.
[마커스, 몇 개 세워?]-알아서 해. 너희들이 주인이니까.
[히힛, 그럼 백 개? 백 개 세울래.] [응응, 백 개 좋다.] [거기에 우리 재단 이름이 들어가는 거야?]-이름도 들어가고, 너희들 동상도 세울 거야. 드워프 영감님들이 만들어 주신댔으니까.
[히힛, 기운돌을 많이 만들어 놨으니까, 동상에 가득 넣어야지.]-그래.
카이가 말한 기운돌이란 우리의 마나, 신성력, 거기에 카이와 레가시의 기운…….
나 참, 레가시가 날 이 세계로 끌어들인 장본인이었다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레가시는 테페론 신의 대리인이란다.
그러니까 내게 딜을 건 놈이었단 소리.
‘아파서 죽어 가는 ……물들이 당신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도움을 주시겠습니까?’
아, 갑자기 혈압이 오르려고 하네. 그놈 때문에 내가 굴렀던 지옥 같은 상황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 레가시의 뻔뻔한 얼굴도 생각났다.
뭐라고 했었지?
자기 덕분에 내가 영웅이 되었다나?
레가시는 자신이 나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아오! 뻔뻔한 놈!”
“마법사들은 원래 그렇습니다. 대신 확실한 결과를 가져오니까,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응?”
마법사? 나는 에른의 말을 듣고 레가시가 마법사였는지, 잠시 생각했다.
“블록 님이 가져가신 마정석은 조만간 크게 돌아올 겁니다.”
“그것까지 일일이 보고하지 않아도 돼. 그녀석이 마정석을 챙겨가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블록이 물욕이 그리 없다는 건 알고 있는 사실. 블록이 마정석을 원했다면 연구실에서 사용했을 거다.
“그래서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장께서 과하다고 생각하시니, 앞으론 백 개 이상 반출할 경우엔 반드시 미리 허락을 받겠습니다.”
“백…… 개?”
“예. 이번에 카이 님이 만드신 초상 기운돌을 구현해 보시겠다면서 붉은색 마정석 100개, 보라색 마정석 100개, 그 외 마정석은 500개를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대장님의 말씀대로 곧바로 허가를 내줬습니다. 그러면 다음부터는 수량 조절을 하겠습니다. 얼마로 한계를 잡으면 되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린 대로 백 개로 할까요?”
이 미친놈이!
아무리 마정석이 넘쳐난다고 해도, 그렇게 한꺼번에 가져가냐?
아니 그 전에 카이가 한 걸 구현해 낼 생각을 했다니, 도대체 머리가 어떻게 된 놈이길래 그런 생각을 하지?
이 미친 블록 놈을 어떻게 잡을지 생각하고 있는데, 카이가 화를 버럭 냈다.
[뭐? 마정석을 칠백 개나 챙겨갔다고?]갑자기 바닥이 휘청거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운의 폭풍이었다.
[그렇게 많이 가져가면 우리 집은 어떻게 꾸며? 그러지 않아도 마정석이 부족할 것 같아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내가 미리미리 챙겨 두자고 말했잖아.]팅거가 옆에서 카이를 부추겼다.
[웅, 하이블 산 마정석이 자랄 때까진 새로 지을 집에는 당분간 금으로만 장식할 수밖에 없겠네.] [하아, 진짜 허름한 집이 되겠군.]카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참 나, 금으로 벽과 천장을 도배하는 놈이, 뭐? 허름하다고?
어이가 없었다.
[마정석, 연구소에 아직 있을지도 몰라.] [가자!]카이가 씩씩거리면서 날아가려고 하다가 나를 돌아봤다.
카이가 팅거 말을 듣고는 손을 뻗었다. 그러자 후드득, 마정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와와. 마정석이다!]벨라가 날개를 퍼덕이며 좋아하는 가운데 갑자기 블록까지 툭 떨어졌다.
“넌 왜 따라왔냐?”
“아, 씨. 내가 할 말이다. 날 왜 소환했냐?”
블록이 나를 노려봤다.
“내가 아닌데? 카이가 네가 자기가 써야 할 마정석을 싹쓸이했다며 화를 내면서 한 짓이다.”
“카, 아…….”
블록이 고개를 틀어 마정석을 만지며 좋아하는 카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어, 카이 님. 융합하시는 걸 한 번만 더 보여 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무래 해 봐도 카이 님께서 보여 주신 위대한 능력이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부디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블록의 절절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하여간에 마법사라는 놈들은 드래곤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뭐, 그렇게 간곡하게 부탁하니, 내가 한 번 더 보여주지.] [나도 배우고 싶어.] [나도 배울래. 나도 카이 너처럼 기운돌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 그래서 카이를 멋지게 그려 줄 거야.]벨라의 말에 카이의 입꼬리가 사르륵 올라갔다.
요즘 우리는 칼레이와 드워프 영감님들이 만들어 주는 기운돌에 기운을 채우고 있다. 그런데 카이가 거기에 기운색으로 그림을 그려 넣는 거다.
그림은 다양했다.
주로 마물과의 전투 장면을 그려 냈는데, 그게 또 엄청 멋지다는 거다.
동료들 모습부터, 팅거, 벨라, 스피카, 로이칸, 호크, 심지어 나도 있었다.
얼마 전에는 기운돌에 올보그 황제와 킬리안 황태자 그림을 그려서 그들에게 선물해 줬다.
당연히 호평. 올보그 황제는 그날로 벨팅카 재단의 최고 후원자가 되었다.
올보그 황제는 그날로 곧바로 지인들에게 자랑했다. 황제의 지인이란 바로 대륙의 권력자들.
벨팅카 재단에 후원금이 장마철 비처럼 쏟아졌다. 다들 카이의 작품, 초상 기운돌을 가지고 싶은 마음에 후원했겠지.
하여 지금 우리는 넘쳐나는 돈을 쓸 사업을 궁리했고, 첫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쉘터를 보다 많이 세우기로 한 거였다.
[뭐, 그러든지.]카이가 으스대며 목에 걸려 있는 주머니에서 기운돌을 꺼냈다. 그리고 작업을 시전했다.
“오오!”
블록이 눈을 번뜩이며 카이에게 집중했다.
이어 카이의 강의가 시작되었고, 팅거, 벨라까지 눈을 반짝였다.
“참으로 신기하네, 도대체 카이가 한 말을 어떻게 알아듣는 거지?”
나는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시시덕거리는 블록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세이건도 애들 말을 아주 잘 알아듣잖아요. 저도 세이건 보다는 못 하지만 쟤들 얼굴을 보면 최소한 배가 고픈지, 화가 났는지, 기분이 좋은지는 알겠던데요?”
“그건 그렇지. 동물들도 다 표정이 있지.”
그때 통신구가 울렸다.
“마커습니다.”
=마커스, 심장병 증세를 보이는 실버폿이 왔어.
앨버부르크에 있는 월트였다.
월트는 주로 마커스솔루션을 담당하고 있었다. 내 식으로 말하자면 수술 담당.
그렇다는 건 포션 용량 같은 약리상담은 아닐 터.
“그래, 뭔데?”
=그때 네가 말했던 그런 경우 같아서 말이야. 마벨렌으로 검사했는데, 좌삼방이 커져 있고, 판막이 잘 안 닫히는 것 같아.
이첨판폐쇄부전증인 것 같군.
“알았다. 지금 바로 가지.”
=수술 준비 해 놓을까?
“그래.”
통신구를 끊으니, 방안의 모든 시선이 내게로 향해있었다.
-앨버부르크 치료탑에 가봐야겠어.
[지금?]-응, 금방 갔다 올 거니까, 너희들은 하던 거 하고 있어. 그거 끝나면 쉘터 후보지를 찾고 있던지.
[무슨 소리야? 가야지.] [응응, 함께 가야지.] [잠깐만. 애들 불러올게.]-아니 진짜 금방 갔다 온다니까?
[함께 가!]카이가 강경하게 나왔다.
흐이구, 레가시 그놈이 애들을 버려 놨어. 그놈이 쓸데없는 말을 지껄여서…….
레가시가 카이를 아끼는 건 사실이었다. 내가 레가시의 정체를 알고 난 후에는 대놓고 귀여워했다.
물론 팅거, 벨라도 예뻐했지만, 어쨌든 허구한 날 카이를 불러서 맛있는 것도 주고, 선물도 주고 그랬다.
녀석들과 함께 레가시를 보러 갔던 날이었다.
그때도 나는 레가시에게 왜 나를 여기에 불러서 이 고생을 시키냐고 따졌다.
레가시가 나를 이 세계로 불렀다는 말을 들은 이후, 그를 만나기만 하면 괴롭혔다.
그러면 레가시가 이렇게 말을 되받아쳤다.
아픈 동물을 치료하고 살려 주고 싶어서 수의사가 된 거 아니냐?
맞다. 당연한 거 아니냐?
그렇게 대답을 하면 레가시가 당당하게 대꾸했다.
그래서, 많은 생명을 구하지 않았냐고.
이보다 더 얼마나 보람된 일이 있겠느냐? 그러면서 레가시는 이렇게 말했다.
‘거긴 공자님이 없어도 잘 돌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여긴 아니죠. 공자님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아, 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그리고 더욱 영리하게 나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정말 고마워요.’
화내던 사람 무안하게.
나는 그게 더 겸연쩍어서 레가시를 만날 때마다 틱틱 거렸다. 앞으로도 그건 변하지 않을 거다.
그건 그렇고, 아무튼 레가시가 드래곤과 친하다고 하니, 카이는 왜 아직도 작은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카이는 내가 만났을 때와 그리 달라진 데가 없었다. 조금 큰 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작고 통통하고 하얗고.
너무 안 크는 거 아니냐고, 내가 뭘 잘못 먹이고 있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드래곤마다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카이 같은 경우엔 삼사백 년은 지나야 성장기가 온다는 거다. 어쩌면 오백 년이 넘어서 성장할 수도 있단다.
그래서 내가 지나가는 말로 ‘나 죽고 나면 크겠구나.’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카이가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죽는다니, 왜 죽냐는 거다.
결론은 카이는 드래곤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사람의 수명에 놀랐다.
그때부터 나와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고작 100년 밖에 못 보는데, 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나?
카이가 너무 정색하며 말해서 이미 20년을 살았다는 말은 하지도 못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로이칸, 스피카, 호크, 거기에 세이건까지 대동해서 앨버부르크로 워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