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43)
쾅!
통신구를 벽에 던지고도 화를 못 참고 씩씩거리던 올리프 공작은 곧 양미간을 찌푸렸다.
“끄으응.”
로이칸에게 당했던 오른쪽 다리의 통증이 아직도 심했기 때문이다.
“각하, 진통 포션을 더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됐…… 끄읍…… 그래, 주시오.”
옆에서 병상을 지키던 치료사에게 포션을 건네받으며 올리프 공작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이것보다 효과가 더 좋은 건 없소?”
“죄송합니다.”
“후우.”
좋다는 치료를 다 받고 효능이 뛰어나다는 포션을 다 먹고 있어서 그런지, 로이칸에게 씹혔던 다리는 점차 제 형태를 찾아가고 있었다. 다만, 통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끄응, 이놈의 통증.”
“죄, 죄송합니다. 더 나은 포션이 있나, 알아보겠습니다.”
며칠째 같은 대답을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치료사는 새어 나오는 한숨을 삼켰다.
올리프 공작 역시 인상을 쓰며 심복인 비서관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비에른 대공 측 분위기를 한번 알아봐. 그리고 콘스턴의 토비어스 왕의 최근 근황도.”
“분부 받들겠습니다.”
올리프 공작이 극심한 통증을 참아 가며 머리를 굴리고 있는 시간에, 마커스는 아버지 율리시즈 백작과 함께 베렌 공작을 만나고 있었다.
* * *
시합이 끝난 후,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내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여기저기서 몰려든 기자들과의 인터뷰에, 토벌대원들의 축하 인사, 기사아카데미 관계자들의 축하 인사 등으로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더욱이 내가 황제와 독대를 하고 난 후, 귀족들까지 내게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시합의 날이 지나가고 다음 날, 율리시즈 백작은 나를 데리고 베렌 공작을 만나러 갔다.
“수고 많았소.”
나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베렌 공작이 시선을 돌려 율리시즈 백작에게 말했다.
“백작이 검을 들고 연무장에서 땀을 흘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막내까지 이렇게 장성했다니, 허허허.”
“다 스승님 덕분이죠.”
오! 이 두 분이 사제 간이었나 보군.
“스승님께서 늦되는 자식도 있다며 느긋하게 기다려보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거 같습니다.”
“다 때가 있는 법이지.”
공작은 나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상대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소.”
역시 노련한 사람은 다르구나. 그걸 바로 알아보네.
“말을 낮추십시오.”
“흠, 그래도 되겠나?”
“예, 아버지 스승님이시면 제게는 하늘과 같이 높은 분이시니까요.”
“하하하, 능력만 뛰어난 게 아니라 사회성까지 갖췄군, 그래.”
“과찬이십니다.”
“실력도 뛰어난데 겸손하기까지. 이래서 폐하께서 마커스 자네를 아끼시나 보군. 그래, 콘스턴 왕국에 간다지?”
내가 콘스턴 왕국에 갈 거라는 말은 이미 알려진 상황.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필요한 마도구라도 있나 보군.”
“예.”
“어떤 걸 만들고 싶은지, 물어봐도 되겠나?”
엑스레이 기계와 초음파 기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치료소에 쓸 마도구를 만들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뼈를 자세히 볼 수 있는 도구라든지…….”
“허어, 몸속을 들여다본다?”
“예, 투시 마법 스크롤을 써서 볼 수도 있지만, 스크롤이라는 게 흔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자네는 그런 귀한 것을 마도구로 만들어 보다 많은 사람이 혜택을 입으면 좋겠다, 이거로군?”
아,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그저 여기 검사법이 답답해 내가 검사했던 방식대로 하고 싶어서 만들 생각인데, 베렌 공작은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거 같았다.
“뭐, 일단은요.”
“허어, 그런 생각을 하다니. 자네, 정말 애국자로군. 흠, 그렇다면 내가 도와줘야지. 마밸리에 베링거 연구소가 있네. 거기에 주벨로라는 마법사가 있는데, 그자가 굉장히 똑똑하지. 내가 소개장을 써 줄 테니, 가는 김에 한번 들러보게.”
베렌 공작 입에서 저 말이 나왔다는 건, 주벨로라는 사람이 뛰어나다는 뜻일 거다. 믿을 수 있을 사람이라는 것은 당연할 거고.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직각으로 굽혔다.
“감사합니다.”
“사람이 좀 괴짜라서 그렇지, 실망하진 않을 걸세.”
공작은 수행 비서를 시켜 종이와 펜을 준비한 후, 곧장 소개장을 써 내려갔다. 몇 자 쓰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공작은 두 번이나 팔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공작님.”
“응? 궁금한 게 있나?”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 편찮으신 데라도 있으십니까?”
“괜찮네.”
“오른팔이 조금 불편해 보이십니다.”
“음…… 어떻게 알았나? 상처가 조금 났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베렌 공작에게 물었다.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흠!”
공작의 얼굴이 굳어지자, 아버지, 율리시즈 백작이 바로 입을 열어 사과의 말을 건넸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제 아들놈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율리시즈 백작이 곧바로 날 나무랐다.
“마커스,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는 게 아니다.”
“괜찮네. 걱정되어서 하는 말 아니겠는가?”
공작은 주저하더니 소매를 걷었다.
“아…… 이런!”
베렌 공작이 소매를 걷어 올리자, 아래팔 부분이 천으로 둘둘 감겨 있었다. 분명 하얬을 천은 피와 고름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공작에게 물었다.
“아프지 않았습니까?”
“시간에 맞춰 오느라, 치료를 좀 게을리했다네. 그래도 마차에서 오는 동안 치료사가 할 만큼은 했는데, 차도가 느리더군. 후우, 이제는 나도 늙었는지.”
“늙었다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정정하십니다. 스승님, 지금 당장 황궁의라도 부르겠습니다.”
율리시즈 백작이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날 기세였다.
“괜찮네. 조만간 영지로 가면 제대로 치료를 받을 걸세.”
베렌 공작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환부를 보니 전혀 괜찮지 않았다.
환부에 이물이 박혀 있는 게 틀림없다. 아니면 세균감염이 심하거나.
그간 임상 경험으로 미루어 봐서, 이곳의 마나 치료법과 포션은 효과가 굉장히 좋다. 부러진 뼈도 붇게 할 정도니 말해 뭣 할까.
그러나, 이물 제거는 하지 못하는 거 같았다.
아니지, 내가 몰라서 그렇지 이물까지 녹여 버리는 더 고차원적인 치료법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아직은 본 적이 없다.
공작의 치료법은 간단하다. 이물이 남아 있는지 확인한 후, 있으면 제거하고, 괴사한 조직을 다 쳐 낸 후, 항생제를 투여하면 된다. 이때, 염증을 빨아내는 슈가테라피도 함께 쓰면 더 좋겠지.
아, 도니와 숀은 연구를 잘하고 있을까?
세피린에 대해 숀에게 말을 했더니, 예상한 대로 자기도 연구에 참여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어차피 두 군데서 연구를 진행 시킬 생각이었던 나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도니와 숀을 이어 줬다. 두 사람은 몇 번 통신구로 의견을 주고받더니. 숀이 짐을 싸서 드니체 치료탑으로 가 버렸다.
천재 두 명이 붙었으니, 진척이 있겠지. 오늘 저녁에 연락을 해 봐야겠다.
“그래, 어떤 거 같나?”
“요즘 치료탑에서 이런 병증에 적용되는 새로운 치료법을 연구 중입니다.”
“호오, 그건 뭔가?”
“예전 같으면 포션과 마나치료법으로 나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하면, 지금은 여기 농한 부분을 아예 긁어내는 방법을 씁니다. 그게 훨씬 빨리 낫습니다.”
“그런가?”
“예, 마침 볼프 탑주께서도, 슈미트 교수도 여기 계시니까, 그분들께 치료를 의뢰해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제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음, 볼프 탑주라…… 부탁하네.”
역시 볼프 탑주의 명성은 대단하군.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뭐가 있는가?”
“최근 우리 연구소에서 신약개발, 아니 새로운 포션 개발을 하고 있는데, 그 포션이 각하의 병증에 딱 맞는 포션인 듯합니다.”
“그런 것도 있나?”
“예.”
“흐음. 개발 중이라는 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거 같이 들리는데?”
베렌 공작이 주저하자, 율리시즈 백작이 말을 받았다.
“저희 상단에서 나온 포션들 중, 최근 것들은 다 이 녀석이 개발한 겁니다.”
“설마, 율리시즈 알약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왜 아니겠습니까? 이 녀석과 연구원이 함께 개발한 겁니다.”
“허어. 그래?”
공작이 갑자기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신뢰하는 눈빛이랄까.
“우리 어머니의 은인이 하는 말이니, 시킨 대로 해 보겠네.”
아, 공작 어머니께서 심장병을 앓고 있나 보군.
“율리시즈 알약을 드실 때, 마커스 가루도 꼭 드시기 바랍니다.”
“알겠네. 주치의에게 그렇게 일러두겠네.”
그 후로 베론 공작은 콘스턴 왕국의 상황을 이야기해 줬다.
콘스턴 왕국의 토비어스 왕이 어떤 사람인지, 경제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그리고 주변 나라들과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줬다.
외무대신으로 오랫동안 자리한 베론 공작의 혜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토비어스 왕의 동생인 비에른 대공이라는 자가 호시탐탐 왕좌를 노린다는 말이군. 그리고 토비어스 왕은 우리 황제와는 사이가 좋고.
“요즘 올리프 상단이 율리시즈 상단에 밀린다는 말을 들었네.”
지금까지 콘스턴 왕국에 관해 이야기하던 베른 공작이 말머리를 바꿨다.
“하하하. 아닙니다. 몇몇 제품들이 인기가 있을 뿐입니다.”
율리시즈 백작이 웃으면서 말을 아꼈다.
“이 사람, 겸손은. 아무튼, 그런 이유로 올리프 상단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을 거 같아서 하는 말이네만.”
베렌 공작의 표정이 심각하게 바뀌었다.
“말씀하십시오.”
“알고 있겠지만, 콘스턴 왕국에서 올리프 상단이 꽤 선전하고 있다네. 이 말인즉슨. 그쪽에 올리프 상단이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마커스가 콘스턴 왕국에 가는 것을 올리프 공작은 우리 상단이 그쪽으로 진출할 생각이라고 여기겠군요.”
“그렇지. 아마 방해가 들어올지도 모른다네.”
“말씀 감사합니다.”
“또 한 가지, 올리프 상단이 콘스턴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알고 있나?”
“폐하께서 다리를 놔주신 건 아닐 테고, 아, 혹시 비에른 대공입니까?”
율리시즈 백작의 질문에 공작은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자를 조심하게.”
“명심하겠습니다.”
베렌 공작은 내게 아주 중요한 정보를 이야기해 줬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올리프 공작의 비서관이 콘스턴 왕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에른 대공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웬만하면 올리프 공작이 갈 생각이었지만, 통증이 심해 도저히 장시간 여행이 불가했다.
“그래, 공작께서는 어떠신가?”
“이제는 많이 좋아졌습니다만, 아직 운신하기가 좀 힘드십니다.”
“대단한 분이야. 그 연세에 토벌에 참여했다니. 부디 몸 보존하시라고 말씀 전해주시게.”
“주인님께서 고마워하실 겁니다.”
그렇게 인사말이 오간 후, 공작의 비서관이 본론을 꺼냈다.
“조만간 율리시즈 상단에서 사람이 올 겁니다.”
비서관의 말을 들은 비에른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율리시즈라면 수리산 마정석의 소유주다. 설마 그 욕심 많은 늙은이가 그쪽과 거래를 연결해 주진 않을 건데, 무슨 일이지?’
궁금했지만, 비에른은 말을 아꼈다.
“혹시 축산 박람회라도 참석하는 건가?”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것보다 주인님께서 걱정하시는 건 따로 있습니다.”
“뭔가?”
“그쪽에서 마밸리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대공 전하의 연구를 알고 움직이는 건 아닐까, 생각됩니다.”
“뭣이라?”
“우리가 여러 유통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수리산 마정석은 그쪽에서 나온 거니까요. 어쩌면…….”
비서관이 잠시 말을 끊었다. 비에른으로 하여금 조바심을 내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말하게.”
역시. 비서관은 속으로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율리시즈 백작이 전하의 대업을 눈치채고 전하와 협상을 위한 행동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말로는 협상이지만, 까놓고 보면 협박이겠지요.”
“허…….”
“게다가 전하를 얼마나 얕봤으면 그쪽에서는 20살도 안 된 애송이를 보낸다고…….”
“무엇이라!”
쾅!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나는 비에른의 표정이 흉흉했다.